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 시골편지]
잠이 당최 안와설랑 | |||
어제까진 날이 포근했는데 하룻밤 사이 날씨가 돌변, 하늘이 캄캄해지고 저녁부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의 낭만도 잠시, 폭설이 들이치고 대설경보 소식까지.
몇 해 전 겪었던 폭설대란(정읍과 담양이 난리가 났던)이 떠올라 순간 움찔. 개집 앞에 그늘지라고 쳐둔 천막이 금방 찢어질 태세다. 소나무는 가지가 찢어질 만큼 눈폭탄을 뒤집어썼다. 예보에 의하면 내일 오전쯤 그친다고 하니 안심이 조금 되긴 하지만….
와달달 떨고 잤다간 고뿔이 단단히 들 거 같아 장작개비를 평소보다 두 배는 집어넣었다. 문득 ‘빙 크로스비’의 구닥다리 캐럴이 듣고 싶어 음반을 찾아 올려놓고, 유리창 바깥으로 눈세상을 구경했다.
가난한 마을에 폭설과 추위는 아무래도 고통 쪽이겠지만, 그래도 이 밤엔 다 잊고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천방지축 강아지들처럼 희희낙락 발을 굴러본다. 철없다고 나무라신대도 안면몰수할 테다. 이 밤에 일단 행복하고, 내일 얼어 죽는 편이 나아.
개집 천막에 눈을 털러 나간 김에 골목까지 눈길을 밟았는데 영감님이 밖에 계셨다. “늦었는디 안주무시고요.” “잠이 당최 안와설랑.” 혼자 사시는 영감님이 눈구경을 하고 계셨다. 동병상련끼리 퍼허 웃었다. - 임의진, 목사· 시인 - 2008년 11월 19일, 경향
- "첫눈이 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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