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파주 헤이리 북카페 ‘포레스타’

Gijuzzang Dream 2011. 6. 27. 15:55

 

 

 

 

 

 

 삶의 한가운데 책을 놓고 사는 사람들

 

 

 

처음 본 순간 “우아”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한눈에 모두 담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책들.

문득 시골에서 봤던 은하수가 떠올랐다.

그 밤, 평상에 누워 바라본 검은 하늘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책도 그 별들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것이구나!

이쯤이면 책장이 아닌, 책성단(冊星團)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멋진 북카페의 이름은 ‘포레스타(Foresta)’, 숲을 이르는 이탈리아 말이다.

북카페는 출판사인 한길사에서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북하우스’(경기 파주시 헤이리) 안에 있다.

책장은 녹색, 꽂혀 있는 책들은 울긋불긋 형형색색이었다.

어떻게 보면 단풍이 물든 설악의 가을빛 같기도 했다. 한마디로 ‘책의 숲’이었다.

 


카페 '포레스타(FORESTA)'의 거대한 책장.

높이 6m, 너비 20m인 책꽂이에는 1만2,000여 권의 책이 가득 꽂혀있다.

직원 5명이 꼬박 닷새동안 매달려 꽂았다고 한다.

책장 값은 4천만 원, 꽂힌 책의 가격은 모두 합쳐 2억5천만 원이라고 한다.

책장의 책은 모두 한길사에서 펴낸 것들이다. 

책장 한가운데 붙어있는 책의 인쇄본 그림은

영국의 공예가이자 건축가, 시인, 사상가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작품.

그는 도서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김언호 대표와의 만남

이른 무더위가 시작된 토요일 아침, 이 거대한 책장을 만든 김언호 한길사 대표를 만났다.

외국 출장 때문에 피곤했던 기색은 책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제가 하는 출판이란 일의 목표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우리 삶 한가운데에 놓는 것’입니다.”

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김 대표는 파주출판단지와 예술가의 마을 헤이리를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파주출판단지는 지금 제2단계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헤이리 예술가 마을 역시 끊임없이 성장하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헤이리는 돈만 있다고 입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문화, 예술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받고 있어요.

다양한 전시와 이벤트를 계획하고 만들어 내기 위해서죠.”

 

그의 삶 역시 출판단지와 헤이리가 중심이다.

 

복잡한 대도시에 너무 몰려 살지 말고,

변두리에 흩어져 살자고 주장하는 ‘변방주의자’ 김 대표의 집은 헤이리의 카페 근처에 있다.

직장인 출판사는 출판단지에 있다.

그는 올가을 파주출판단지에서 열리는 국제 출판축제를 준비하느라 주말에도 무척 바쁜 듯했다.

그렇지만 바쁜 만큼 더 행복해 보였다. 직접 사인한 그의 책을 건네받고 인사를 나눴다.

 


○ 내 삶 한가운데에 놓일 책은?

혼자 남은 토요일 오전. 간단하게 스케치 구상을 마치고 가져온 책을 펼쳤다.

김 대표가 말한 ‘삶의 한가운데 놓인 책’의 의미를 곱씹어 봤다.

아직까진 그 책이 무엇이라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삶을 충분히 살아보지 못한 탓일까.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 어떤 책을 읽든 그 책이 내 삶에 나름의 의미를 보태줄 것이란 점이었다.

넓은 창으로 정오의 햇살이 한가득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책장에선 끊임없이 책의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나의 책읽기는 달콤했고,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앤드루 랭(1844∼1912)은 이렇게 말했다.

“집은 책으로, 정원은 꽃으로 가득 채워라.”

오늘날 책으로 집을 채우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 성인의 평균 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이 채 되지 않는다.

(2009년 국민독서실태조사·성인 1명의 1년 평균 독서량은 10.9권)

게다가 전자책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의 확산으로 종이책은 점점 설 곳을 잃고 있다.

머지않아 종이책은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의 온 국민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 책을 모으는 일은 정원을 꾸미는 것보다 더 쉽지 않을까 싶다.

책은 읽기 위한 것이지만,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혹시 알겠는가.

어느 햇살 눈부신 토요일 우연히 뽑아 든 책 한 권이 내 삶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될지….

그 찬란한 순간이 기대된다.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 2011-06-25 동아 [이장희의 스케치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