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⑨ 16세 가야 소녀 송현이
16세 가야 소녀 송현이
키 153.3㎝ 목이 긴 8등신 미녀, 힘겨운 생활하다 주인따라 순장
키 153.3㎝에 턱뼈가 짧고 얼굴이 둥글넓적하며 목이 긴 미인형.
허리는 21.5인치로 평균 26인치인 현대 한국여성에 비해 날씬한 8등신.
어떤 여성의 몸매일까요. 1500년 만에 복원된 6세기 가야 소녀 ‘송현’의 신체조건입니다.
송현이는 2007년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가야 고분군 15호에서
발굴된 남녀 4구의 인골 중 하나였습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왼쪽 귀에 금귀고리를 하고 있었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무덤에 남아있던 108개의 뼈를 수습해 2008년부터 ‘가야사람 복원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인체복원은 2001년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얼굴을 복원한 경험이 있는 가톨릭의대팀이 맡았습니다.
컴퓨터 단층촬영(CT)과 3차원 정밀 스캔, DNA와 안정동위원소 분석,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첨단과학기술이 동원됐지요.
CT로 촬영한 뼈를 3D로 재구성해 만든 복제뼈로 인체를 조립해보니 신장은 151.1㎝로 나왔으며, 영화의 특수분장기법을 활용해 피부를 입히고 머리를 심었더니 153.3㎝로 측정됐습니다.
송현이의 나이는 성장판이 채 닫히지 않은 상태를 고려하고 법의학 산출 공식에 따라 16.03∼16.65세로 추정되었지요.
출산경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된 송현이는 꽃다운 나이에 왜 땅 속에 묻혔을까요.
주인이 죽으면 노비를 함께 순장(殉葬)하는 고대사회 장례 풍습의 희생자라는 겁니다.
송현이는 금귀고리를 하고 있는데다 종아리와 정강이뼈 분석을 통해 무릎을 꿇는 일을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나 무덤의 주인공 곁에서 봉사하던 시녀였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뼈대에서 특이한 외상이 보이지 않아 중독사나 질식사로 분석됐으며,
인골이 놓인 형태와 뼈대 관절의 상태로 보아 다행히 산 채로 매장된 것은 아니랍니다.
수수 기장 조 등 잡곡보다 쌀 보리 콩 등을 주로 섭취했지만
뒤통수뼈에서 다공성뼈과다증이 보여 빈혈을 앓았다는 사실도 조사됐지요.
치아에서는 반복적인 사용과 앞니로 무언가를 자르는 작업을 한 흔적이 발견되고,
어금니 등 여러 개의 충치도 확인됐습니다.
신체를 복원하는 작업에는 인체조형연구소 김병하 소장과
영화 ‘마더’ ‘박쥐’에서 분장을 담당한 셀아트팀도 힘을 보탰습니다.
얼굴 두께는 근육과 피부조직이 남아있지 않아
지난해 16세 여성 50명의 얼굴에서 산출한 통계치를 활용했다는군요.
순수미를 유지하기 위해 쌍꺼풀은 하지 않았답니다.
힘겨운 생활을 하다 주인과 함께 무덤에 묻힌 16세 가야 소녀는
고고학부터 해부학 유전학 생화학 물리학 법의학 의상학까지 총동원된 첨단 복원기술에 의해
다시 태어났습니다. 슬픈 눈을 가진 사슴같은 여자 송현이로 말입니다.
물론 마네킹에 불과하지만
6세기 가야 여성과 현대 한국 여성이 1500년의 시공을 초월해 공존하는 셈이지요.
한 가지 의문점. 송현이는 왜 한쪽에만 귀고리를 했을까요.
당시 유행했던 패션일 수도 있고, 시신을 묻는 사람이 다른 쪽 귀고리를 슬쩍했을 수도 있겠지요.
이에 대한 상상력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
- 2010. 03.28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