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사우당(四友堂)의 네 친구 이야기 임원준의 사우당(四友堂) - 경(耕), 목(牧), 어(漁), 초(樵) 김경지의 사우당(四友堂) - 눈(雪), 달(月), 바람(風), 꽃(花)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단어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친구’도 아마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친구에 대한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면 분명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로 만나서 벗이 된다. 전혀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서로 만나 아름다운 삶의 결을 만들면서 함께 인생길을 걸어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친구라고 해서 꼭 내 또래의 친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뛰어넘어 벗으로 사귀는 ‘망년우(忘年友)’도 있고, 얼굴 한 번 못 보았지만 글이나 편지를 통해서 벗이 되는 ‘문우(文友)’도 있다. 옛 사람의 책을 읽다가 그분과 벗이 되는 ‘상우(尙友)’도 있다. ‘상우’는 <맹자>에 나오는 구절로, 옛 사람과 벗이 된다는 의미다. <논어>에 보면 증자(曾子)도 “군자란 글을 가지고 벗을 만나고, 벗을 통해서 인(仁)을 돕는다(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고 하였다. 명나라 후기의 위대한 사상가 이탁오(李卓吾)는 “스승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벗으로 삼을 수 없고, 벗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스승으로 여길 수 없다”는 생각을 펴기도 했다. 이렇게 벗이란 우리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존재다. 사우당(四友堂)이라는 곳이 있었다. 여주(驪州) 섬강(蟾江)을 굽어보는 곳에 위치한 집으로, 조선 초기 관료문인이었던 임원준(任元濬, 1423∼1500)이 건축한 별장이다. ‘사우당’은 임원준의 호이기도 하다. 그는 1445년 세종의 총애를 받아 발탁된 이래, 여러 차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명문장으로 극찬을 받은 사람이다. 중종반정 이후 정권이 바뀌자 그의 아들 임사홍(任士洪) 때문에 삭탈관직되기도 했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관료문인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자신의 집 편액을 왜 ‘사우당’으로 지었을까? 그의 동료이자 벗이었던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네 벗을 경(耕), 목(牧), 어(漁), 초(樵)로 지목한 바 있다. 경(耕) - 들에서 밭을 갈고, 목(牧) - 들판에서 소를 먹이고, 어(漁) -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초(樵) - 산에서 나무하는 것을 벗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임원준은 사람을 벗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은거하여 한가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삶 자체를 벗으로 삼고 즐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주변에는 김경지(金敬之)가 임원준과 같은 이름인 ‘사우당’으로 집을 지어놓고 유유자적 지내고 있었다. 김경지에게 네 벗은 눈(雪), 달(月), 바람(風), 꽃(花)이었다. 후에 강(江)과 산(山)을 더하여 육우(六友)로 고치기는 했지만, 김경지의 벗은 바로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세상 번우한 일을 떨치고 벗어나면 우주가 순식간에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그 번우한 일 중에 으뜸은 역시 관료 생활이리라. 공문서 더미 속에 묻혀서 세월을 보내노라면 눈 한 번 돌리는 사이에 생의 만년에 이른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지만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 얽힐수록 우리의 삶은 번거로워지고 생의 무게는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뭉친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건 역시 아름다운 벗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과 술 한 잔 나누거나 스치든 나누는 웃음 한 조각에도 우리는 다시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그게 바로 친구다. 생각해보면 벗과의 만남에는 화려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해야 친한 벗인 것은 아니다. 값비싼 선물을 하거나 으리으리한 곳에서 식사를 할 필요도 없다. 담박함이야말로 벗과의 만남에서 중요한 요소다. 고위관직을 역임한 임원준의 경우, 화려함이 주는 형식성에 식상했을 것이다. 큰 관인(官印)을 꽝꽝 찍으며 사람들을 호령해도, 그 뒤에 남는 허전함은 메울 길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그가 여주 섬강 가에 집을 지어놓고, 손수 밭을 갈고 소를 먹이고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면서 지내는 심사를 이해할 만하다. 김경지가 눈과 달과 바람과 꽃을 벗으로 삼고 지내는 마음을 이해할 만하다. 우리가 인위적인 어떤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연의 순환에 맞추어 살아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벗으로 삼지 않을 수 있으랴.
- 김풍기(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 경기문화재단, 차와 함께하는 경기도이야기 제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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