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강우방의 새로쓰는 불교미술] 13. 영기꽃에서 무량보주 화생은 무량여래의 '화생'

느끼며(시,서,화)

[강우방의 새로쓰는 불교미술] 13. 영기꽃에서 무량보주 화생은 무량여래의 '화생'

Gijuzzang Dream 2011. 11. 17. 07:48

 

 

 

 

 

 

 13. 영화(靈化)된 꽃 ‘영화(靈花)’

 

 

영기꽃에서 무량보주 화생은 무량여래의 ‘화생’

 

 

 

이 연재에서 ‘영기꽃’은 영화된 꽃 즉 영화(靈花)를 말한다.

연꽃이 불화나 도자기에 많이 등장하는데

자세히 보면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결코 아니고 영화된 연꽃이다.

즉 여러 가지 영기문을 부여하거나 형태를 변형하여 영기화(靈氣化)시켜

다른 차원의 조형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여래나 보살이 화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래의 연화화생이라 하지 않고 영기화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용에서 여래가 화생하는 과정을 살펴오면서

여래와 용은 같은 속성을 띠므로 여래가 곧 용이며, 용이 곧 여래라고 증명하여 왔다.

그런데 영화된 연꽃에서도 용에서와 같이 갖가지 보주가 나오니,

후에 따로 다룰 것이나 용이 곧 보주이므로, 여래가 곧 보주가 된다.

내가 발견한, ‘여래가 곧 보주’라는 조형해석은 역시 다음으로 미루고

영기꽃에서 무량한 여래가 화생하듯, 영기꽃에서 역시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는 조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수녀가 된 나의 제자가 6년 전 어느 날 보주를 투각한 것을 어느 전시장에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보았다. 보주를 투각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나는 한참 만에 찾아내었다.(도 1-1)

청동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촛대의 중간 부분에 영화된 사자 둘이 받들고 있는 투각한 보주가 있으며

무량보주에서 발산하여 나온 네 개의 보주가 초의 받침대까지 올라가고 있다.

투각한 보주는 처음 보는 조형이었다.(도 1-2)

보는 순간 여러 개의 보주를 한 개의 보주에 투각하여 놓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이런 조형으로 여러 개의 보주를 표현했을까.

한 개의 보주는 표현하기는 쉬워도 여러 개를 한 번에 표현하려면 입체적으로는 이런 투각의 방법이나,

평면적으로는 여러 개의 원을 포개는 방법 밖에 없다.

고려 촛대에서 처음으로 무량보주를 만난 이후 나의 학문적 운명은 다시금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각형 안의 다섯 개의 구멍은 역시 무량보주를 상징한다.

그러면 무량보주의 성립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네 개의 원만을 색을 달리 하여 중첩하여 채색하며 그려보았다.

이것은 사방으로 무한히 전개하여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선(線)만을 굵게 하여 큰 구형(球形) 안에 넣어 투각하면 입체적 무량보주가 된다.(도 2) 

 

그 후에 고려창자 초기 매병에서 두 용이 마주 보고 있고

두 용 사이에 있는 보주가 영기문을 발산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당당한 모습의 매병에는 도상을 선각(線刻)으로 표현하여 놓았으므로 은은한 조형이 신비로웠다.

보주에는 태극을 선각하여 표현하여 놓았다.

또 보주가 태극으로 표현한 것은 흔히 보아왔으므로 보주가 태극이라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으나

무량보주에 태극을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원 안에 제1영기싹 하나를 그러 놓으면 저절로 태극이 된다.(도 3)

 

제1영기싹은 만물생성의 근원임을 이미 밝혔다.

그 두 개의 제1영기싹이 엇물려 순환하는 것이 바로 태극이다. 태극(道)의 운동이 바로 순환이다.

태극을 더욱 구체적으로 조형화하면 두 용이 보주를 가운데 두고 회전하는 모습이 된다.

태극 또한 만물생성의 근원이므로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희미한 조형을 백묘로 그리고 채색분석하면 조형해석을 분명하게 시도할 수 있다.(도 4-1, 4-2,도면)

 

 

칠보가 아니고 무량보주

‘칠보문’ 용어는 성립 안돼

 

용의 입에서 영기를 발산하는 무량보주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량한 보주라기보다 한 개의 보주 안에 무량한 보주가 들어있는 ‘무량보주’이어서

‘태극(太極)=도(道)’과 함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심원한 사상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보주라는 것이 태극이고 무량보주라는 개념이 정립되니 보주의 개념이 이렇게 엄청난 것인 줄 몰랐다.

 

‘무량보주’는 용어가 될 수 있어도 ‘무량한 보주’는 용어가 될 수 없다.

무량보주란 무량한 보주가 아니라, 무량한 보주를 나타낸 하나의 보주형태를 보고 말하는 것이다.

채색분석의 위력 덕분에 알게 된 진리이다.

 

하나의 보주 안에는 무량한 보주가 들어 있는데 그것을 투명하게 보여준 것이 이른바 무량보주임을 알았다.

 

일본 대덕사 소장 수월관음도의 바다에는 무량한 보주가 있는데

그 가운데 오직 하나의 보주에서만 영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둘은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국립박물관에서 국보인 ‘고려청자칠보투각 향로’를 보고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도 5-1)

그것은 칠보가 아니라 무량보주였던 것이다.

도자기 책을 모두 살펴보니 하나같이 모두 칠보를 투각한 것이라 써놓고

그 작품의 상징에 대하여는 한 줄도 쓴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무량보주의 도상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무량보주의 조형을 보고 동양의 모든 학자들이 칠보(七寶)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왜 무량보주의 형태만 보면 도자기건 복식이건 단청이건 칠보라고 부르는가.

한 번이라도 의심을 품고 생각해 보았는가.

 

칠보란 말은 <아미타경>이나 <법화경>에 나온다.

<아미타경>에는, 금. 은. 청옥. 수정. 적진주. 마노. 호박 등 일곱 보석으로 이루어진 연못이

극락에 있다고 한다. 이런 경전에 의하면 칠보는 존재하여도 칠보문(七寶文)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이러한 평면적으로 전개한 중첩된 원의 무늬를 칠보문이라 부른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 의심하지 않고 단청의 것도 칠보문이라 부르고,

고려청자의 것도 투각 칠보라 불러왔으니, 투각 무량보주의 엄청난 상징을 읽어낼 길 없다.

그러나 이제 영기화생론을 정립하며 비로소 이 향로의 조형해석을 올바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연꽃잎이 두 층으로 씨방을 감싸고 있다.

 

지금까지 이른 바 고려청자 칠보투각 작품의 아름다운 형태와 고은 푸른 발색으로

입이 마르도록 찬탄해왔으나, 영화된 연꽃의 씨방에서 무량보주가 화생한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나의 영기화생론에 의하면 조형을 붕긋붕긋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靈化)시키는 한 방법이다.

사물을 조형적으로 생명력을 띠게 만드는, 영화시키는 방법을 약 30가지 찾아놓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다.

 

연꽃이 왜 이리 붕긋붕긋하다는 말인가. 왜 그런지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첫눈에 연꽃임이 틀림없으나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결코 아니다.

씨방도 매우 크고 씨방의 윤곽도 붕긋붕긋하다.

붕긋붕긋하게 영화하는 것은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함이다.(도 5-2)

 

현실의 연꽃과 비교하여 그려서 채색하여 보니 영화된 꽃과 현실의 꽃은 모양이 너무나 다르다.

이렇게 영화된 넓은 씨방을 마련해 놓고,

그 위에서 무량보주가 화생하고 있는 가장 고귀한 사상을 담고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투각 무량보주로 향로를 만든 것을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

그 투각한 커다란 무량보주의 사이사이 빈 공간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광경을 상상하여 보라.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 향로의 무량보주에서 향이 피어오르는 광경은,

미술작품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리라.

 

사람들은 향을 피워 부처님께 공양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려나 조선시대의 청동 향완이나 향로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조형이 탁월하고 영기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향을 피우는 것은 단지 향을 피워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만은 아니다. 백제대향로도 마찬가지이다.

 

향을 피우는 것은, 향기(香氣)를 내어 여래나 보살을 향기화생(香氣化生)하기 위함이다.

영기화생 가운데는 여러 가지 화생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향기화생이다.

앞으로 불화에서 수월관음이 향로의 향기를 통하여 화생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투각한 무량보주에는 따로 구멍이 없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확인하고 싶었다.

작품을 진열장에서 꺼내어 정상을 보니 구멍이 별도로 뚫려 있었다.(도 5-3)

바로 이 구멍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고 영기가 나오는 것이다.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불교신문, 2772호, 2011. 11.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