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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7. 그림 속에 숨은 천문학 - 점성술

Gijuzzang Dream 2007. 11. 22. 11:28

 

 

 

[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

 

 

 

 그림 속에 숨은 천문학 - 점성술  

 

해가 바뀌면 한 해의 ‘길흉화복’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점집 앞을 서성이는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요즘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점성술이나 타로점을 보는 젊은층이 늘었다.

기독교가 발전한 서양에서도 점성술은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다.

 

예술에서도 그 영향은 강하게 나타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조차 자서전에서

자신이 보름달의 영향이 없는 한낮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천문학자와 수학자가 모여 서양의 명화 속에 숨어 있는 점성술의 비밀을 풀어 봤다.

 

 

○ 운명을 점치는 일종의 달력

 

 

 

  랭부르 형제의 작품 ‘베리공의 신년축하연’에는

1월을 상징하는 별자리인 염소자리와 물병자리가 나타난다.

랭부르 형제는 이 외에도 2∼12월을 표시한 그림 속에

태양이 1년 동안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12개의 별자리를 표시했다.

 

 

새해를 맞아 봉건 영주의 성에서는 호화로운 향연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의 풍년을 만끽하고 새해를 맞은 봉건 영주들의 표정은 즐겁다.

술잔을 나르는 하인과 빵 굽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세밀화가 랭부르(Limbourg) 형제

‘베리공의 호화로운 기도서(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중세시대의 모습을 정밀한 필체로 담고 있다.

 

그런데 위쪽에 이상한 그림이 더 있다. 반원형 창에는 염소자리와 물병자리가 보인다.

창틀은 같은 간격으로 촘촘히 나눠져 있다.

 

랭부르 형제는 이런 그림을 11장 더 그렸다.

 

서울교대 이용복 교수는

“반원창에는 나타난 별자리는 12월 25일∼1월 19일 나타나는 염소자리와

1월 20일∼2월 18일 나타나는 물병자리”라며

“나머지 11장의 그림에도 2개씩의 별자리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들 별자리는 태양이 지나는 길(황도)의 배경에 나타난 별자리를 나타낸다.

천문학자들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일 때 태양의 위치(춘분점)에 있는 별자리를 시작으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별자리 12개(황도12궁)를 정하고 점성술에 사용했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이들 별자리는 30도씩의 등간격을 이룬다.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별자리를 통해 나타난 태양의 운동과 달, 행성은 점성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며

“랭부르 형제의 그림은 이런 천문학적 배경과 점성술적인 요소가 결합한 일종의 달력”이라고

설명한다.

 

 

○ 우울함을 막는 부적 ‘마방진’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판화 작품 ‘멜랑콜리아’에서도 점성술의 흔적이 발견된다.

왠지 모를 고민에 휩싸인 여인, 그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가지 기구와 숫자표가 보인다.

총 16개의 숫자로 이뤄진 이 표는 가로나 세로로 숫자를 더해도,

대각선으로 숫자를 더해도 합한 수는 모두 같다. 수학에서 마방진이라고 부른다.

 

한서대 이광연 교수는

“가로 4행, 세로 4열로 된 마방진은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목성을 뜻한다”고 말했다.

 

뒤러는 왜 목성의 표를 그림에 넣었을까. 이명옥 관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서양에서는 토성을 멜랑콜리(우울함)를 대표하는 행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목성은 냉철함의 표시입니다.

목성을 뜻하는 마방진이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일종의 부적으로 쓰인 셈이죠.”

 

그렇지만 하필이면 왜 4일까. 이광연 교수의 해석이 재미있다.

“천동설에 따르면 행성은 지구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순서를 따릅니다.

신이 만든 지구를 가장 완벽한 수 10으로 표시하면 달은 9, 수성은 8이 됩니다.

이 순서를 따르면 목성은 4가 돼요.”

 

 

○ “붉은 별이 뜨면 전쟁을 그쳐라”

 

점성술은 태양계 행성에 숫자 외에도 성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화성은 공격성, 목성은 야심과 냉철함, 금성은 관능성, 수성은 탐욕, 토성은 우울한 기질을 대변한다.

 

이 관장은 “고대 서양인들은 밤하늘에 보이는 행성의 색깔을 보고

그 기질에 맞는 로마신의 이름을 붙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목성이 야심의 상징인 제우스신의 로마식 이름을 딴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용복 교수는

“점성술과 천문학은 모두 관측을 근거로 하고 있다”며 “두 분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했다.

“산화철 성분이 많아 붉은빛을 띠는 화성을 보고 옛 사람들은 재앙과 전쟁을 떠올렸어요.

이 때문에 옛날 장수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화성이 밤하늘에 보이면 전쟁을 포기했죠.

푸른색을 띠는 목성을 냉철함의 상징으로 떠올리는 건 당연해요.”

점성술가의 의미 풀이 역시 과학적 관찰의 산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자리에는 천문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이용복 서울교대 교수와 수학자인 이광연 한서대 교수,

미술전시기획자인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이 함께했다.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 2008. 1. 4  ⓒ 동아일보 &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