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 초상화이야기 6 - 여인 초상화
초상화 이야기 - 여인초상화
지금까지 전해지는 초상화 중에서 여인상은 그 예가 매우 드문편이다.
여인상의 원류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안악 3호분, 쌍영총, 매산리 사신총 등에 등장하는 여인의 초상이 있으나,
묘주의 생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되며, 일종의 유형화된 인물화로 보아진다.
이외에 조선시대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 여인상으로
고려시대의 왕비초상화 제작에 대한 기록을 살필 수 있으며, 노국대장 공주 상에 대한 기록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초에는 왕비의 초상화가 제작되었던 기록은 보이나,
임란으로 인하여 초상을 모셨던 선원전이나 원찰 등이 화재로 소실되어
안타깝게도 전해오는 예를 찾을 수 없다.
왕후 외의 여인상의 예로 사대부가의 여인상이 있는데 조선 초에는 유형화된 부부상이 그려졌고,
공민왕과 노국대상 공주상의 예로서 볼 때 고려 말의 유풍으로 보아진다.
조반 부인 초상
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대표적인 것으로 <조반부부 초상> <하연 부부 초상> <박연 부부 초상>을 들 수 있다.
모두 조선 후기의 이모본으로 판단되나 조선 초기에 제작된 범본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그려진 왕후상 및 부부상의 부인상 이외의 여인상으로
풍속화에 등장하는 여인들과 신윤복 등이 그린 미인도류를 들 수 있다.
이는 당대의 대표적인 미인상을 구현한 익명의 여인상이어서 초상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고,
풍속화에 등장하는 기녀들과 여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계월향 초상
조선, 1815년 국립민속박물관
이러한 상황 속에 주인공을 알 수 이는 몇 점의 여인 초상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기녀로서 의열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 여인들이다.
임란시 평양성에서 왜장을 참수하는데 공을 세운 조선 중기 평양명기 계월향( ~1592),
조선 말기 순조대 홍경래 란 때 의열을 보인 기녀 최연홍 등이 대표적이며,
이밖에 근대기의 작품이지만 이당 김은호가 그린 논개상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모두 그녀들의 생전에 그려진 것이 아니고
사후라 하여도 한참 후에 추모하여 그려진 것으로서 실재의 용모를 반영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초상들은 일종의 의기로서의 표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남 논개, 북 계월향'이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만큼
당대의 대표적인 여성 충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이들 초상의 용도는 사당 배향용이었으며,
유교이념 중 중요한 가치인 충효열을 기리는 계몽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논개 초상
김은호, 1955년,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성 관리과 기탁
최연홍 초상
채용신, 1914년, 국립중앙박물관
이밖에 주목되는 조선 후기 여인의 초상으로 <복천 오부인 초상>이 전하는데,
종실 부인의 초상화로서 거의 유일한 예이다.
오부인은 화문석 위에 앉아 안석에 의지한 채, 구장과 함께 그려졌는데,
이는 그 시대에는 희귀했던 그녀의 장수가 자녀들의 효행에 의한 것이며,
이를 기리고 격려하기 위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보아진다.
결국 유교 사회의 중요한 미덕인 충효열을 선양하기 위한 뜻이 내포된 그림이라고 해석된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 채용신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여인 초상화들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사진을 범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근대기에 조상숭배의 의식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 전인지, 학예연구관 / <초상화의 비밀> 전시 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소식, 포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