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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의 문화재

Gijuzzang Dream 2009. 12. 14. 13:57

 

  

 

 

 

 

 

일상생활 속의 문화재

 

 

문화재는 박물관이나 유적지, 사찰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쉽게 만날 수 있는 문화재는

민속유물로서 출생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까지 그 사람이 사용하였던 생활품과

생애기간 중에 치룬 의례에 쓰여진 용품이다.

지금도 주변을 잘 살펴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쓰시던 옛 생활용품들이 주위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잠시 조선시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가서

당시 사용하던 생활용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우선 아기가 탄생하면 대문에 금줄을 건다.

할머니는 뒤뜰 장독대나 큰 나무에 가서 삼신할멈에게 감사의 치성을 드린다.

부엌에선 부싯돌이나 광솔로 불을 지펴 아궁이에 넣고 부지깽이로 불을 디민다.

우물가에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바가지에 담고 이남박조리로 쌀을 일고

동이에 담아두었던 미역을 씻어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인다.

장독대에 가서 표주박으로 간장을 떠서 종발에 담아 부엌으로 가져가 간을 본다.

어느새 가마솥의 밥이 끓는다.

한쪽에선 평상개다리소반(狗足盤), 호족반(虎足盤)을 내려서 상을 본다.

여름에는 사기(沙器, 磁器)그릇을, 겨울에는 놋그릇을 쓰는데

우선 찬장(饌欌)이나 찬탁(饌卓)에 보관하였던 밑반찬을 종발, 대접, 접시, 사발, 종재기에 나누어 담고

찬합(饌盒)광주리에 보관하였던 육포나 건어물을 꺼내 곁들인다.

수저집에서 은숟가락, 젓가락, 놋숟가락을 꺼내어 에 놓고

밥과 미역국을 담은 후 보자기를 덮고 상을 들고 들어가 산모가 먹게 한다.


  

시중드는 여인은 버선장이나 머릿장에서 마련해 두었던 기저귀를 꺼내 차곡차곡 갠다.

아기엄마가 수놓아 만든 백일, 돐날 입힐 의복들이 반닫이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시중꾼이 아기엄마 솜씨를 칭찬하면서 구경을 시작한다.

버선장 바닥에서 버선본 넣는 버선주머니가 나온다.

바늘집, 노리개, 열쇠꾸러미, 별전 등 시집올 때 갖고 온 살림 밑천이 쏟아져 나온다.

삼작노리개, 장도노리개, 범발톱노리개, 뒤꽂이, 참빗, 처녀 때 드리던 도투락댕기, 비녀,

선대(先代)에 쓰던 떨잠, 금가락지, 은가락지, 쌍가락지, 옥가락지패물함에 가득 차 있다.

머리반닫이에는 아기 누비버선, 융바지, 저고리, 복건, 굴레, 치마, 저고리, 배자, 토시가 있다.

 

정신없이 보고 있는 중에 바깥 사랑에서 아기아버지가 들어오는 기척이 난다.

얼른 보자기에 싸서 급한 김에 궤(櫃)에 넣고 시중드는 여인은 웃방으로 사라진다.

아기엄마 잠깐 일어나 좌경대 거울을 빗겨놓고 살짝 머리를 매만진다.

도포을 쓴 아기아버지가 의젓한 풍채로 들어선다.

진사댁 큰따님이 시집와서 이 댁에 경사났다. 장손을 보았고 과거에도 급제하였다.

허리띠에 찬 호패(號牌)가 섭자락 사이로 살뜻 보이고 궁중출입의 신부(信符)가 언뜻 보인다.



안방 


 

이럭저럭 세이레, 네이레가 지나니 아기가 제법 젖을 빨고 옹아리를 한다.

아기엄마는 자리보존하던 안방을 말끔히 치우고

백자로 만든 분단지, 기름단지, 분첩을 열고 고운 모습으로 단장한다.

낮이면 수틀에 비단을 얹고 베겟모를 수놓거나 문자도(文字圖)화조도(花鳥圖)를 수놓는다.

아기엄마 워낙 솜씨있는데다 임신 중 아이의 인격 함양을 위한 태교의 일환으로 틈틈이 하던 일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바깥 어른이 사랑에 계실 때면 등경걸이의 심지를 돋우거나 밀랍(蜜蠟)화촉을 밝히고

신사임당 초본그림 초충도(草蟲圖)를 수놓아 가며 율곡선생을 키우던 심지(心志)를 사모한다.

어느덧 잠자리에 누울 시각이 되었다.

아기아버지 들어와 소금양치, 저녁세수 치른 뒤에 다담상 당겨들어 잣죽탕기 비어놓으면

새양양치 백자타구에 받아내고 금침을  깐다.

베겟모는 일곱아들 거느린 봉황부부가 벽오동 그늘에 노니는 구봉침(九鳳枕)이다.

이불 자락엔 백년해로의 의미로 당초문수(唐草文繡)를 놓았다.

백자요강을 발치에 두고 윗목바치에 머리병풍을 두고, 화촉을 입으로 불어 끄니 원앙의 동방이 여기이다.

  

동이 튼다. 미닫이로 비친 뿌연한 기운에 아기엄마 얼씬 일어나 빗첩을 꺼내놓고 가르마 다시 타고

참빗질 곱게하고 얼레빗으로 치렁한 머리채 손질하고 만월빗, 반월빗으로 이리저리 다듬어

머리채 꼬아 틀어올려 새앙머리 한다. 옥비녀 길죽하게 꽂으니 얼굴이 달덩이 같다.

봉두잠(鳳頭簪), 용두잠(龍頭簪), 매죽잠(梅竹簪)금비녀, 은비녀, 구리비녀, 나무비녀도 있지만

옥비녀가 그 중에 마음에 든다.

 

동창이 밝는데 아기가 깨어나 젖 달라고 운다. 젖을 빤 아기가 어느덧 쌔근쌔근 다시 잠이 든다.

얼른 일어나 오동나무 관복함을 꺼내 놓고 입조(入朝)할 의복을 챙긴다.

사모, 관대(紗帽, 冠帶)를 챙기고 상아로 만든 홀(笏) 흉배(胸背)도 점검한다.

시어머니의 솜씨로 수 놓은 운학문흉배는 학이 두 나래를 활짝 펴고 구름에 노니는 모습이다.


대궐에서 퇴청한 아기아버지는 안방에 들러 아기엄마와 아기를 잠시 안아본 후

대청을 나와 벗어 놓았던 나막신목화(木靴)백화(白靴) 등의 화(靴), 혜(鞋), 이(履)를 알맞게 신고

토담에 열린 협문을 지나 바깥사랑채로 들어선다. 바깥사랑은 남자들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여름이면 사분합(四分閤)을 달아 올려 처마 밑으로 걷어 들쇠에 걸어 두고

대청 뒤 널판 분합(分閤)을 열어 젖혀 맞바람을 불어치게 한다.

곤하여 낮잠을 잘 땐 뒷 문쪽에 평상을 놓고 베잠뱅이 걸친 뒤

자기퇴침(磁器退枕)이나 대나무베개, 등나무베개를 베고 죽부인(竹夫人)을 끼고 누워

합죽선(合竹扇)이나 어죽선(魚竹扇), 죽절선(竹節扇)으로 부채질을 하면 시원하기 그지없다.

방으로 들어서서 아랫목에 깔아 놓은 보료에 정좌를 하면 안침, 사방침, 장침이 가지런하고

무릎 앞에 서상(書床), 그 옆의 연상(硯床), 문갑(文匣)이 있고

문갑 위에는 붓통, 필가, 필세, 종이통, 연적이 놓여있다.

문갑을 열면 도장, 봉인, 부싯돌, 부시쌈지, 어피(魚皮)안경집, 동곳, , 갓끈, 담배함, 담배쌈지 등이

들어있다. 방의 귀퉁이에는 사방탁자(四方卓子)가 놓여있고

탁자에는 이나 항아리, 화분, 등 여러 가지 완상물(玩賞物)이 벌려 있다.

사방탁자 맞은편에는 책장서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아기아버지 퇴청은 하였지만, 조정의 사무가 남았는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서상 위에 , , 벼루, 종이 문방사우(文房四友)를 펼치고

밤이 이슥하도록 상급자에게 올릴 문서인 고목(告目)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바깥사랑(누마루)                                  사랑방 
 
 

다른 공간과 방을 한번 살펴보자.

 

다락을 열면 반닫이, 돈궤, 층항아리 가지런하고

관복함, 서류함, 전통, , 갓통, 각띠가 제자리에 놓였다.

다락 아래쪽 문을 밀어보면 골방으로 통하는데

의거리장, 삼층장, 이층농반닫이, 탁장(卓欌), 관모함, 서류함, 문갑, 장탁자, 책탁자, 궤상(机床),

서가, 서견대(書見臺), 연상(硯床), 필통, 고비, 화로, 재떨이, 촛대, 등경걸이가 여벌로 자리잡았다.

 

윗방에 들어서면 조명기구인 좌등(坐燈), 조족등(照足燈), 나무등경, 유제등경이 비치되어 있다.

골방에는 서탁이 나란하고 수백권의 서책이 쌓였다.

능화판(菱花板), 서판(書板), 간지판(簡紙板), 목판(木板)도 한쪽에 수북하다.

그 한쪽에는 약장(藥欌)이 놓여있어 집안의 상비약이 들어있고

약탕관, 약연(藥硯), 약사발, 약주전자, 약숟가락도 보인다.

또 한편으로 차를 끓일 도구들이 가지런하다.

주전자, 탕기, 다기(茶器), 찻잔, 화로, 부젓가락, 불삽, , 항아리가 있다.

차를 마실 때 피울 , 향로, 향꽂이, 향합(香盒)도 있다.

  


찬방 

 
  

어느덧 한 해가 지나 아이가 돌을 맞는다. 아기엄마 할머님 부산하게 잔치상을 차린다.

유모, 찬모, 아랫사람들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부루단지를 열고 정성스레 쌀을 퍼서 밥그릇에 담아 들고 나와 실타래를 얹어 상 위에 놓고

청지기는 곳간에 들어가 엽전궤를 열어 젖히고 한꾸러미 들어다 상 위에 올려 놓는다.

찬모는 칠첩반상기 꺼내놓고 신설로틀, 전골틀, 유기그릇 등을 챙긴다.

돌잔치에 쓰일 음식들이 함지박, 채반, 과반에 그득하고

국수장국 끓인 가마솥에 불길이 날렵하고 떡시루, 떡안반, 떡판, 떡살, 다식판이 여기저기 벌려있다.

이윽고 때에 맞추어 돌상이 차려지고 삼간대청에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모두의 얼굴에는 만면에 웃음이다.


  

지금까지 사대부가의 일상속에서 아이가 출생하여 돌잔치하는 모습,

안방과 사랑방의 모습을 생활용품과 함께 살펴보았다. 대략 보아도 적지않은 수량이다.

범위가 넓어서 다루지 않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여러가지 용품을 합쳐 본다면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구나 물건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로는 흔히 사용하던 일상의 용품들이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모두 문화재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생활용품을 비록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보았거나 사용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에서 보는 경주 , 부여의 유적이나 박물관의 유물, 오래된 사찰에서

만나게 되는 유물만이 문화재가 아니다.

일제 침략기의 암울한 흔적도 문화재이며 광복 이후 사회적 격동기의 흔적도 문화재이다.


  

문화재보호법에는 50년이 경과된 것 중 역사상 , 예술상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을 문화재의 범위에 포함한다.

우리 조상들이 일상의 삶과 함께 남긴 유물은 물론이고

생존해 계신 나이든 어른들이 50년 전에 보고 느끼고 사용하던 생활용품도

문화재로서의 심의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가구, 벽에 걸린 현대회화도 그리 오래지 않은 세월 뒤에는

가치 여부에 따라 문화재가 될 수 있다.

또한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와 춤도 후대에는 무형 문화재가 될 수가 있다는 점에서도

문화재는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존재하는 친근한 동반자이다.



<참고자료>

申榮勳,「木工 · 民俗資料」,『一般動産文化財解說』,文化財管理局, 1976.

   

- 최태희,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9-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