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빌린 말과 우리말 - 한글

Gijuzzang Dream 2008. 10. 11. 00:02

 

 

 

 

 

 

 한글연구회 최성철 회장, 빌린 말과 우리말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주춧돌을 반듯하게 잘 놓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외래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려면

먼저 ‘외래어’라는 주춧돌의 올바른 개념을 정립해야 합니다.

‘외래어’라는 용어는 일본말이며, 1940년대 동경제국대학 출신인 이희승씨를 필두로

일본 국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외래어 표기법’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우리말법에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입니다.

‘외래어’라는 용어의 본고장인 일본어 사전에서는 ‘외래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외국어이며, (外がい國こく語ごで,) 국어에 쓰도록 된 낱말. 좁은 의미에서 한자말은 제외.”

어디에서도 ‘외래어’가 자기네 말이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문학계와 정책 당국에서는 이것에 ‘귀화어’라는 가면을 씌워

국어 어휘라고 정의하고 있는 데서 복잡한 문제가 얽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다 함께 살펴보기로 합시다.

첫째, ‘외래어’를 국어 어휘로 보기 때문에 남용해도 막을 제어장치가 없습니다.

둘째,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부실로 인하여 잘못된 발음으로 표기한 ‘외래어’들이

우리말로 둔갑하여 고유어 대신 국어사전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므로

고유어가 훼손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두’에 눌려 ‘가죽신’ 또는 ‘갓신’이 죽고, ‘우동’에 눌려 ‘가락국수’가 죽으며,

‘뉴스’에 눌려 ‘새 소식’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외래어’를 국어 어휘라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굳이 새로운 우리말로 순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나랏말이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외래어’를 국어 어휘라고 인식한 것이

이처럼 우리 말글살이에 엄청난 비극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외래어’는 외국어이며

새로운 우리말로 순화할 때까지 빌려 쓰는 말이라고 인식을 바꾼다면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째, ‘외래어’는 남의 나랏말이니 쓰지 말자고 백성들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리므로

범람을 막을 수 있는 제어장치가 생겨납니다.

둘째, 원산지의 발음을 최대한으로 살려 발음하기에 불편하도록 표기하면

언중들은 자발적으로 편리한 우리 고유어를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빌린 말’을 원산지 발음과 거의 똑같게 표기하여 생활용어로 사용하면서 교육시키면

시험장에서도 헷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원산지의 발음을 구사할 수 있으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올바른 발음을 구사할 수 있어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부가적인 이중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또한 동남아 지역에서 영어 소통하기 가장 힘든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도 떼어버릴 수 있고,

한글의 위대함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도 될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부가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학계나 정책 당국자들은 새로 들어오는 빌린 말들을 부지런히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을 하여 새로운 어휘 창조에 매진하게 되므로 나랏말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최성철 ‘외래어정책 수립방안’

(한글문화연대 주최 ‘바람직한 외래어 정책 수립을 위한 학술토론회’ 발표문) 중에서


화성에 살고 있는 한글연구회 최성철(71) 회장이 모처럼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한글연구회 총무로 있는 문희탁 한국공개소프트웨어협회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장소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도착해보니 마침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는 ‘세종뜨락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나온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호주 멜버른 참모 악대의 연주를 듣는다.

그 여유로움이 가을 정취와 제법 어울린다. 그렇지만 막상 세종문화회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영 속내가 불편하다. 어디 기다릴 만한 장소를 둘러보는데 가게 이름들이 한결같이 영어 이름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세종’의 이름을 딴 이곳만큼은 한글 이름을 단 가게들이 들어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긴 가게 이름은 둘째치고 ‘체임버홀’이니 ‘M시어터’니 스스로 공간 이름부터 영어투성이니.

이름은 땄으되 그 얼은 이어받지 못한 헛된 공간.

한글연구회 최성철 회장(왼쪽)과 문희탁 총무.


한글연구회(cafe.daum.net/racky)는 그냥 한글을 좋아하고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최 회장이 인터넷에 ‘뿌리깊은나무’라는 ID로 글을 올리면서

그 뜻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었다.

올해 1월 25일 3·1빌딩에서 첫 모임을 했고,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 정례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마련한다.

현재 정규 회원은 138명, 정기모임에는 많게는 15~16명, 적게는 7~8명 정도가 참석한다.

 

그들은 모임에서 ‘한글의 세계화 방안’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의 필요성’ 등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최 회장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1998년.

그동안 올린 글만도 수백 편에 이른다. 국회의원, 학자, 기자뿐 아니라

신문 · 잡지 등에서 이메일 주소를 밝힌 이들에게 반강제적(?)으로 글을 보낸다.

처음 반응은 ‘인터넷에 또 미친놈 하나 나타났다’였고, 지금도 심심찮게 항의성 메일을 받기도 한다.

최 회장의 이력은 좀 뜻밖이다. 그는 어학은커녕 문학 관련 전공자도 아니다.

평안북도 신의주 태생으로 해방 후 월남했다.

일제강점기 때 동양철공소 지배인을 지낸 부친이 부르주아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되자 가족을 데리고

남으로 피신한 터였다. 부친은 6·25전쟁 때 다시 북으로 끌려가 지금은 생사조차 모른다.

부친을 여의고 1·4후퇴 때 부산으로 제주도로 밀려가며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나중에 모친이 재혼하고부터 배는 곯지 않게 되었다.

건국대학교 정치학부 법학과를 나왔고, 청계천에서 공구 수입상으로 먹고살았다.

1986년 군사정권이 싫어 자녀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당시 큰애와 작은애가 대학 1, 2학년 때로 아이들이 데모에 휩쓸릴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토론토에서 비디오 숍을 운영하며 5년 정도 살다 한국에서 민주화 물결이 일 즈음 고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생각해서는 계속 있고 싶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도무지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다.

최 회장이 엉뚱하게도 ‘한글 연구’에 붙들린 것은 캐나다에서의 작은 계기 때문이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현지 랭귀지스쿨에 다니다

한 번은 거기서 이란 출신 여학생이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녀의 영어 발음은 놀랄 만큼 빼어났다.

알고 보니 그녀의 영어사전에는 이란말로 된 발음 기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신이 알기로는 한글이 뛰어난 소리 글자인데, 이란말로 발음을 표기해

저 정도로 완벽하게 영어를 할 수 있다면 한글로도 못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그는 영어 발음 한글 표기 연구에 몰두했고,

평소 무슨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그의 성격이 그 일을 부추겼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장사하는 틈틈이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결실로 2001년에는 한 권의 책까지 내놓았다. ‘한국은 일본의 언어 식민지다’.

영어발음뿐 아니라 우리 언어 생활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일제 식민지시대의 잔재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훈민정음의 글자 중 지금은 쓰이지 않는 글자들을 이용해

발음표기의 한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옛 글로 표기한 미국 주 이름

그러나 그것은

“훈민정음의 ‘훈’자도 제대로 모를 때”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내놓은 방법은 우리 발음 표기 중 겨우 몇 가지 정도만 해결할 수 있을 뿐 나머지 더 복잡한 부분에서는 딱 막혀버렸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은 생각지도 않은 데서 찾아왔다.

한글 관련 누리꾼과 토론하던 도중 한 사람이 불쑥 귀한 자료를 보내준 것이다.

 

구한말쯤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미국 지명 표기 자료였는데, 그를 보는 순간 그는 무릎을 쳤다.

그리고 다시 ‘어제 훈민정음’을 파헤친 끝에 마침내

‘세종대왕이 주신 열쇠’를 찾아냈다.

그것은 ‘합용병서(合用竝書)’나 ‘각자병서(各字竝書)’를

이용하면 모든 소리를 얼마든지 글자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한글이야말로

‘실로 귀신의 소리까지 흉내낼 수 있는 소리의 보고(寶庫)’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새로운 소리가 필요할 때 그 곳간에서 필요한 소리를 꺼내다 쓰면 그만이었다. 굳이 자모의 사용을 한정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훈민정음의 본 정신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그때까지 서점에 깔려 있던 책을 모두 회수해 폐기처분하고 새로 책을 쓰기로 했다.

최 회장은 줄곧 새로운 ‘외래어 표기법’과 ‘한글 맞춤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빌린 말’의 문제고, 하나는 ‘우리말’의 문제다.

이제까지의 외래어 표기법은 한글의 세계화를 가로막고 있고,

현재의 한글 맞춤법 역시 일제의 잔재이므로 마땅히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때로 ‘마이동풍’이고 때론 ‘우이독경’ 격이다.

그가 언어학자도 아니고 번듯한 박사학위 하나 없기 때문일까.

그는 가끔 농담삼아 ‘만 달러 주고 박사학위라도 사야 될까보다’라고 푸념을 하기도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글의 우수성을 나타내기는커녕

“한글의 능력을 턱없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며

한글을 비하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공직자가 백성의 혈세를 축내고 있는 것이 이 나라다.

그러나 나랏말은 일부 관료나 학자의 것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는 백성 모두의 것이다.

 

그는 “한글 자모 40개 글자밖에 쓸 수 없게 한 것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에 어긋나며

학문의 자유를 구속한다”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립국어원 원장을 상대로

위헌소송이라도 제기해볼까 생각하기도 하고,

한글을 폄훼한 공직자를 상대로 ‘한글모독죄’로 고소할 생각까지도 해본다.

거리를 거닐며 잠깐 바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 청사 건물 외벽을 장식한

‘피어나는 한글’ 설치 작품이 화려하다.

문화관광체육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562돌 한글날과 한글주간을 맞아 설치한 대형 작품이다.

과연 한글은 피어나고 있는가. 물을 필요조차 없다.

거리마다 외래어는 고사하고 외국어 원어 간판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한글 설치 작품의 화려함은 외려 어색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턱없는’ 민초라도 죽어가는 한글을 위하여 안간힘이라도 써볼밖에는.

 

가는 길에 다른 모임에 들러 술 한잔 걸친 채 집으로 돌아가는 최 회장의 발걸음이 무겁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는 문화관광체육부 사이트 ‘장관과의 대화’ 방에서

토론이라도 한판 벌여야 할 모양이다.

첫째 ‘외래어’라는 용어를 버리고 우리말로 순화할 때까지 빌려 쓴다는 개념 아래

‘빌린 말’이라는 용어로 바꾸고, 백성들에게 ‘빌린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외국어라는

인식을 심어주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 현행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폐기하고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빌린 말 표기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한글 맞춤법’에서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정신을 마음껏 살리고

글자의 활용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말소리라면 세계 어느 나라 말소리라도

모두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 글 · 사진 유성문 편집위원 rotack@lycos.co.kr

- 2008 10/14, 위클리경향 7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