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에서의 부정행위 유형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의 커닝(부정행위)
‘커닝’은 ‘교활한 혹은 교묘한’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cunning’에서 유래한 국적불명의 표현이다.
원래 시험에서 부정행위는 ‘치팅(cheating)’으로 표현해야 맞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서도 커닝이 빈번했으니,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의영고(義盈庫) : 콧구멍 속에 커닝 종이를 숨기는 행위
② 협서(挾書) : 붓대 끝에 작은 종이 커닝 종이를 숨김
③ 혁제(赫蹄) : 시험관과 응시자가 결탁하는 행위.
이것을 막기 위하여 ‘강경(綱經, 사서오경의 암송 시험)’ 때에는
과거 응시자와 시험관을 분리시키는 장막을 쳤으니, 오늘날의 대입 예체능시험과 같다.
또한 ‘역서(易書)’라 하여 시험관이 과거 응시자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서리가 붉은 글씨로 다시 쓰기도 하였다.
④ 절과(節科) : 합격자의 답안지에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 붙이는 행위.
이것은 미리 학력 있는 자와 공모하든지 매수를 하여 저지르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시험지를 맞바꾸는 경우는 ‘환권(換券)’이라고 함.
⑤ 차술(借述) : 남의 답안을 베끼거나 대리 시험을 보는 것.
⑥ 이석(移席) : 과거 응시자는 시험보는 동안 단 한 번 차를 마시거나 소변을 위해 이석이 허락되었는데,
차를 마시거나 화장실을 빙자하여 자리를 옮기는 행위, 무단이탈한 경우.
제 자리가 아닌 남의 빈자리에 옮겨 앉는 것은 ‘참월(攙越)’이라고 함. 응시자 간의 간격은 사방 6자.
⑦ 낙지(落紙) : 답안지나 초고지(草稿紙)를 땅에 떨어뜨려 남에게 보이는 행위
⑧ 설화(說話) : 옆 사람과 은밀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
⑨ 고반(顧盼) : 눈동자를 굴린다는 뜻으로 남의 답안을 훔쳐 보는 행위
⑩ 음아(吟端) : 입 속으로 중얼거리는 행위로,
특히 시운(詩韻)을 잡을 때 많은 암시를 줄 수 있고,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할 우려가 있음.
⑪ 항거(抗拒) : 시험관의 명에 따르지 않거나 말대꾸하는 행위 등이 있다.
한편, 과거시험장(科場)에서는 금란관(禁亂官)이라는 시험관이
부정행위 유형별로 열 개의 도장을 준비했다가 커닝이나 예비부정행위가 발생하면
그 수법에 따라 각기 다른 도장을 당사자의 대호지(大好紙, 시험지)에 찍음으로써
과거 응시자의 급락 판정에 참작토록 했다.
예를 들면 남의 것을 훔쳐보려고 심하게 눈을 굴리거나 고개를 움직이는 행위를 할 경우
그 사람의 시험지에 ‘고반(顧盼)’이라는 도장을 찍어 채점이나 관리에 참조했다.
옆사람이 듣게끔 중얼거리면 ‘음아’,
감독관의 눈을 피해 시험지를 바꾸면 ‘환관’이란 도장이 찍힌다.
과거에는 문장의 초를 잡는 초고지(草稿紙)를 갖고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었는데,
그 초고지를 통해 부정을 저지르려다가 들키면 ‘낙지’이다.
우수한 수험생 곁에 자리를 옮겨 앉으면 예비커닝행위로 간주하여 ‘이석’이 찍히는데,
또 허락받지 않고 물을 마신다거나 소변을 보러 간다거나 자리를 떠도 ‘이석’이 찍힌다.
감독관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질 않고 말대꾸를 하거나 하면 옐로카드인 ‘항거’ 도장이 찍히는데,
찍는 것을 변명하거나 항변하면 ‘항거’라는 도장이 가중되게 마련이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미완성일 때는 ‘불완(不完)’이란 도장을 찍었다.
부정한 수법으로 써넣을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권력형 커닝으로 ‘대필(代筆)’이 있었는데,
권력층에 있는 사람이 시제를 미리 알아내어 명사로 하여금 문장을 짓게 하여
그를 외어서 과장에 나가는 수법으로 한말의 세도가 자제들이 이로써 적지않게 등과했던 것이다.
‘대인(代人)’이라는 대리시험도 있었다.
사진첨부가 없었던 때라 수월했겠지만 대체로 감독관과 내통한 권력형 대리시험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장(科場) 입구에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가
과거일(科擧日) 새벽 과장에 진입해 현제판(懸題板) 주위의 몫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 횡포가 만연했다.
이들은 건장한 행동대원으로 ‘선접(先接)꾼’이라 불렀다.
선접꾼들은 자리다툼에 힘을 쓴 대가로 돈을 받거나
같은 접(接)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과거 합격을 꾀하던 모리배 같은 부류이다.
한편 ‘접(接)’은 과장에서 서로 상부상조하기로 밀약이 오고간 일종의 부정을 담합한 그룹을 뜻한다.
이들 중에는 과장에서 전문적으로 답안지 내용을 대신 지어주는 ‘거벽(巨擘)’,
전문으로 답안지에 글씨를 써주는 ‘사수(寫手)’까지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과장에 기생하는 ‘접’은 부정행위를 위한 집단이다.
이처럼 부패한 양반사회의 한심한 현실에 대해 일갈했던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에 의하면,
그 무렵 과장에서 직접 글을 짓는 사람은 응시자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오죽하면 부정이 만연한 현실에 대해 순조 때 성균관 사성 이영하는 상소를 올리며
부정행위 8가지 유형을 열거했을까.
책이나 문서를 가지고 과거장에 입실했을 경우에는 3~6년간 과거 시험의 자격을 박탈하고,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몰래 보다 들키면 곤장 1백대와 징역 3년의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고 하는데,
과거 시험장에서의 부정행위는 <한양가> 중에 잘 나타나 있다.
현제판 밑 설포장에 말뚝 박고 우산치고
휘장치고 등을 꽂고 수종군이 늘어서서
접마다 지키면서 엄포가 사나울사
그 외의 약한 선비 장원봉 기슭이며
궁장 밑 생강밭에 잠복치고 앉았으니
등불이 조요하니 사월팔일 모양이다.
어악이 일어나며 모대한 한시네가
어제를 고아들고 현제판 임하여서
홍마삭 끈을 매어 일시에 올려다니
만장 중 선비들이 붓을 들고 달아난다.
각각 제첩 찾아가서 책행담 열어 놓고
해제를 생각하여 풍우같이 지어 내니
글하는 거벽들은 귀귀히 읊어 내고
글씨 쓰는 사수들은 시각을 못 머문다.
글 글씨 없는 선비 수종군 모양으로
공석에도 못 앉고 글 한 장을 애걸한다.
- <계간 수필界>, 2010년 여름호, 제2권2호, 통권6호, 한판암 ‘커닝’ 글 내용 중에서
- 이규태, <눈물의 한국학>, 기린원
- 이규태, <한국인의 생활문화 1>, 신원문화사
거자칠변(擧子七變) - 포송령(蒲松齡) <요재지이(聊齋志異)> 擧子 : 과거보는 수험생을 일컬음 | |
1. 과장에 들 때는 발이 무거운 거지 몰골 2. 몸수색 때는 죄지은 죄수 몰골 3. 칸막이 방에 들어앉으면 밖을 기웃거리는 벌 새끼 몰골 4. 시험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조롱 밖에 나온 병든 새 같고 5. 방 붙는 날 기다릴 때는 목을 묶이어 안절부절 못하는 잔나비 몰골 6. 낙방이 확인되면 독 먹은 파리 몰골 7. 홧김에 세간 부수고 난 뒤에는 제 알 짓눌러 깨버린 비둘기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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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자칠변(落子七變) - 임어당 - | |
1. 만재(晩材) : 대기만성형 낙자 2. 은재(隱才) : 재능은 심오하나 스승이나 시험관이 그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낙자 3. 반재(反才) : 낙방이 계기가 되어 비약적 발전을 하는 낙자 4. 상재(商才) : 낙방 후 거부가 된 낙자 5. 예재(藝才) : 낙방 후 자신의 재능을 예술 부분에서 성공한 낙자 6. 역재(逆才) : 낙방 후 반골이 낙자 7. 빈재(貧才) : 도저히 가망이 없는 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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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정(學政)
: 중국 淸나라의 과거 시험 감독을 일컬으며, 10개의 도장을 목에 걸고 과장을 돌며 부정행위 적발 시 그에 해당하는 도장을 시험지에 찍어 당락에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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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석(移席) : 단 한번 소변과 차 마시는 것은 허락했는데 그 외의 행동 2. 환권(換券) : 시험지를 맞바꿀 때 3. 낙지(落紙) : 답안지나 초고지를 짐짓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행위 4. 설화(說話) : 열사람과 은밀히 말을 나누는 행위 5. 고반(顧肦) : 눈동자를 굴린다는 뜻, 사방을 돌아보며 남의 답안지를 훔쳐보는 행위 6. 참월(攙越) : 제 자리가 아닌 남의 자리에 옮겨 앉았을 때 7. 항거(抗拒) : 학정의 명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 혹은 불평하는 행위 8. 범규(犯規) : 답안지 작성 규정을 어길 때 9. 음아(吟哦) : 입속에서 우물우물 중얼거리는 행위. 특히 시운(詩韻)을 잡을 때 암시 줄 수 있는 부정행위로 상대방의 과오를 유발하는 교란행위 10. 불완(不完) : 시간이 다 되어도 답안을 완성하지 못했을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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