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판에서 배우는 '2인자 리더십'
소리판에서 배우는 ‘2인자 리더십’
판소리 무대는 단출하다. 가수(歌手) 한 명, 고수(鼓手) 한 명.
무대장치도 없고 오케스트라도 없지만
두 명의 음악가는 청중을 휘어잡고 몇 시간 동안이나 뛰어난 공연을 펼친다.
어떤 오페라단보다 더 실감나게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예술적 감동을 준다.
그런데 이렇게 단 둘이 공연하는 무대에서는 누가 리더일까.
물으나마 ‘소리하는 가수’가 리더일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소리판에서는 ‘일 고수 이 명창’이라는 말이 상식이란다. 과연 그럴까? 왜 그럴까.
판소리의 리더는 가수 아닌 고수
20세기 초반, 우리의 문화계를 주름잡던 국창(國唱),
요즘 말로 하자면 ‘국민가수’격인 명창으로 이동백이란 이가 있었다.
구한말 궁궐에 초청받아 임금 앞에서 공연한 덕에 ‘통정대부’ 벼슬을 제수받아
‘이통정’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했고 인물치레, 소리치레가 남달라 인기가 비등하였다.
어느 날, 지방공연을 위해 서울역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데 시간이 늦었으니 서두르라고 하자,
‘지가 감히 나를 안태우고 출발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그였지만,
고수 앞에서만은 겸손하였다. 1941년 잡지 <춘추>의 기자가 좌담에 나온 명창 이동백에게,
“우리가 일기는 고수보다 명창 되기가 더 어려울 텐데 흔히 ‘일고수 이명창’이라고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이동백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소리하는 사람에겐 고수처럼 고마운 사람이 없습니다.
북채가 잘 가고 못 가는데 따라 ‘흥’이 좌우되죠.
흥이 안 나면 제 아무리 만고 명창이라도 소리가 될 리 없지…….
속담에 ‘부처님 살찌고 안 찌기는 석수장이 손에 달렸다’듯이
명창의 성가(聲價)도 고수에 달렸다고도 할 수 있어요.”
소리와 북의 역할을 이렇게 말한 이는 비단 이동백뿐이 아니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남도의 풍정을 물씬 누렸던 시인 김영랑은 ‘북’이라는 시에서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터-요”라고 했다.
고수는 ‘북 반주자’가 아니라 ‘지휘자’라야 옳다는 것이다.
고수의 임무는 소리꾼 역량 이끌어내 최고 무대 만드는 일
시인 김영랑의 생각은 여느 고수들의 생각과도 통한다. 명창은 고수가 치는 장단에 맞춰 소리를 한다.
고수는 장단만 ‘딱딱’ 치는 것이 아니라 명창이 마음껏 역량을 펼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명창이 소리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어
‘리액션(reaction)’을 해준다.
‘잘한다’거나 ‘좋다’는 고수의 추임새는 소리판에는 활력을, 명창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간혹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소릿길이 흐트러질 기미가 보이면 재치있게 위기를 ‘때워주고’,
소리꾼이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소리를 펼칠 수 있도록 매순간 함께 호흡한다.
그러려면 소리꾼이 명창보다 소리를 더 잘 알아야 하고,
명창의 소리 습성과 청중들의 분위기까지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한다.
마치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몰입하여 황홀경에 함께 이르는 것 같은
흥에 겨운 음악적 조화는 다른 음악에 비해 유별나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완성되는 판소리 예술의 속성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아무리 ‘일고수 이명창’이라 하고,
소리판이 잘되고 못되기는 고수의 손에 달려있다 해도
무대에서 빛나는 건 ‘가수’지 ‘고수’가 아니다.
보통 청중들은 소리꾼의 열창만 기억할 뿐, 고수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기 일쑤다.
그래도 그가 진정한 리더일까?
여느 고수들은 말한다. 고수의 최대 임무는 ‘보비위(補脾胃)’하는 것이라고.
소리꾼이 불편없이 소리할 수 있도록 해주어 함께 최고의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 고수의 길이라는 것이다.
굳이 내가 돋보이는 자리에 서지 않더라도 이뤄낸 성과의 주역으로서 보람을 누리는
‘2인자의 리더십’이라고나 할까.
돋보이지 않아도 ‘판’ 성공시키는 리더십
물론 가수와 고수의 사이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저 북 가락에는 소리를 한 뼘도 내 주기 싫다’며 고수 탓을 한 명창도 있고,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다’며 고자세로 소리판에 나서는 고수도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고수 김명환(1913-1989)이다.
그는 전남 옥과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나 ‘한량 북’을 배워 훗날 소리판의 고수가 되었다.
‘한량 북’이란 애호가 수준의 북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웬만큼 이름있는 명창들의 소리에 북을 한 번 쳐 보려면 융숭한 대접을 해야 했다.
김명환은 북에 미쳐 그 많은 재산을 거의 탕진할 정도였지만
정작 소리판에서는 그를 전문인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개인사에도 굴곡이 많아 아주 곤고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오랜 방황과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의 반열에 올랐으나
정작 소리판에서는 ‘호(好), 불호(不好)’가 극명했다.
음악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동시대 고수와 소리꾼들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모다들 치라는 북은 안 치고 쇠가락만 보듬고 앉아 있다”고 폄하하거나,
가수의 소리에 추임새조차 인색한 고수였다.
그는 고수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렸고, 자부심도 즐겼겠지만,
끝끝내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다’는 말을 남긴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가수 없는 고수’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대상이 없어 외로웠던 명고수.
그는 과연 ‘일고수’로서의 행복감을 맛본 적이 있었을까?
뛰어난 역량을, 제 본분에 맞게 잘 발휘하여
비록 내가 돋보이지 않더라도 ‘판’을 성공시키는 명고수의 리더십이
‘내 북에 앵길 소리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두루 유능하고 노련하며, 자신의 열정과 역량으로 타자를 빛나게 하는 명고수의 북채가
‘나 아니면 모두 쓸데없다’며 과욕부리는 이들을 일깨워주는
한국형 리더십으로 전파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리더십 에세이, 한국형리더십 개발원, 2011. 6. 제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