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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의 새로쓰는 불교미술] 5. 용 · 연꽃, 영기문 정립은 통일신라 시기에 완성

느끼며(시,서,화)

[강우방의 새로쓰는 불교미술] 5. 용 · 연꽃, 영기문 정립은 통일신라 시기에 완성

Gijuzzang Dream 2011. 11. 3. 21:42

 

 

 

 

 

 

 5. 공주 주미사 출토 기와 분석

 

 

용 · 연꽃, 영기문 정립은 통일신라 시기에 완성

 

 

   
1. 공주 주미사지 출토 와당 한 세트.

 

백제 제석사 암막새의 영기문을 앞서 자세히 분석했다.

이상하게도 중국에는 이런 곡선을 가진 암막새가 만들어진 적이 없으니

백제 제석사 암막새는 한국의 와당예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셈이다.

이런 암막새는 중국에 영향을 준 적이 없지만 일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용의 본질을 파악하려 해왔는데,

그러면 왜 지붕의 여러 곳에 갖가지로 용의 정면 모습을 표현하고,

왜 그 용의 입에서 강력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일까. 그리고 연꽃 와당도 왜 함께 있는가.

그리고 갖가지 영기문만 있는 암막새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나는 국립공주박물관 전시실에서 주미사(舟尾寺) 출토 통일신라 연꽃 수막새와

제1영기싹으로만 이루어진 영기문 암막새 한 세트를 보고 깨친 바가 많았다.(도 1)

 

나는 그동안 암막새와 수막새를 별개로 검토하여

영기가 수막새에서 암막새로 발산하는지도 몰랐다.

영화된 연꽃도 만물의 근원이니 이런 영기가 발산한다.

그래서 주미사 연꽃 수막새 자리에 통일신라 용면 수막새를 두고

같은 암막새를 두니 볼만했다.(도 2-1, 2-2)

 

 

 

암막새 영기문은 좌우 양쪽 끝에서 각각 시작하여 중앙에서 서로 만나

끝맺음을 하며 좌우대칭 이루고 영기는 수막새에서 암막새로 발산

 

그러니 지붕은 온통 연꽃과 용에서 영기문을 발산하는 장대한 광경이다!

용과 연꽃은 물을 상징하니 형태는 달라도 상징은 같다.

연꽃이 물을 상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고, 용도 물을 상징한다고는 알고는 있지만,

아직도 용을 동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지 10년째다.

그런데 용의 연구는 지금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연꽃도 마찬가지로 올바로 인식하려면 오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용이나 연꽃은 고대 조형 일체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으니

용과 연꽃을 올바로 연구한다는 것은 동양미술 전체를 새로이 연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미 제석사 수막새와 암막새의 도상에서,

암막새 영기문은 중앙의 연꽃와당과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모순이 있음을 발견했다.

원래는 연꽃에서 암막새의 용이 생겨나고,

다시 암막새에서 용의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연꽃을 중심으로 생각하여보면

조형적으로 연꽃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용의 입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암막새가 연꽃과 별개로 한 세트를 이루고 있는 셈이어서,

용의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의 방향은,

중앙의 연꽃와당에서 발산해야 하는 방향과 부딪치게 되어 모순이 일어난다.

 

 

   
 

나는 잘 살펴보지도 않고

통일신라의 암막새의 영기문이 한 방향으로 전개하는 줄 알고 찾아보았으나 뜻밖에 없었다.

모두가 좌우에서 시작하여 중앙에서 서로 만나 좌우대칭을 이룬다!

순간 통일신라의 주미사 와당에서 그 모순의 해결책을 확인했던 것이다.

 

과연 백묘 뜨고 채색분석하여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암막새의 영기문은 좌우 양쪽 끝에서 각각 시작하여

중앙에서 서로 만나 끝맺음을 하며 좌우대칭을 이루는데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용와당이건 연꽃와당이건 양쪽으로 영기문이 발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중앙의 용와당과 연꽃와당이 한 세트를 이루는 것은

좌우의 암막새의 절반 부분뿐이다.(도 2-1)

 

다시 확인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월지 출토 제3영기싹 덩굴모양 영기문 암막새를 선정하여

채색분석한 다음(도 3-1, 3-2),

두 암막새가 만나는 중앙에 각각 용면 수막새와 연화 수막새를 두어 채색분석해 보았다.

(도 4-1, 4-2)

 

과연 주미사 것과 같았다. 그런데 항상 영기문이 좌우대칭이 아니라

같은 영기문이 계속하여 전개의 방향이 없는 영기문의 암막새가 또한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 암막새를 만들면 구태여 영기문의 방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백제 제석사 암막새는 그 자체로는 도상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영기문의 흐름에 있어서 수막새와 암막새가 불협화를 일으킨다.

그 모순 아닌 모순을 극복하여 수막새와 암막새의 합리적 결합을 정립한 것이

통일신라 와당인 셈이다.

따라서 백제에서 처음 650년 경, 7세기 중엽에 암막새가 창안되었지만,

얼마 시간 차이 없이 통일 초 674년경에 만들어진 월지 출토 암막새는

모든 문제를 깨끗이 해소해 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마자 와당예술은 눈부시게 꽃을 피운다.

통일 후 수많은 불교사원을 지으며 따라서 기와도 대량으로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연꽃은 비교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영화된 연꽃’이란 이해하기 그리 만만치 않다.

현실의 연꽃이 아니어서 연꽃잎에 여러 가지 영기문을 부여하기도 하고,

연꽃잎에 영기를 불어넣어 풍만하게 만들어 마음껏 영화시킨다.

 

이에 비해 용이란 무엇인가. 용의 모습이란 변화무쌍하여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은 용이 아니다.

사람모습이 있는가 하면 사자모양이 있는가 하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양도 있어서

포착하기 어렵다.

 

 

절대적 진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도(道)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고 한다.

도처럼 영기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다. 여래도 원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용이란 것도 보이지 않고 형태를 띤다고 하더라도 일정하지 않다.

 

한마디로 도(道)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것이 용이다. 용은 물이며 만물의 근원이다.

물은 원래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둥근 항아리에 넣으면 둥글게 되고

상자 속에 넣으면 육면체가 된다.

물은 용만이 아니라 봉황의 모습으로도 띠고 해태의 모양으로도 띤다.

그런 가운데에 용이 으뜸이니 용의 위용이란 무엇이라도 따라갈 수 없다.

초월적 절대적 여래와 세속적 절대적 왕을 표현할 때

주변은 물론 그 존재가 있는 건축에는 얼마나 많은 용들이 표현되어 있는가.

 

 

 
5. 그리스 코린트 아폴로 신전 테라코타 판.

 

기와는 그리스에 많다. 4년 전에 그리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

기원전 3세기에 제작된 코린트의 아폴로 신전 테라고타판에서

‘영화된 사자’의 입 양쪽으로 생명생성의 영기문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도 5)

놀라움에 이어 곧 숙연해졌다.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불교신문, 2754호, 2011. 0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