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우리의 조선(造船) 기술

Gijuzzang Dream 2008. 8. 5. 15:59

 

 

 

 

 

 


우리나라가 1999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1등 조선국으로 등극한 후에도,

일본과의 차이를 벌리면서 우리 조선기술의 우수성을 확고히 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성공을 이루어 낸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대로 우리에게 전해오는 조선능력에 관한 유전자를 꼽기도 한다.

고려 원종 15년(1274)에는 원나라의 압박을 받아

일본원정을 위하여 크고 작은 병선 900척을 9개월 만에 건조하였으며,

이러한 대역사를 충렬왕 7년(1281) 또 한 번 이루어 냈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병선은 시간과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고려의 전통 건조법으로 만들어졌다.

또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 규슈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난 여몽연합군의 거의 모든 배들은

파손 및 침몰하였지만 고려 배는 일부 생존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도대체 고려병선은 어떻게 태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최근 일본 규슈의 다까시마 근해에서 여몽연합군의 선박으로 추정되는 선편들이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한편 1984년 이래 지금까지 우리 서해에서 고려시대의 선박이 7척이나 발굴되어

우리 배의 형상과 건조법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를 앞서간 우리의 배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발굴된

옛 선박은 1984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된

완도선이다.

 

선체를 인양하기에 앞서

청자 3만여 점, 청동제 국자와 숟가락 그리고 목제 망치와 함지 등이 인양되어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에 한 획을 긋는 뜻 깊은 일이었다.

 

이 배의 연대는 대략 11세기 중, 후반 경으로 추정되며,

해남 진산리에서 청자를 싣고 고흥반도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침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의 중앙단면을 보이고 있는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이 배 밑은 5재의 두터운 목재를 잇대고,

목재의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기다란 나무못인 가쇠로 연결하였다.

 배 밑 저판이 끝나는 부위에 만곡종통재가 있는데,

이는 시대적으로 앞 선 안압지 배 등 통나무배에서 사용하던 선박건조법이다.

 

만곡종통재에서 시작하는 뱃전은 5재의 삼판으로 되어있으며,

삼판 연결방식 또한 우리 전통 한선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턱붙이 겹이음이다.

 

피쇠라는 나무못과 고정핀으로 고착시키는 크링커식 이음법의 사용과

목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불과 연기로 그을리는 연훈법의 흔적이 보인다.

이물과 고물은 썩어 없어져 그 형태를 알 수 없으나 남은 잔해의 형태로 보아 이물은 곧고 넓으며,

고물은 비교적 좁고 배꼬리 쪽으로 길게 뻗은 것으로 보인다.

 

횡강도를 유지하기 위한 격벽은 보이지 않으며 대신 게롱의 흔적이 있다.

한편 배 밑에는 선체중앙에서 약간 고물 쪽에 돛대구멍이 하나만 남아있어

돛이 하나인 단범선으로 보인다.

 

완도선 외 나머지 6척의 발굴선 중에서

사료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선박은 안좌도선이라 할 수 있다.

이 배는 2005년 8~9월에 걸쳐 전남 신안군 안좌면 해역에서 발굴되었는데,

13세기 고려시대의 선박으로 추정된다.

 

<그림 2>에서와 같이 안좌도선은 저판이 3개, 우현에는 7재의 삼판이 결구된 채로 발견되었다.

완도선과는 달리 만곡종통재 없이 삼판이 바로 저판에 결구되는 건조법을 보이고 있다.

1단 삼판에는 게롱(또는 가룡)이 걸린 채로 남아 있으며,

그 위 2단 삼판에는 1단보다 조금 앞의 위치에 게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배의 선수미부에는 저판과 삼판 그리고 고물의 비우가 연결된 채로 발견되어

한선의 결구법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배의 크기는 길이가 14.5m, 너비 6.1m, 깊이 0.9m 로 지금까지 발견된 옛 선박 중 큰 편에 속한다.



한선의 특징을 말하다

완도선과 안좌도선에 나타난 우리 고유 한선의 특징적 선형은

저판을 가쇠라는 나무못으로 서로 연결하여, 밑면이 평평하다.

이에 따라 한선을 평저선이라 부른다.

 

배의 옆면을 이루는 삼판은 아래 판 바깥쪽 반턱을 파낸 다음

그 위에 위판을 얹혀 잇대는 크링커식 이음법을 사용하였다.

덧붙여 피쇠라는 나무못과 핀으로 이웃하는 두 외판을

단단히 고착시켰다.

 

고려 초기에는 완도선과 같이 저판과 외판을 연결하는 만곡종통재가 별도로 설치되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안좌도선 처럼 만곡종통재 없이 외판을 바로 저판에 연결하는 건조법으로 발전하였다.

 

중국 배와는 달리 밑면에 용골이 없으며,

선체 내에 격벽 또한 없고 쇠못을 쓰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를 지닌 우리 한선이 충분한 강도를 지녔을까.

 

그에 대한 답은 ‘충분하다’이다.

 

유한요소법을 이용하여 파랑에 놓인 안좌도선의 구조적 변형을 계산한 결과에 의하면 최대변형은 중앙부 게롱에서 5㎜로 나타나며, 한편 최대응력은 게롱이 닿는 외판에서 발생하는데, 법선방향 응력은 항복응력의 25%에 불과해 강도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식 격벽대신 게룡목을 채택한 우리 한선은 재료를 절약할 수 있으며,

또한 구조가 간단하여 건조기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

또한 운항 중에는 구조 강도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제적인 선형이라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전통 선박건조법이 매우 우수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깃든 우리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 글·사진, 최항순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