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용의 입에서 보주가 하나에서 네 개, 그리고 무량보주가 나오는 도상을 보았다.
이 연재의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최근 일이지만,
용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꽃에서도 보주가 하나에서 네 개,
네 개보다 더 많은 보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매우 기뻐했다.
마음이 이처럼 환희심으로 가득 찬 적이 없었다. 이 진실은 한 달 전만 해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씨방의 씨앗이 사면보주(四面寶珠)로만 나타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연꽃이라는 것은 고대미술에서 가장 많이 선호하는 꽃이었고
용과 대응하여 역시 만물을 생성하는 위대한 꽃이다.
그러나 연꽃만이 꽃이 아니다.
모든 꽃은 생명의 근원인 씨앗들이 가득 찬 씨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씨앗은 그 이듬해에 다시 싹터서 꽃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유독 연꽃을 선호하는 까닭은 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원추형 씨방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씨방은 주머니같이 생겨서 그 안에 씨앗이 가득 들어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연꽃의 씨방은 반구형에 가까워서 씨앗들이 보이며,
그 위에 여래와 보살이 앉아 있거나 서있기가 편하다.
그리고 바로 씨앗이 변모한 보주에서 여래와 보살이 화생하는 것이다! 다른 꽃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꽃들도 생명의 꽃이다.
고대 조형에서는 금속공예나 와전공예, 그리고 불상대좌에는 영화된 연꽃이 가장 많지만
다른 영화된 꽃도 많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는 꽃은 조형세계에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과연 수막새의 모든 꽃은 연꽃인가.
그러는 가운데, 삼년 전에 한 해에 걸쳐서 중국의 복식을 춘추전국시대부터 청(淸)에 이르기까지
연구원 강의에서 개관하면서 배운 바가 많았다.
물론 영기화생론에 입각하여 복식관련 논문 한 편 읽지 않고 직접 내가 강의했다.
그 중의 하나가 연꽃에서 사면보주가 나오는 명(明)시대의 직물이었다.(도 1)
그것을 본 순간에 용의 입에서 나오는 사면보주가 떠올랐고
왜 연꽃 중심에서 씨방이 아닌 사면보주가 나오는가, 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이 직물에 표현한 꽃이 과연 연꽃인가.
연꽃은 덩굴도 짓지 않고 넓은 잎도 아니고 작은 다섯 잎이 아닌가!
‘모든 꽃잎’들이 감싼 사면보주는 바로 씨방의 씨앗이 보주로 변하는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씨앗 역시 만물의 근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씨앗이 보주로 변한다는 것을 중국복식에서 본 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매우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그 후 모든 다른 장르의 조형으로 퍼져갔다.
채색분석을 하니 더욱 명료해졌다.(도 2)
이 도상의 주인공은 꽃잎이 아니라 씨방이요, 씨방의 씨앗들이 보주로 변한 사면보주이다.
곧 보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직물은 곧 조선에도 전하여 비슷한 직물을 짜기도 했다.(도 3)
이 안동 권씨 무덤에서 나온 직물은 ‘연화만초문(蓮花蔓草文)’이라 부르고 있으나
변형된 영화된 꽃이어서 더더욱 상징을 설명할 수 없어 단지 장식문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연화라기보다 영화된 꽃에서 사면보주가 나오는 영기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의 직물은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꽃이 있고,
다음 씨방=보주가 보이는 꽃이 있고, 꽃이 지고 사면보주의 씨방만이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결국 이 무늬는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기문으로
씨방이 사면보주로 변하는, 미술사학에서 획기적인 도상의 출현이다.
이러한 우주의 축소인 보주, 만물생성의 근원인 보주가 복식무늬의 주류를 이룬다는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을 영기화생시키기 위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 씨방 영기문에서 만물이 탄생한다.
월성에서 출토한 통일신라시대 타원형 수막새에는 중심의 씨방 자리에 사면보주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으로 꽃이 전개하여 나가는데 연꽃의 모티브는 있어도 상당히 변형되어 있다.
연꽃을 영화시킨 조형으로 볼 수 있다.(도 4)
지름이 8센티에 불과한 고려의 수막새에도
중심에 사면보주가 있고 하나의 보주에서 두 갈래의 제1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한다. (도 5)
이 와당의 무늬를 채색분석하면 더욱 명료하다.(도 6)
중심에 사면보주가 있고 보주마다에서 제1영기싹이 두 개씩 발산한다.
보주 네 개가 결합하는 방법은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세 가지가 있다.
고려와 조선의 향로의 전에 은입사로 씨방에 보주를 표현한 영기문이 많다.
‘연화당초문’이 아니라 ‘씨방=보주 영기문’이다. 가장 강력한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기문이다.
四葉花文이 아니라 四面寶珠
三葉花文이 아니라 三面寶珠
고려 보살상의 가슴에는 반드시 흉식(胸飾), 즉 가슴 전면(全面)을 장엄한 구술 장식이 차지하고 있다.(도 7)
바로 양 겨드랑 부근의 두 개의 제3영기싹에서 늘어진 장엄 중심에 사면보주가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무량한 보주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이 역시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대한 영기문이 아닌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보살의 가슴 전체를 장엄하고 있는 것이지 그저 막연히 장엄한 장식이 아니다.
미술사학회 발표 때 사면보주를 사엽화문(四葉花文)이라 부르는 것을 두 번 들었다.
연꽃 씨방에서 삼면보주가 자리 잡은 경우도 있다. 그것은 마치 용의 이마에 삼면보주가 있는 것과 같다.
조선시대의 향로 대에 은입사한 도상을 그려서 채색분석하여 보았다.(도 8)
파상문을 한정된 공간에 표현할 때에는 순환하는 형태가 된다.
큰 줄기에서 가지가 나와 갖가지 영기꽃을 피우거나 삼면보주의 씨방을 피우기도 하는데
역시 영기꽃에서 피어난다.
그런데 이면(二面)보주 씨방은 싱거워서 조형상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면보주(一面寶珠)는 매우 많다.
이미 중국 한 시대의 와당 가운데에 반구형 보주가 있으나 보주를 알지 못하니 아직 아무도 언급한 바 없다.
고구려 수막새의 중앙에 반구형 보주가 있고
그 위에 곳곳에 여러 개의 작은 반구형 보주들이 생겨나고 있지 않은가.(도 9-1. 9-2)
어떤 것은 반구형 보주 중앙에 작은 보주 하나가 나오는 것이 있다.(도 9-3)
이처럼 용의 입에서 갖가지 보주가 나오듯이, 영화된 연꽃의 씨방에 갖가지 보주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범종의 사각대에서 아홉의 연꽃을 볼 수 있는데,
10년 전만 하더라도 둥글게 나온 것을 젖꼭지모양이라고 하여 사각대를 유곽(乳廓)이라 불러오다가,
요즈음은 연봉이라 하여 연뢰(蓮)라는 어려운 용어를 쓰고 연곽(蓮廓)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연꽃에서 중요한 것은
연꽃잎이 아니라 씨방의 씨앗이 보주로 변모하는 것이 조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용의 입에 보주를 하나 물고 있듯이,
영화된 연꽃에서 커다란 보주 하나가 나오는 형상으로 보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도 10)
그래서 꽃잎을 항상 연꽃모양이 아닌 다양한 다른 꽃잎으로 표현하되
반드시 보주가 생겨나는 광경이어서 보주곽(寶珠廓)이라 불러야 한다.
범종에서 보주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범종을 다룰 때 다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영화된 꽃의 씨방의 씨앗들이 보주가 되어 갖가지 보주의 조형이 이루어져,
조각, 그림, 공예의 향로와 범종, 건축의 단청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것도
필자가 밝힌 것이므로 처음에는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작품들을 광범위하게 철저히 조사하다 보면
보주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문화 전반에 관한 올바른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