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最古 추정 신라 비석 발견
포항 학성리비 서기 501년 제작 가능성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학성리에서 50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비석이 발견됐다.
이곳은 현재 가장 오래된 신라 비석으로 공인된 ‘영일 냉수리비’(503년 건립 추정, 국보 264호)가
1989년 발견된 곳에서 동쪽으로 약 8㎞ 떨어져 있다.
포항시가 문화재청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 비석은 지난 11일 오후 5시 무렵 학성리 주민생활개선사업 도로 개설 작업 일환으로
이곳 중앙교회 앞에서 공사를 벌이던 중에 이 마을 주민 김헌도(47) 씨에게 발견됐다.
김씨는 공사 현장에 마침 편평한 돌이 있어 이를 집에 가져와 화분 받침대로 쓰려고
물로 세척하던 중에 글자가 나타나자 당국에 신고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1일 학성리 도로공사 현장에서 신라시대 비석이 발견돼 이를 보관하고 있다”고 15일 밝혔다.
‘포항 학성리비’(가칭)로 명명된 이 비석에는
왕의 교시를 의미하는 ‘교’(敎), 신라 6부 중 하나인 ‘사탁부’(沙喙部),
신라 17관등 중 6번째인 ‘아간지’(阿干支) 등의 글자가 확인됐다.
지난 11일 학성리 도로 공사현장에서 한 주민에 의해 발견된 이 학성리비는
부정형 화강암(최대길이 104㎝, 최대너비 49㎝, 두께 12~13㎝, 무게 115㎏)의 한 쪽에
12행 200여 자의 글자가 음각돼 있으며 판독 가능할 정도의 양호한 상태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글자는 모두 12행이며, 한 행에는 많을 경우 20자 내외를 새겼으며,
비 하단부에 20㎝ 가량 되는 여백이 있을 뿐, 상단부까지 글자를 가득 새겼다.
비문 시작 지점인 맨 위쪽 일부가 결실되긴 했지만 글자는 대부분 판독 가능하다.
여기에는 신라시대 경주 6부 중 하나인 사훼부(沙喙部), 신라 17관등 중 여섯 번째인 ‘아간지(阿干支)’ ,
지명인 ‘고리촌’(古利村), 관등·관직명 ‘아간지’(阿干支) ‘도사’(道使) 등의 글자가 확인된다
특히 비문 맨 앞에 보이는 ‘신사(辛巳)’가 비문의 제작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신사년은 지증왕 재위 2년(501년) 또는 진흥왕 22년(561년)으로 판단된다.
“561년 제작된 창녕 진흥왕척경비에 ‘아척간’(阿尺干) ‘사척간’(沙尺干) 등으로 표기된 관등명이
이 비에서는 ‘아간지’ ‘사간지’(沙干支) 등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501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글자 자체는 판명이 되나 어떤 내용의 비문인지 전체적인 확인 작업은 앞으로 진행해야 할 부분”이다.
이 비의 추정연도인 501년으로 확인될 경우,
학성리비는 현존 최고(最古) 신라비인 포항 영일 냉수리비(국보 제264호 · 504년)보다
3년 먼저 제작된 비석이 된다.
배용일 포항대학 명예교수 등이 기초 판독을 벌인 결과
"6세기경 신라비로서 귀족들의 재산분쟁이 발생하여
중앙정부에서 현장 방문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다시는 재산 분쟁이 없도록 하며
향후 분쟁이 발생할 시에는 중죄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로써 본다면 냉수리비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견해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도 “비석에 지방관의 이름과 죄에 대한 언급 등이 보이는 점으로 미뤄
신라의 지방 통치, 재판 등과 관련한 내용 등을 담은 행정 · 포고용 석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포항 학성리비’의 현재 상태는 일부 그을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이동한 상태로 발견됐고 주변이 도로 개설로 변형돼 원위치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주문화재연구소는 ‘포항 학성리비’에 대해 응급 보존처리 작업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향후 관련 절차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 2009-05-15, 일간지에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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