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양직공도’에서 발견된 신라ㆍ고구려 제기

Gijuzzang Dream 2011. 10. 26. 07:35

 

 

 

 

 

 ‘양직공도’에서 발견된 신라ㆍ고구려 제기

 

 

 

 

 


새로 드러난 양직공도 신라 제기


한국 고대사 연구의 제1급 사료 중 하나로 간주되는 '양직공도(梁職貢圖)'에서

영영 사라졌다고 간주된 신라와 고구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인 제기(題記)가 발견됐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신라에 대한 제기에는

신라가 왜(倭)의 속국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른바 임나일본부설과 맞물려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인천도시개발공사 윤용구 박사는

2011년 8월 20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신라사학회 학술발표회를 통해

중국에서 최근 발견 보고된 양직공도 제기를 분석, 소개했다.

윤 박사에 따르면 중국학자 조찬붕이 발굴해 올 초에 소개한 양직공도 신자료는 청나라 중기 때 인물로,

그림에 조예가 깊은 장경(1685~1760)이라는 사람이 모사(베낀)한 제번공직도(諸番貢職圖)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경이 베낀 제번공직도(양직공도)에서 각국 사신도는 없어지고,

각국별 제기만 청말 사람인 갈사동(1867~1935)이 편집한

‘애일음노서화소록(愛日吟廬書畵續錄, 1914)’이라는 문집(권5)에

‘청 장경 제번직공도권(淸張庚諸番職貢圖卷)’이라는 이름으로 재수록됐다고 윤 박사는 설명했다.

이 문집에 같이 수록된 장경 자신의 발문(跋文)에 따르면

애초에 장경은 산서성 노성현지현(潞城縣知縣)으로 근무하던 1739년, 이탁이라는 사람에게서

양직공도를 빌려와 5일만에 18명의 백묘(흑백) 사신도와 함께 해당 국가별 제기를 모두 베꼈다.



양직공도 신라, 고구려, 백제사신도(왼쪽부터)


 

 

윤 박사는 이번에 공개된 양직공도 제기를 난징박물관 구장본(舊藏本)인 양직공도 판본과 비교한 결과,

“신라와 고구려를 포함한 7개 국가의 제기는 완전히 새롭게 출현한 자료이며,

아울러 백제와 왜국을 비롯해 기존에 알려진 9개 국가의 제기도 내용에서 차이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장경이 베낀 양직공도를 통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신라의 제기를 보면

신라의 국호는 사라국(斯羅國)으로 표기되며

더구나 신라가 “한(韓)에 속하기도 하고 더러 왜에 속하기도 했다.

그 나라 국왕은 스스로 사신을 보내 조빙할 수는 없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총 91글자로 된 이 제기는

“양 무제 보통(普通) 2년(521)에 신라왕 모태(募泰)가 처음으로 백제 사신편에 붙어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리고 방물(특산품)을 바쳤다.

그 나라에서는 성(城)을 건년(健年)이라 부르며 그 습속은 고려(고구려)와 비슷하다.

문자가 없어 나무를 새겨 표시로 삼는다. 말은 백제를 거쳐야만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기록 중 모태(募泰)는 모진(募秦)을 잘못 적은 것으로 법흥왕을 지칭하며,

성을 지칭하는 신라어 건년(健年) 또한 여타 기록을 참조할 때 건모라(健牟羅)의 오류로 보인다.

윤 박사는 이 내용 중에서도 신라가 왜국에 속하기도 했다는 언급이 새롭게 드러난 대목이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따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라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고구려 제기(총 133자)에는

후한 광무제 초기에 고구려가 사신을 파견해 조공하면서 처음으로 왕을 칭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내용이 보이지만 기존에 알려진 고구려 관련 기록을 크게 보충하는 대목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이번에 드러난 백제 제기에는 기존 난징박물관 구장본 양직공도에서 보이는 백제의 요서경략설,

이른바 백제가 요서 지역을 침략해 영유했다는 기술이 없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양직공도(梁職貢圖)

6세기 중국 양(梁)나라 때 제작된 사신도로, 중국 난징박물관(南京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을 찾은 백제ㆍ왜 등 외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나라의 풍습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그림은 6세기에 제작된 원본을 1077년 북송 시대에 모사한 것이다.

당초 원본에는 25개국 정도의 사신들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이 가운데 12국 사신들 모습만 남아 있다.

특히 ‘백제국사(百濟國使)’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과 여기에 대한 서술은

6세기 초 웅진시대의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기록을 보면, 백제에 대해

“마한(馬韓)에서 시작된 나라이며, 중국의 요서(遼西) 지방을 차지해 다스렸다.

고구려와 말씨 및 옷차림이 비슷하며,

백제 무령왕(武寧王)은 고구려를 크게 격파했다는 사실을 알려온 적이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백제국사 초상은 현존하는 회화 자료 중 백제인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 by 칼럼니스트 조근주

- 2011.10.21 인터파크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