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 논란으로 스트레스 받은 선조의 귀울림(耳鳴) 증상
정통성 논란으로 스트레스 받은 선조의 귀울림(耳鳴) 증상
선조가 귀울림(耳鳴) 증상을 호소했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대목이다.
선조 28년(1595) 8월8일 두통, 귀울림 증세를 처음 호소했고,
선조 29년(1596) 5월11일에도 기록이 있다.
“왼쪽 귀가 심하게 울리고 들리지도 않으므로 침을 맞지 않으면 낫지 않을 듯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다.”
선조 37년(1604) 5월14일에는 귓가에 마비증이 와서 형방패독산을 복용하고 증세가 완화되었다,
선조 39년(1606)에도 귀울림 증세로 고통을 호소한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면 선조가 앓은 이명(耳鳴) 증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명(耳鳴)은 사실 보통 사람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피로가 누적되거나 수면 부족일 때 이명과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은 몸을 잠시 쉬게 하면 금방 낫는다. 그러나 피로, 수면부족이 만성화되고 심신의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이면 몸을 쉬게 하는 것만으로는 스트레스를 처리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이명, 현기증이 만성화한다.
심신의 스트레스가 이명이나 현기증을 어떻게 일으키는지 그 메커니즘은 아직 확실하게 해명되어 있지 않지만 만성적인 이명과 현기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상태를 심리테스트 등으로 살펴보면 강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우리의 몸은 교감신경계를 긴장시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태세로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몸에 이상이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밤길에 갑자기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라면 교감신경계가 긴장되고 얼굴의 혈관은 수축돼 안색이 파랗게 되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입은 바짝 마르고 피부에는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자극의 원인이 제거되면 긴장상태는 해소되고 교감신경계의 긴장 역시 이완된다.
그러면 일이나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같은 ‘지속형 스트레스’는 어떠할까.
이런 경우 교감신경은 쭉 긴장상태로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는 몸이 몇 개라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부교감신경계 쪽으로 스위치가 바뀌도록 되어 있다. 대뇌피질부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해 대뇌변연계에서 교감신경계를 긴장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브레이크 작용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아주 강하거나 너무 장시간 지속되면 대뇌피질의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고 자율신경이 점점 피로해져서 스위치의 교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지고 특별한 원인이 없이 신체에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식의 스트레스와 관계 있는 질환으로는 두통, 어깨결림, 소화성궤양, 만성위염, 고혈압증, 자율신경실조증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질병들은 선조실록의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일단 소화불량 증상은 선조가 청년시절부터 자주 겪은 질환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 7년 1월7일 상이 자주 체한다 하여 의관이 진찰했다’는 기록을 필두로 ‘양위진식탕과 가미응신산, 생마죽, 생맥산 등의 위장약을 여러 번 처방했다’는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선조 7년(1574) 1월10일의 기록이다.
“유희춘이 비위를 조리하는 법과 식료단자를 써서 아뢰다.”
유희춘(眉巖 柳希春, 1513-1577)이 누구인가. 바로 허준의 평생 후원자이자 허준의 진료를 받은 호남 유림의 거목이다. 선비로 대표되는 유의(儒醫)들이 상당한 한의학적 소양을 가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도 아는 병
젊은 날의 선조는 신하들의 기세에 눌려 단지 소화불량증세만 호소할 뿐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끙끙 앓기만 했다.
반면 선조 37년(104) 노회한 연륜에 이르러서는 내면의 스트레스를 그대로 드러낸다.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의관에게 내 병은 심증에서 얻은 것이다 했더니 의관도 그렇다고 했다.”
그 이전에는 심장에 열이 있다, 심병이 생겼다 등으로 우회적으로 말할 뿐 직설적으로 본인의 질환을 말하지 않은 것과 측면과 비교하면 자신감에 찬 일면을 보인다.
선조의 스트레스는 알려진 것처럼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정통성의 문제가 엉켜 있는 환경에서 비롯했다.
선조가 즉위하기까지 왕후의 몸에서 나지 않은 임금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조의 아버지는 중종의 7남인 덕흥군 이초로 중종과 창빈 안씨 사이에서 난 둘째아들이었고, 어머니는 정인지의 친손자인 정세호의 딸이었다. 정실의 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대의 왕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동작동 국립현충원 안에 자리 잡은 동작릉의 주인은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다. 선조 즉위 이후 명당을 얻어 임금이 됐다고 해 풍수설이 크게 번성할 정도로 특별한 왕위 등극이었다.
신하들이 옹립해 왕이 된 만큼 신하들의 눈치를 보고 가슴 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시작된 스트레스가 당파싸움으로 이어지고 임진왜란이라는 큰 격랑을 겪으면서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이 결국 여러 가지 질병이 유발된 원인인 점은 분명하다.
선조의 이명 치료에는 주로 침이 쓰였다.
선조는 “귓속이 크게 울리니 침을 맞을 때 한꺼번에 맞고 싶다. 혈(穴)을 의논하는 일은 의논이 많다. 만약 침의가 간섭을 받아 그 기술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을 테니 약방은 알아서 하라”(선조 39년 4월25일)고 일종의 엄포도 놓았다.
침의(鍼醫)는 당연히 조선 최고의 침의였던 허임(許任)이 맡았다.
허임(許任, 1570~1647 추정)은 그의 침구경험방에 이명 치료혈을 심수(心水, 마음에 병이 있어 발생하는 수종(水腫)으로 선정했다.
심수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하다. 스트레스로 인해 기가 치밀어 올라 귀로 집중된 것을 손발에 침을 놓아 기를 손발 끝으로 인도하고 조화롭게 균형을 잡아 귀울음을 해소했다고 한다.
허임이 이명을 바라본 관점이나 현대의학이 이명을 바라본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
대나무 밭에 가면 대나무 소리가 나고 소나무 밭에 가면 소나무 소리가 난다.
이명은 자신의 근원적 본질인 자율신경이 내는 자기의 소리다. 오늘 나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건강을 위한 생활 속 실천에 내 몸의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이상곤 박사의 한의학 이야기]
- 신동아, 2011년 04월호 619호 (p584~586)
- 더 보기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허임 - 침술의 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