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경연(經筵) 자료 번역 및 주해 (한국연구재단 지원)
경연(經筵)
“영조, 경연 몰두해 신하들이 기진맥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팀, 조선 임금 ‘경연’ 자료 집대성
“경연을 가장 열심히 한 왕은 세종과 성종, 영조였습니다.”
“경연에서는 군주의 학식과 인품이 드러납니다.
숙종도 경연 기록을 보면 명민하고 신하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아침 점심 저녁 경연(經筵)을 열어
학자들과 지식을 쌓고 토론을 벌였으며 때론 이 자리에서 국가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조선시대 왕들의 경연에 관한 기록이 처음 집대성된다.
2005년 9월부터 경연자료 집성 작업을 해온 연세대 국학연구원 경연연구팀은
최근 작업을 마무리 짓고 출판을 앞두고 있다. 모두 32권으로 권당 900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24명이 작업에 참여했고 현재 한글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집성 작업을 해온 김우형 연구교수는 “경연은 곧 국정 운영의 장”이라고 설명했다.
::경연(經筵)::
군주에게 유교의 경서(經書)와 역사를 가르치던 제도.
중국에서 비롯돼 고려 중기에 우리나라에 도입됐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자료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경연에 참석한 경연관들의 문집 등에 분산돼 전해온다.
경전 공부하며 국정 운영도 토론,
세종 · 성종 대표적인 학구파로 / 태종 · 세조는 질병 등 이유로 소홀
신하와 왕이 책을 소리 내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해석하는 방식의 경연은
왕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랐다.
선조의 경우 말수가 적어 율곡 이이가 나서
“왕께서 말을 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왕을 어려워해 하고 싶은 말의 10분의 2에서 3 정도만 말하게 된다”고
간언하기도 했다.
영조는 신하가 책을 읽다 틀리게 읽으면 호되게 혼내고 열심히 공부해 신하들이 기진맥진할 지경이었다.
연구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 왕으로 꼽은 세종과 성종, 영조는 하루 세 번 이뤄지는 경연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종의 경연 내용은 정확하게 전하지 않는다.
한정길 연구교수는 “기록에 ‘조강(아침 경연)을 했다’ ‘석강(저녁 경연)을 했다’는 식으로만 적혀 있고
내용을 알 수 없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의 면모는 경연에서도 나타났다.
경연에서 다룰 책을 스스로 정하기도 했고 경전 이외의 책을 골라 공부하기도 했다.
아악을 완성하기 이전에는 중국 음악이론서인 ‘율려신서(律呂新書)’를 강독했고
태조 때 발간한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을 공부해 그 내용을 다듬기도 했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정조는 재위 11년부터 성균관에 더 큰 관심을 보여 경연을 줄였다.
경연을 소홀히 한 왕으로는 태종과 세조, 연산군이 꼽혔다.
태종과 연산군은 주로 안질이나 부스럼 등 병을 이유로 경연에 참석하지 않았다.
세조는 “정사를 돌보느라 시간이 없고, 세종 때부터 물려받은 일이 많고,
각종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해야 하고, 나이가 불혹이 되었고, 무예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다섯 가지 이유를 대며 경연을 물리쳤다.
연산군은 경연을 폐지하기도 했다.
900쪽짜리 32권 방대한 분량
경연 집성 과정에서 국학연구원의 연구원들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마침표와 쉼표, 느낌표나 따옴표 등 표점을 찍는 과정.
왕조실록에는 표점이 있지만 승정원일기와 문집에는 없어 일일이 읽고 해석하며 표점을 찍었다.
김영봉 연구교수는 “잘못된 글자에 각주를 담아 바로잡고 표점을 표시해
앞으로 연구자들이 경연에 대해 공부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현재 매주 목요일 개인 문집에 기록된 경연 자료를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진짜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연의 기록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놓친 부분을 다시 찾고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까지 마무리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윤훈표 연구교수는 “경연 자료 구축 사업이 끝나면
동시대 동아시아 왕들과의 국정 운영 비교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2010년 10월 13일 동아일보
조선시대 '王의 수업'을 복원하다
연세대 이광호교수팀 경연(經筵)자료 집성 프로젝트
<경연(經筵): 임금에게 경서(經學)를 강론하는 자리, 경서에 밝고 학문과 인품이 탁월해야 가능>
2009년 4월30일 연세대 백양관 518호 대학원 세미나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열리는 '조선조 文集소재 경연(經筵)자료 번역및 주해'사업단 모임에 참여한
10여 명의 연구원은 각자가 맡은 조선시대 문집 소재 경연자료의 번역및 주해를
발표하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식의 <택당별집(澤堂別集)>에 실린 '경연일기'와 김우옹의 <동강집(東岡集)>에 실린 '경연강의'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겸 문신들이 자신들의 문집에 남겨놓은 경연관련자료의 해석을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이 2011년 완료되면
125종의 문집소재 경연자료가 번역, 출간된다.
문집에 실린 한자, 총211만7662자에 달하는 경연자료를
우리말로 옮기면 2백자 원고지로 7만 588장에 달할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시대 국왕과 문신들이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강론하면서 經學과 시무(時務)를 함께 토론한 자리인
경연관련기록들을 집성, 번역, 연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이광호 연세대철학교수를 중심으로 모인 철학, 국문학, 사학, 정치학, 교육학 등 다양한 전공의
學際연구자들은 2005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조선조 경연자료 집성및 주해'사업을 완료한 뒤,
현재 '문집소재 경연자료'를 번역하는 2차사업에 매진하고있다.
이교수는 "조선시대 경연자료의 집대성과 번역,연구로 이어지는 10년 프로젝트의 중간단계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이교수팀이 조선시대 경연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같은 사례가 서양에서는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데다
경연제도가 처음 시작된 중국에서도 元나라 이후 형식화로 흐르면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왕을 '내성외왕(內聖外王: 안으로는 성인이고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춤)'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교육시스템인 경연제도가 실제 꽃을 피우고 완성을 본것은 중국이 아닌 바로 조선에서였다.
이에따라 경연관련기록을 모은 자료집도 조선시대에 이미 시도됐다.
박세채(1631~1695)가 중국의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경연관으로 있을 때
임금에게 올린 말과 글을 편집한 '경연고사(經筵故事)'와
이희조(李喜朝, 1655~1724)가 경연관으로 1719년(숙종 45)에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등 조선시대 名賢 다섯사람이 경연에서 왕에게 아뢴 말을 엮어 만든
<속(續) 경연고사>가 바로 그 것.
박세채와 이희조의 정신을 계승한 이교수팀은
지난 2005년부터 3년간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친 경연 자료를 발굴,수집하고
이를 각 왕대. 날짜별로 분류, 정리한 뒤
표점(標點,구두점등 현대식 문장부호를 붙임)및 주해를 다는 작업을 벌였다.
이교수팀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개인문집', 규장각소장 사초(史草) 등에서
경연관련기록을 뽑아내 주해한 분량만 2070만자에 이른다.
자료집의 정식출간에 앞서 프린트로 출력해 가제본한 책의 권수만도 8백~9백쪽 분량으로
3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전산화가 완료된 <조선왕조실록>이나 전산화가 진행중인 <승정원일기> <한국문집총간> 외에
개인문집 77종은 전산입력도 동시에 진행했다.
조선시대 경연자료 집대성에 이어 문집소재 경연자료 번역에 참여하고있는,
사업단의 김영봉교수는 "집성된 경연자료집과 번역본은 한국의 經學발전사와 조선왕조사 연구는 물론,
세계적 의미를 지닌 제왕학, 통치학 연구의 텍스트이자 리더십 교재로도 활용될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 2009년 5월 12일 문화일보, 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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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 (수정실록) 4년 갑진 (1724) 1월 28일 (계묘)
전 찬선 이희조의 졸기
전 찬선(前 贊善) 이희조(李喜朝)가 정주(定州)에서 졸(卒)하였다.
이희조의 자(字)는 동보(同甫)인데 문정공(文貞公) 이단상(李端相)의 아들이다.
젊어서부터 학문에 힘을 써서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을 사사(師事)하였고,
또 남계 박세채(朴世采)에게 나아가 공부하면서 경술(經術)을 연마하였다.
송시열이 거제부(巨濟府)에 안치되기에 이르러서는 이희조가 영지동(靈芝洞)에 은거하면서
<대귀설(大歸說)>을 저술하여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어 보였다.
숙종 6년 경신년에 서연관(書筵官)에 천배되어, 유현(儒賢)으로 대우하였다.
윤증(尹拯)이 배사(背師, 스승을 배신함)하기에 이르러서는,
이에 송시열이 윤증父子에 대해 논한 것을 이희조가 기록하여 두 편으로 엮어서
아들 이양신(李亮臣)을 시켜 가져다가 올리게 하였다.
이 때문에 윤증의 당여(측근)가 이희조를 증오하여 그 원한을 보복하려 하였다.
금상(今上, 경종) 원년(1721)에 이희조를 불러 세제(世弟, 왕세제)를 위하여
찬선(贊善), 성균관 좨주(成均館祭主)를 삼으니, 이진유(李眞儒, 소론과격파)가 극력 비난하고 나섰다.
당쟁의 화(신임사화)로 이희조가 처음에는 영암에 찬배되었다가
곧이어 이진유가 북쪽으로 옮기기를 청하여 철산(鐵山)으로 이배(移配)되었는데,
이희조가 그 곳으로 가다가 정주에 이르러 점사(店舍)에서 졸하였으니, 이 때 나이 70세였다.
죽기 전에 무지개같은 흰 운기(雲氣)가 뻗쳤는데 그 광망(光芒)이 땅을 밝힐 정도였다.
영조 원년(1725) 에 그 관작을 회복시키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증하였으며 시호(諡號)는 문간(文簡)이다.
(소론측의 경종실록)
....(이희조가) 임인년(1722, 경종 2년)에 남쪽 변방으로 유배된것을,
이때와서 이진유가 다시 북쪽 변방으로 옮길 것을 청하였는데,
이희조가 이미 늙고 병이 들어서 유배지에 채 이르기도전에 중도에서 죽었다.
이진유의 소행이 너무 심함이 이와 같은지라, 사람들이 눈을 흘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희조는 유일(遺逸)로 직질(職秩)이 아경(亞卿)에 까지 올랐고 일찌기 예우를 받았다.
아무리 그 헐뜯고 비방하는것이 세상에 넘친다 하더라도
당화(黨禍)가 산림(山林)에까지 미쳐, 원한이 날로 깊어지니, 그 실패를 서서 기다릴 수 있겠다.
# 이진유(1669~1730) :
노론 4대신 등을 탄핵 제거한 少論과격파(峻少).
김일경 등과 신임사화를 일으켜 老論을 숙청하는데 앞장 섬.
1725년 추자도에 귀양, 안치(安置)되고 1730년 국문(鞫問)을 받던 중 物故,옥사함. 전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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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경연고사(續 經筵故事)>
조선 후기의 문신 이희조가 편찬해 1719년(숙종 45)에 君德과 治道를 위하여 왕에게 올린 책. 5권 2책.
이때에 자매편인 <동현주의(東賢奏議)>8책도 함께 올렸다.
이 책의 내용은 조선시대의 명현(名賢) 다섯사람이 경연에서 왕에게 아뢴 말을 모은것으로,
각각 한권씩이다.
제1책에는 간단한 범례와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의 말이 수록되었다.
제2책에는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의 말이 실렸고,
맨끝에 편자의 진소(進疏)가 있다. 각권의 끝에 편자의 논평이 있다.
책의 체제는 1682년에 박세채가 편찬한 <程朱경연고사>를 따랐으므로, 제목에 속(續)이라고 붙였다.
다만, 박세채의 것은 중국의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올린 말과 글을 수록한데 비해,
이희조의 것은 우리나라 조선의 명현들의 말과 글을 따로 편집한 것이다.
즉, 5현의 말을 모은것이 <속 경연고사>이고,
9현(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의 상소문, 진덕문(進德文) 등의
글을 모은것이 <동현주의>이다.
이 책은 다섯사람의 문집에 실린 <경연주의(經筵奏議)>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조선왕조 실록에 없는 대목도 있고, 보다 더 상세한 부분도 있다.
각자의 '경연주의'가 연월일순으로 정리되었고, 그 때의 관직을 명시했으므로 참고하기에 편리하다.
수록된 이들은 주로 16세기에 활동한 학자, 정치가들로서,
이들이 경연에서 한 말은 당시의 정치사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영조10년(1734) 9월에 왕이 전라감영에 명해 <속 경연고사>와 <동현주의>를 간행하게 했는데,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판본으로 추측된다.
규장각도서.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
- 한국 고전 번역원
경연(經筵)연구팀을 소개합니다.
<경연연구팀>
: 연구책임자 - 이광호
: 공동연구원 - 문석윤, 이봉규, 황금중, 황병기
: 전임연구원 - 김영봉, 김우형, 윤훈표, 이원택, 장동우, 한정길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경연연구팀의 한정길입니다.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양명학을 전공하였고, 지금은 5년째 경연에 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경연연구팀은 국학연구소에 소속된 연구팀들 가운데 생긴 지가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 연구과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성과를 제대로 알릴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우리 연구팀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본 연구팀은 한국연구재단(구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조선조 경연(經筵)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연구책임자이신 이광호 선생님(연세대 철학과 교수)의 총괄 하에
공동연구원 4명, 전임연구원 6명, 연구보조원 7명(박사과정생 3명, 석사과정생 2명, 학부생 2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 연구팀의 경연 연구는 크게 두 단계의 사업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제1단계는 <조선조 경연자료 집성 및 주해> 사업이며,
제2단계는 <조선조 문집소재 경연자료 번역 및 주해> 사업입니다.
제1단계 사업은 2005년 9월~2008년 8월까지 3년 동안 진행되었으며,
제2단계 사업은 2008년 7월~2011년 6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지금부터 이 두 단계의 사업 내용과 그 연구 성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1단계 연구인 <조선조 경연자료 집성 및 주해> 사업의 목적은
조선조 경연 자료의 발굴ㆍ수집ㆍ정리를 통해
경연의 생생한 모습과 경연에서 토론된 내용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그것에 표점과 주해를 붙임으로써 후발 연구의 기초 토대 자료를 구축하는데 있습니다.
경연은 국왕과 문신(文臣)들이 유가 경전을 중심으로 강론하면서
경학(經學)과 시무(時務)를 함께 토론한 자리입니다.
문신들은 경연을 통하여 국왕을 올바른 정치로 인도하고자 하였으며,
국왕은 경연에서의 강독과 토론을 통하여
제왕으로서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자질과 덕성을 갖추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 경연에서 논의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경연 자료입니다.
경연제도는 비록 중국에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곳은 조선입니다.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교 경전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을 진행하게 됩니다.
‘조선조 경연자료’는 왕도정치의 실현이라는 유학 본래의 이상을 현실화하고자 했던
조선왕조의 정치지향과 그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조 경연자료 집성 및 주해> 사업은
①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한 토대 자료 ②경학발전사 연구의 토대 자료
③유교국가 제왕학 연구의 토대 자료를 구축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본 연구는 다음 몇 단계의 작업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①<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그리고 경연관으로 참여했던 문신들의 문집 등에 수록되어 있는
경연자료를 발굴ㆍ수집하고,
②발굴ㆍ수집된 경연자료를 조대별(朝代別), 날짜별로 분류하여 입력ㆍ정리하고,
③입력ㆍ정리된 모든 자료들에 대하여 전문적인 표점 작업을 하고,
④표점 처리된 경연 자료의 경연 내용을 해제형식의 전체해설과 주석형식의 부분해설을 통해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⑤상기의 단계를 통해 완성된 작업결과물을 경연자료 집성본으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현재 제작된 책의 권수는
1차년도 9책, 2차년도 11책, 3차년도 12책으로 총 32책(각 책당 A4용지 700쪽 내외의 분량)입니다.
제2단계 연구인 <조선조 문집 소재 경연자료 번역 및 주해> 사업의 목적은
본 연구진이 제1단계 경연연구를 통해 발굴한 조선조 경연 자료 가운데
125종의 문집 자료를 편년 형식으로 집성하여 번역하고
그것에 상세한 주해를 붙임으로써 후발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사업에는 본 연구진의 다음 몇 가지 기획의도와 목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①세계적 문화유산의 경연자료의 한글화 :
‘조선조 경연 자료’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인 동시에,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조선조만큼 양적으로 풍부하고 질적으로 탁월한 경연자료를 지닌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귀중한 자료는 한국학 전문연구가들만이 아니라 한국의 정신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대중들도
쉽게 접하여 그것을 유수한 문화유산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경연자료의 한글화입니다.
본 사업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획되었습니다.
②경연자료 번역의 완결화 :
경연자료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및 경연관으로 참여했던 문신들의 문집 속에
산재해 있습니다. 경연연구가 활성화되려면 이 자료들 전체가 번역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연자료 가운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수록된 자료는
이미 국가 기관의 주도하에 번역이 완료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반면에 경연자료의 또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문집자료는
그 번역이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기존 번역된 문집 중에 경연내용이 일부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분량은 극히 미미한 편입니다.
본 사업은 경연자료 전체에 대한 번역의 완결성을 기하기 위하여 마련되었습니다.
③편년화를 통한 경연자료 활용의 극대화 :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의 경우에는 그 번역을 따로 집성하지 않더라도
그 저술형식이 편년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경연이 시행되었던 날짜만 안다면
그 한글번역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집 자료의 경우에는 그것이 비록 번역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각 개별문집 번역본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본 연구진은 편년형식으로 집성된 ‘문집 소재 경연 자료’를 번역함으로써
보다 쉽게 경연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④경연 원형 복원의 내실화 :
경연의 실제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원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연 내용은 그것을 기록한 자료들마다 상세함과 소략함의 차이가 있습니다.
동일한 날짜에 행해진 경연강의라고 할지라도
수록된 자료에 따라 내용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날짜나 경연 형태마저 책마다 달리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본 연구진은 ‘문집 소재 경연 자료’를 번역 주해하는 과정에서
그 자료들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수록된 경연자료들과 서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경연의 원형을 내용적으로 완벽하게 복원할 예정입니다.
경연자료를 번역 주해하는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ㆍ주해의 전문성과 정확성, 그리고 일관성과 통일성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본 연구팀에서는 다음 세 가지 연구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①본 연구진은 다양한 분야,
즉 한문학ㆍ사학ㆍ경학ㆍ송명리학ㆍ정치학ㆍ교육학 분야의 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진의 특성을 살려 각 연구원들에게 그들이 능통한 경전에 관한 경연강의 자료를
번역 주해하게 함으로써 번역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있습니다.
②연구 번역 수준의 상세한 주석이 달린 번역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주해에는 교감과 함께 경연 내용과
해당 경전과의 비교 설명, 논쟁자들의 견해 차이, 문답내용에 대한 해설과 평가 등이 포함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단어나 전문용어의 풀이, 인명ㆍ지명에 대한 설명, 글자의 교감, 원전의 전거,
원전과 차이를 보이는 인용문에 대한 보완 설명 등도 주해작업에 포함시켰습니다.
③주 1회의 윤독회, 월 2회의 교열회의, 연 2회의 번역 검토회의 등 단계별 교차 검토를 통하여
번역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먼저 연구원에 의해 1차 번역된 자료를 상호 교차 검토하고,
교차 검토하는 중에 생긴 문제를 윤독회에서 해결합니다.
윤독회는 매주 목요일 10시~13시까지 3시간 동안 연세대학교 백양관 518호실에서
연구책임자이신 이광호 선생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집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석ㆍ박사반에 재학중인 연구보조원들도
번역 주해 작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한국학 연구를 담당할 후진을 양성하는데도 본 사업은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상의 연구방법을 통하여 지금까지 본 연구팀에서는
<호정집(浩亭集)> 외 총 60여 종의 문집 소재 경연자료를 번역ㆍ주해하였으며,
지금은 숙종대 문집자료들을 번역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경연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거나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저희 경연연구실(연세대 백양관 620호, 02-2123-6501)을 찾아주시거나
제 메일(philohan@hanmail.net)로 연락을 주시면 성의껏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 한정길(국학연구원 연구교수)
- 2010년, 국학연구원 뉴스레터 2호
- 지촌 이희조(1655~1724)는 연안이씨로 현석(남계) 박세채, 우암 송시열의 門人으로 뛰어난 학자임. 연안이씨中 '경연관(經筵官)'은 "이희조"와 中洲 "이직보"(李直輔, 1738~1811,시호:文敬)가 배출되었음. 광산김씨(사계가문)도 "김장생", "김집" 2인의 경연관을 배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