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연재자료)

[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⑩ 800년 만의 인양, 고려시대 조운선

Gijuzzang Dream 2011. 1. 13. 01:59

 

 

 

 

 

 

 

 

 800년 만의 인양, 고려시대 조운선

 

 

 

 

1208년 2월, 전라도 남단 포구에서 돛배 한 척이 닻을 올렸습니다.

해남 나주 장흥 등지의 곡물과 특산품을 가득 실은 이 조운선(漕運船)의 행선지는

고려 도읍인 개경(개성)이었죠. 벼 조 기장 메밀 콩 고등어 새우 게 멸치 젓갈 청자주전자

1400여 점을 싣고 가던 이 배는 지금의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태안 앞바다는 고려시대부터 국가간 사신선 및 국제무역선의 중간 기착지이자

경상도와 전라도 조운선의 주요 통과 해역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저지형이 복잡하고 급한 조류에 의한 해난사고가 잦아 ‘난행량’(難行粱)이라 불렸지요.

 

조선태종실록에는 1403년 34척, 1414년 66척이

이곳에서 침몰 또는 좌초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랍니다.

이 때문에 안흥량(安興粱)이라고 이름을 바꿔 선박운행의 안전을 빌기도 했으며

안흥정(安興亭)이라는 국제 객관(客館)을 운영하기도 했다는군요.

 

지금까지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고선박은 3척으로

2007년 태안선과 지난해 마도 Ⅰ구역 선박은 고려시대의 것이고,

마도 Ⅱ구역 선박은 제작시기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랍니다.

이 가운데 마도 Ⅰ구역 선박의 발굴 성과를 선보이는

‘태안 해저유물과 고려시대 조운(漕運)’ 특별전이 서울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고려! 뱃길로 세금을 걷다’ 전을 토대로 한 특별전은

800년 동안 물속에 잠겨있던 13세기 조운선의 선적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선적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출항 시기, 수취인, 화물종류, 수량 등을 적은 물품표용 목간(木簡)과

고려시대 것으로는 처음 확인된 죽간(竹簡) 64점이지요. 이 기록을 판독한 결과 조운선은 1207년 겨울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라 일대에서 모은 곡물과 특산품을 개경으로 싣고 가다 침몰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발송인은 지방향리인 장(長) 등의 직위와 송춘(宋椿) 등 이름이 적혀있고 수취인에는 대장군(大將軍) 김순영, 별장(別將) 권극평 등 개경의 고위 관리들이 기록돼 있었답니다.

 

또 죽간에는 1199년 최씨 무신정권의 대장군으로 승진했다고 <고려사> 등에 기록돼 있는

김순영 댁에 ‘전출 벼 1섬을 올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군요.



 

 

 

 

 

 

 

 

 

 

 

 

 

 

 

 

 

 

 

뻘에 묻힌 선체의 길이는 10.8m로 7렬의 바닥 판과 2개의 돛대 구멍이 있었습니다.

선박에서 인양한 유물로는 고려 때 먹던 곡물과 가공식품류 실물이 처음 확인됐고,

받침대가 있는 표주박모양 주전자, 사자 모양 향로 등 보물급 청자도 커다란 수확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조운선을 본떠 만든 모형(사진)도 함께 공개됩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선박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태안 앞바다의 보물선 찾기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과연 몇 척이나 발굴할지 해양문화재 최대의 관심사항이죠.

수중에 잠겨있다 800년 만에 빛을 본 고려시대 조운선 전시를 지켜보면서

천안함의 침몰을 상기하게 됩니다. 실종자 모두에게 생명의 빛이 스며들기를 기원합니다.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 2010년 4월 11일,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