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우리나라의 향로에는 용이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역시 용에서 여래와 보살이 화생하는 진실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향로에는 항상 용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예외적으로 기린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사자를 조각한 향로도 있지만 그것이 사자가 아니고 용임을 밝히려 한다.
용의 모습이 다양하여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밝혔다.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은 용의 형상이 아홉 가지가 아니라
‘구(九)’가 양수 가운데 가장 큰 수이므로 모습이 무한하게 다양하다는 뜻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뚜껑에 용을 조각한 고려청자 향로가 있다.(도 1-1)
뚜껑이 용으로 되어 있는데 볼 때마다 손에 보주를 들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진으로 찍어서 확대하여 보니 입이 크게 뚫려 있어서 만병(滿甁)이라고 생각했다.
만병이란 말을 처음 들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내가 처음으로 만병이란 말을 썼으며
일본에서도 극히 한정된 학자, 오직 두 명이 그 용어를 쓰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만병을 자세히 다룰 것이다.
만병에는 항아리 형태가 가장 많으나 단지 항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항아리 안에 물이 가득 담겨져 있으므로, 바로 그 물에서 꽃만이 아니고
심지어 여래도 탄생하여 만물이 생겨나는 도상이어서 중요한 것이다.
항아리 안에 물이 가득 차있어서,
즉 ‘병이나 항아리 안에 생명력이 가득 차 있어서 만병(滿甁)’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두가 ‘꽃병’이나 단지 ‘항아리’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절 법당의 꽃 창살에 꽃을 꽂은 병은 화병이 아니라 만병이다.
그러나 실물을 꺼내어 자세히 보니 만병이 아니라 바로 무량보주가 아닌가.(도 1-2)
그런데 이 경우는 작은 무량보주여서 투각하지 않았다. 보주에는 반드시 구멍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구멍이 너무 커서 작은 항아리 같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도 조형을 확인하기 위하여 실물을 보니 과연 무량보주를 용의 발톱이 꽉 쥐고 있고,
구멍은 항아리 입처럼 꽤 넓었다. 만일 무량보주의 무늬가 없었다면 만병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 순간 ‘보주와 만병이 같은 개념’임을 깨쳤다.
이 주제에 대하여도 다음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보주의 구멍이 이렇게 넓을까.
의문을 가지고 살피다가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앞서 무량보주를 투각한 향로에서는 투각한 공간들 사이로 향연(香煙)이 피어 나가지만,
이 작은 무량보주에서는 투각한 공간들이 없으므로
입 구멍을 크게 만들어야 향연이 빠져 나와 피어오를 수 있다.
그래서 향연이 피어나올 수 있도록 가능한 한 크게 구멍을 크게 열었으며,
입이 너무 크니까 가장자리를 말아서 마치 항아리같이 보였던 것이다.(도 1-3)
여러분, 용의 입에서 ‘향연이라는 영기’가 피어나오고,
동시에 무량보주에서 향연이 피어오르는 광경을 상상하여 보라.
그 향연에서 만물이 탄생하는 광경을 또한 상상하여 보라.
또 하나의 향로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고려청자 사자향로이다.(도 2-1)
그런데 이상한 점을 보지 못했는가. 어찌하여 사자가 큰 보주를 짚고 있단 말인가.
해태가 항상 큰 보주를 짚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해태는 용과 마찬가지로 화마를 막는 물을 상징하고 있다.
용, 봉황, 기린, 선학, 해태, 여래, 관음보살 등만이
즉, 영수(靈獸)나 영조(靈鳥), 그리고 신적(神的) 존재,
즉 영기화생하되 특별한 존재만이 보주를 지닐 수 있다.
사자가 보주를 지닌 예를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삼국시대 이래 사자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사자인지 의심해본 사람이 있었던가.
이미 언급한 명(明)대의 <단연총록(丹鉛總錄)>에 나오는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의
상징적 구조에서처럼 용은 무한한 변신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자모양 용’이다.
그 이름은 산예(猊)라 하는데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산예는 모양이 사자와 닮았고,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에 새긴다고 ‘용의 아홉 아들’설에 언급되어 있다.
고려청자 사자향로의 사자는 보주를 짚고 앉아 있다.
그러나 사자는 보주를 지물로 지닐 수 없으니 사자가 아니다.
그러면 용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는가.
영수나 영조의 조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꼬리이다.
우리는 흔히 동물의 꼬리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조형들을 분석하면서 꼬리가 시작이고,
영기문으로 된 꼬리에서 영수와 영조가 탄생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이 연재에서 말하여지는 것은 모두 내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힌 것이므로,
앞으로 구차하게 ‘내가 처음으로 발견하였다’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형미술의 모든 장르에 걸쳐 충분히 증명을 마친 것이므로,
오래 동안 수많은 작품조사를 한 분들과 나의 이론을 파악한 분은 공감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사자 향로라고 알고 있는 꼬리를 살펴보자.(도 2-1, 2-2)
그림으로 그려서 채색분석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도 5)
꼬리는 제1영기싹으로 약간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이 뻗어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용이나 봉황에서 꼬리에 이러한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등으로
이루어진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영기문 꼬리에서 사자모양 용이 화생하는 것이다.
그 다음, 고려청자 기린향로에서 사령(四靈) 중의 하나인 기린의 꼬리를 보면,
연속적인 제2영기싹이 다섯 번 전개하여 제3영기싹을 이루며 뻗어 올라가고 있다.(도 3, 5)
이 생명생성의 근원에서 기린이 화생하고 있다.
다른 또 하나의 예는 고려청자 수금(水禽:물새)주전자의,
그저 물새가 아닌 영조(靈鳥)의 꼬리도 마찬가지다.(도 4-1, 4-2)
제2영기싹이 앞의 것과는 다른 조형으로 전개하되
제3영기싹을 이루어 영조를 탄생시키는 원리는 똑같다.(도 5)
우리가 사자향로라고 하는 뚜껑에 있는 영수가 사자가 아니라 용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주와 영기문 꼬리로 알 수 있다.
사자는 보주를 지닐 수 없는 존재이고 꼬리도 이렇지 않다.
이제 우리는 그 ‘고려청자 사자 향로’를 ‘고려청자 용 향로’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사자에 대하여는 따로 검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물을 보아오거나, 생각하여 온 것을 잣대로 하여
이 연재에서 보여주는 조형을 보면 보이지 않을 것이며, 들려주는 설명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존중하여 온 상식(常識)에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경악할 뿐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올바르게 살아오거나 올바르게 연구하려고 노력한 분에게는
보이거나 들릴 것이다.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불교신문, 2773호, 2011. 12.0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