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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연재자료)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3. 중국의 조상 '진뉴산인 기원설'

Gijuzzang Dream 2007. 11. 17. 11:16

 

 

 

 

(3) 중국 조상 ‘진뉴산인 기원설’

-“발해만-한반도 구석기문화 한 영역”-

발해만에서 확인된 인류화석인 진뉴산인(28만년전)의 복원모습.

랴오닝성 박물관은 이 진뉴산인은 중국인의 조상으로 꼽고

‘진화의 흐름도’에 진뉴산인을 그려넣고 있다. 선양/김문석기자

“挑戰 夏娃學說(도전 하와학설).”

7월30일. 탐사단은 선양에 있는 랴오닝성 박물관 첫번째 전시실에서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하와(夏娃)’는 아담과 이브의 ‘이브’이며, 이 문구는 “이브학설(The Eve of Theory)”에 도전한다는 뜻이다.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이곳에서는 이른바 ‘랴오허문명전(발해문명전)’이 상설전시되고 있었다. 이미 독자 여러분들에게 요점을 밝혔듯(경향신문 10월8일자 보도) 이 전시는 “중국문명의 시원을 발해문명(랴오허문명)”으로 인정하면서 발해만 유역에서 확인된 문명의 역사와 증거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 흑인 ‘이브’의 출현

그런데 ‘도전 하와학설’이란 무엇인가. 우선은 중국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하와학설’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87년 버클리의 유전학자들인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발표한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60억명 인류의 조상은 지금부터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어느 여성이라고 입증해낸 것이다.

어떻게 분석해낸 것일까.
이들은 세포에 들어있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작은 세포구조에 주목했다. 미토콘드리아는 복잡한 구조의 화학물질을 분해해서 단순구조의 고에너지 물질로 만드는 일종의 세포전지 구실을 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에는 1만6500개의 독특한 DNA가 존재하고 있다. 이 DNA의 염기서열은 사람마다 아주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미토콘드리아를 어머니의 난자에게서만 물려받는다는 점이다.

정자? 정자는 염색체만을 전달하며, 약간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지만 수정과정에서 팽개쳐버린다. 윌슨 등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30억명의 여성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계속 역추적하면…. 미토콘드리아 계보의 수는 윗세대 여성으로 올라갈수록 수십억에서 수백만, 수천, 수십, 한자릿수로 줄어들게 된다. 이 결과 과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조상을 ‘15만년 전(처음엔 20만년 전이었으나 후에 교정되었다) 아프리카에 살던 자매인 두 여성’이라고 결론내렸다. 이 여인에게 붙은 이름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브의 후손 중 일부는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다. 이것이 미토콘드리아 이브 학설에 뒤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학설이다. 처음엔 회의적이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흑인 이브가 흑인 아담에게 사과를 주는, 다소 냉소적인 그림을 싣기도 했다.(스티브 올슨 저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인이었다·Maping Human History·몸과 마음 출판사’ 참조)


 
 
# ‘이브’에 도전장 내민 중국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상황은 변했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는 “과학자들의 후속연구를 통해 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 학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들이 속출했다”면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이제 정설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아프리카인은 원시 호모 사피엔스(아프리카)에서, 아시아인은 호모 에렉투스(아시아)에서, 유럽인은 네안데르탈인(유럽)에서 진화했다는 다지역기원론은 힘을 잃어갔다. 그러나 중국학계 주류는 이 같은 정설을 거부해왔다. 랴오닝성 박물관의 ‘도전 하와학설’은 바로 이 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일러주는 것이다.

중화주의를 신주 모시듯 하는 중국으로서는 절대 ‘하와학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1923년 중국 베이징 남쪽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 즉 50만년 전의 호모에렉투스가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주장해왔다.

특히 중국인들이 ‘믿는 구석’인 것이 바로 랴오둥(요동, 遼東) 반도에서 발굴한 진뉴산인(금우산인, 金牛山人)이다.
1986년 랴오닝성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작은 섬 같은 산에서 완전한 형태의 인류화석이 발견되자 중국은 호떡집에 불난 듯했다. 분석 결과 이 인골은 28만년 전 20~22살의 젊은 여인으로 추정되었다. 무엇보다 원시적 형태의 화덕이 확인된 게 중국인들을 흥분시켰다.
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진뉴산인의 두개골과 상지골, 그리고 불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종합하면 동시대의 베이징원인보다 발달한 인과(人科)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학계는 나아가 진뉴산인의 존재를 인류진화의 큰 과정으로 설명해놓고 있다. 즉 진뉴산인을 호모에렉투스(直立人·200만년 전)와 호모사피엔스(智人 · 20만~5만년 전)의 사이, 즉 초기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이끈 것으로 평가해 놓고 있다.


# 중국인의 조상은 발해만 진뉴산인

‘랴오허 문명전’은 또한 약 25만년 전 인류화석인 먀오허우산인(묘후산인, 廟後山人)에도 주목하고 있다. 먀오허우산은 랴오둥 산간지역인 번시(本溪)시에 있다.

특히 전시실 설명서에는 먀오허우산인은 화베이(화북, 華北)지구의 커허-딩춘 대석기 문화는 물론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해놓고 있다.

전시회는 또 랴오시 카줘현 다링허(대릉하, 大凌河) 유역에서 확인된 7만년 전의 거쯔둥(합子洞) 유적과, 랴오둥에서 발견된 4만~1만8000년 전의 샤오구산(小孤山) 유적도 중요한 구석기 유적으로 전시해놓고 있다.

랴오닝성 박물관은 이렇게 진뉴산인(28만년 전)과 먀오허우산인(25만년 전), 거쯔둥인(7만년 전), 샤오구산인(4만년 전) 등을 이른바 ‘랴오허문명전’의 첫번째 전시실로 꾸몄다. 그리곤 ‘도전 하와학설’이라는 문구를 걸어놓고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가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면서 세계학계의 정설에 도발적인 설명을 내건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문명의 원류는 발해만에서 탄생한 발해문명(랴오허문명)이며, 그 발해문명은 멀리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진뉴산인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자란보(賈蘭波)는 “베이징인이 살고 있을 당시, 베이징인보다 진보적인 특징을 가진, 즉 원시 부엌까지 갖춘 진뉴산인이 있었다”면서 “진뉴산인부터 초기 호모사피엔스의 신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중화민족’의 원류를 28만년 전의 발해만에서 찾는 것이다.

궈다순은 발해만 유역에서 나타난 체계적인 구석기문화의 연계성을 설명한다. 즉 발해만 유역에서는 진뉴산인·먀오허우산인·거쯔둥인·샤오구산인 말고도 음미할 만한 구석기 유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압록강 하구인 둥강(東港)시 첸양(前陽) 동굴 인류화석과 젠핑인(建平人), 젠셴(錦縣) 선자타이(沈家台) 유적, 링위안(凌源)의 시바젠팡(西八間房) 유적 등이다.

그는 “랴오시(遼西) 구릉과 랴오둥(遼東) 산간지역에서 구석기 전기·중기·후기 유적이 두루 관찰된다”면서 “이는 고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아프리카를 나와(‘아웃 오브 아프리카’) 각지로 떠났다는 학계의 정설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진뉴산인이 발견된 랴오닝성 잉커우 현장. <이형구교수 제공>


 

 

# 발해만과 한반도 모두 같은 문화권

그렇다면 과연 1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탈출했다는 현생인류가 아닌, 28만년 전 고인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배기동 교수는 “만약 중국인들이 진뉴산인을 중국민족의 원류라고 본다면 그것은 지나친 민족주의적인 시각이며, 지나친 중화주의”라면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면 고인류와 현생인류 간에는 어떤 유전자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고인류는 요즘 사람들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진뉴산인이나 먀오허우산인 같은 전기 구석기인들을 무슨 ‘민족의 원류이거나 뿌리’라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훗날 문명의 젖줄이 된 발해만 유역에서 잇달아 확인되는 구석기 유적들에 대해서는 우리도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배교수도 “국경이 없던 시절이던 구석기 시대인 만큼 발해만뿐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까지 같은 구석기 문화영역이었다”면서 “우리 학계의 연구도 한반도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발해만까지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랴오허 문명전’ 전시실이 먀오허우산인을 설명하면서 “조선반도(한반도) 구석기 문화와 관련성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표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베이징인과 진뉴산인이 살았을 무렵, 한반도 전곡리 같은 곳에서도 고인류는 살고 있었다(약 30만년 전). 한반도에서는 이미 7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고, 앞에서 살펴봤듯 발해만 유역을 비롯한 만주 일대에서도 1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조사됐다.

북한에서는 1973년 평남 덕천군 승리산에서 ‘덕천인(10만~4만년 전)’과 ‘승리산인(4만~3만년 전)’이 잇달아 발견됐다. 77년엔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에서 력포인이, 80년에는 평양 검은모루 동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인류화석(룡곡인)과 석기가 확인됐다. 또한 같은 해 평양 승호구역 만달리에서는 ‘만달인’ 화석이 나왔다.

남한에서도 충북 청원군 두루봉 홍수굴에서 ‘흥수아이’로 이름붙인 인류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예컨대 룡곡 1호 동굴유적의 경우 구석기는 물론 신석기 인류화석도 나왔다”면서 “이것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살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구석기인들이 1만4000년 전까지 한반도에 살다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북방에서 내려왔다는 이른바 ‘북방전래설’ 같은 학설은 폐기되어야 한다”며 “발해만 구석기유적을 연구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선양/ 이기환선임기자〉,〈동영상/ 이다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