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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수난, 해방 공간의 혼란, 동족상잔의 비극은 그 격동의 정점이었다. 그 한복판이었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니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60년. 우리 주변 곳곳엔 그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60년 역사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수난과 영광의 역사를 그대로 증거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돌아본다.
격동의 60년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을 찾으라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1996년 철거되어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에 이를 빼놓을 수는 없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도 이곳 (당시엔 중앙청)에서 열렸고, 6·25 전쟁 당시 9·28 서울 수복을 축하하는 태극기도 이 건물에 게양됐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한국 근현대사 영욕의 상징이다. 이 건물을 처음 지은 것은 1925년. 일제가 한국의 자존심을 망가뜨리기 위해 경복궁의 흥례문을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로 건축한 것이다.
광복 이후엔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의 하나로 철거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이라는 것이 철거 이유였다.
그러나 치욕의 흔적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소중한 역사라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몰역사적인 건물 철거였다.
서울 도심의 한국은행 본관(사적 제280호)과 서울시청(등록문화재 제52호) 건물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문화유산이다. 1909년 건축된 한국은행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직속 금융기관 역할을 했지만 건국 이후엔 우리의 중앙은행으로서 한국 경제 60년을 함께 해온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족상잔인 6·25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등록문화재 제78호)을 꼽을 수 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31일 밤 10시경.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연합군은 인해전술로 몰려오는 중국군에 밀려 경기 파주까지 후퇴하던 상황이었다. 그 후퇴 행렬과 함께 개성역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화물용 증기기관차가 파주 장단역의 플랫폼으로 막 들어서는 순간, 북한군으로 오해한 연합군의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기관차는 선로를 벗어나 그대로 멈췄고 그렇게 58년의 세월이 흘러 화통 하나만 홀로 남았다. 이 화통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 그 자체였다.
화통은 현재 통일의 꿈을 안고 보존처리를 받고 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철원지역이 북한에 속해 있을 때 지은 러시아식 건물로, 6·25가 일어나기 전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잡혀와 고문과 학살을 당했던 곳이다. 건물 벽면엔 총탄 자국이 가득해 그 쓰라린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부수립 이후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건축 문화유산으로는 서울역을 들 수 있다.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에서 제물포(인천)까지 경인선 열차가 개통된 이후, 철도는 가장 대표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서울역은 그 상징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서울역에 내려 미래의 희망을 꿈꾸었다.
1925년에 건축한 서울역사는 지하 1층, 지상 2층에 석재를 혼합한 벽돌식 건물. 지붕 가운데의 비잔틴풍 돔이 돋보이는 등 독특한 조형미로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고속철도 KTX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서울역사가 세워지면서 2003년 12월 역으로서의 역할을 끝냈다.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태릉갈비로 유명한 서울 노원구의 경춘선 화랑대역(등록문화재 제300호), 해안 풍경이 멋진 부산 해운대의 동해 남부선 송정역(등록문화재 제302호), 경북 문경 석탄산업의 성쇠를 한 몸으로 지켜본 아름다운 이름의 가은선 가은역(등록문화재 제304호), 좌우 대립의 쓰라림이 남아 있는 전남 나주시 들판의 경전선 남평역(등록문화재 제299호) 등 우리네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간이역들이다.
정부수립 60년,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것은 뜨거운 교육열이었다. 우리의 양대 사학인 연세대와 고려대에선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연세대 서울캠퍼스에는 스팀슨관(사적 제275호), 언더우드관(사적 제276호), 아펜젤라관(사적 제277호)이 있다. 고딕풍인 이들 건물은 외벽이나 기둥과 지붕 하나하나에 과장스럽지 않은, 절제된 건축미가 담겨져 있다.
고려대 서울캠퍼스에 있는 고려대 본관(사적 제285호)과 중앙도서관(사적 제286호)은 장중하다. 이 고딕 양식의 건물들은 장대한 규모와 높이 솟아 하늘로 상승하는 탑, 뽀얀 화강석의 당당한 질감 등에 힘입어 멋스럽고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학 캠퍼스의 근대 건축물 대부분은 외국인이 설계했으나 이 두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건축가 박동진(1899∼1981)이 설계했다.
이들 대학의 건물들은 때로는 학문적 열정으로, 때로는 불같은 저항으로 우리 시대의 젊음을 상징해왔다.
대한민국 60년사는 독재와 억압을 극복하면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현장은 서울 명동성당(사적 제258호)이다. 1898년 축성된 명동성당은 본디 한국 천주교를 잉태하기 위해 기꺼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곳이다. 그 성스러움은 1980년대로 이어져 어두웠던 시절,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터전이 되었다. 1987년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진행된 6월 항쟁은 그 찬란했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수립 60년은 한국 경제와 산업 발전을 향한 숨가쁜 여정이었다. 주변 곳곳엔 그 여정을 보여주는 산업유산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산업유산 가운데 하나는 한국 최초의 제련소인 충남 서천의 장항 제련소 굴뚝. 1936년 설립된 장항제련소는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 공간이다. 1980년까지 전국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만 가동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갔다.
장항 제련소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굴뚝이다. 1979년 서해 바닷가의 해발 120m 바위산에 재건립 된 이 굴뚝의 높이는 90m. 현재 이 굴뚝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조형물 같다. 굴뚝이 있는 바위산에 올라가면 바다 건너 군산시까지도 조망이 가능하다.
장항 제련소 굴뚝과 제련소 내의 사용하지 않는 공간들은 이제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을 앞두고 있다.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박물관, 전망대, 예술 창작 공간, 생태공원 등으로 활용된다.
서울 합정동 당인리 화력발전소, 경기 포천 채석장, 강원 태백시 철암 탄광, 대전의 충남도청 건물, 대구의 KT&G 연초제조창 등. 정부수립 60년의 흔적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 그건 지난했던 대한민국 60년 역사에 대한 엄숙한 예의다. - 월간문화재, 2008-07-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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