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 황현(梅泉 黃玹)의 절명시
광무 9년(1905) 을사에 노일전쟁이 끝난 뒤, 일본이 우리 정부를 강압하여 소위 보호조약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자, 매천 황현선생은 땅을 치며 통곡하며 여러날 식음을 전폐코 자진하려 하였으나,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민영환(閔泳煥)의 순절의 보고를 듣고 시를 지어 찬미하였으며,
수년전 중국으로 망명한 창강 김택영을 따르려 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울분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漢代의 충신 매복(梅福)을 비롯, 옛날 난세에 처신을 깨끗이 가진 열 사람을 뽑아서 그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十節圖詩'를 지어 십폭병풍을 만들어 좌우에 둘러놓고, 이름하여 ' 屛'이라 하였다.
그리고 五哀詩를 지어
국난에 순절한 민영환, 홍만식, 조병세, 최익현과 고고한 기절로 시종한 이건창을 추모하였다.
1910년, 융희 4년 8월 29일 한일합병이 맺어져 국권이 상실되어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황제의 양국조서(讓國詔書)가 지리산밑 매천 황현에게 알려지기는 일주일 후인 9월 7일이었다.
선생은 조서를 읽기 절반이 못되어 혼절하다가, 얼마 후에 깨어나서는
통곡비분 중 또 기절 또 수 차례 혼절 후에 음식전폐 2일 후인 9월 9일 밤에,
일가 친족 황노인과 三盃의 술을 대작, 밤이 이슥토록 나누고 四更쯤 배웅한 뒤에,
'絶命詩 4수'와 자제에게 주는 유서 1통엔 마땅히 죽어야할 대의를 밝히고, 또
初終凡禮의 검소한 절차를 교시한 뒤, 9월10일 새벽에 붓을 놓은 뒤 다량의 독을 들으니, 향년이 56세였다.
遺著로《매천집(梅泉集)》10권,《매천야록(梅泉野錄)》6권,《매천속집(梅泉續集)》2권,
《오하문기(梧下記聞)》,《동비기략(東匪紀略)》등이 있는데,
《매천집(梅泉集)》,《매천속집(梅泉續集)》은 순절 명년에 영호남 선비들의 갹출성금으로
상해에서 인간(印刊)되었고,《매천야록(梅泉野錄)》은 광복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료 第 1輯으로
간행되었고,《동비기략(東匪紀略)》은 잃어버렸는데 최근 그 아류본이라고 볼 수 있는 수고본(手稿本)이
발견되어 인출(印出)되었다.
매천 황현선생의 '絶命詩 4수'와 '憂國詩 2수'.
絶命詩
亂離滾到白頭年 머리털 다세도록 하많이 겪은 난리
幾合損生却未然 몇번이나 죽으려도 뜻을 못이뤄
今日眞成無可奈 이제는 참으로 어쩔 수 없으니
煇煇風燭照蒼天 가물거리는 촛불만이 창천에 비추네
妖雰 峠帝星移 요기가 제성에 덮여 나라망하니
九闕沈沈晝漏遲 침통한 구궐속에 시간도 정지한듯
詔勅從今無復有 조칙도 이번이 마지막이라
琳琅一紙淚千絲 구슬같은 눈물방울 조서에 주루룩
鳥獸哀鳴海岳嚬 날짐승도 슬피울고 강산도 울어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이 강산이 끝장났고나
秋燈掩卷懷千古 읽던 책 덮고는 지난 역사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글 읽는 사람구실 진정 어려워
曾無支廈半椽功 일찍이 나라 위한 작은 공도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 이 죽은 인일망정 충은 못되지
止竟僅能追尹穀 끝맺음이 겨우 이곡을 따르니
當時愧不 陳東 때 당해 진동을 못좇음이 부끄럽구나
發鶴浦至糖山津
海禁開時國已愚 개항하자 그날부터 나라는 망했나니
空聞關稅較 銖 한두푼 관세로서 소문만 떠들썩
漆箱磁 知安用 괜찮은 외래상품 물밀듯이 들어와
鄭盡東南萬斛珠 아까운 우리쌀이 산더미로 빠져가네
忠武公龜船歌
二百年來地球綻 충무공 가신지 이백년에 나라가 열려
輪舶東行焰韜日 화륜선 오락가락 불꽃이 해를 가리네
平震土虎入羊 평화스런 양의 나라에 호랑이가 쳐들어와
火器 天殺氣發 화기가 하늘을 찔러 살기가 등등하구나
九原可作忠武公 구천에 계신 충무공을 모셔 올 수 있다면
囊底 奇應有術 가슴속에 반드시 신술이 있으리니
創智制勝如龜船 거북선 만든 지혜로 가는 곳마다 이기면
倭人乞死洋人滅 왜놈은 살려달라 빌고 양놈은 제풀에 물려가련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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