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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건 덜위치 미술관(Dulwich Picture Gallery) - 렘브란트, 카날레토

Gijuzzang Dream 2009. 12. 11. 01:45

 

 

 

 

 

 

 

 

 

 영국 런던 덜위치미술관(Dulwich Picture Gallery)

 

 

 

 

런던에 있는 덜위치 미술관은

영국 최초 공공미술관으로 1811년 미술상이었던 프랜시스 브루주아 경의 기증품으로 설립되었다.

프랜시스 경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미술상으로

폴란드 국왕의 컬렉션을 대신하여 미술품을 수집하는 계약을 맺었으나

폴란드 왕조의 몰락으로 수집한 미술품들을 인도할 수 없게 되자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조건으로 수집품들을 기증했다.

프랜시스 경의 기증 조건에 따라

영국의 건축가 존 손(John Soane) 경이 설계한 덜위치 미술관을 1817년 개관하게 된다.

그 이후 소장품의 증가로 여러 차례의 확장 공사에도 불구하고 당시 건축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덜위치 미술관은 17-18세기 유럽의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렘브란트, 예술적 한계를 시험하다

 

  

 <창가에 앉아 있는 소녀>

YOUNG GIRL LEANING on A WINDOWSILL
1645년, 캔버스에 유채, 91×67Cm 


덜위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작품이 렘브란트의 <창가에 앉아 있는 소녀>다.

이 작품에서 화면에 창가가 보이지 않지만

덜위치 미술관은 소녀 옆에 벽면에 희미한 빛으로 창가에 앉아 있는 소녀라는 제목을 붙였다.

흰색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소녀가

돌처럼 보이는 받침대에 기대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다.

왼손으로는 자신의 목과 린네 소재의 흰색 블라우스의 혹을 만지고 있으며

소녀의 어깨 위에는 땋은 한 가닥의 머리가 걸쳐져 있다.

동그란 얼굴과 붉은 뺨은 모델이 소녀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가난과 실의에 빠진 후반기

성숙되지 않은 소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에서

걷어 올린 블라우스의 소매는 소녀의 동적인 행동을 말해준다.

소녀의 얼굴과 상체 그리고 돌받침대는 밝은 빛으로 강조하고 있고

소녀 머리 뒤 배경은 어둡게 처리해 소녀를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광채처럼 표현했다.

빛을 사용해 인물을 강조하고 방식을 선호했던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배경보다는 인물에 집중시키기 위해서 소녀가 앉아 있는 장소를 불분명하게 처리했다.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이 작품은

그의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후반기 작품의 특징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한 빛을 사용해 인물을 강조했던 전반기 작품과 다르게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을 사용해

인물과 배경이 함께 어울러져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인데

극과 극인 인생을 살았던 렘브란트는 작품의 성격 또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지고 있다.

 

전반기는 부와 명성에 쌓인 화려한 생활이었던 시기의 작품은 혁신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었다면

후반기는 가난과 실의에 시달린 시기로서 이 시기의 색채는 서로 화합하며 빛은 더 가라앉는다.
렘브란트는 말년에 지나친 낭비벽으로 파산했지만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초상화를 그리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천재성에 확신을 가진 렘브란트는

자신의 예술적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어 예술작품만 그렸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예술의 원숙기를 보여주고 있는 시기는 생애 마지막까지 이르는 20여 년 동안이다.

이 시기의 색채와 형태가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렘브란트가 인생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인생과 화해를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래된 월튼 다리>

1754년, 캔버스에 유채, 43×57 


덜위치 미술관에서 영국 특유의 날씨를 화폭에 담은 작품이 카날레토의 <오래된 월튼 다리>다.

카날레토는 풍부한 광선의 변화를 묘사했다.

폭풍을 몰고 오는 구름이 흰색으로 칠해진 다리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고

먹구름 뒤로 숨어 있는 황금색의 햇살은 은은한 빛을 품어 내고 있다.

먹구름은 영국의 어둡고 습한 여름을, 구름 위 엷은 색의 황금빛 햇살은 저녁 무렵을 나타내고 있다.

어두운 구름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흰색의 다리는

이 작품에 제작될 당시 건설된 지 4년밖에 안된 다리지만 다리 구조가 오래된 다리처럼 보이고 있다.

강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사람들은 날씨에 개의치 않고 승마와 낚시 그리고 배 타고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

화면 중앙 사람들 사이에서 밝은 색의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사람이 이 작품을 의뢰한 토마스 홀리스다.

홀리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카날레토로 이 작품의 밑그림을 위한 스케치를 그리고 있다.

카날레토(
Giovanni Antonio Canaletto, 1697~1768)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베네치아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 베네치아에 관광을 온 영국인들 사이에서 여행 기념 그림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그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0~1748년)이 유럽을 휩쓸자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자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왕조와 유럽 전역에 걸쳐 있는 공국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법령을 만들어 생전에 각국의 승인을 받아 놓는다.

하지만 카를 6세가 죽고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에 오르자

15세기부터 남자에게만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반발한다.

영토 확장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프로이센이 이 때 합스부르크 영지를 침공하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유럽 본토로 여행했던 영국인 관광객들이 감소하자 생계유지가 힘들어진 카날레토는

자신의 그림이 인기가 많았던 영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그가 영국에 이주하면 그린 것으로

그 이전에 베네치아의 풍경을 표현했던 화사한 색상과 다르게 영국 특유의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년 12월9일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