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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긍(盧兢) - 노비 막돌이를 위한〈제망노막석문(祭亡奴莫石文)〉

Gijuzzang Dream 2008. 6. 14. 23:57

  

  

 

 
 

(1) 아우(노비 막돌이)를 묻으며(禁葬說)

 

노긍(盧兢 1737-1790)

 

내가 아우를 잃고서 가난하여 장사 지낼 곳이 없는지라, 집 모롱이에 묻고 넉자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 남쪽 이웃에 류씨의 집이 있었는데 가로로 언덕이 가리고 있어

두 집의 등성이는 서로 바라다 뵈지 않았다. 저 마을은 남쪽으로 향해 있고,

이 무덤은 동쪽으로 나 있어, 형국이 이미 다르고 면세(面勢)가 또 차이 난다.

 

그러나 류씨는 제집에서 백 걸음 안짝이 된다하여 관에 송사를 걸었다. 

 

내가 말했다. 
"저 사람은 저 마을에 있으니, 이 무덤과는 어찌 서로 바라다 보임이 있겠습니까?" 

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 법에 단지 백 걸음이라고만 했지, 서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없다." 

 

내가,  "내가 내 집에 장사 지내는데, 저 마을과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하자,

관에서는,  "나라 법에는 단지 백걸음 이내에는 장사 지내지 못한다고만 되어 있다.

우리 법률에 그 글이 없는 것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이에 나는 땅을 파서 마침내 그 무덤을 파헤쳤다.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 

 

"그대의 관리는 법을 지켜 원칙대로 하는 자인가?" 
"아니다."  

 

"지켜 원칙대로 한다는 것은

이편도 들지 않고 저편도 들지 않으며, 굽신거리지도 않고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는 그대가 공정하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법도대로 하지 않은 것이니 좋은게 좋다는 뜻이로구나.

이제 마을에서 장례를 금하는 법을 끌어다가, 큰 마을과 마주하고 있는 산에다가

어떤 사람이 2, 3백보, 혹은 4, 5백보의밖에 장사지냄이 있다면

세상에서는 반드시 이를 금할 것이다. 당신의 관리도 또한 장차 이를 금할까?" 

"또한 장차 금할 것이다." 

 

"백보의 제한은 어디다 두고?

반드시 백보를 지킨다면 99보는 진실로 마땅히 금해야 할 바이나,

101보 이상은 진실로 마땅히 금해서는 안될 것일세.

이제 어찌하여 수백보 밖인데도 이를 금한단 말인가?" 

"보이기 때문일세" 

 

"그렇다면 문제는 보이는데 있는 것이지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닐세 그려.

이제 보이기만 하면 비록 백보를 넘더라도 오히려 또 이를 금하면서,

지금은 보이지 않는데도 백보가 차지 않으면 허가할 수 없다는 겐가?

모두 나라 법전에 실려 있지 않기는 매일반인데,

어찌 유독 저 경우에는 이렇고 저렇고를 따지면서 이 경우에는 따지지 않는가?

저 경우에는 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이 경우에는 그러지를 않는가? 

 

내가 또 말하였다. 

"성인 아래로는 모두들 자기 생각에 따라 먼저 주장을 세움을 면치 못하였다네.

보이지 않으니 장사 지내도 괜찮겠지 했던 것은 나의 내 생각이었고,

보이지 않아도 장사 지낼 수 없다고 여긴 것은 관청의 자기 생각이라네.

그래서 능히 서로 먹혀들지 않는 것일세." 

 

그제서야 말하는 이가 다시 따지지 않고서 떠나갔다. 

 

가난이 유죄로구나.

세상을 버린 동생 하나 묻어줄 땅뙈기가 없어 뒷뜰에 이를 묻은 참담함이야 오죽 할까만은,

그나마도 이웃의 송사에 걸려 제손으로 다시 파내고 말았다.

 

송사에 대한 관청의 판결은

백보 이내에는 묘를 쓸 수 없는 법에 저촉되므로 빨리 이장하라는 것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방향도 다른데, 제집에 제가 제 아우를 묻지도 못한단 말입니까?

 

항변 끝에 돌아오는 대답은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이다.

 

참으로 훌륭한 관리로구나. 법을 원리원칙대로 집행하여 한치의 흔들림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파내긴 파 냈는데, 막상 파내자니 뒷뜰에 아우를 묻은 그 기막힌 심정은 아랑곳 않고

송사를 걸어온 유씨내의 야박한 처사가 못내 야박하기도 하고,

관청의 융통성 없는 일처리가 서운하기도 해서,

있지도 않은 엉뚱한 객을 불러 세워 놓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 놓은 글이다.

 

 

평소에 원리원칙을 그대로 지키는 공정한 관청이었다면 말도 하지 않겠다.

그렇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 '법대로', '원칙대로'만을 되뇌이며

'절대불가'만을 고집하니 그 아니 답답한가?

 

그러나 앞 뒤 안맞는 일이 세상에 어디 이뿐이더냐.

그저 돈 없고 힘 없으니 아우의 흙묻은 관을 끌어 안고서 안타까운 한숨만 내쉴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것이 관가의 생리로구나.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주인은 글로써 죽은 종 막돌이의 장례에 고하노라. 아아!

네 성씨는 채(蔡)이고, 네 아비는 관동의 일반 백성이었다. 너의 어미는 내 외가의 여종이었다.

네 아비가 내 말 구종을 든지 20년에 마침내 길에서 죽으니, 내가 남원 만복사에 이를 장사 지냈고,

네 어미가 내 몸을 봉양한 것이 30년인데 마침내 집에서 죽으니,

내가 공수곡의 서산 아래에다 장사 지냈었다.

네 형이 나를 수십년 동안 부지런히 섬기다가 또 집에서 죽으니, 내가 또 이를 장사지냈다.

이제 네가 또 자식 없이 죽으니, 너희 채씨는 마침내 씨가 없게 되었도다.

 
 
 
 
 

(2) 노비 막돌이를 위해 써준 제문(祭亡奴莫石文)  

 
노긍(盧兢 1737-1790)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주인은 글로써 죽은 종 막돌이의 장례에 고하노라. 아아!

너의 성씨는 채(蔡)이고, 네 아비는 관동의 일반 백성이었다.

너의 어미는 내 외가의 여종이었다.

 

네 아비가 내 말 구종을 든지 20년에 마침내 길에서 죽으니,

내가 남원 만복사에 이를 장사 지냈고,

네 어미가 내 몸을 봉양한 것이 30년인데 마침내 집에서 죽으니,

내가 공수곡의 서산 아래에다 장사 지냈었다.

네 형이 나를 수십년 동안 부지런히 섬기다가 또 집에서 죽으니,

내가 또 이를 장사지냈다.

이제 네가 또 자식 없이 죽으니, 너희 채씨는 마침내 씨가 없게 되었도다. 

 

내가 태어나 세 살 때 네 아비가 죽었고, 여섯 살에는 네 어미가 죽었다.

너의 안주인이 거두어 길렀으나, 주리고 춥고 병들어 오래 살지 못할까 염려하였었다.

네 안주인이 상을 당했을 때 너는 고작 오척의 어린애였으나,

머리털은 헝크러져 괴이하였고 다만 비쩍 마른 원숭이처럼 괴로워 했다.

 

내가 또 재앙을 만나 부자가 흩어져 있을 때,

너는 동해 바닷가까지 만리길을 울부짖었고(아들이 간성 땅에 귀양가 있었다),

또한 서쪽 변방 밖(아비는 위원 땅에 귀양가 있었다)까지 눈과 서리, 더위와 비를 맞으며

발바닥이 갈라지고 이마가 벗겨지도록 왕래하면서도 후회하는 빛이 없었다.

 

또 가난한 집에 종살이 하면서 두 눈이 늘 피곤하여,

일찍이 단 하루도 일찍 자고 편안히 일어나

등 긁고 머리를 흔들며 맑게 노래하며 환하게 즐거워 해본 적이 없었으니,

내가 이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그 배를 가른다면 반드시 붉은 것이 있어

마치 불처럼 땅 위로 솟구쳐 오를 것이니,

평생 주인을 향한 마음이 담긴 피인 줄을 알 것이다.

 

네가 이제 땅 속에 들어가면 네 아비와 어미, 네 형과 너의 안 주인과 작은 주인이

마땅히 네가 온 것을 보고 놀래 다투어 내가 어찌 지내는 지를 물으리라.

그때 너는 근년 이래로 온 몸이 좋지 않아 이빨과 터럭은 시어져서

몹시 늙은이가 다 되었다고 말해다오.

그러면 장차 서로 돌아보며 탄식하고 낯빛이 변하면서 나를 불쌍히 여길 것이다. 아아!

   

노긍이 채막석(蔡莫石), 아마도 채막돌이라고 불리었을 죽은 노비를 위해

지어준 제문이다.

 

막돌이의 아비는 지난 20년간 언제나 내 말고삐를 잡고 따라 나섰던 하인이었다.

그는 늙어 길에서 죽고, 그 시신을 나는 남원 만복사에 묻어 주었다.

막돌이의 어미는 남편을 길에서 잃고도 다시 10년을 더 내 시중을 들었다.

또 막돌이의 형도 네 집에서 나를 섬기다가 죽었다.

그리고 또 너마저 자식도 없이 죽으니,

이제 우리 집에서 너희 채씨의 씨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게 되었구나.

아! 애석하도다.

 

네가 워낙에 어려 네 부모가 세상을 떴으니

네 안주인이 너를 불쌍히 여겨 너를 거두었었구나.

그러다가 네 안주인이 세상을 뜨자, 너는 아직 어린애였는데도

제 부모라도 잃은 듯이 괴로워 했었지.

또 내가 재앙을 만나 저 먼 함경도 위원(渭原) 땅에 귀양 가 있을 때,

내 아들도 강원도 간성에 귀양가 있었는데, 그 멀고 험한 길을 울부짖으며 따라왔었고,

그 모진 추위와 혹독한 더위를 마다않고 발바닥이 갈라지고 이마가 벗겨지도록

왕래하며 심부름을 해 주었었구나.

 

네가 내 집에서 산 날은 어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언제 실컷 잠 한 번 자본 적이 있으며, 언제 콧노래 한 번 불러본 적이 있었더냐.

명색 주인된 자로서 나는 이것을 깊이 부끄러워 한다.

만약 네 배를 가른다면 붉은 기운이 솟구쳐 올라올 것이다.

나는 그것이 평생 주인만을 섬기던 네 붉은 정성임을 안다.

 

아아! 막돌아. 이제 편히 눈을 감으려므나.

이제 지하에 들어가 평생에 지친 몸을 누이면,

네 부모와 네 형, 네 안주인과 작은 주인이 널 보려 달려올 테지.

그리하여 다투어 나는 어찌 지내고 있더냐고,

그 사이에 다른 변고는 없었느냐고 물어볼테지. 그러면 너는 이렇게 대답해다오.

"네. 주인님은 요즘 온 몸 어데고 안 아픈데가 없습니다.

이빨은 흔들리고, 터럭 위엔 흰 눈이 내렸습지요.

이런 저런 세상 시름에 찌들어 벌써 늙은이가 다 되어 버린걸요."

 

그러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얼굴빛이 변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겠지.

아아! 막돌아. 너 없는 빈 자리가 이리 허전하구나. 이제는 나 혼자만 이렇게 남았구나.

막돌아!

 

 -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 / 옛글의 뜻과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