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 보름달이 커보이는 이유
지평선의 보름달이 커보이는 이유
덩치가 큰 것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고, 그래서 자연적으로 굴복하는 인간의 본능이 그 원인일 것이다.
절이나 교회의 건물을 크게 짓는 일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 같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기도 역시 대개 중천에 뜬 달보다는 지평선 위로 막 떠오른 달을 보며 한다.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이 훨씬 커보이기 때문이다.
지구대기의 굴절 때문 아니다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은 지구대기의 굴절 때문에 상하로 찌그러진다
왜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이 커 보이는 것일까?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들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답을 빛의 굴절 때문이라고 쉽게 말한다.
즉, 태양 빛이 달 표면에서 반사된 후 지구대기를 통과하면서 굴절되는데,
지평선에 달이 있을 때 굴절이 더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평선의 달이 더 커보인다는 설명이다.
언젠가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퀴즈프로그램에서도
지평선의 달이 커보이는 이유를 빛의 굴절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언뜻 듣기에 상당히 그럴 듯하지만 말도 안되는 얘기다.
오히려 빛의 굴절 때문이라면
지평선에 뜬 달은 하늘 높이 뜬 달에 비해 상하로는 작게, 옆으로는 비슷한 크기로 보여야 한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일수록 달의 아래쪽에서 출발한 빛은
달의 위쪽에서 출발한 빛보다 지구대기를 더 길게 통과하면서 심하게 굴절돼 지표면에 도달한다.
지표면에 도달한 달의 위와 아래 빛을 연장해보면 그림처럼 원래의 달보다 상하로는 작아져 보이게 된다.
반면에 달의 좌우에서 나란히 들어온 빛은
같은 정도만큼 굴절을 일으키므로 달의 좌우 크기는 변화가 거의 없다.
그리고 달이 하늘 높이 떠오를수록 굴절효과가 감소되므로 점차 원에 가까운 달의 제모습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지평선 가까이 뜬 달은 중천에 뜬 달에 비해 상하로는 작게, 옆으로는 같은 크기로 보이게 된다.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과 중천에 뜬 달을 각각 사진으로 찍어 인화한 후
달의 상하와 좌우의 길이를 자로 재어 비교해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같은 날 밤, 달의 전체모습을 다 담을 수 있는 보름날 밤에 지평선과 중천에서 각각 찍은 사진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몇일 간격으로 찍은 달 사진으로 비교해서는 안된다.
달은 지구 주위를 타원운동하면서 한달 동안 지구에 접근하기도,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졌을 때와 가장 멀어졌을 때 나타나는 겉보기크기의 차이는 최대 약 17%나 된다.
보는 것을 믿지 마라
지평선에 가까운 달이 중천에 뜬 달보다 크게 보이는 원인이 빛의 굴절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천문학자나 물리학자,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그 답이 착시, 즉 눈의 착각이라고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인간이 물체를 보는 과정은 물체에서 나온 빛, 또는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사람의 눈동자를 거쳐 시신경에 초점을 맺게 되고,
시신경에서 얻어진 빛의 정보가 뇌에 전달되면 뇌가 그 신호를 분석하는 일이다.
즉, 인간의 뇌에는 시신경으로부터 온 신호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알고리즘은 사람에 따라 약간씩은 다르겠지만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동일한 물체를 봤을 때 비슷한 분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뇌 속에 들어 있는, 사물을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쉽게 확신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좋지 못한 습성이다.
사실은 본대로 믿는 바람에 속는 경우도 허다하다.
착시가 대표적인 경우다. 눈은 보이는 대로 보고 뇌는 눈이 본 대로 인식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거리의 야바위꾼에게 속아 주머니 돈을 다 날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착시의 원리는 마술사들에게서도 자주 사용된다.
착시는 크게 두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구돼온 흔히 말하는 착시현상인데
이는 일정상황 하에서 비교를 통해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에 ‘비교착시’라 말할 수 있다.
비교착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쵤너 착시는 수직으로 나란한 여러개의 줄에 각각 빗금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쳐 놓으면
줄들이 마치 나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포겐도르프 착시는 빗금의 중간을 자른 후 잘라진 두부분에 수직으로 선을 그으면
빗금이 마치 아래위로 틀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폰쪼 착시는 원근법을 이용했을 때 동일한 크기의 물체가 서로 다른 크기로 보이는 현상을,
티체너 착시는 동일한 크기의 물체라 할지라도
큰 물체 옆에 있을 때가 작은 물체 옆에 있을 때보다 작아보이는 현상을 나타낸다.
그런데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이 커보이는 이유를
그동안 많은 학자들은 티체너가 제시한 비교착시에서 찾으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지평선 가까이에는 산이나 건물 등이 있기 때문에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이 비교 대상이 없는 중천에 뜬 달보다 커보인다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그럴듯하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학자들이 지평선 가까이 있는 달이 커보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이용됐다.
그러나 왜 작아보일 수도 있는데, 하필 커보이는가.
특히 티체너 착시는 비교되는 물체가 작아야 커보인다.
그런데 주변 산이나 건물은 겉보기에 달보다 훨씬 더 커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평선의 달이 중천의 달보다 작아보여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좀더 구체적으로 따져 물으면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맨눈과 망원경의 차이
지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지평선의 어떤 사물보다 멀리 있다.
관측자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어 지평선의 보름달을 크게 키우는 것이다.
착시의 또다른 하나로 ‘거리착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시신경으로부터 전달된 정보 즉, 화상을 분석한다.
이때 화상 속에 있는 어떤 물체의 크기를 물체까지의 거리를 고려해 짐작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겉보기크기를 원래보다 큰 것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되는데, 이를 거리착시라 한다.
목성의 겉보기크기는 대략 달의 1/30 정도이다.
따라서 배율이 30배인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면 맨눈으로 본 달의 크기와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본 목성은 맨눈으로 보는 달보다 훨씬 작다고 느낀다.
만약 목성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달이 위치해 있을 때
한눈으로는 망원경을 통해 목성을, 다른 눈으로는 달을 직접 보며 비교해보면
그제야 두개의 겉보기크기가 거의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왜 그럴까?
맨눈으로 보는 달은 실제 그런 것처럼 아주 멀리 있다고 느끼지만
망원경을 통해 본 목성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같은 겉보기크기라 할지라도 멀리 있는 물체가 커보이는 착시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망원경으로 지상의 물체를 볼 때에도 동일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운좋게도 경관이 좋은 방을 연구실로 배정받았다.
창너머로는 멀리 떨어진 전파천문대 건물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는 굽어진 도로도 보인다.
그 도로 한곳에는 지름 1m 정도의 반사거울이 설치돼 있다.
굽어진 도로에서 상대방 차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설치된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연구실에서 그 거울까지의 거리는 약 1백10m가 된다.
재미있는 점은 연구실에서 볼 때 그 거울의 시직경은 0.5°, 즉 달의 크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비록 달의 아름다움을 따를 리는 없겠지만 가끔 그 거울의 뒷모습을 보곤 한다.
착시를 느껴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실 창에 10원짜리 동전을 하나 세워놓는다.
크기가 2.3cm인 동전을 2.5m 정도 떨어져서 보면 역시 달의 겉보기크기와 같아진다.
그리고 그 동전과 1백10m 떨어진 거울의 뒷면을 번갈아 보면서 겉보기크기를 비교해본다.
그러면 놀랄 정도로 거울이 커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혼자만의 착각일수도 있기 때문에 연구실 앞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비교해보도록 했는데,
그 결과 모두가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동전의 겉보기크기가 거울보다 약 1.5배 정도 돼서야 두개가 서로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예리한 관찰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천체투영관에서 본 북두칠성이 실제 밤하늘에서 본 북두칠성보다 훨씬 작아보인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 모두가 거리착시 때문이다.
멀리 있다고 생각해 커보인다
금년 초 미국 심리학자 로이드 카우프만과 물리학자인 아들 제임스 카우프만이
거리착시에 관해 재미있는 실험을 수행했다. 그들은 특수장치를 통해 입체적인 달 이미지를 구현했다.
즉, 특수장치에서 나온 달 이미지가 마치 실제하늘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달 이미지는 두개를 사용했는데 하나는 배경에 고정시키고 또다른 하나는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카우프만 부자는 실험참가자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달을 자신들과 배경(배경에는 고정된 달이 있다) 사이에
중간지점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위치시키도록 요청했다.
이때 배경하늘은 각각 지평선의 하늘과 중천으로 바꿔가며 실험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움직이는 달을 지평선에 고정된 달이 배경으로 있을 때
중천의 경우보다 더 먼 곳에 위치시켰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지평선의 달이 중천의 달보다 더 멀리 있다고 착각했다.
지평선의 달은 거리착시 때문에 커보였던 것이다.
필자 역시 국립중앙과학관의 천체투영관에서 이와 유사한 실험을 해보았다.
천체투영관에서는 별들뿐만 아니라 달도 돔 벽면에 비춰볼 수 있다.
그래서 중천에 뜬 달과 동쪽에서 방금 뜬 달의 겉보기크기를 비교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방금 뜬 달, 즉 지평선 가까운 달이 약간 더 커보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원했던 만큼 커보이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상적 실험상황이 못됐기 때문이다.
즉, 돔의 반지름은 10m 정도에 불과해 이에 따른 거리효과가 심하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똑같은 크기를 가진 두 개의 애드벌룬을
하나는 긴 끈에 연결시켜 높은 건물꼭대기에 매달아 하늘 높이 띄우고
또 하나는 관측자로부터의 거리가 공중에 뜬 것과는 같지만 땅바닥에 둔다면,
하늘 높이 뜬 애드벌룬이 훨씬 작아보일 것이다.
[출처 : 과학동아]
김봉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