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새로쓰는 불교미술] 7. 불단에서도 와당의 도상이 그대로 표현
7. 통도사와 보경사 불단의 영기문 분석
불단에서도 와당의 도상이 그대로 표현
우리는 지금 단지 와당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래를 만나러 가는 대장정의 첫 출발을 내딛고 있다.
즉, 절대적 진리에 접근하기 위하여 와당의 조형원리를 처음으로 추구하기 시작하고 있다.
평소에 삼국시대 와당에 관심이 없어서 많은 와당을 살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낯설 것이고,
와당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와당의 조형원리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으면,
훨씬 후대의 조선시대 불단(佛壇)에 표현한 도상을 알아 볼 수 없게 된다.
와당(瓦當)이란 말은,
막새가 있는 기와 즉 수막새와 암막새를 말하며 그 드림새에는 갖가지 영기문이 조각되어 있다.
한국미술사의 모든 원류는 모두 삼국시대에 있으며, 특히 고구려 벽화에 집중되어 있다.
벽화 연구를 몇 년 동안 용맹정진하지 않으면 눈이 열리지 않는다.
한국미술의 모든 영기문은 내가 해독해 낸 고구려벽화의 영기문으로 귀결한다.
그러니 보니 고구려벽화의 전체를 집약해놓은 것이 와당임을 알겠다.
고구려벽화가 긴 잠을 깨고 일어나니, 잠자던 백제의 미술이 깨어나고,
역시 긴 잠을 자고 있던 통일신라의 미술이 깨어나 큰 기지개를 펴고 있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영기문의 전개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 영기문의 전개형식을 강서대묘(江西大墓)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벽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러한 도상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고구려 나름으로 전개시켜나갔기에
우리는 백제의 제석사 암막새의 상징을 읽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만일 고구려벽화의 마지막 단계의 비장한 카타스트로피에서 그런 도상이 그려지지 않았다면
중국의 신세를 질 뻔 했다.
강서대묘의 도상에는 몇 가지 비슷한 도상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하나만 선정하여 채색분석한다.(도 1)
즉 중앙의 연꽃에서 보주가 화생하고,
그런 상태에서 양쪽으로 발산하는 영기싹 영기문이 양쪽으로 발산한다.
불단의 용과 연꽃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의 원류는 고구려 벽화에서 ‘비롯’
고구려, 힘차고 아름다운 수막새 ‘창조’
그런데 그 안에는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모두가 어울려서 아름다운 조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연꽃모양 영기꽃에서 육면체의 꼭지가 여덟 개여서 팔릉형(八楞形)이라 부르는 보주가 탄생한다.
육면체를 간단히 표현한 것이 강서대묘의 보주이다.
후에 팔릉(八楞)은 관념적으로 원(圓)과 통하므로 보주가 구형(球形)으로 변하다.
그 보주에서 위로 제2영기싹이 발산하고 가운데에서 길게 영기가 솟아올라가며 제3영기싹 모양을 이룬다.
공간상 위로는 그 이상 더 영기가 뻗쳐올라갈 수 없다.
그러니 자연히 좌우로 뻗쳐나갈 수밖에 없다.
원래는 용의 입에서는 앞으로 영기가 뿜어져 나오거나 물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영화된 연꽃의 경우에는 위로 영기가 뻗쳐 올라가야 하고 물이 위로 솟아올라야 한다.
그러나 주어진 공간에 한정되어 양 옆으로 뻗쳐나가는 조형이 많다.
보주에서 양쪽으로 뻗쳐 나갈 때, 먼저 제3영기싹에서 시작하여 줄기가 뻗어나가다가
매듭을 거쳐 한 줄기는 제1영기싹을 이루며 끝에서 여러 갈래의 영기문이 역동적으로 발산한다.
흔히 그 끝에서는 갖가지 영기꽃이 피나, 여기에서는 여러 갈래의 영기가 발산하는 모양을 만들었고,
그 바로 위에 두 개의 제1영기싹이 파동처럼 발산하고 있다.
다른 한 줄기는 반대로 뻗쳐나가 다시 제1영기싹을 이루며
여러 갈래의 영기문 사이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꽃 같기도 하고 잎 같은 것이 나오고 있다.
즉 제1영기싹 끝에서는 만물이 탄생하므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큰 줄기 두 갈래 사이에서도 붉게 칠한 긴 타원형이 나오고 있으나
실은 만물이 탄생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을 모두가 당초문이나 넝쿨무늬라 부르니
이 주요한 도상의 상징해석과 조형해석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셈이다.
바로 이런 도상이 형식이 백제 제석사 암막새에 이어지고,
그것이 통일신라에 이어져서 조형의 표현원리가 완성되는 필연적인 과정을
우리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행운이라 할 수 있고,
더구나 일본학자들이 왜곡하여 우리가 이어받은 것을
이제 비로소 우리 손으로 바로 잡았으니 더욱 기쁜 일이다.
와당은 이제 한국미술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막대한 양과 그 다양하고 아름다운 조형은 세계의 으뜸이다.
고구려 와당은 삼국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힘차고도 아름답고 다양한 수막새를 창조했지만
암막새가 없어서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은 것뿐이다.
조선시대의 불단(佛壇)에서도 우리는 와당에서 보았던 그런 도상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통도사(通度寺) 대불단의 맨 아래 부분에 영기창(靈氣窓)을 통하여 무한한 공간이 펼쳐지는데,
용의 입에서 양쪽으로 제3영기싹 덩굴모양 영기문을 발산하고 있다.(도 2-1, 2-2)
흔히 '안상(眼象)'이라 부르지만 말도 되지 않는 용어이다.
나는 '영기창'이란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 안상에 대하여는 별도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보경사(寶鏡寺) 불단에서는
영기창 안에서 용의 입으로부터 구름 같은 영기문을 발산하고 있으나
구름이 아니라 제3영기싹 영기문이다.(도 3)
앞으로 구름무늬가 거의 모두 영기문임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같은 불단에 영화된 연꽃에서도
역시 양쪽으로 제3영기싹 덩굴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도 4)
이것은 연꽃과 용이 각각 물을 상징하므로 이러한 도상들의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그 가운데 구상적인 조형도 있다.(도 5)
아마도 사람들은 모란이라 하고 모란 잎이라 말할 것이나,
이 역시 영기꽃에서 발산하는 모란잎 모양 영기문이다. 왜 그런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연꽃처럼 이 모란 모양에서 씨방을 강조하고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백흥암(百興庵) 극락전 불단 하대의 영기창에는
용을 정면에서 본 것과 옆으로 길게 표현한 것을 교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또한 모두가 옆으로 표현한 것은 용이라 부르나, 정면에서 본 것은 귀면이라 부른다.(도 6)
그러면 왜 불단에 영기문을 발산하는 용이나 연꽃이 많은가.
역시 여래와 보살 등의 영기화생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흔히 수미단이라 부르지만 수미단은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말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불단(佛壇)' 혹은 '불탁(佛卓)'이라는 용어를 써왔다.
이 불단에 대하여도 후에 몇 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이처럼 수미단, 안상, 귀면, 당초문, 넝쿨무늬 등 미술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물이고 개념인데
이렇게 용어가 틀리니 따라서 도상 해석도 틀려져서 연구할수록 계속 장애물에 걸려
연구는 물론 자유롭게 글을 써 나갈 수가 없다.
용어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틀린 용어를 확실히 알아냈기 때문인데,
용어가 틀리다는 것을 인식하려면 자신의 방법론이 올바로 정립되어 보편적이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정립한 방법론에 입각하여 용어를 내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다.
자신의 방법론이 없거나 나의 방법론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과 머리를 맛 대고 논의할 수 없으므로,
내 스스로 고민하며 나의 운명이라고 여기며 만들고 있는 용어,
누가 보아도 뜻이 통하므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용어를 우선 제시하며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불교신문, 2758호, 2011.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