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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가루 날리던 해안촌 추억마저 울긋불긋 새 단장 공화춘 · 자유공원·만물상 등 세월 가도 변함없는 명소 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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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언제나 인천은 잿빛이었다. 1980년대 말 부평 쪽에서 무슨 ‘운동’이랍시고 일을 할 때, 그때 보았던 부평과 주안과 남동, 그 공단 거리의 하늘은 소설가 김성동의 표현을 빌리건대 짙은 승복 빛이었다. 한낮에도 어두웠다. 주물 기계들이 토해내는 차디찬 마찰음들 위로 뻘건 쇳물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무슨 전단지를 돌리고자 부평의 큰 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서 있었던 일이 있다. 출근길이었다. 푸른 신호등이 켜지자 건너편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성큼성큼 건너오고 있었다. 나는 유인물을 돌려야 하는 의무를 잠시 잊은 채, 짙은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건너오는 거대한 군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행렬 앞에 건네는 유인물은 그야말로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이십 년 전 그때의 감정은 일상의 엄숙함에 떠밀릴 수밖에 없는 한낱 문생의 초라한 감상일 뿐이었다. 흡사 트라우마처럼, 그때의 기억 때문에 언제나 인천은 잿빛으로 남아 있다. 이는 인천에서 나날의 삶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지극히 죄송스런 표현일 뿐만 아니라, 내 다른 기억과도 마찰을 빚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즉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찬란한 밤하늘 아래에서 관전하였고 SK와이번스의 빛나는 경기 또한 주말의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보았다.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북적 … ‘연경’ 2층에선 거리 한눈에 들어와
그랬음에도 인천이 내게 잿빛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혹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1934년에 소설가 강경애는 장편 인간문제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당시의 인천항과 만석동의 동양방직을 무대로 삼았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문제작’ 속에서 인천은 어두컴컴하다.
80년대에는 소설가 정화진이 쇳물처럼에서 주안공단의 애환을 다뤘다.
소설가 박민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인천을 그렸고, 몇 해 전에는 김중미가 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널리 팔렸는데 역시 만석동이 주요 공간이다. 영화의 기억으로도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있는데, 이 역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로 나갈 수밖에 없는, 20대 후반의 불안한 서정이 깔려 있다. 이 작품들 속에는 언제나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인 거리가 있다. 한국 근현대문학사 100년 역사에서 가장 애틋한 정조로 일관한 오정희의 단편 '중국인 거리', 혹시 그 때문이 아닐까, 내 기억의 인천에 늘 애틋한 구름이 끼어 있는 까닭은 이 소설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 숨막히는 소설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시(市)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렸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貨車)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 가루를 흘려보냈다. (중략) 석탄은 때로 군고구마, 딱지, 사탕 따위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석탄이 선창 주변에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현금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 동네 아이들은 사철 검정 강아지였다. 해안촌(海岸村) 혹은 중국인 거리라고도 불리는 우리 동네는 겨우내 북풍이 실어나르는 탄가루로 그늘지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에 해는 낮달처럼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낮달이 희미하게 걸려’ 있는 소설 속의 ‘중국인 거리’는 지금 울긋불긋하게 화장한 관광처소로 바뀌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중국인 거리를 찾는 인파는 단락이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행렬은 서너 가닥으로 나뉘면서 혹은 전통의 중국음식점 ‘공화춘’으로 들어가고 혹은 맥아덕 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올라가고 혹은 저렴한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만물상’ 같은 곳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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