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찾아 떠나고(답사)

전남 신안군 증도 / 태평염전 - 소금꽃이 피는 마을

Gijuzzang Dream 2008. 6. 11. 16:08

 

 

 전남 신안군 증도 ‘염전 풍경’

 태양과 바다 사이… ‘소금꽃’이 피는 마을


단일염전으로는 국내최대 규모인 증도
태평염전에서 한 염부가 소금을 긁어 모으고 있다.
소금을 만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된 노동이다. 그래서 소금은 소금밭을 달구는 햇볕과 건조한 바람, 그리고 염부의 굵은 땀방울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박상문기자
전남 신안군 증도에서 만난 구릿빛 피부의 염부(鹽夫)들은 ‘소금이 온다’고 표현했습니다.
해질 무렵, 온종일 내리쪼인 따가운 볕으로 염전의 결정지에서 군데군데 흰 소금이 맺혔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잠을 털고 나선 염부들이 기다리던 소금이 온 것입니다.
소금결정이 서로 달라붙은 것을 그들은 또 ‘꽃이 피었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소금결정이 엉겨 붙은 모습은 마치 순백의 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핀 소금꽃을 대파(소금을 긁어모으는 도구)로 썩썩 밀어대자,
바닥에는 금세 흰 소금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찰랑찰랑 바닷물이 순백의 소금의 결정이 되기까지는 꼭 25일이 걸린답니다.
결정지에 염도 높은 바닷물을 깔고, 햇볕과 바람을 받아서 소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이야
한나절이면 된다지만, 깨끗한 바닷물을 받아내고 염도에 따라 그 바닷물을 두 단계의 증발지로,
그리고 결정지로 차례로 옮기는 데만 줄잡아 24일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비라도 내려 기껏 염도를 높여 놓은 바닷물을 지붕을 얹은 해주(임시저수조)에 몇번씩 옮겨 담다 보면,
그 시간은 훨씬 더 길어지고, 몇배의 노동력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462만㎡(140여만평). 증도의 염전은 광활합니다.
인천에 첫 염전이 들어선 것이 1907년이고,
서남해안 쪽에 하나둘씩 천일염을 만드는 염전이 들어선 것도 해방 이후부터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소금이란 장작불로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煮鹽)이었다는군요.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근대의 풍경’인 것이지요.
1953년에야 들어선 증도의 태평염전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증도에서 근대의 풍경은 염전뿐만은 아닙니다. 집들도 그렇고, 길도 그렇습니다.
증도에는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린 이른바 ‘새마을 시대’의 집들이 적잖이 남아있습니다.
1960년대, 혹은 1970년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것과 같은 느낌.
철부선에서 내려 증도에 내려서면 누구든 그런 느낌을 받게 되지 싶습니다.
마을 안쪽에서 이앙기 대신 마을 주민들이 죽 늘어서 손수 바지를 걷어붙이고
논에 들어 노동요를 흥얼거리며 손모내기를 하는 풍경도 만났고,
논두렁에 새참을 늘어놓고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풍경과도 마주쳤습니다.

도회지의 시간에 익숙한 여행자들은 증도에서 쉽게 지루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지루함이야말로 느리게 흘러가는 사물과 풍경을 찬찬히 보게 하는 힘을 가졌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시간과 삶이 느리게 흘러가는 ‘슬로 시티’입니다.
 
 

 느림 & 불편, 그래서 사람들은 증도로 간다

엘도라도 리조트 쾌적…산란기 앞둔 병어 제철


염부들의 25일 동안의 노동으로 모아진
순백의 소금.
바닷물을 담아 햇볕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만든 천일염은 나트륨과 염소를 합성해 만든 정제염과는 달리 천연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증도의 명소로 꼽히는 짱뚱어다리의 밤풍경

고향식당의 병어회 상차림
# 섬들을 징검다리삼아서 증도로 가는 길

전남 무안의 해제반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지도로,
지도에서 또 다리를 넘어 사옥도로,
사옥도의 지신개 선착장에서 또다시 철부선을 타야 비로소 전남 신안의 증도 땅이다.
 
징검다리를 딛듯 섬과 섬을 건너뛰어야 닿는 증도.
증도는 사실 볕으로 달궈진 염전과 질척한 개펄,
그리고 길고 긴 백사장을 가진 해수욕장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단번에 마음을 휘어잡는 절경도, 이름 붙여줄 만한 기암괴석도,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도 없다.
유배됐던 이름난 선비도 없고, 진한 역사의 향취를 느껴볼 만한 흔적도 없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협박하듯 을러대는 명소가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섬을 가로지르는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길은 질퍽거렸고, 바다에는 겨우내 김발을 걸었던 지주들만 황량하게 박혀 있었다.
예부터 바다보다는 기름진 땅에 기대고 살아온 탓인지 마을은 해안보다는 안쪽에 깊숙이 들어서 있고, 고깃배보다 논과 밭이 더 많았다.
섬이라지만, 육지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사옥도 지신개선착장은 증도로 건너가려는 차들이 줄지어 몰려들어 북적거렸다.
승용차 스무대쯤을 싣는 철부선은 매번 차들을 빼곡하게 싣고 숨을 헐떡거리며 바쁘게 오갔지만, 순서에 밀려 배를 타지 못한 차들은 길게 줄을 서서 다음 배를 기다렸다.
과연 증도의 어떤 매력이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증도에 들어서면서 줄곧 맴돌았던 질문이다.

# 증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소금

증도의 버지선착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외지인들을 맞는 것은 소금이다.
소금창고를 개조해 만든 소금박물관과 끝간 데 없이 펼쳐진 태평염전의 소금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소금박물관에서는 소금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배울 수 있다.
예컨대 월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가 ‘소금의 지급’이란 라틴어(sala-rium)에서 왔다거나, 샐러드(salad)가 야채에 소금을 뿌린 음식에서 출발했다는 것 등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 밖에도 소금이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거나 주몽의 고구려 건국에 소금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태평염전은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의 염전.
1년에 1만5000t의 천일염을 생산해낸다.
 
증도의 염전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당초 전증도와 후증도로 나뉘어진 섬을 간척해 이어붙이면서 생긴 땅에 만들어졌다.
피란민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국산 저가 소금이 밀려오면서 다른 대규모 염전은 다 문을 닫았지만, 태평염전은 용케 버텨왔다.
이즈음에는 천일염의 미네랄 성분이 널리 알려지고,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광물로 취급해오던 천일염을 식품으로 인정하면서 소비가 늘어 이전보다 한결 사정이 나아졌다.

바닷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밤낮없이 수차를 돌려야했던 예전보다는 낫지만 소금 만들기는 여전히 고된 일이다.
매년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꼭두새벽부터 밤늦도록 물을 대고 소금을 긁어모으는 일이 반복된다.
비라도 내리면 노동량은 두 배, 세 배가 된다. 소금은 햇볕과 바람, 그리고 염부들의 굵은 땀으로 이뤄진다. 그래서일까. 결정지에 모아진 반투명한 살찐 소금은 마치 보석과도 같다.

# 근대의 풍경부터 낭만적인 리조트까지…

증도는 해안가보다 섬 안쪽 깊숙한 곳에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예부터 바다보다는 기름진 땅에 기대고 생활해온 까닭이다.
그런 탓에 서쪽 일부 해안과 철부선이 닿는 쪽을 제외하고는 바다를 끼고 있는 드라이브 도로도
변변한 게 없다.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몇개의 포장도로를 제외하고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
잠깐만 샛길로 들어서도 곧 진흙탕길을 만난다.
그 길에서 마주친 마을은 시계가 멈춘 듯 70~80년대 분위기를 풍긴다.
면소재지만 벗어나면 슈퍼마켓은 물론 구멍가게 하나 없다. 너무도 조용해서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런 여행지는 차를 타고 휑하니 달리기보다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는 게 제격이다.
면사무소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는 데다,
대부분의 구간이 구릉이 거의 없는 평지여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맛이 좋다.

섬 북쪽에는 1976년부터 9년 동안 계속된 해저유물 인양작업으로
14세기의 중국 송 · 원나라 시대 도자기 2만여 점과 침몰한 선체 등 모두 2만8000여 점의 유물이
건져올려진 해역이 있다. 그러나 이를 기념하는 비석과 전망대만 덩그러니 서있는 데다
풍경도 그닥 빼어나지 않아서 그다지 감흥이 없다. 다만 이곳의 낙조 풍경만큼은 손꼽을 만하다.

섬지역 대부분에는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지만,
‘엘도라도’ 리조트가 들어선 우전해수욕장 부근은 예외다.
엘도라도 리조트는 마치 동남아시아의 고급리조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고급스럽고 또 낭만적이다.
꼭 숙소에 묵지않아도 리조트를 둘러보거나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우전해수욕장 북쪽 끝 개펄에 놓인 길이 470m의 ‘짱뚱어 다리’도 낭만적인 풍경에 가세한다.
간조 때 다리 위에 서면 발 아래 농게와 칠게, 그리고 짱뚱어들이 개펄을 뒤덮고 있다.
해가 막 지고 대기가 푸르게 빛나는 때, 다리 위의 간접조명에 불이 켜지면 낭만적인 느낌이 더해진다.
특히 커플이라면 밤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리 위를 산책하는 맛을 놓칠 수 없다.
짱뚱어 다리 너머 우전해수욕장에는
짚으로 지붕을 인 해변 그늘막을 설치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 육지에서 멀고 먼 땅이었던 섬의 과거를 듣다

증도는 동력선이 뜨기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오지였다.
증도에서 나룻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족히 대여섯 시간 산길을 걸어야 뭍에 겨우 당도할 수 있었다.
증도에서 지난 1968년부터 8년 동안 주민들을 실어나르던 나룻배를 젓는 뱃사공 일을 했다는
박종인(77)씨는 간간히 한숨까지 쉬어가면서, 증도에서 뭍으로 가는 험한 노정을 설명했다.

“증도에서 나룻배로 사옥도에서 내리믄 2시간을 걸어 아홉 구비 산을 넘어야 반대편 나루에 가닿제.
여기서 지도 가는 나룻배를 다시 탔네.
지도에 당도하면 또 2시간이 넘게 산길을 걸어 나룻배를 또 타야하제. 그래야 무안의 해제에 도착했고,
여기서 또 목포로, 광주로 나가려면 하루 해로는 어림없지라.”

박씨가 젓던 나룻배는 스무명쯤이나 타는 목선이었는데,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팔러가는 소를 싣기도 했고, 신행 길의 가마를 싣기도 했다.
섬 주민 모두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나룻배를 탈 수밖에 없던 탓에 운임은 탈 때마다 계산하지 않고,
6개월치씩 끊어서 받았다. 한 가구당 보리 닷되와 나락 닷되가 1년 동안 나룻배를 타는 비용이었다.
그것마저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내지 못했다. 이렇게 받은 게 1년에 60가마가 됐다.
그러나 뱃사공 일은 고되고도 고됐다.
 
휴일도 명절도 없이 매일 해가 뜨면 나루터에 나가서 해가 진 뒤에야 돌아왔다.
손끝이 추위로 곱는 엄동설한에도 노를 잡아야했다.
조류에 배가 뒤집혀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번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씨는 내년에 사옥도와 증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박씨는 몇번이고 “그때까지만 살아있으면 여한이 없다”고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 증도의 매력… 느린 시간과 손대지 않은 풍광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사람들은 왜 증도를 찾아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느리게 가는 시간’과 ‘손대지 않은 풍광’ 때문이 아닐까.
증도는 지난해 완도의 청산도, 담양의 창평, 장흥의 유치와 함께
슬로시티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느리게 사는 삶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도회지의 시간에 익숙한 여행자에게 슬로시티의 ‘느린 시간’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증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철부선을 타고 어렵게 들어가야 한다거나,
마땅한 식당을 찾기 어렵다는 것 같은 불편함에서 오히려 감동을 느끼는 눈치였다.
‘판박이 같은 관광지’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섬 마을의 정취를 즐기는 것이리라.
여기다가 천일염을 생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인 태평염전과 ‘엘도라도’란 이름의 화려한 리조트,
그리고 개펄에 세워놓은 ‘짱뚱어다리’의 낭만도 한몫을 했지 싶다.

그러나 증도에는 지금 곳곳에 식당이 들어서고 있고, 해안을 따라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놓이고 있다.
급기야 내년 초에 사옥도와 증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면, 증도는 섬 아닌 섬이 되고 만다.
 
사옥도와 증도 사이를 나룻배로 이었던 사공은 “다리 놓는 것을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했지만,
자꾸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섬은 섬으로 두는 것이 1년에 한 번쯤 섬을 찾는 사람이나,
그곳에 깃들어 평생을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섬 사람들이 ‘한번 와서 살아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 증도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함평분기점에서 광주 · 무안 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북무안 나들목으로 나와
현경을 거쳐 24번 국도를 탄다. 해제를 지나 연륙교를 건너 지도와 송도를 넘어 사옥도까지 간다.
사옥도에서 지신개 선착장 방면으로 가면 철부선을 타고 증도로 들어갈 수 있다.
안내판이 잘 돼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사옥도에서 증도까지는 철부선으로 15분 남짓 소요된다.

어른 왕복 3000원, 승용차는 1만5000원. 철부선에는 20대 남짓의 차를 실을 수 있다.
증도로 들어갈 때는 요금을 받지 않고, 증도에서 사옥도로 나올 때 왕복요금을 받는다.
사옥도에서 증도로 드는 배는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1차례 있다.
증도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7시35분이 첫 배이고 막배는 오후 10시20분에 있다.
차들이 밀리거나 승객들이 몰리면 수시로 증편 운행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엘도라도 리조트가 단연 첫손으로 꼽힌다.
인터파크 투어 등 인터넷 예약사이트 등을 통해 예약하면
평일 가장 작은 평수의 숙박료가 14만7000원부터다.
난개발을 막기 위해 숙박업허가를 내주지 않아 엘도라도 리조트 외에는 숙박시설이 다소 열악한 편.

그 중 시설이 나은 곳이 보물섬민박(061-271-0631). 화용민박(061-275-7734)에 묵으면
주인이 소유한 백합어장에서 백합캐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증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식당이었는데, 최근 들어 하나둘씩 새로 문을 열고 있다.
이즈음은 산란을 앞둔 병어(사진)가 제철이다.
고향식당(061-271-7533)에서는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크고 두툼한 병어를 재료로 회와 찜을 내오는데
각 2만5000원을 받는다. 증도로 오가는 길에 지도의 송도어판장에 들러 저렴한 가격에 병어를 사서
인근의 횟집에서 회를 떠서 맛볼 수도 있다.
- 증도(신안)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문화일보, 2008-06-11

 
 
 

 

 

 

 

 

 증도

 

바람, 파도 그리고 시간마저 느림을 즐기다

 

증도 여행은 염전에서 시작해 염전으로 끝난다.

태평염전 저수지 너머로 소금창고들이 줄지어 서 있다.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여러 주일, 여러 달,

아니 사실상 여러 해 동안

상점이나 사무실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지내는

내 이웃 사람들의 참을성, 혹은 정신적 무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정신적 무감각’,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육체적 무감각’을 떨쳐내려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전남 신안군 증도.

지난해 말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된

서남해 끝자락의 작은 섬(인구가 2000명 남짓 하니 ‘시티’는 좀 뭣하지만)이다.

 

슬로시티 증도 체험여행은 증도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도심 체증을 뚫고 고속도로-국도-지방도를 거쳐 연륙교를 건너 섬(사옥도)에 이르고 그 섬에서 다시 뱃길로 증도에 닿기까지, 예닐곱 시간에 걸친 ‘준비운동’ 부터가

끈덕진 체력과 인내를 요하는 ‘슬로 체험’이다.

외길 지방도에서 낡은 화물차라도 한 대 앞세우면

금쪽같은 세월 스쳐가는 소리에 속이 타들어간다.

 

증도와의 만남은 염전으로 시작해 염전으로 끝난다.

선착장을 벗어나면 물빛 반짝이는 염전이 끝간 데 없이 펼쳐지고,

증도를 떠날 때도 이 염전을 뒤로하고 배에 오른다.

460만㎡(140만평), 서울 여의도의 1.5배 크기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태평염전이다.

증도가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데는 이 염전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염전에 바닷물을 대는 수차만 펌프로 바뀌었을 뿐, 수작업 위주의 옛 방식 그대로

소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50년 된 석조 소금창고를 소금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염전에 소금 만들기 체험장을 설치해 관광객을 끌어들인 홍보전략도 주효했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 아직도 수작업으로 소금 생산

 

차를 버리고 두 다리로 돌아보면 증도는 다양한 표정을 드러낸다.

 

태평염전 사람들은 자신들이 빚어내는 천일염에

신앙 차원의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세계관은 ‘먹어서 약 되는 소금’과

‘먹어서 독 되는 소금’으로 대쪽 자르듯 양분된다.

전자는 갯벌 염전에서 해수를 자연 증발시켜 얻는

천일염이고, 후자는 이온교환장치로 해수에서

염화나트륨을 분리해 만든 정제염이나 재제염, 암염을 가리킨다.

 

곳 소금 장인(匠人) 이문석(71) 씨는

“천일염의 염도는 82%다. 나머지 18%는 88가지 천연 미네랄 성분이다.

그런데 정제염이나 암염은 염도가 99%에 이른다.

천일염으로 바닷물 염도를 맞춘 물에 줄돔을 넣으면 쌩쌩하게 헤엄치지만,

정제염 녹인 물에 넣으면 두 시간 안에 모두 죽는다.

정제염으로 김장을 하면 금방 물이 나서 흐물흐물해진다”며

‘천일염 신앙간증’에 열을 올렸다.

 

천일염 생산은 속도전이 아니다. 햇빛, 바람과 끈질긴 싸움을 이어가는 지구전이다.

시간을 알려주는 건 오직 바다뿐, 시종일관 ‘slow but steady’다.

밀물이 가장 높은 한사리 때 저수지에 바닷물을 들이는데 이때 염도는 2∼3%.

이 물은 염도에 따라 21단계로 턱이 진 증발지를 거치며 염도를 높여간다.

비 오는 날엔 염도가 낮아지므로 증발지의 물을 함수창고로 보내 보관하다가

다시 증발지로 보내는 ‘비몰이’를 거듭한다.

염도가 22∼23%에 이른 물은 결정지로 보내 채렴을 하는데, 여기까지 꼬박 25일이

걸린다. 이렇게 얻은 소금 결정체를 짧아도 6개월, 길게는 3년 이상 소금창고에

넣어두고 간수를 빼야 떫은맛이 사라져 상품화가 가능하다.

 

1. 바닷길 ‘노두’ 밟고 화도(花島) 가는 길.

2. 청정 갯벌의 짱뚱어와 농게.

3. 해안도로변의 초분(草墳).

 

시간이 더디 간다고 소금밭을 목가적인 ‘만만디’ 일터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온몸의 근육과 감각을 풀가동해야 하는 치열한 생업의 현장이다.

채렴을 앞둔 노련한 염부는 기온, 바람, 별빛, 하늘색을 두루 살펴 날씨를 점친다.

매뉴얼은 ‘육감’이다.

예컨대 바람은 ‘오뉴월 여인네들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들릴 만큼’ 불어야 한다.

 

                           태평염전 체험장.

 

날씨가 좋을 듯하면 이튿날 새벽 4시쯤 결정지 물청소를 한다.

결정지가 깨끗하지 않으면 소금색이 거무튀튀해진다.

8시쯤 다시 나와 함수창고에서 뻘덩어리를 제거한 물을 결정지에 내보내면

정오쯤 하얀 막이 형성되는데, 염부들은 이를 ‘꽃피었다’고 한다.

소금꽃들이 엉켜 가라앉으면서 결정체가 되면(‘소금이 살찐다’고 한다)

저녁 6시 무렵부터 묵직한 고무래를 힘겹게 끌고 밀며 채렴에 들어간다.

 

상품(上品) 천일염은 우윳빛에 가까운 흰색을 띠며, 손으로 으깨면 잘 부서진다.

또 짠맛 외에 약간 단맛이 느껴진다.

이렇듯 소금 고르는 데만도 시각, 촉각, 미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증도 여행은 그렇게 몸으로, 감각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기회다.

일상적으로 수동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말고,

전적으로 내 의지에 따라 자연과 조응하며 몸을 사용해본 기억이 있는가.

자동차로 여행하기에 증도는 너무 작고 볼거리도 별로 없다.

그러나 두 다리로 돌아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얼굴들이 객을 맞는다.

잠들어 있던 감각과 사물의 떨림이 되살아난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걷다가 속도감이 탐나면 자전거를 탄다. 증도는 ‘자전거의 섬’이다.

섬 이곳저곳에 400대의 노란색 공용 자전거를 비치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높은 언덕이 드물고 대부분 평탄한 지형이라 자전거로 섬을 일주하는 데 무리가 없다.

 

염전과 갯벌 끝내주는 풍광 … 독살 체험장도 둘러볼 만

 

1. 우전해수욕장의 해송림 산책로. ‘철학의 길’로 명명됐다.

2. 황혼의 염전.

 

우전해수욕장을 따라 4km에 걸쳐 조성된 해송림 산책로엔 높지도 낮지도,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해송들이 양편으로 띄엄띄엄 늘어서 있다.

꽉 막혀 있지 않은 숲이기에 오솔길 해송 사이로 언제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고

90여 개의 섬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와 은빛 모래 카펫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놓고 이 길을 걸으면 걷기는 곧 동적(動的) 명상이 된다.

이 산책로에 ‘철학의 길’이란 이름이 붙은 까닭을 짐작게 한다.

 

  갯벌에서 바라본 짱뚱어다리.

염전과 더불어 여행객을 압도하는 또 하나의 풍광은

갯벌이다.

특히 해수욕장 북서쪽에는 430만㎡(130만평)의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는데, 이 갯벌을 가로질러 나무와 철재로 470m의 날렵한 ‘짱뚱어다리’를 놓았다.

해질 무렵 다리 위에선 갯벌 수평선 너머 붉게

사위어가는 짤막한 황혼의 장관(壯觀)을 놓치지 않으려 카메라 셔터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 순간만큼은 ‘슬로시티’임을 잊는다.

 

그 아래 육상과 해양의 두 생태계가 만나는 청정 갯벌엔 미꾸라지보다 조금 굵은 짱뚱어, 농게, 칠게들이 제 세상을 만나 뻘을 헤집고 다닌다.

 

두 손 가득 뻘을 퍼올리면, 마그네슘 성분이 많아 최초의 머드 축제가 탄생한 ‘원조

갯벌’답게 탱탱하고 매끄러운 미세입자들이 살갗을 부드럽게 핥으며 흘러내린다.

 

섬 서쪽 검산항 부근엔 전통 어로법인 독살(석방렴) 체험장이 있다.

굴곡진 해안에 돌담을 쌓아두면 밀물 때 들어온 숭어 전어 새우 멸치 등이

썰물 때 못 빠져나가고 돌담 안 얕은 물에 갇힌다.

그야말로 그물 대신 시간을 던져놓고 하릴없이 고기를 기다리는 방법인데,

그나마 요즘은 고기가 많이 줄어

물때가 몇 번이나 바뀌어도 뜰망으로 건져낼 만한 게 없다.

염전에 필적하는 ‘인내 체험장’이다.

 

물때를 잘 맞추면 ‘노두’라는 옛 바닷길 1.2km를 걸어 증도의 부속섬

화도(花島, 해당화가 많이 피어 만조 때 멀리서 보면 꽃봉오리 같다 해서 그리 부른다)로 건너갈 수 있다.

노두는 간조 때 나룻배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갯벌 위에 돌을 쌓아 만든 길.

지금은 차량 통행을 위해 노두 위에 콘크리트 포장도를 깔아 옛 풍취가 퇴색했지만,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닷길을 오가는 기분은 그때마다 새롭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뒤섞인 해안 일주도로를 걷다 보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항월포 근처 산기슭에서 초분(草墳)이 눈에 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매장하지 않고 짚이나 풀로 덮어두는 장례 방식.

몇 년이 지난 뒤 뼈만 추려 묻는다. 멀쩡한 청장년이 뱃일하다 횡사하는 일이 잦던

해안지방이나 섬에서 행해지던 습속이다.

망자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그렇게라도 옆에 두고 싶었을까.

비록 항월포 초분은 관광객을 의식해 만들어둔 것이지만

증도엔 최근까지도 실제로 초분을 쓴 경우가 있다고 한다.

슬로시티 증도에선 죽음마저 느렸다.

 

 

슬로시티는…

    달팽이를 그려 넣은 슬로시티 깃발.

슬로시티 운동은

패스트푸드의 속도지향주의, 효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자며 주창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지역 차원으로 확대한 개념이다.

 

1999년 이탈리아 중부의 그레베 인 키안티 등 4개 도시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11개국 97개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했다.

 

슬로시티로 지정되려면

△인구 5만명 이하 △전통 수공업과 문화유산 보존

△패스트푸드와 유전자 변형 음식, 1회용품 사용 거부

△자연친화적 농법 및 에너지 사용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슬로시티국제연맹은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신안군 증도, 완도군 청산도,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마을, 장흥군 유치면 반월마을 등 전라남도 4개 지역을 슬로시티로 지정했다.

 

영화 ‘서편제’의 무대가 된 청산도는 구들논과 갯돌해변, 문화재로 등록된 돌담길 등 옛 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16세기 초에 형성된 삼지천마을은 전통가옥과 그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돌담길, 죽염된장·간장 등 전통장(醬), 수제 꿀초 산지로 잘 알려졌다.

 

호남 5대 명산의 하나인 천관산과 다도해 쪽빛 바다를 낀 반월마을은 때묻지 않은 자연에서만 자란다는 장수풍뎅이와 무공해 표고버섯이 자랑거리다.

 

- 주간동아,  2008.09.09 652호(p46~49)

- 글 / 이형삼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ans@donga.com

- 사진 / 조영철 기자 choy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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