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우정총국, 체신기념관

Gijuzzang Dream 2011. 11. 26. 04:35

 

 

 

 

 

 

 

 우정총국, 체신기념관

개업식이 폐업식이 되어버린 사연

 

 

우정총국 전경

 

 

 

1호선 종각역에서 안국동 로터리로 가는 길목에는 불교와 관련된 건물이 많다.

부근에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사찰인 조계사가 있기 때문이다.

조계사 정문 옆으로 길가 변에 있는 한옥 1채,

담장도 없고 조계사와 통해 있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가다 보면 의레 조계사 부속 건물이거나

불교 관련이겠거니 하지만 자세히 들어다 보니 우정총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우정총국(郵征總局)!

 

우편업무를 총괄하는 곳, 그렇다면 우체국의 효시이자 총본산인데 어찌 이렇게 초라한가.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달랑 집 한 채밖에 없던데.

그런데 바로 이곳이 오늘날 우체국의 기원이 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그러기에 안내문판에 사적 제 21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정총국하면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이다.

어떻게 된 것이 우편이나 우체업무를 연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사건의 장소로 먼저 기억되어야 하는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정총국은 근대적인 우편 업무가 시작된 한국 최초의 우편행정관서로서,

종래 역참제(驛站制)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통신제도를 도입,

그 운영을 위해 고종 21년(1884) 4월 22일 설치되었다.

 

일본과 미국에서 신식 우편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병조참판 홍영식(洪英植, 1855-1884)을

총판으로 임명하고 박영효 등 15명이 사무를 분담하였으며,

견평방(堅平坊)의 전의감(典醫監 : 조선시대 궁중에 쓰이는 의약을 제조하고 약재를 재배하던 관청)

건물(현재 위치) 여러 채를 개수하여 청사로 사용하였다.

 

같은 해 12월 4일 우정총국 청사의 개업 축하연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편업무가 중단되었고,

본채를 제외한 부속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12월 9일 폐쇄되었다가 1895년 우체사(郵遞司)가 설치될 때까지 10년 동안은

다시 구제도인 역참에 의한 통신방법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일본에 통신권을 빼앗긴 1905년 이후

이곳은 한어학교, 중동야학교, 경성 중앙우체국장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개인주택이었다가

1956년 체신부에서 관리하여 오던 중 1970년 사적 제 213호로 지정이 되었고,

 

총국이 개업된 지 88년 만인 1972년 12월 4일에 전면 중수하여 체신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987년에는 대대적인 보수공사 후 기념관 내부에 우정자료를 전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정총국 현판(좌), 체신기념관 내부(우)
전의감 터 표석(좌), 이곳이 도화서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우)

 

 

그동안 전혀 쓰이지 않았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었을 조선시대 말기의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우정총국의 대표인 홍영식의 입장은 피가 마를 지경이었을 것이다.

조선 최초의 근대식 우편 업무를 맡는 관청의 개업식 준비를 총괄하는 한편,

쿠데타 계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종 장소로 우정총국이 결정이 나자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모양새 있게 잘 치러낼 것인가 노심초사하느라

남들보다 배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쿠데타의 장소로 우정총국을 지목하고 D-day로 개업식 일자인 12월 4일로 잡은 것은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의 허를 찌르는 치밀함과 주도면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설마, 거기에서. . . ' 라고 생각했기에 이들의 모의가 사전 발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12월 4일 당일 개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고관대작과 주한 외교사절들이 행사장에 모여 들었다.

축하 연회가 무르익어갈 무렵 연회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일순 화기살벌한 분위기로 장면이 바뀐다.

수구파 대신들을 현장에서 주살한 개화파는 창덕궁에서 고종을 모시고 신정부를 세우지만

12월 6일 청나라 군대의 무력진압으로 3일 천하에 이르고 만다.

 

이 와중에서 우정총국의 입장은 무척 당혹스럽기만 하다.

제대로 된 우체행정을 펴 보이기도 전에 타의에 의해서 제지당하고

그도 모자라 개업식이 폐업식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성대한 개업식을 축하하는 의미로 같은 해 11월 18일 5문과 10문 2종의 우표까지 발행하였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이다.

 

우표와 관련된 상식이 있다.

1884년 당시 서울 시내 우표 판매소는 몇 군데였을까?

지금은 동네마다 있는 우체국에서 우표를 살 수 있지만

당시는 정해진 곳에서만 우표를 팔았을 터인데 과연 어디어디에서 살 수 있었을까?

답은 우정총국 건물 안 체신기념관 전시패널에 있다.

 

우정총국을 포함하여 11개소로서,

종로 네거리 보신각 앞, 수표교 앞, 동대문 문안, 돈의문(서대문) 문안, 수문동 궐문(창덕궁)앞,

재동(현재 종로구 가회동) 노변, 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 일본공사관 앞, 진고개(현재 충무로) 노변,

삼간정동 노변, 남대문 문안이다.

 

종로구 우정국로 59(견지동 39-7)에 있는 우정총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1호선 종각역 2번 출구로 나와 조계사 방향으로 도보 5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계사 방향으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체신기념관은 1월1일, 설날,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우정총국 찾아가기

 

- 사종민,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장

- 서울특별시, 하이서울뉴스, 201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