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알아가며(자료)

오자(誤字)

Gijuzzang Dream 2008. 6. 3. 02:17

 

 

오자(誤字)


글을 쓰다보면 오자나 탈자가 있습니다.

더욱이 책으로 인출되어 나오는 것은 아무리 정신을 집중하여 교정을 보아도 틀린 곳이 있어

민망하기조차 합니다. 심지어는 교정을 잘 보았는데도 활자의 부정확에서 오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선인들도 우리와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밀양 사포(沙浦)에서 간행된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의 경우 책판이 1500여 판인데,

요즘 페이지로 환산하면 앞뒤로 2면이고 1면이 2페이지가 되는 관계로 총 6천여 페이지에 해당됩니다.

여기에 20자 10행으로 글자 수는 1백2십여만 자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현재 A4용지에 14포인트로 천여장의 분량입니다.

 

이것을 교정보는데 감사(監寫) 7인, 교정 11인, 감정(監正) 6인이 15개월에 걸쳐 조밀히 했다는데도

오·탈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컴퓨터가 일상화되기 전의 목판이나 목활자의 후쇄본일 경우

글자가 마모되거나 인쇄의 기술이 모자라서 본의 아닌 오자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활자의 읽기 오류에서 온 대표적인 문적이 바로 진수(陳壽)의 삼국지입니다.

삼국지는 왕침(王沈)의 위서와 위소(韋昭)의 오서를 바탕으로 촉서(蜀書)를 보태어 된 것인데,

宋 때의 소흥본 · 소희본, 明의 북감본교각본 · 남감빙몽정본교인, 淸의 무영전각본 등등

여러 가지 판본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위만(衛滿)에게 쫓기어 남하한 준왕(準王)이 한(韓)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한  기사 다음에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기자급친(其子及親) 류재국자(留在國者) 인모성한씨(因冒姓韓氏)」라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그(준왕)의 자손과 친족들로 위만에게 억류당한 사람들은

이런 까닭으로 한(韓)씨라 성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판본은 급(及)자의 획이 가운데가 떨어져 우(友)자로 읽힌 것입니다.

그러면 해석이 준왕의 아들인 우친(友親)이란 고유명사가 됩니다.

이리하여 우리나라의 청주 한씨는 비조를 기자(箕子)로 하고

상계는 우친과 항렬이 같은 우량(友諒)이 되고,

행주 기씨는 우성(友誠)이 그 시조가 되고,

태원 선우씨는 우평(友評, 또는 友平)을 그 시작으로 하였습니다.

사실 족보라는 것이 고려 때 비로소 소규모의 필사된 가계가 있었을 정도이지

동족이라는 개념의 족보는 조선 중기에 일반화된 것입니다.

선세(先世)의 연원을 현철(賢哲)에 미루어 소급하다보니 이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또 위서동이전의 고구려전에서는 소노부(消奴部)가 연노부(涓奴部)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소(肖)자의 윗부분인 소(小)가 쓰일 때

‘적을 소’자의 둘째 획과 마지막 획이 이어져 윗 부분이 연결된 것 같아

‘입 구’(口)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나부, 송양국(松讓國) 등으로 미루어 소노부가 일반적이기도 하나

삼국사기의 전혀 별개의 연나부(椽那部)의 오기로도 읽혀지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진국의 맹주인 월지국(月支國)을 목지국(目支國)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이나 삼국유사에는 월지국이며 후한서에는 목지국입니다.

이도 월(月)자의 끝 획이 첫 획에 붙었느냐 떨어진 것으로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천관우, 김정배 선생께서 목지국이란 명칭이 들어가는 논문을 쓰시어 이제 목지국이 많이 통용되지만,

아사달 · 양달 · 응달의 달이 월(月)자로 표기되었다는 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삼국지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부산의 기장군에 연안 차씨와 문화 류씨의 중시조의 묘소인 차릉(車陵)이 있습니다.

이것이 기장현의 옛 이름인 차성현(車城縣)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 피장자로 알려진 분도 차득신(車得申)이라고도 하며 차득갑(車得甲)이라고도 합니다.

같은 글자인데 인쇄에서 먹이 덜 묻고 더 묻은데 따라 머리에 획이 올라 왔는지 없는지의 견해입니다.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가 모록(毛祿)이라고도 불리우는 것은

록(祿)과 례(禮)가 글자가 비슷하기에 글자를 옮겨 쓰는 과정에서 생긴 것 따위입니다.

떫고 거친 글을 이으려다 보니

제 뜻과는 다르게 남의 현조(顯祖)를 깎아내리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 아닌지,

글자를 자의로 붙이고 뺀 것이 아닌지, 이 글에도 같은 오자(誤字)가 있는 게 아닌지 두렵습니다.
- 문화재청 부산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 양맹준 감정위원

- 문화재칼럼, 200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