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作 - 터키탕

Gijuzzang Dream 2008. 1. 2. 20:52

  

  

 

 

[명화이야기]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 관능의 여인들

 

 

'터키탕', 1863년, 캔버스에 유채, 직경198,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목욕탕은 단순히 씻는 곳에서 벗어나 이제 즐거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목욕탕이 가장 발달한 도시는 고대 로마였다.

로마의 목욕탕은 씻는 장소가 아니라 사교의 장이었다.

목욕탕이 사교나 씻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목욕하는 이성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목욕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목욕하는 여자에게 흥미를 느껴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는 앵그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터키탕’

그의 말년 작품으로 목욕하는 여자들 작품 중에 가장 대표작이다.

젊은 시절부터 목욕하는 여자에게 흥미를 느낀 앵그르는 18세기 무렵

터키 주재 영국 대사 부인이 쓴 ‘터키탕의 견문기’를 읽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한다.

 

앵그르는 여성의 누드를 표현하는 데

신화의 주제를 버리고 상상으로 할렘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여인들의 관능적인 몸을 표현한 ‘터키탕’은 앵그르 작품 중에 드물게 구성 자체가 공상적이다.

누드의 정물화로 불릴 만큼 많은 나체의 여인들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화폭 속의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목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원래 사각형 캔버스에 제작했으나 그 후 원형 캔버스에 제작했다.

원형 캔버스는 마치 열쇠구멍으로 목욕탕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앵그르는 원형 캔버스를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악기를 들고 있는 중앙의 벌거벗은 여자의 모습은

앵그르가 28세 때 제작한 ‘발팽송의 욕녀’라는 작품에서 보여준 자세를 재현한 것이다.

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 오른쪽에 어색할 정도로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이

앵그르의 두 번째 부인 델핀이다.

앵그르는 그녀를 티치아노의 ‘안드리아의 바커스 축제’에 나오는

쾌락을 상징하는 여인에게서 영감을 얻어 표현했다.

그녀 뒤에서 서로 가슴을 만지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은 동성애를 암시하고 있으며

그 옆에 몸종에게 머리 손질을 맡기고 있는 여인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 끝에서 요염하게 서 있는 여인은 처음에 그려 넣지 않았으나

나중에 앵그르가 구도상 넣은 것이다.

화면 앞에 있는 도자기로 된 주전자와 잔, 뒤쪽에 벽에 놓여 있는 큰 도자기

그리고 여인들의 머리 장식 문양은 이국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앵그르의 ‘터키탕’은

여성의 누드를 다양한 방향에서 다룬 그동안의 경험으로써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앵그르는 에로틱한 내용을 더욱 고양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왜곡시켜 묘사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 공의 주문으로 제작했지만

노골적으로 표현한 여성의 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거절당한다.

이후 이 작품에 관심을 보인 부유한 투르크인이 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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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12/11   뉴스메이커 7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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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수 / 작가·아트칼럼니스트

 

 

 

 

 

‘나체의 집합소’ 여탕 훔쳐보기  

 

 

  앵그르의 스승 다비드는 “미술이란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이며

  미술 작품의 목적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앵그르는 이 가르침을 그림 속에서 엄격한 리얼리즘으로 승화시켰다.

 

  그리하여 강조와 비례의 미묘한 변화, 우아함과 사실적 깊이로

  19세기 고전주의 미술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21세 때 로마대상을 받고 18년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그는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화풍을 익혔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목욕하는 여인’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천부적인 묘사력과 고전미를 보여주던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을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하는 신고전주의 화풍을 이어 받았다.

 

  그의 예술가적 이상은 라파엘로였고

  역사화와 가장 개성적인 초상화와 나체화로 이름을 날렸다.

  불멸의 명작 ‘샘’ ‘오달리스크’ 등이 그것이다.

  젊은 시절 ‘목욕하는 여인’ 이후 욕탕과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에 끊임없는 흥미를 느낀 그는

  84세 말년에 이 화제의 ‘터키 욕탕’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현실보다는 가상적인 공간을 설정,

  그가 그렸던 나체 여인들을 한곳에 끌어모은 듯한 구성을 보여준다.

 

  수십여 명의 나체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육감적이고 풍만한 여체의 관능미를 테마로 삼고 있다.

  원래는 사각형이었는데 구멍을 통해 훔쳐보는 관음적 요소를 위하여 둥글게 그렸다고 한다.

 

  앵그르 여인의 총집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팽송의 욕녀’ 등 그림 모델의 포즈가 들어 있다.

 

  원래 나폴레옹 왕자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전해지는 이 그림은

  왕녀의 반대로 반환되기도 했다.

  “여자들은 이렇게 청결하게 그려져 있는데” 하며 아쉬워했던 앵그르는

  뒷모습과 손을 올린 여자의 포즈, 원근법에 나타나는 여인들의 자세에서

  천박하지 않은 우아한 에로티시즘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그림은 ‘오달리스크’와 더불어 19세기 유럽의 동방문화의 관심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체를 더 에로틱하게 하기 위해 다비드의 생각을 무시,

  풍만한 여체와 부드럽고 유연한 선, 우윳빛 피부 등으로 매혹적인 여인으로 탄생시켰다.

 

  앵그르의 영향은

  “데생은 사물을 보는 형식”이라고 말했던 드가와 르누아르에게로 이어졌으며

  피카소의 누드작품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 2005년 12월25일, 스포츠신문, 미술 속의 에로티시즘

  - 김종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