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예술가 작품엔 무슨 맛이 나는가 | ||||
| ||||
말년은 인생의 한 시점이다. 늦저녁, 대기만성, 늦가을처럼 불현듯 다가오는 돌이킬 수 없는 늦음이다. 오래 살면 누구나 맞는 자연의 질서다. 마치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오듯 말이다.
백발은 말년의 표상이다. 백발은 인생을 오래 숙고한 자의 성숙과 지혜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딱딱하게 굳은 도덕과 보수주의를 지혜와 신념으로 착각하는 말년의 인생들도 없지 않다. 죽음이란 곤경조차 인정하지 못한다. 이때 말년은 퇴행성이라는 말과 동의어일 터다. 말년이 건강과 에너지의 고갈로 인해 만나는 노쇠함과 죽음은 불가피한 곤경이다. 위대한 예술가라고 해서 이 삶의 마지막 시기를 피할 수는 없다. 말년의 예술가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명확한 발소리, 젊은 시절보다 떨어지는 기력과 무뎌진 감각이라는 삶의 궁핍한 조건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소박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했다. 이집트에서 대학을 나오고, 다시 195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 ‘오리엔탈리즘’을 내놓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동양의 이미지로 보편화되어 있는 것들이 실은 서구인의 편견과 조작으로 일그러진 것임을 폭로한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지식인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고, 이미 탈식민주의 이론을 정립한 빠질 수 없는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사이드를 비교문학 이론가, 혹은 문학평론가로만 알았던 나는 음악에 대한 전문적 식견에 놀란다. 사이드는 전문 연주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피아노 연주자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도르노는 베토벤이 말년에 내놓은 작품에서 완숙과 평화로운 화해와 전체성으로의 포용이 아니라 불연속성과 파열, 방기, 그리고 악곡의 주요 전개 부분에서 찢겨나감을 본다.
“말년의 베토벤의 가장 큰 특징인 휴지와 갑작스러운 불연속성은 그와 같은 이탈의 순간이다. 주관이 작품에서 떠나는 순간 작품은 침묵하고 텅 빈 내부가 밖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누구도 베토벤이 말년에 내놓은 작품을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은 자연의 성숙함과 닮아 있지 않을 뿐이다. 아도르노는 그 점을 이렇게 말한다.
“말년 작품의 성숙함은 우리가 열매에서 발견하는 것과 닮지 않았다. 그것은 … 둥글둥글하지 않고 주름져 있고, 심지어 찌들어 있다. 달콤함 대신 쓴 맛이 나고 가시투성이로 그저 쾌락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베토벤의 음악은 노년의 삶,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과 타협하지 않은 음악이다. 죽음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거짓 낙관주의를 거절한다. 그것이 악곡의 파열과 불연속성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의 질서로 당도하는 말년과 명확한 박자로 찾아오는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즉 죽음의 기미는 “굴절된 형태로, 아이러니로” 튀어나온다.
사이드는 위대한 예술가에게 말년의 양식 중의 특징으로 관습적인 것의 영토에 머물지 않고 그것에서 끊임없이 망명하는 형식이 나타난다는 점을 밝힌다.
망명자는 구질서, 즉 정상적이고 관습적인 것의 질서 속에 제 삶이 편입되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다. 망명자는 구질서에서 도망간다. 현재와 구질서를 벗어나 어디론가 끊임없이 도망가는 것은 그것이 미래와 새질서로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스타티스 구르구리스의 에세이를 인용한다.
“말년의 양식은 바로 이런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서 완화된 형태로 각인되는 과거와 나약해빠진 현재 모두를 거부하는 형식이며, 그렇게 말과 이미지, 제스처, 재현물로 표현된 형식은 지금은 당혹스럽거나 시의적이지 않거나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도르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람페두사, 비스콘티, 글렌 굴드, 장 주네, 그람시… 등은 관습적인 것에 묶어두려는 시대와 불화하며 제 삶과 예술을 비타협과 파국으로 몰아간다. 사이드는 그들의 삶과 예술을 바투보기 하며 “조화롭지 못하고 평화롭지 않은 긴장,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비생산적인 생산력을 수반하는 말년의 양식”을 탐구한다. 숙달되지 않은 재료들의 넘침, 파열, 불연속성이었다. 그것은 “살아남았음을 괴롭게 의식하며 몸부림쳤던 흔적”이다.
만약 전체성이 미적인 것의 완성이라고 한다면 베토벤은 그것에서 끝없이 도망치려 했음이 분명하다. 베토벤이 도달한 말년의 양식은 분명하게 망명이고 파국이다. 전체 속에서 떨어져 나온 음은 저마다 울부짖고, 그 파열과 불연속성을 애써 하나로 묶지 않은 채 시간 속에 그것을 풀어헤쳐 둔다.
베토벤은 ‘잃어버린 전체성’을 말년의 양식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년의 양식 안에 제 말년의 삶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 끌고 온 세계와의 화해불가능성, 부정, 부동성을 밀고 나간다. “극단적인 말년성, 육체적 위기, 망명을 형식과 상황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창안적이고 보석세공인처럼 차분한 양식을 통해 표현”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어떤 면에서 삶은 모순 속에서 찢겨 있고 그 모순이 해결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예술가들은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모순과 싸운다. 그들이 모순과 싸우는 것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보여준 말년의 양식들에는 그 모순과 분열이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사이드는 오히려 그것이 말년의 양식만이 보여줄 수 있는 드높은 경지임을 이렇게 쓴다. 둘 모두를 그대로 드러내는 힘은 말년의 양식의 특징이다. 반대 방향으로 팽팽하게 맞서는 두 힘을 긴장 속에 묶어둘 수 있는 것은,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오류 가능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노년과 망명으로 인해 신중한 확신을 얻은 예술가가 가진 성숙한 주체성이다.” 사이드는 비르투오소가 “부르주아 문화가 꽃피운 산물”이며 “교회, 궁정, 사유지를 대체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자율적이고 세속적인 시민 연주공간의 산물” 이라고 말한다. 모차르트, 하이든, 바흐, 초기 베토벤 등이 교회나 궁정에서 양육되었다면, 글렌 굴드와 같은 현대의 연주자들은 콘서트홀, 리사이트홀,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청중의 환대와 거액의 출연료를 보장받고 연주를 하며 제 삶을 세운다.
글렌 굴드는 청자의 환심을 사려는 연주를 거부하고, “즉흥에 가까운 연주를 통해 여주의 경계를 넓혀 음악의 본질적인 모티브 흐름과 창조적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비르투오소는 연주자이자 지식인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다. “어떤 의미로 보든 굴드는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았고, 영향을 받은 음악가가 사상가도 없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관습적인 영토에서 벗어나 연주를 통해 자신의 거주지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초연한 남자의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사이드는 글렌 굴드가 뛰어난 바흐 음악의 연주자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죽이고 인본주의와 합리화를 거부하는 만연된 관행에 대항하는” 논의를 촉발할 지식인의 한 전형임을 밝힌 것이다.
나는 미완의 유작을 읽으며 비르투오소는 바로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받아들여 비타협, 난국, 모순을 피하지 않고 밀고 나간 에드워드 사이드 자신을 명명하기에 적합한 호칭이라고 믿는다.
|
'나아가는(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제국의 패망 - 1910년 8월 29일 (0) | 2008.07.20 |
---|---|
[한국의 창종자들] 동학 - 근세 민족종교의 시발점 (0) | 2008.07.20 |
나가사키 화교 음식 ‘�뽄’ 이 한국에 있는 까닭 (0) | 2008.07.16 |
오늘날의 열하(熱河)기행 - CEO들이 열하(熱河)로 간 까닭은? (0) | 2008.07.16 |
불화 - 화악산, 운주암의 칠성탱 (0) | 2008.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