*** 미황사 괘불 (보물 제 1342호)
흔히 이러한 괘불탱의 기원을 티베트의 탕가에 두고 있지만
제작 동기나 그림의 질은 비교할 수 없다.
임진, 정유 양 왜란을 치르면서 전국은 초토화됐고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이 괘불은 목숨을 잃은 어부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수륙재(水陸齋) 때 걸었던 불화다.
사찰에서 천도재(薦度齋)를 올릴 때는 너무 많은 사람이 밀려와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치는 바람에
야외에서 행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거대한 야외용 불화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괘불의 크기는 높이 12m × 폭 5m로 대웅보전 앞의 괘불지주에 세울 수 있는 규모이다.
괘불지주의 크기는 높이 140cm × 너비 45cm × 두께 23cm × 구멍 지름 8cm,
괘불지주 간격 330cm 이다. 두 기둥에 달아 걸므로 괘불탱(掛佛幀)이라 부른다.
대웅보전 후불벽 뒤편 괘불함 속에는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과 조선 불화의 단순미를 고루 간직한
괘불(掛佛)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의 오른편 뒤쪽에 괘불이 들고 날 수 있도록 문이 있다.
이 괘불은 그 크기가 워낙 커서 괘불을 이운(移運)하고 봉안(奉安)하는 데만 30명 인원이 필요하다.
화기에 의하면 옹정 5년(영조 3년, 1727)에 괘불탱을 조성해 미황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증사는 옥내비구이고 화사는 탁행, 설심, 희심, 임한, 민휘, 취상, 명현 비구에 의해 제작되었다.
본존불의 얼굴은 눈ㆍ코ㆍ입이 작으며,
뾰족하게 솟은 육계에 윤곽선만 표현된 나발(螺髮)의 머리카락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묘사되었다.
허리 부분에서 띠매듭을 묶었고 법의(法衣)는 격자무늬를 장식하여 무릎 아래까지 드리워져 있다.
채색은 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渲染)과 녹두색ㆍ분홍색ㆍ황토색으로 은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삼베바탕에 비단으로 채색한 이 괘불은
마구니를 항복받는 손모양(降魔觸地印ㆍ왼손은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 끝은 땅을 가리키는 자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 입상을 중앙에 배치하고,
부처님의 왼쪽에 용왕(龍王)을, 오른쪽에 용녀(龍女)를 자그마하게 배치했다.
용왕과 용녀를 배치한 이 구도는
미황사가 위치한 지역이 바닷가이므로 어업을 생업으로 삼는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또 용왕이 비와 구름을 관장하고 있으므로 농업을 주업으로 삼는 민중들 염원도 함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용왕은 자물쇠가 달린 금함을 들고 있는데
이는《미황사사적비》에서 보이는 창건설화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황사 괘불은 영험하기로도 널리 알려진 불화로 예전부터 큰 법회에 모시고 야단법석을 여러 차례
열었는데 괘불부처님을 친견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 해에는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이 미황사 괘불은 야외 법회 때 걸기도 하지만 기우제(祈雨祭) 기도에 아주 영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가뭄이 극심할 때 이 괘불을 걸고 제사를 지낸 연후에 달마산 정상에 올라 불을 지피면 비를
내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지독한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괘불을 내걸고 마을제사로
기우제를 지내자고 요청한다는데, 실제로 1992년에 30년만의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도 기우제를
지냈는데 제를 지내고 서너 시간이 지나자 달마산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졌다고 전한다.
그림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연두색, 녹색, 붉은색, 갈색, 분홍색 등이 엇갈려 이룬
아름다운 여러 영기무늬의 갈래에서 오색 줄기와 오색 연봉(연꽃봉오리)이 나오고
그곳에서 커다란 붉은 연꽃과 분홍 연꽃이 각각 피어나 두 족좌(足座)를 이루고
그 위에 석가여래가 서 있다. 흔히 부처는 연꽃 위에 화생하여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기무늬에서 연꽃이 피고 그 위에 부처가 서 있다.
그러한 영기무늬는 대좌만 아니라,
여래의 왼쪽 아래의 용녀(龍女)가 들고 있는 항아리 속 여의보주가 발산하는 붉은 기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들 주변에 구름모양의 영기무늬가 밀집돼 있는데 역동적인 여러 모양의
갈색조 영기무늬가 밀집돼 있고, 다시 그 위로 여래의 신광(身光)에 이르는 공간에
연분홍색과 청색의 영기무늬가 아지랑이처럼 길고 유장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원래 기(氣)라는 것은 봄날 땅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가리켰다.
여래의 허리띠는 보살처럼 길지 않은데
이 그림에서는 두 발 사이까지 길게 드리워져 영기적 효과를 표현하고 있다.
흰 치마는 고구려 벽화처럼 녹색과 홍색으로 그려진 날아가는 구름모양의 영기무늬로 가득 채웠으며,
붉은 가사의 좌우 깃에는 고려 불화에서 옷을 장식한 영기무늬와
닮은꼴의 여러 형태의 보주(寶珠) 무늬가 장식돼 있다. 보주란 또 다른 영기의 응집이다.
화려한 녹색과 붉은 색을 대비시킨 가사의 원형 장식은
놀랍게도 S자가 겹쳐진 고려 불화 속 영기무늬와 같다.
두광(頭光)의 둘레와 신광 좌우의 오색무늬도 영기를 표현하고 있는데
특기할 것은 그 주변의 구름무늬다. 자세히 보면 구름 안에 작은 구름무늬가 중첩돼 있는데
그 주변으로 회전하는 곡선의 형태로 영기의 싹이 표현됐다.
이 무늬가 구름이 아니라 구름 모양의 영기무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화면 최상단의 커다란 연꽃무늬 역시 중첩된 구름모양 영기무늬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대광명(大光明)을 상징하는 대연화(大蓮花)를 표현한 것이다.
끝으로 여래의 정상계주(頂上髻珠: 머리 맨 위에 있는 보주)에서 두 갈래의 영기가 뻗어나와
좌우로 갈라지는데 그 주된 형태가 삼국시대 불상의 광배에 표현됐던 태극무늬와 같다.
이 괘불은 25년전 가뭄이 심해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기우제 도중 비가 오는 바람에
괘불의 배접과 삼베가 떨어졌으나 다행히 괘불 채색은 손상을 입지 않았는데,
1993년 현공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손상된 괘불의 배접불사를 마치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2002년 보물 1342호로 지정되었다.
***** 매년 10월이면 괘불재(掛佛齋)와
미황사의 작은 음악회 '달이랑 별이랑 사람이랑'이 열리고 있다.
- Rain / Uriah H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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