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차례상
추석 차례상 - 생활지혜 듬뿍 담긴 영양식탁
“오월 농부, 팔월 신선” “일년 삼백육십일이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으라”
오곡과 과일이 풍성해 마음이 넉넉한 계절인 팔월 한가위를
1년 중에서 가장 좋은 날로 생각한 우리 조상들이 한 말이다.
이렇게 좋은 날, 많은 사람들이 지내는 예가 있으니 이는 다름 아닌 차례다.
차례는 조상숭배 의례의 한 종류로 시제, 묘제, 기제와 달리 약식 제사다.
따라서 차례는 다른 제사와 달리 아침에 지내므로
촛불을 켜지 않고, 축문이 없으며, 술은 한 번만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례는 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지내는 조상, 즉 기제사를 지내는 조상께 지낸다.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 배우자를 함께 모시듯이 차례에서도 조상들의 배우자를 같이 모신다.
이를 합설(合設)이라고 한다.
차례 하면 복잡하고 지켜야 할 규칙도 많은 것으로 생각하나
그 유래와 원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음양오행 표현한 차례상
우선 차례 상차림을 보면 5열로 진설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열은 과거의 조상들이 먹어왔던 음식을 순서대로 표현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수렵, 채집시대에 먹었던 음식을 의미하는 제일 앞쪽의 과일과 둘째 줄의 나물과 채소,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먹었던 음식들인 전류,
농경시대에 들어서면서 먹었던 주식과 반찬을 의미하는 탕, 적, 메(밥), 갱(국) 등이
순서대로 올려진 것이다.
차례 상차림은 제수를 놓는 위치와 수가 그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주나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과 생성소멸을 설명하는 음양오행설을 따르고 있다.
물론 음양오행설이 현대에는 과학적이다 그렇지 않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과거 조상들이 차례 상차림속에서도 그네들이 생각한 일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차례상은 신위는 북쪽에 놓고,
생선을 놓을 때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에 놓는다는 일정한 방위 규칙을 갖고 있다.
또 땅에 뿌리를 두고 얻어진 음식은 음(陰)을 상징한다고 해서 종류의 수를 짝수로 맞추려고 했고,
그 이외의 음식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해 양(陽)의 수인 홀수로 맞췄다.
이렇듯 일정한 규칙성을 갖고 있는 차례의 예를 한가지씩 살펴 보기로 한다.
1. 신위 | 신위는 북쪽에 놓는다.
죽은 사람의 세계를 가리키는 북망산천에서 유래하기도 했지만 임금이 계신 상좌라는 의미도 있다. |
2. 송편과 토란탕 | 추석에는 메(밥)대신 송편을 올려 놓는다.
이때도 갱(국)은 동쪽(오른쪽), 메는 서쪽(왼쪽)에 놓는다. 이는 산자의 세계와 죽은자의 세계가 다름을 의미한다. |
3. 떡 |
곡식으로 만든 먹거리 중 가장 정결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제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다. 차례상에는 송편만 놓기도 한다. |
4. 적 | 술안주로 사용되는 음식. 계적, 육적, 어적을 모두 놓거나 이 중 한가지만을 올려 놓는다.
하늘로부터 얻어진 음식이라 해 적과 전을 합해 양(陽)수인 홀수만큼 올려 놓는다. |
5. 포와 생선 |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해 놓는다.
이는 동쪽이 소생과 부흥을 의미한다는 음양오행설을 따른 대표적인 예이다. |
6. 탕 | 어탕, 육탕, 계탕을 모두 올리거나 한가지만을 놓는다. 탕도 하늘로부터 얻어진 음식이라고 하여 양(陽)수인 홀수만큼 올려 놓는다. |
7. 삼색나물 | 귀함을 뜻하는 양(陽)수인 홀수의 나물을 올린다.
양념은 거의 쓰지 않는데 이는 양념이 발달하기 전인 오랜 옛날부터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유와 함께 자연의 맛에 가깝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
8. 대추, 밤, 감, 배 |
제일 앞줄에 놓는 과일은 땅으로부터 얻은 것이라 해 음(陰)수인 짝수 종류를 놓는다. 한 제기에 올리는 과일의 양은 귀함을 뜻하는 양(陽)수인 홀수만큼 놓는다. |
9. 향 | 주변 환경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해온 향은 오랜 옛날부터 신성을 상징했다.
영혼이 향내를 맞고 찾아오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
10. 모사 | 모사기에는 깨끗한 모래를 담는데 이는 땅을 뜻한다.
모사그릇에 술을 나누어 붓는 의식도 땅 속의 조상을 부른다는 의미가 있다. |
향, 악취제거와 해충퇴치
차례는 하루 전부터 집안팎을 청소하고 목욕 재계하는 마음의 준비로부터 시작한다.
제기를 닦고 제구를 설치한 후 식어도 상관없는 제수를 차린다.
제기를 보면 보통 사용하는 그릇과는 그 모양이 다르다.
이는 예전의 조상들이 상을 쓰기 이전에 사용하던 굽이 있는 그릇을 그대로 써왔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들은 조상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에서
평상시 쓰는 그릇과 구분하기 위해 굽을 높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음은 제상 위에 윗대의 조상 신위부터 모신다.
제주는 꿇어앉아 향(香)을 세 번 사르고 강신(降神)의 예를 행한다. 강신이라 함은 신을 내리게 한다는 뜻.
향은 나무진이나 나무조각, 그리고 나뭇잎 등으로 만드는데 향나무가 주로 쓰인다.
향은 부정을 깨끗이 하는 정화 기능과 신성을 상징한다.
처음 인도에서 향이 사용될 때는 상징적 의미보다 실질적 의미가 더 강했다.
부패로 인해 악취가 많은 인도의 기후에서 악취를 제거하고 해충들의 근접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향을 사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주위 환경을 정결하게 해 향피우기가 신성성을 지니게 됐다.
따라서 제사를 비롯해 모든 성스러운 종교의식은 향불을 피움으로써 시작한다.
즉 분향은 신이 강림해 좌정할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며,
영혼이 향내를 맡고 찾아오게 하는 행위다.
신화에서 보면 향이 신계(神界)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교통 매개물이기도 하다.
용궁에 다녀온 수로부인의 몸에서 향내가 났다는 기록이나
신선계를 그린 그림에서 향연이 자욱한 것이 그 예다.
땅속 조상 모시기
조상을 부르는 의식으로
술을 모사 그릇에 나누어 붓고 재배하는 것이 있다.
모사기에는 깨끗한 모래가 담겨 있는데 이는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땅속에 있는 조상을 부르는 의식으로 해석된다.
향을 사르면서 하늘에 있는 조상을 부르는 것과 대응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강신의 예를 마치면 강림한 신에 대해 참석자들이 일제히 두 번 절을 하고
식어서는 안될 제수를 윗대 조상의 신위부터 올린다.
다음에 제주를 올리고 조상들이 음식을 드실 시간을 드리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다.
식사 권유가 끝나면 수저를 내려 시접에 담고 참가자 전원이 합동으로 두 번 절을 올린다.
이로써 조상에 대한 예를 마치고 신주를 따로 모시거나 지방을 썼으면 태운다.
차례 음식을 제상에서 내려 정리하고 차례에 참석한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조상의 유덕을 기린다.
대추, 밤, 감, 배
제일 앞줄에 놓는 과일의 진설 방법은 이설이 분분하다.
대추는 동쪽, 밤은 서쪽에 놓는다는 '동조서율(東棗西栗)'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아 과실의 배치가 울긋불긋함을 피하려 했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대추, 밤, 감, 배 순으로 놓는다고 주장하는 '조율시이(棗栗枾梨)'가 있다.
대체로 현대에 들어서는 '조율시이'를 많이 따른다.
제사상의 주된 과일로 대추, 밤, 감, 배가 오르는 것은
이들이 대체로 상서로움, 희망, 위엄, 벼슬을 나타내는 전통적 과일이기 때문이다.
밀양 박씨 문중 제사에서는 이 과일들을 이렇게 풀이한다.
대추는 씨가 하나인 과일인데 열매에 비해 그 씨가 큰 것이 특징으로 왕을 상징한다.
밤은 한 송이에 씨알이 세톨이니 3정승을,
배는 씨가 6개로 6판서를,
감은 씨가 8개이니 8방백(方伯, 관찰사)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은 항상 지엄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절대적 존재였는데
그런 왕을 상징하는 과일을 진설했다는 설명이 믿기 어렵다.
대체로 과일의 제수 그릇 수는 짝수만큼 놓도록 돼 있다.
이는 땅에 뿌리를 둔 지산(地産), 즉 음산(陰産)이기 때문에 음수인 짝수로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로 과일제수 그릇을 홀수로 놓는데 이유는 명확치 않다.
그리고 한 제기에 과일을 올릴 때는 귀함을 뜻하는 양(陽)의 수인 홀수 개를 놓았다.
이 때 과일의 위아래를 깎아 놓았는데 그 이유는 잘 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드실 수 있도록 정성으로 다듬어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자연의 맛에 가깝게
두번째 줄에는 삼색 나물과 식혜, 김치, 포 등이 올라간다.
이때 삼색 나물의 삼색은 역시 귀함을 뜻하는 양(陽)의 수인 홀수이다.
김치도 희게 담근 나박김치만을 올리는데
그 이유는 깨끗하고 순수한 음식을 올리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개 차례 상에 올라가는 음식에는 소금 이외에 많은 양념을 쓰지 않는다.
이는 제사 상차림이 양념이 발달하기 전부터 굳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능한 모든 음식을 자연의 맛에 가깝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세번째 줄에 오르는 전과 적은 술안주다.
생선 중에 장어는 올릴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장어가 용(龍)을 상징해 왕조를 의미하므로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머리와 꼬리가 분명한 제수를 올릴 때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는 두동미서(頭東尾西)를 따른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設)에 따라 동쪽은 남쪽과 더불어 양의 방향이다.
동쪽은 해가 솟는 곳으로 소생과 부흥을 뜻하므로 머리를 동쪽에 둔다.
반면 해가 지는 서쪽은 동쪽과 반대되는 암흑과 소멸을 상징하므로 꼬리는 서쪽을 향하도록 한다.
탕은 하늘에서 내린 음식
네번째 놓인 탕은 어탕, 육탕, 계탕 이렇게 3가지 탕을 올렸다.
땅에 뿌리를 박지 않은 고기나 생선은 하늘에서 얻어진(天産) 것이기 때문에 같은 줄에서는 양(陽)수인 홀수로 놓는다.
그리고 탕은 건더기만을 떠서 놓는데
이는 조상들이 잡수시기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생사 구분하는 밥과 국의 위치
다섯번째는 메(밥)와 갱(국)을 신위 수대로 올린다.
제사 때 신위에 바치는 쌀밥을 메라 하고 국은 갱이라고 한다.
메는 특별히 되게 하는데 이것은 쌀의 본래 모습에 가깝도록 하기 위해 되게 만든다.
이 때 메와 갱을 올리는 위치는 우리가 밥과 국을 놓는 위치와 정반대다.
즉 밥이 서쪽, 국이 동쪽이다. 이를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 한다.
이는 산자의 세계와 죽은자의 세계가 다름을 의미한다.
추석과 같은 차례에는 메 대신에 송편을 올리고 설에는 떡국을 올린다.
둥근 달을 표현한 송편
제사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떡이다.
떡은 곡식으로 만든 먹거리 중에서 가장 정결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떡은 오랜 옛날부터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추석 차례상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송편이다.
추석의 상징적 의미는 둥근 달과 함께 어우러진다.
알알이 여문 알곡과 만월이 주술적인 연상으로 묶이면서
원형(圓形)으로 추상되는 민간신앙을 낳았다. 그 중 하나가 둥근 달과 알곡을 모방한 송편이다.
또 달빛 아래서 여인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강강술래도 알곡과 보름달이 투영된 춤이다.
북망산과 신위
준비한 제기와 제수를 제상의 격식에 맞춰 배열하는 것을
제수 진설(陳設)법이라고 한다.
차례 상차림의 기본 원칙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좌우를 바꿔 놓고 좌우의 균형을 잡는데 있다.
차례에서는 신위를 상좌인 북쪽에 놓는다.
경우에 따라 북쪽에 놓을 수 없더라도 신위가 놓인 곳을 북쪽으로 한다.
상례(喪禮)에서 죽음이 확인되면 죽은 이의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한다.
북쪽은 북망산천(北邙山川)이라고 일컫는 죽은 이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유교식 의례는 한나라의 수도 북쪽에 자리잡은 묘지가 있던 북망산의 지리적 위치에서 유래한다.
또 북쪽이 상좌인 것은 임금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예로 부터 북쪽은 대궐이 있는 곳으로 인식돼 있었다.
따라서 모든 제사 의식에서는 신주를 모신 사당과 신위를 북쪽에 모시고 제례를 행하는 것이
유교의 일반적 형식이다.
영양학적으로 완벽
이렇게 차려진 차례상은 사실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하다.
고기에는 단백질이, 국에 쓰이는 다시마와 생선에는 칼슘이 풍부하고,
채소와 과일에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있다.
또 탄수화물은 밥과 떡으로부터 얻을 수 있고, 지방은 전과 적에서 얻을 수 있다.
차례를 지낸 후 후손들이 먹을 때는 술과 안주를 먹은 다음 밥과 국 반찬류를 먹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송편과 햇과일을 먹게 된다.
주식에서 후식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차례상차림이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하다니
조상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랄 뿐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조상들에 대한 예를 이렇게 거국적으로 올리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중국도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기는 하나 국가적이지는 않다.
그 어떤 나라의 조상들보다 우리의 조상들이 덕이 많은 것인지,
우리가 그 어떤 후손보다 조상의 덕을 많이 입고 사는지, 어떻게 생각하든 모두 다행한 일이다.
시간과 여유가 부족한 현대에 차례는 다하지 못한 효의 연장이요, 한 집안의 작은 종교 의식이다.
친척간에 정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행사이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차례의 유래와 변천
원시시대 사람들은 자연 현상과 천재 지변의 발생을 경이와 공포의 눈으로 보았으며
인간이 생존할 수 있음을 자연에게 감사했다. 따라서 만물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
신의 가호로 재앙이 없는 안락한 생활을 기원했는데 이것이 제사의 기원이다.
제사는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일정한 격식을 갖추었는데 이것이 제례다.
중국에서는 이미 요, 순시대에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다.
특히 동양에서는 조상에 대한 제례가 하, 은시대를 거처 주나라 시절에 확고하게 갖춰졌다.
우리 민족도 아득한 고대부터 하늘을 공경해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농경에 종사하게 된 뒤로는 우순풍조(雨順風調)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의식이 성행하게 됐다.
예를 들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이 모두 제천의식이었다.
국가의 형태가 완비된 뒤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점점 일반 가정에서도 조상에 대한 제사를 정성껏 받들었다.
이런 제례는 모두 유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자의 ‘가례(家禮)’를 기본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차(茶)를 올리는 예에서 유래
평소에 쓰는 그릇과 달리 제기에 받침이 있는 것은 조상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가 있다.
'차례'라는 말을 예서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단지 관습적으로 민속명절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를 차례라고 한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주자의 ‘가례’에 보면
조상의 위패 앞에 찻잔(茶盞)과 술잔을 놓고 주인은 술을 따라 올리고 주부는 차를 따라 올린다고 했다.
그리고 매달 보름에는 술잔을 차리지 않고 찻잔만을 차린다고 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중국에서 가장 간단한 제례라고 할 수 있는 보름의 사당참배에는
술을 쓰지 않고 차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간단한 제례를 ‘차(茶)를 올리는 예(禮)’라는 뜻에서 ‘차례’라고 말했으리라 짐작된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을 때는 정월 초하루, 동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예를 드렸고
민속명절에도 그 명절에 먹는 계절특식을 예를 갖추어 받들어 올렸다.
미루어 볼 때 원래의 차례는 설, 동지, 매달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각종 명절에 지내는 것이었다.
율곡선생은 차례 지내는 날로
정월 대보름, 삼월 삼짇날,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추석, 구월 구일, 섣달 등을 예시했다.
따라서 사당이 있을 때는 1년간에 차례를 지내는 횟수가 30여 회에 이르렀다.
설, 한식, 추석에 차례 지내는 뜻
사당을 모시는 가정이 없어지면서 차례는 민속명절에만 지내게 됐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도 예전과 달리 설날, 한식, 추석의 세 번만 남아있게 됐다.
사당이 없어졌으니까 차례가 모두 없어졌을 법한데
설날, 한식, 추석의 차례가 그대로 행해지는 데는 상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다른 명절과 달리 설날은 새해 인사로 어른께 세배를 드려야 하는데
돌아가신 조상에게 어찌 세배를 드리지 않겠는가라는 孝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식은 언 땅이 녹으며 초목의 생장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겨울 동안 눈사태나 없었는지 언 땅이 녹으면서 산소가 상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식의 성묘는 효성스런 자손으로서 꼭 해야할 행사이다.
추석은 장마가 지나가고 초목의 생장이 멈추는 계절이다.
장마에 산사태는 안 났는지, 많이 자란 나뭇가지나 뿌리가 산소를 침범하지는 않았는지를 궁금해하면서
벌초도 하고 예를 올려야 하는 날인 것이다.
[출처 : 과학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