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느끼며(시,서,화)

매미그림 - 군자의 상징

Gijuzzang Dream 2008. 9. 2. 01:49

  

  

 군자의 상징, 매미그림  

 

 

지루한 장마 후 매앰 매앰 우는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무더위와 때를 같이 한다.

더위를 가르는 매미의 비파줄처럼 팽팽한 울음소리는

때론 지루한 무더위에 시원함을 주고 때론 하염없는 여유로움을 갖게도 한다.

이처럼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뙤약볕과 함께 했던 우리의 정서라고 할 수 있겠다.

네이버 생태자원보전단
전국연합카페에서 인용

 

여름 한 때를 울기위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매미는

대략 6~7년간 땅속에서 살며 수차례 탈피를 하다가

성충이 되어 땅 위 나무로 올라와 우화(羽化)한다.

이처럼 매미의 수차례 탈피는

재생과 때론 탈속의 상징으로 여겨져

신선으로 비유되는 등 칭송받아왔다.

하지만 성충으로 10~20일간 목청껏 울다가 가는 짧은 삶은

우리에게 덧없는 목숨으로 은유되곤 하였다.

 

매미를 가장 이상적으로 미화시킨 사람들은 선비들이었다.

 

진(晉)나라 육운(陸雲, 262~303)은

그의 「한선부(寒蟬賦)」서문에서

매미가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 등 오덕(五德)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매미는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기에 글(文)을 읽어야 하고,

이슬을 먹기에 선비의 청(淸)렴(廉)을 지녔고,

거처할 곳을 마련하지 않기에 검소(儉)하고,

때 맞춰 죽음을 맞기에 신의(信)를 지녔다고 하였다.

(頭上有?則其文也 含氣飮露則其淸也 黍稷不食則其廉也 處不巢居則其儉也 應候守節則其信也).

매미의 삶의 형태와 그 생김새로부터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읽어낸 선비들은

청고(淸高)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초건(貂巾)을 초선(貂蟬) 또는 초선관(貂蟬冠)이라 하였다.

 

군자를 상징하는 매미는 이후 많은 시문과 그림의 소재로 사랑받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군자를 상징한 매미그림으로는

17세기에 활동했던 월봉(月峰) 김인관(金仁寬, 1636~1706)의

《화훼초충화권축(花卉草蟲畵卷軸)》12폭 그림 중 세 번째의 <유선도(柳蟬圖)>가 있다.

 

오른쪽 아래 오래된 버들 둥치는 강한 필선으로 간략하게 그리고

대각선 방향으로 새로이 난 가지와 그 가지에 앉은 매미는 보다 상세히 그렸다.

버들은 동진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고향에 은거하며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부른 이래로

은자의 삶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소재였다.

 


김인관, <유선도>《화훼초충화권축》중, 지본수묵담채, 1150x1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목에서 새롭게 돋아난 버들가지와 그 가지 끝에 앉아있는 매미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버들 가지 아래의 텅 빈 공간과 수채화같은 맑은 담채, 경쾌하게 흔들리는 버들잎 등은

시원하고 맑은 분위기를 만들어내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준다.

매미는 새롭게 돋은 가지처럼 새로운 각오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선비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매미그림의 대표로는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송림한선도(松林寒蟬圖)>를 들 수 있다.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앉은 매미만을 크게 부각하여 주제를 강조하였다.

특히 이 그림은 뛰어난 관찰력이 돋보이는데,

매미의 다리나 눈동자는 물론 커다란 투명 날개 안의 작은 날개까지 상세히 그려 넣었다.

 

주제를 제외하고 비어둔 화면과 솔잎 등에 가해진 담채는 시원함을 전해준다.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내면 깊숙이 선비의 포부를 간직했던

정선 자신의 마음을 매미에 의탁하여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간송문화』66, 한국민족미술연구소, 2004, 도 92 참조)

 

정선, 조영석(趙榮석, 1686-1761)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선비화가로 손꼽히는

심사정(沈師正, 1707-1769) 역시 매미의 상징성에 자신의 심정을 의탁한 그림을 제작하였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沈之源(1593-1662)이 영의정을 지냈을 뿐 아니라

왕실과 혼인으로 연결되는 등 명문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심익창(沈益昌, 1652-1725)의 과거 부정 사건과 왕세자 시해 미수사건으로 인해

집안이 완전히 몰락하여 과거에 진출, 선비의 포부를 펼칠 수 있는 꿈을 일찍부터 접어야만했다.

 

그는 그림으로 얻은 명성으로 인해

영정모사도감(影幀模寫都監)의 감동(監董)이라는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 역시 역적 심익창의 손자라는 이유로 그만두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해 평생 그림에 몰두하며 그림을 팔아야했던 그로서는 정신적 고뇌가 컸을 것이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늘 한결같은 바위와

그 뒤로 화면의 좌우를 가르며 배치된 나뭇가지와 가지 중앙에 앉은 매미를 그려내었다.

짙은 먹선으로 괴석과 나무를 거침없이 간략하게 그린 반면 매미는

눈동자, 날개 등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6~7년간의 땅속생활을 끝내고 나무에 올라온 매미는 막 우화를 끝낸 뒤

아침이슬을 먹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심사정, <화훼초충도>, 지본채색,
58x31.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선비로서 뜻을 펼치고자 했던 심사정은

늘 때를 기다렸으나 그에게 그때는 결국 오지 않았다.

 

바위, 나뭇잎 등에 가해진 푸른색은 이 그림에

화사함과 경쾌함을 주기보다 우울함을 느끼게 하여

화가의 무거운 마음을 전해주는 것 같다.

심사정은 바위와 매미에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이입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동양의 선비들에게 바위와 고목 등은

형태를 닮게 그리는 것(形似)보다

자신의 마음을 그려내는 것(寫意)을 강조하는데

중요한 표현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군자의 미덕을 갖춘 매미의 등장은

선비의 지고지순한 지조를

더욱 더 강조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조선시대 매미그림은

배경의 나무나 바위 등은 강한 필선으로

간략하게 상징적으로 그려낸 반면,

이를 배경으로 한 매미는 보다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이렇게 극명한 시각적인 대비를 통해

주제는 더욱 더 부각되었다.

 

리는 매미그림을 통해 작은 미물에게도 의미를 부여해

자신이 지향한 바를 추구했던 옛 선비들의 지혜와,

아울러 강함과 세밀함의 시각적인 대비를 통해 주제를 강조하여

그 뜻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예술적 표현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매미의 상징성에 자신을 의탁하여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 다음의 글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지향한 바를 잘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겠다.

 


매미에게 묻고 매미가 대답한다(問蟬蟬答四絶)

묻노라, 너 무엇 때문에 그리도 울어대며, (問爾緣何?彗鳴)
뜰 나무에 날마다 와 다정한 듯 구는 거냐. (日來庭樹似多情)
대답하길, 나 역시 무심한 자인데, (答云余亦無心者)
고상한 이를 벗하여 이 생 마치려고 그런다오. (欲伴高人送此生)

내가 무슨 고상한 사람이냐? 네 말이 망발이지, (余豈高人爾語妄)
재주 없고 덕도 없어 산 속에 누웠단다. (無才無德臥邱樊)
버마재비가 너를 찾아 네 소리 듣고 오는데, (螳螂窺爾尋聲至)
어찌하여 소리 그치고 잎에 숨어 살 궁리를 하지 않느냐? (何不藏音?葉存)

지극한 가르침 삼가 받들매 미망에서 깨어나 (至訣恭承可發蒙)
소리 그치고 잎에 숨어 내 몸을 보전합니다. (藏音?葉保吾躬)
듣자하니 세상에는 무서운 덫이 깔려 있다는데, (亦聞世上危機伏)
위험 피해 살 길 찾는 것은 피차가 같지요. (趨避元來物我同)

너는 비록 미물이지만 고상하고 맑아 (爾雖微物本高淸)
자연의 섭리 따라 살며 네 갈 길도 아는구나. (動以天機理自明)
진중한 네 말을 내 잊지 않으리니 (珍重爾言當不忘)
우리 서로 훈계하여 깊은 교분 맺자꾸나. (胥敎胥訓託深盟)
(안정복(安鼎福)저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순암집(順菴集)』제 1권)

- 문화재청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이순미 감정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8-09-01 

 

 

 

 

 

 

 

 

 

 

 

매미와 선비정신

 

“어렸을 때 선친께서 들려 주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조선시대 임금이 평상복으로 정사를 볼 때 머리에 쓴 관을 익선관(翼蟬冠)이라 하는데,

그것은 관 뒷면에 달린 장식이 매미의 날개와 같았기 때문이라 하셨다.

임금이 관을 쓸 때마다 매미 날개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고,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가 그 관에 나타나 있었다.

힘차고 낭랑한 매미 소리에는 비밀이 없고 거짓도 없다. 그리고 매미는 집이 없다.

달팽이, 우렁이도 집이 있는데. 매미는 깨끗하여 수정같이 영롱한 이슬 몇 방울을 마시고 살뿐이다.

집이 필요 없으니 부동산 욕심이 없고, 먹는 것이 별로 없으니 사리사욕도 없다.

또 먹은 것이 없으니 버릴 것도 없어 뒤가 깨끗하다.

죽을 때를 미리 알고 첫서리 내리는 밤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떠나야 할 때는 주저 않고 떠날 줄 안다.…”

 

필자가 쓴 책 《생물의 죽살이》중 ‘임금님의 머리에 앉은 매미’라는 글의 일부다.

매미의 삶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선비정신이 물씬 풍기는 글이다. 한마디로 매미처럼 살다 죽고 싶다.

맑디맑아 작은 거짓 않으매 좋고, 욕심 하나 없이 일생을 살다 말없이 사라져 버리니 좋다.

금년은 매미의 노랫소리가 더 요란하다.

새벽녘에 시작한 울음은 하루 종일 시끌벅적 그칠 줄 모르고,

햇살 쨍쨍한 점심때쯤이면 고함이 절정에 달한다.

합창교향곡이 학교 교정을 온통 뒤덮으니 한마디로 장관이다!

 

다시피 목성 좋은 놈은 모두 수컷이고 암놈은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벙어리'다.

(종에 따라 울음이 다름). 하긴 암놈이 목청 좋은 동물이 어디 있나.

수놈들이 울어대는 '맴맴맴맴…'. 저 소리가 암놈을 꼬드기는 '사랑의 노래'임을 알고 들으니,

어쩐지 부럽기도 하고 되레 서글퍼진다. 나 또한 힘 빠져버린 늙다리 매미가 되어버렸구나.

음성 좋고 몸집 우람한 멋진 유전인자를 가진 수놈 한 마리를 택한 암놈은 씨를 받아서

알에다 정기(精氣)를 불어넣는다.

암놈은 수놈이 갖지 못한 뾰족한 산란관(産卵管)을 식물의 줄기나 배, 사과 같은 과일에 꽂아서

거기다 알을 낳는다. 알은 보통 10여 개월이 넘게 걸려(부화) 애벌레(유충)가 된다.

 

우리나라 매미는 대략 15종이 되는데, 그 중에서 생활사(生活史)가 잘 알려진 것은 참매미다.

참매미의 유충은 땅 속에서 ‘굼벵이’로 7년간(서양 것들 중에는 13년, 17년이 걸리는 것이 있음)

나무뿌리에서 진을 빨아먹고 자란 다음 껍질을 벗고 날아 나온다.

(번데기 시기가 없는 불완전 변태를 함). 이제 남은 삶은 고작 2-3주에 지나지 않는다.

기이하게도 유생의 삶은 길지만 성충시기는 더없이 짧다.

한 보름 살려고 7년이나 공들이며 기다렸다니.

 

성충은 이 나무 저 나무 옮겨다니며 끝이 예리한 빨대(구침․口針)를 나무줄기에 꽂아

체관에 흐르는 단물을 빤다. 그러면서 수놈은 터져라 '러브 송'에 전력을 쏟는다.

매미를 잡아 배(복부)를 들춰보면, 첫째 마디에 흰 뚜껑 모양이 있는데

그 아래에 소리통(발성기)이 들어있다. 수놈의 것은 커다랗고 암놈 것은 무척 작다.

우는 매미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랫배가 씰룩거리고 들썩거린다.

매미의 배 안은 거의 비어있어 그것이 울림통(공명기) 역할을 한다.

공기가 들락거리면서 통 속의 근육을 떨게 하여 '맴맴' 소리를 낸다.

 

매미는 위험하다 싶으면 오줌을 찍 갈기고 날아간다. 하긴 개구리도 그렇지 않던가.

펄쩍 뛰면서 발등에 찬 오줌발을 튀긴다. 아, 그것이 다 적(敵)에게 한 방 먹이는 물총이었다!

매미는 곤충으로, 날개가 4장이고 매우 투명하며 속 날개가 크고 겉 날개가 작다.

앞에서 '익선관' 이야기가 있었다. 날개 '익'  매미'선'. 즉 매미날개 닮은 관이 익선관이다.

그 맑은 종잇장 날개에 그물 같은 시맥(翅脈)이 뻗어나 있다.

시맥은 날개를 단단하게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신경과 피가 흘러, 날개도 살아 숨쉬게 한다.

저 낭랑(朗朗)한 여름 매미의 울부짖음에서 밝음과 맑음, 무욕과 청빈을 읽어보자.

인생은 더없이 짧다는 것을 일러주는 수매미의 울음이 아니던가.

- [권오길의 과학세상],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 주간조선 1767호 , 2003년 8월21일.

 

 

 

 

 

■익선관(翼蟬冠)

 

 영조어진 中의 익선관

 

매미 알은 2-3주만에 깨어나 굼벵이가 된다.

짧게는 4-5년, 길게는 7-8년 동안 땅 밑에서 긴긴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세상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한참 노래를 부를 만하면 불과 한 달도 못 채우고

이슬처럼 생을 마감하는 매미의 일생이다.

 

매미는 ‘선연(蟬蜎)’이라 하고, 신선으로 탈바꿈하는 곤충을 닮았다고 해서 ‘선세(蟬)’라고도 한다.

매미의 매미다움은 매미만이 갖고 있는 덕망에 있다.

 

머리 모양새가 관(冠) 끈이 늘어진 형상을 닮았다 하여 문(文),

맑은 이슬만 마시고 평생을 살다 죽으니 청(淸),

곡식을 먹지 않는다 하여 겸(兼),

집 없이 살아 검(儉),

허물을 벗고 노래를 불러 절도를 지켜내 신(信)이라 일컫는다.

 

이렇듯 문(文), 청(淸), 염치(廉恥), 검소(儉素), 신의(信義)를 오덕(五德)이라 칭하고

벼슬아치들이 본받아야할 징표로 삼았다.

 

임금은 곤룡포에 익선관(翼蟬冠)을 쓰고 정사를 보았는데,

이때 익선관 뒷면에 달린 장식이 매미의 날개와 같았기 때문이다.

임금이 관을 쓸 때마다 매미 날개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고,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가 익선관에 나타나 있었으니,

매미가 갖고 있는 덕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익선관의 모양은 모라로 싼 모체가 2단으로 턱이 져있는데,

앞쪽보다 뒤쪽이 높았으며 위에는 매미 날개 모양의 소각 2개가 위쪽을 향해 달려 있다.

2개의 소각이 위,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은

문무백관의 관모인 사모(紗帽)의 각이 땅을 가리켰던 것은 왕과 신하를 구별하기 위함이다.

익선관은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오사로 쌌으며 양각이 절상되어 모정 밖으로 조금 나왔다.

 

 

 

- 고종황제의 익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