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노안천주교회
일제강점기 근대 종교 건축물
: 광주대교구 50년사, 1990. 노안지역에서 본당을 설립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된 것은 1900년대 후반의 일이다. 이때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뚜르뇌(Tourneux) 신부에 의해 노안면 용산리 남산이 노안 본당 후보지로 선정되었으나, 1908년 8월 현재의 양천리 계량 마을로 바뀌어 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 신부로 여동성(Victor Toyrnex) 신부가 부임하게 된다.
이후 1909년 5월 제2대 주임 신부로 까다르(Cadarss, 강달순) 신부가 부임하여 성당부지 약 3,000평을 매입해 40평 규모의 십자형 초가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되었다가, 1919년에 공사가 마무리된다.
현재의 노안천주교회 건물이 건립된 것은 제5대 주임으로 재임했던 박재수 신부 때인 1927년이었다. 이때 벽돌조로 성당이 신축되었고 성모 동굴이 만들어졌다. 이 기간 동안 본당의 명칭이 ‘나주천주교회’로 개칭되었다.
1935년 나주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다시 명칭이 노안천주교회로 바뀌게 되었다. 1957년에는 성당 일부가 증축되었고 사제관이 신축되었다. 이후 1979년에 내부 천장에 대한 수리 공사가 있었고 1992년에는 지붕을 현재와 같은 아스팔트 싱글 지붕으로 교체하였다.
성모굴과 노안천주교회가 마주 보며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로 2층 건물의 사제관이 위치해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주변 경관으로 인하여 성모굴과 사제관, 천주교회 건물이 앞마당을 중심으로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앞마당의 좌측에 위치한 노안천주교회는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조적조 1층 건물로 박공지붕에 십자가 형태의 평면을 갖고 있는 건물이다. 성당의 정면 출입구에는 돌을 쌓아 3면에 아치를 두었고 그 위쪽으로 종탑을 벽돌로 쌓고 십자가를 올렸다. 주 출입구 좌우로 부출입구를 두었고 건물의 측면에는 낮은 아치 창문을 배열하였다. 십자형의 평면 중앙부에 길게 예배실을 두고 그 좌우의 돌출부에는 제실과 성가대석을 두어 사용하고 있다.
나주지역의 대표적인 성당 건축물로서 이 지역 천주교 전래의 중심이 되었던 노안천주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종교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9월 13일 등록문화재 제44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 ||||||||||
'지켜(연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문화유산] 16. 여수 애양교회 (0) | 2008.06.18 |
---|---|
[근대문화유산] 17. 전남도청 본관 (0) | 2008.06.18 |
[근대문화유산] 19. 舊 호남은행 목포지점 (0) | 2008.06.18 |
[근대문화유산] 20.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0) | 2008.06.18 |
조선통신사 (0) | 2008.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