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단군신화, 게세르신화, 그리고 몽골 비사 | |||||||||
바이칼은 한민족의 출발지일까 종착지일까 여러 아들이 이 왕자를 죽이려 하니 왕자가 도망쳤다. 강에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어~.”
곧바로 러즈더(樂志德) 다워얼 학회장을 만난 자리였다. 디워얼(達斡爾)족은 이른바 원(元)고구려족일 수도 있다고 해서 관심을 받아온 종족. 그런데 여든세살이나 된 러즈더 회장은 탐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주몽설화와 아주 비슷한 신화를 술술 말하지 않는가. 다워얼족=고구려의 원형? 귀를 쫑긋 세웠다. 러즈더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역사지식을 토대로 그저 고구려 신화를 이야기한 것일 뿐이었다. 잠깐의 흥분이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코리안루트를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러시아와 중국을 누비는 것이 아닌가. 자칫 ‘10%의 닮은 꼴’에 매달려 ‘90%의 다름’을 사상(捨象)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취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닮은 10%라도 찾으면 그것에 짜맞추어 해석을 시도하는 그런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러시아·중국 탐사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가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깊은 친연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배를 갈아탄 시간까지 합해 모두 8시간 걸려 간 곳이 유명한 바이칼 호수였다. 들어서는 길에 왼쪽 저편에 보인 이른바 모녀 샤먼 바위(일명 부르한 바위)를 보고 박근우 교수(이르쿠츠크 국립언어대)가 귀띔한다. 호수 안 알혼섬에서 만난 부랴트 샤먼 발렌친의 첫마디 역시 바로 한국인과의 친연관계였다. 그대들과 우리는 유대가 있고 정이 있다. 칭기즈칸과 한국 공주가 결혼하지 않았느냐.” 몽골학과 티베트학, 불교학, 생물학, 물리학을 연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리스 바자로프 윈장과 세르게이 다닐로프 고고학 분과위원장은 탐사단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2년 전 울란우데에서 국제문화학회가 열렸는데, 그때 어떤 여성 인류학자(투멘이라는 이름을 가진)가 한국인과 부랴트인의 관계를 설명했다. 현대 부랴트 인근 지역의 경우 중국인보다 한국인의 게놈과 비슷하다는 연구 분석도 있었고….” “우리 연구소에서는 아직 한국 관련 연구는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샤먼을 키우는 학교가 있고, 샤먼도 등급시험을 보아야 한다니 신기했다. “심사장에서는 절대 떠들지도, 방해도 하지 마라. 샤먼이 트렌스(신과의 교감)하는데 몸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해 조심 또 조심했다. 신화학자인 양민종 부산대 교수가 유창한 러시아말로 샤먼센터의 장(長 · 종정)인 마이예르 잠발로비치를 ‘알현’하고, ‘한 말씀’ 청하자 역시 한국인과의 친연관계를 언급한다. 지성과 감성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인이 바이칼에서 왔다는 가설이 공표되었다.” ‘언젠가 부랴트인과 한국인이 좁은 땅에서 머리를 맞대고 살았다’는 응답을 받았다고 하네요.” 혹 탐사단을 위해 이들이 ‘립서비스’ 수준, 즉 ‘입맛에 맞는 맞춤형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7월24일 다워얼의 해프닝이 일어난 것이다. 얼마든지 유사성과 친연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죠. 신화의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고 세계관도 비슷하다면….”(양민종 교수) 균형의 감각을 찾는 과정이 아닌가. 알혼섬에서 샤먼 발렌친이 술에 취해 암송하는 소리를 듣던 양 교수는 내심 깜짝 놀랐다고 한다. 평소의 레퍼토리를 버리고 게세르시를 암송하는데, 그것이 꼭 단군신화에 스토리를 입힌 것 같았어요.” 영웅 서사시의 제목이자 등장 인물의 이름이다. 내용의 얼개를 보면. 하늘신 히르마스가 둘째아들인 게세르를 지상으로 내려 보낸다. 게세르는 지상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한 뒤 인본주의와 조화를 이룬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 게세르는 악한 무리와 전투를 벌인 뒤 지상의 악을 멸하고 제국을 건설한다. 그후 자손들과 승리의 주역들은 동서남북으로 확산, 제국을 확장시킨다.” (양민종이 옮긴 ‘바이칼의 게세르 신화’ · 2008년 · 솔) 지상세계의 문제를 목격한 환웅이 환인의 허락을 얻어 무리 3000명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우사, 풍백, 운사 등과 함께 지상에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제압한 뒤 지상과 우주의 조화를 복원시키잖아요. 게세르 신화와 닮은 꼴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에서 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를 보내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할 단서로 단군신화를 언급했는데요. 아마도 육당은 게세르 신화를 단군신화와 쌍둥이 형제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양민종 교수) 왜 우리는 이 머나먼 바이칼 호수에서 단군신화의 원형을 찾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몽골을 마치 ‘우리의 모국’처럼 여기고 있는 것일까. 혹 그 반대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통설의 노예가 되어 그저 기존의 학설을 공리(公理)처럼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머릿속은 그저 뿌연 안개만 가득찰 뿐이었다. 근거없이 말하면 역시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까. 게세르 신화의 이동경로가 티베트-몽골-부랴트이며, 단군신화도 게세르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을 거라고 말하는데요. 사실은 단군신화가 이른바 게세르 계열의 신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채록본입니다.” 신화학자인 양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서 기자의 뿌연 머릿속의 안개가 말끔히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13세기 때 나라가 선 몽골은 우리의 뿌리인가. 이것 또한 당연히 생기는 의문이다. ‘몽골비사’에 나온 칭기즈칸과 관련된 출생의 비밀. 주채혁 세종대 교수와 함께 몽골의 역사를 담은 ‘몽골비사’를 풀어보면. 바이칼 호수까지 흘러가는 셀렝가 강 일대에 자리잡은 메르키드족인 예케 칠레두라는 인물이 아내를 빼앗긴다. 약탈자는 몽골의 예수게이라는 인물이고, 약탈 당한 비운의 여인은 후엘룬이다. 그런데 후엘룬은 예케 칠레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몽골로 끌려간 후엘룬이 낳은 아이는 바로 칭기즈칸이다. 그러니까 칭기즈칸의 생부는 몽골족인 예수게이가 아니라 메르키드족인 예케 칠레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메르키드족이 다름 아닌 발해 말갈이라는 설이 주류를 이루니까요.”(주채혁 세종대 교수) 이 또한 헛된 민족주의의 발로라는 비아냥을 들을까. 과연 그럴까. 기자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것은 부랴트계 러시아 학자들의 발언이었다. “북방에서 한반도(남쪽을 의미)로 건너갔다는 고정 관념 말고, 한반도 인근에서 북방으로 건너왔다는 설명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곁에 있던 다른 학자들도 “한국인이 부랴트에서 기원한 게 아니라 부랴트 사람들이 한국인으로부터 왔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으냐”고 입을 모았다. 아예 “거란이 일어났을 때(BC 907년 무렵) 한반도 부근의 한민족이 북단의 유목세계인 바이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내기도 했다.
한국인과 부랴트인을 포함한 북방 민족과 친연성이 있는 것은 사실 같지만, 더욱 딱딱한 증거들, 즉 과학적인 분석이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이곳 학자들의 말은 맞다.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아니면 동북아시아 여러 민족, 아니 동이계 공통의 신화인가. 양민종 교수가 풀어주는 단군신화 이야기다. 또 하나 주채혁 교수로부터는 몽골비사가 담고 있는 수수께끼, 즉 몽골과 발해 관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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