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북두칠성과 돼지

Gijuzzang Dream 2008. 9. 9. 13:04

 

 

 

 

 

돼지머리 고사와 풍자의 해학

 

돼지는 여느 짐승과 달리 코가 뭉뚝하다. 아득한 옛날, 돼지가 먹는데만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주둥이를 잘라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돼지는 또 생식기가 삐뚤삐뚤한 모양이 가관이다.

옥황상제가 여러 가지 생식기를 만들어 놓고 하나씩 달아주는데,

먹는데만 정신을 팔던 돼지가 가장 늦게 오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찌끄러기 생식기를  달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삿상(告祀床)마다  빠지지 않고 오르는 돼지머리를 보면

온 몸을 희생하며 죽어서도 하늘을 향해 빙긋 웃으며 길러준 사람들의 복을 비는 듯한 천연스런 모습은

뭉뚝한 들창코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자못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며 상서스런 기운이 감돈다. 

신에게 소원을 빌면서 돼지머리 앞에 절을 한 다음 주둥이에 지폐를 물려주는 행위는

'부'의 기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진서(晉書)》의 「숙신씨(肅愼氏)」편에는

옛 고구려 영토로서 만주 지방에 살던 읍루( 婁)족에 관하여 이런 기록이 나온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고 그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어 입으며,

겨울철에는 찬 바람과 추위를 막으려고 돼지기름을 두텁게 몸에 바른다.

또 사람이 죽으면 돼지를 잡아서 관 위에 올려 놓아 망자(亡者)의 양식으로 바치는 습속이 있다."

 

이로 미루어 우리 민족이 고삿상에 돼지머리를 얹는 습속은 여기서 온 듯 하다.  

  

어쨌거나 희생의 제물이 되어 고삿상에 올려졌어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듯한 돼지머리를 보면

오랜 세월 끈질긴 삶을 일구어 오며 이 땅을 지켜낸 민족의 한(恨)이 떠오르고,

이러한 한이 민중의 슬기와 지혜에 걸러지고 승화되면서

익살스런 풍자와 해학으로 웃음 속에 녹아들어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희생 제의(祭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의 분노, 즉 자연의 급작스런 변화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시시대부터 있어왔는데,

신과 인간과의 연결매체로서 돼지머리가  제물(祭物)로 쓰여지게 된 데에는

《역경(易經)》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화가 최병수 별을 품은 '돼지의 꿈' ⓒ 조찬현 ⓒ 전라도닷컴 (2007-02-09)

'돼지의 꿈'은 진화다. 별을 품고 있다. 돼지가 북두칠성을 품고 있다.

돼지 코를 통해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쉼 없이 들어오고 있다. 돼지도 꿈이 있다.

'돼지의 꿈'은 사람이 본분을 알고 지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돼지는 북두칠성의 정령이 붙어 생겨난 짐승이라서 본래 하늘에서 살았는데,

온 몸이 검다하여 용(龍)의 미움을 받아 땅으로 �겨났다고 한다.

지금도 돼지 앞다리의 뒤쪽에 북두칠성퍼럼 검은 점 일곱 개가 나 있는 것은

돼지가 하늘에서 살았던 증명이라 하여 이것을 칠성점(七星點)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람의 생사길흉을 관장하는 칠성신앙이 야합하여

고사를 지낼 때 그 교감매체로서 돼지머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먼 옛날 하늘 세계의 옥황상제 밑에 '업' 장군과 '복' 장군이 있었는데,

두 장군은 상제에게 서로 잘 보이려고 서로 몹시 시샘하여 상제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다.

그래서 상제는 두 장군에게 탑을 �게 하여 드들 중 먼저 탑을 쌓은 자를 가까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업' 장군이 잔꾀를 부려 먼저 탑을 쌓았지만 그 속임수가 곧 들통났다.

상제는 '복' 장군을 돼지로 환생시켜서

사람들이 상제에게 소원을 빌 때 중계역할 을 맡도록 하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로부터 돼지머리가 희생 제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돼지머리가 희생 제물로 고삿상에 오르는 실제 이유는

돼지가 일반인들이 비교적 구하기 쉬운 짐승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머리를 희생 제물로 바치려면 큰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야 하지만

농경민족이라 소가 귀한 짐승이었던 옛날에 서민들이 소머리를 제물로 쓰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그보다는 값도 싸고 구하기 쉬운 돼지머리를 자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옛날 함경북도 지방에서는 돼지가 몹시 꿀꿀거리는 것은 비가 올 징조이며,

가뭄이 들 때에는 돼지머리를 잘라서 연못에 내던지면 비가 오게 된다는 속신(俗信)도 전해지고 있다. 

 

 

 '돼지머리' 고사의 우리말 의미

 

 

우리 민족은 초현대식 건물을 기공하거나,

심지어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인공위성을 하늘에 쏘아올리는 자리에서도

새롭게 큰 일을 시작할 때에는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고사를 지낸다.

지금은 이것이 미신이라기 보다는 신명(神明)의 원점에 귀의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가

민족 고유의 전통과 접목된 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기원(祈願)정신으로 보여진다.

  

더구나 요즘은 돼지머리 고사가 경건한 제사의식이라기 보다는 흥겨운 잔치마당으로 치러지면서

최첨단 과학과 미신과의 기묘한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 데에는

'돼지머리'라는 우리말에서 알게 모르게 연상되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전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첫째, 우리 민속인 윷놀이에서 '도'는

돼지를 상징하는 동시에 '시작'을 의미하여 "첫 도는 살림밑천"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일은 첫 단추를 잘 꿰야 하고 "시작이 반"이라 하므로,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돼지머리를 고삿상에 올려놓고

'시작머리'부터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둘째, '돼지'는 '도야지'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되야지'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리고 '돼지'라는 말 역시 일이 잘 되어가는 상태를 일컫는 '되지'와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시작은 물론 앞으로도 하는 일이 계속 잘 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셋째, 돼지의 한자말 '돈(豚)'은 우리말 '돈(money)'과 같은 소리말이다.

일이 시작머리부터 잘 되어 다산성(多産性)인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듯  

많은 돈을 벌어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돼지 주둥이에 돈을 물리는 것이다.

  

넷째, 돼지는 노상 꿀꿀거려서 '꿀꿀이'라고도 하므로, 자연스레 '꿀'[蜜]이 유추되고,

또 돼지는 틈만 나면 꿀맛 같은 단잠을 자므로 '꿈'이 연상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돼지머리를 신에게 바치는 매개물로 하여

이상(理想)의 '꿈'이 실현되는 '꿀맛' 같은 삶이 이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북두칠성에 숨은 이야기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운천사라는 절에 일행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엄격한 수행을 쌓고 학문을 닦아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느 날 스님이 계신 곳에 한 할머니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뛰어 들어왔다.

할머니는 "스님 저희 아들을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쳤는데,  할머니의 아들은 살인 누명을 쓰고

잡혀가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일행스님이 젊었을 무렵 스님을 돌보아주었던 분이었다.

 

"말씀은 잘 알겠지만, 저는 승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라의 법률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실 수 있으세요. 젊은 시절 가난한 스님을 보살펴드린 일을 잊으신 건 아니시지요?"

할머니는 일행스님에게 맥이 풀려 돌아가 버렸지만, 스님은 젊었을 때 할머니한테 은혜를 입은 일이

생각나 견딜 수 없었다. 스님은 좋은 방도를 생각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스님은 절의 본당에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놓고 일꾼 두 사람을 불렀다.

"자네들한테 부탁할 것이 있네. 이 마을 변두리에 황폐한 벌판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

그곳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어 주게.

그러다 보면 해지기 전에 뭔가 틀림없이 올테니까 머리에 이 자루를 씌워서 꼭 잡아주면 되네."

스님의 분부대로 두 사람은 변두리 벌판에 가서 무언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더니 저 멀리서 난데없이 돼지 7마리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돼지에게 자루를 씌워 절로 가지고 오자, 스님은 돼지들을 큰 항아리에 담았다.

 

다음 날 현종 황제가 급히 일행스님을 불러, 궁궐에 있는 사자들은 허겁지겁 스님을 찾으러 왔다.

이유인 즉, 바로 전 날에 북두칠성이 밤하늘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

밤하늘에 별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한 왕은 급히 스님을 부른 것이었다.

 

"황제폐하, 정말 큰일입니다.

별자리가 없어진 것은 틀림없이 하늘나라 천제님이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없는 사람이 사형을 당하게 되는 일은 없는지요.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나라 곳곳에 천재지변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스님의 말에 황제는 새파랗게 질려 신하들을 불러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있나 찾아보라고 하였다.

결국 할머니의 아들이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아들은 풀려나게 되었다.

 

운천사에 돌아온 스님은 본당에 놓아두었던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돼지 한 마리가 휙 날아 오르더니, 그대로 별이 되었다.

그날 밤 별을 지키는 사람이 황제에게 북두칠성 중 하나의 별이 나타났다고 알려 왔다.

이후로 매일밤 별이 하나씩 늘어나서,

칠일째에는 북두칠성이 전부 모여서 북쪽하늘을 반짝반짝 빛내게 되었다.

황제는 기뻐하며 스님의 공로를 치하하였고, 스님은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예부터 북두칠성은 세상의 옳고 그름을 다스리며 사람 목숨을 관장한다고 전해진다.

북두칠성이 다른 별들과 달리 늘 제자리를 지키기에, 고대인은 이 별이 천상의 중심에 있다고 여겼다.

어머니들은 북두칠성 국자 부분이 땅을 향해 기우는 자시, 장독 위에 물그릇을 올려놓았다.

그러면 하늘 정기가 서린 국자 속 물이 그 그릇에 떨어진다고 믿으며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고 또 빌었다.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은 사람들에게 시간과 방향을 알려 주는 역할도 해 왔다.

 

국자의 움푹 패인 부분을 이루는 사각형 맨 끝별 두 개 사이에 직선을 그어 5배 연장하면 북극성이 있다. 이렇게 찾은 북극성으로 길을 잃었을 때 동서남북 방향을 찾았다.

또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1시간에 15도씩, 12시간이면 180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국자 손잡이가 시침인 셈이다.

우리 눈에는 일곱 별이 서로 이웃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제각각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군인을 뽑을 때 북두칠성을 시력 검시표로 사용했다.

국자 손잡이 끝에서 두 번째 별인 미자르 옆에는 알코르라는 별이 있는데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잘 안 보인다. 만일 알코르를 발견한다면 시력이 좋은 것이므로 합격이었다.

 

북두칠성을 큰곰자리 꼬리라 부르는 그리스 신화에는 수많은 별자리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의 별을 찾아내기 쉽게 몇 개씩 이어서 동물이나 사람에 빗대어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곧 하늘 자체가 한 권의 책이다.

                                                         

 

 

 북두칠성과 우리 민족

     

민화에 따르면 우리는 북두칠성 신선의 점지를 받아 태어난다.

그런데 출생 과정만 북두칠성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재래식 장묘에서 관 바닥에 까는 것을 칠성판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삶은 북두칠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삼국시대 고분 벽화에도 북두칠성은 빠지지 않는다.

북두칠성으로 은하수를 떠 마시겠다는 정철의 가사는 멋까지 간직하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개천절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공휴일을 가지고 있는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개천절 행사에 참여하는 강화도의 칠선녀는 무엇을 상징할까.

이것 역시 북두칠성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만큼 우주와 하늘을 사랑하고 숭상해 온 민족은 거의 없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 또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천체를 상징하여 만들어진 국기는 꽤 많다.

예컨대 일본의 국기는 해를 상징하고 있고, 중국의 국기에도 별 다섯 개가 나온다.

반면 우리 태극기는 세계의 수많은 국기 중 유일하게 우주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한마디로 자랑스러운 '우주 민족'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도대체 우주와 하늘을 숭상하던 전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심지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축복받지 못한 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에 살든 국외에 살든 민족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둘로 갈라져 있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외국인들은 초현대식 빌딩을 짓고 나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바람직하다 아니다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지내온 제천 행사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늘에 빌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한 외국인의 질문에 무척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바로 한국인의 공통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3.1 정신, 새마을 정신, 국민교육헌장, 충무정신…,

어느 것 하나 나의 가슴을 진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국내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필자가 그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한 것이 한심했지만

문제는 그것이 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필자는 같은 질문을 주위의 한국 사람들에게 수없이 던져 보았지만 시원스럽게 들리는 대답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나오지 않았다. 필자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어 몇 년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자신 있게 대답한다-우리의 공통정신은 '우주민족사상'이다.

한마디로 우주의 섭리를 밝혀 이에 순응하려는 정신이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비라 부르며 추앙했다.

사극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누군가. 천문을 보고 천기를 누설하는 도인 아닌가.

천벌을 두려워하며 의로운 삶을 추구하다 보니

가난한 선비 또한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타가 됐다.

우리 옛 그림에 나오는 낚시꾼은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세월을 낚는, 자연을 관조하는 선비다.

한국인들이 귀거래 후 누리고 싶은 삶이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삶 아닌가.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는 선비는 꼭 남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란 예를 들어 음식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으려고 노력한 옛날 여인들도 포함된다.

옛 어머니들이 떠 놓은 정화수에는 북두칠성이 비치지 않았을까.

 

또, 필자는 기성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역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니 어떤 오해도 없기 바란다.
-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 중앙일보 2006.09.29 [박석재의천문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