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시골편지's (6)
임의진 시골편지
[인디언 달력]
저문 산길 눈감고도 가는 길.
아깐 노을이 산을 넘고, 확 불 지르지도 못하고 넘고, 강 건너듯 홀연히 날이 저문다.
들국화 한 바리 꺾어 화병에 꽂아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니 가슴조차 먹먹한 10월.
북미 원주민 인디언들은 10월을 가리켜,
곡식을 추수하는 달(퐁카족), 산이 붉게 타는 달(후치족), 어린 나무가 살살 어는 달(마운틴 마이두족),
마음조차 변화하는 달(라코타 족), 가난해지기 시작하는 달(모호크족),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달(카이오와족), 철새들이 남쪽으로 돌아가는 달(크리족)이라고 했단다.
나도 인디언들처럼 달 이름을 지어 달력을 만들어 나누고는 하는데,
올해 10월은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는 달’이라 지었다.
김남주 시인의 ‘물 따라 나도 가면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북방엔 서리가 하얗게 내릴 것이고, 추위를 타는 가냘픈 동무는 털 스웨터를 꺼내 입을 것이다.
11월은 인디언 예언자 검은고라니(수우족)의 구술에 보니까
‘잎사귀가 모두 떨어져 나무가 야위는 달’이라더라.
내가 좋아하는 인디언 ‘노래하는 곰’은
“우-에히히! 가을밤은 싸늘하누나.
신성한 나무 아래 모닥불을 지피고서 언덕너머 동무가 돌아오는지 기다리며 지새리.”
제 이름처럼 노래하고 있으리.
몇 해 전 남미로 여행을 가다가 캐나다에 잠시 들렀는데, 눈 덮인 인디언의 성지를 순례한 기억이 난다.
자연인 인디언은 박물관에 갇히고, 종적조차 사라져 안타깝더라.
자연 닮은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자연 같은 얘기들이 오래오래 전해지기를, 애달피 기도했었다.
[말동무]
나그네는 드렁드렁 코골고
좁쌀 같은 별들은 밤새도록 와글다글
허공, 조용할 날 한시도 없네
밤낮 농기계 소리, 아지매 코고는 소리, 무슨 일인지 뾰로통 뿔따구가 난 새들은 또 얼마나 시끄러운지.
사람 안사는 거 같던 남촌에 추수철 되면 한동안 생동감이 넘친다.
“굉기망기하게도 해마다 징상스럽던 가을비가 안내래가꼬 나락더미 잘 널었당게라.
비가 왔으믄 움도 뛰도 못허고(진퇴양난) 쌩고상을 했을 거신디 말이여라.
날씨가 아조 한몫을 톡톡히 해부렀당게요이.
술망텡이(주정뱅이) 우리 아자씨도 어뜻허믄(걸핏하면) 입서리에 술 적시셨을틴디
날씨가 좋응게로 공날 하루도 없이 성실허게 나락가실 잘 해주셨고라.
괴깃댕이라도 사가꼬 대접을 잘 해야 안 쓰겄소잉.”
장날 버스를 기다리며 말동무들 저마다 한소리씩.
“갱아지가 꼭 옷도독놈의 까시(도깨비바늘)같당게라.
저라고 내가 좋응가 장바닥까지 붙어서 따라갈락 안허요.”
큰길까지 따라나온 강아지를 쫓으며 버스를 타신다.
방귀를 뀌고 내달리는 버스를 향해 강아지가 커겅컹 짖는다.
말동무들이 자리를 비운 버스정거장. 앉아보니 온기가 아직 남아 따뜻하구나.
여기서 강아지랑 둘이 아지매들, 말동무들을 기다려볼까나.
눕다보면 드렁드렁 코골면서 잠들지도 몰라라. 강아지 벌써 앞발을 베고 누워 단단히 기다릴 채비렷다.
[아낙네들]
외등 켜진 콧잔등,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집 두고도 논일은 줄지 않으니 한숨이 깊다.
별쭝맞은 돌풍은 뼈품 팔며 고된 일하는 남정네 짚모자를 날린다. 쉬어가며 하자는 소리.
명성황후 못잖은 부녀회장님 출타했다 돌아오듯 장한 탈곡기 대자로 궁둥이 흔들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락 물결도 점차 자지러드는 늦가을 어간.
대추나무와 감나무, 열매를 거반 털려서 새들의 만찬이 조촐하겠다.
굴뚝 연기들 모두 승천하시고 숭늉들 마실 시간.
저녁은 싸늘하고, 밤은 어제보다 춥겠구나. 작년에 땔감을 넉넉하게 해두어서 첫눈까지는 버틸 수 있을 터.
참나무 쪼개서 난롯불에 던지는데, 탈탈탈 경운기소리 늦은 도착을 알린다.
아낙네들 내리는갑다. 허위허위 골목으로 사라지는 아낙네들.
담양들녘에 산재한 하우스에서 품 팔고 늦은 밥상에 노곤들 하시겠다.
물 말아 김치 얹어 뚝딱 먹고 나면 아재랑 몇 마디 도란거리지도 못하고 먹잠에 빠지고 말리라.
삭신 아프지 않은 데 없어도, 자식들한테 짐 될 수 없다고, 잠꼬대조차 이를 앙당 문다.
이 나라 이 강산 아낙네들 그렇게 깊이 잠드는 가을밤. 어둡지 않으면 이때껏 일하고도 남을 그이들.
캄캄해서 고맙다. 눈 어두워서 고맙다.
섬마섬마 걷는다는 손자가 꿈에서 나와 절로 웃음이 번지는 얼굴.
옆에서 뉴스 보다말고 담배 꼬나물던 아재가 자다말고 히죽거리는 각시를 보더니
“인자 미쳐부렀능갑네” 한다. 그러다 짠해서 다독다독 이불 덮어주고, 수세미마냥 깔깔한 손 잡아주는 밤.
캄캄한데 살아줘서 고맙다. 나 같은 놈한테 눈 어두워서 고맙다, 그런다.
[안녕! 오리]
안녕! 오리….
체하지도 않았으면서 왝왝거리고,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뒤뚱뒤뚱.
철없는 강아지랑 김장배추밭 초토화시켰다가 미운 죄는 혼자 다 뒤집어쓰고
집 밖으로, 아니 국외로 추방당한 오리들이 냇가에서 자주 까치발을 세우며 살던 집을 톺아본다.
새하얀 우윳빛깔 오리알을 갖다 바쳐도 한 번 토라진 주인의 맘이 쉽게 풀리지 않자
오리들은 기절할 만큼 꽥꽥거리며 농성을 벌이기도.
냇가에 길게 놓인 다리를 오가다가, 다리 아래 웅성거리는 오리들을 구경하면 재밌다.
흰주름 갓버섯이나 흰삿갓 갈때기버섯처럼 고개를 빳빳이 높여 세운 오리 마을 이장님이 맨 앞에서
인솔을 하고, 나머지 오리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흩어지면 죽을까봐 종종걸음.
그러다 물속으로 참방 입수한 뒤부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심되는 표정으로 수영을 즐긴다.
집이야 나중에 들어가면 그만, 미지근한 가을 물살을 가르면서 입술마다 히죽이죽...
뽀짝 아랫마을엔 오만가지 오리 요리를 구사한다는 음식점 ‘덕 있는 집’이 성황이더라.
도널드 덕이 그 집 마스코트, 가족 단위로 군침을 흘리면서 북적거린다.
오리들이 보았을 때는 살벌한 도살장이 이토록 가깝게 위치해 있는데, 냇가 오리들은 태평세월.
행복이 입술에 걸리다 못해 지나쳐서 찢어진 얼굴들을 하고 생애를 즐기면서 살아간다.
이 냇물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유유히 헤엄치는 때문이리라.
때론 바깥세상 모르는 게 명약인 경우겠다.
그러고 보니 온천행 효도 관광 말고는 바깥 구경이 일천한 우리 동네 주민들이
왜 그렇게 행복한 얼굴들인 줄 이제야 알겠다.
많은 걸 알아버리고 나면, 슬프고 아프고 답답한 게 또 인생이리라.
[두꺼비 하품]
눈 멀뚱멀뚱 궁글리며 벌통 아래 납작 엎드려 있다가 지친 벌 굴러 떨어지면 날름 삼키는 두꺼비.
한봉 치는 동무네 갔다가 동무는 관두고 두꺼비랑 둘이 놀았다.
요놈은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칠순의 이장님처럼 느릿느릿 뒷짐을 지고 걷다가 마들을 내다보더라.
그 장면, 진짜 영험해 보였다. 혹시 백년 묵은 두꺼비 아니냐? 물어봤더니
두꺼비왈, 너 테레비 너무 많이 봤구나? 모자란 놈 보듯이 혀를 쯧쯧 대더라.
어떤 시구에 보니깐, 벌새는 1초에 90번 날갯짓을 하고,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을 들이친다던가.
그런데 두꺼비는 남이 밥을 해 잡숩든 죽을 쑤어 드시든 관심 밖이다.
노련한 베짱이랑 짝짜궁을 하면서 천하의 게으름뱅이로 니나노 세월이다.
잔망스럽게 설레발치면서 살지 않고, 큰 욕심도 버린 은둔자.
가끔 벌통 앞이나 외등 그늘에 쪼그리고 있으면 허기는 대충 해결.
몸에다 햇살을 차곡차곡 쟁이던 나락과 배, 사과는 날이 다르게 굵어가고
두꺼비도 체중감량에 실패했는지 헤비급 선수만큼 몸무게가 늘었구나.
급기야 두꺼비가 아하암- 하품을 한다. 두툴한 입술을 벌리는 게 꼭 그러는 것만 같다.
사람도 두꺼비처럼 한가하게 살아도 되는 것인데….
육상경기 백미터 달리기 같은 ‘사람의 시간’이 두꺼비 앞에선 잔망하고 민망스럽기 짝이 없구나.
두꺼비에게 오늘 한수 옹골지게 배웠다.
요즘 여러 일로 무리를 했더니 뒷골이 댕기고 괜한 짜증만 늘었는데.
욕심들 내려놓고 하품 늘어지게 하면서, 여유를 되찾아야겠다. 급한 길도 돌아가면서 말이다.
그대도 나도 쉬어가면서 천천히!
[외할머니]
햇밤을 까먹으려니까 이런 날카로운 밤가시 속에 숨어있는 아삭아삭한 밤알,
마치 고슴도치의 물렁한 속살과 같은 밤알이 신기하고 놀라울 수밖에.
데굴 구르다 발끝에 멈춘 밤을 집게로 가득 주어다가 속알을 뒤집어 꺼내 먹으면
내가 마치 군밤장수나 되는 것처럼 오지고 째지고!
오늘은 밤과 쌀로 짓는 밤밥을 해먹으려고 전기밥솥을 살피다가 문득 외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엄마의 엄마, 우리 외할머니. 병원을 운영하던 막내 이모를 그늘삼아 홀로 된 병든 외할머니가 깃드셨다.
그때 외할머니는 코흘리개인 나보다 더 어린 아이가 되어가지고
밥을 드시고도 또 드시겠다며 이모를 달달 볶았다.
밤밥을 한 그릇 받으시고는, 엄마랑 문병을 온 내게도 한 숟갈 그리고 당신 한 숟갈.
“맛나냐? 맛나부냐? 밤이 섞인 밥은 젤로 맛이 읎드라. 이빨이 성해야 밤알을 씹든지 말든지 허재.”
그러시고도 혼자서 꾸역꾸역 한그릇 뚝딱.
늦게는 찐 밤을 또 날쌔게 까서 드시고는 애처럼 새근새근 잘도 주무셨지.
밥상도 뒤로 물리고 아주 깊디깊은 잠을 주무신 날,
외갓집 가족들은 모두 모여 엄마 잃은 아기 고슴도치처럼 엉엉엉 울었지.
요새는 외로운 할머니라서 외할머니라던가?
수시로 외갓집에 드나들며 외할머니 동무가 되어주던 아이들이 사라졌다.
손자들이 안 보이자 온 세상 외할머니들은 외로워서 엉엉엉 운다더라.
[애꾸눈]
한학에 빠져 사시는 정민 선생님. 펴내는 책마다 보내주시어 정성에 감동해서라도 읽곤 하는데,
책에 명나라 무명씨의 시 한수 소개되어 있더라.
“저물녘 단풍 든 언덕길에서, 날 보내는 장인의 정이 깊구나. 서로 잡고 흘리는 이별 눈물은 단 석줄.”
두 사람이 어떻게 석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인가. 장인이 애꾸눈이었단다.
귀한 딸을 데려간 백년손님 사위가 찾아오면 반가워서 술 한 잔, 헤어질 땐 아쉬워서 눈물 한 줄.
생각만 해도 찡한 애꾸눈 장인어른.
세계 어딜 가나 공통인 신호등 색깔.
빨간불과 파란불은 교대로 윙크를 해가면서 짝을 이루지만 노란불은 외로운 솔로.
추수 때면 도로에 트랙터며 콤바인 탈곡기, 고주망태 아재들의 랄랄라 오픈카 경운기까지 씽씽 달리니까
아예 교통경찰 김순경은 삼거리 신호등에 노란불 하나만 켜두었다.
성실한 애꾸눈 신호등은 길 지나는 차량마다 조심하라고, 양보하라고 쉴 새 없이 눈치를 준다.
애꾸눈 잭이나 후크선장처럼 무서운 얼굴이 아니다.
살가운 신호등 앞을 지나며 유치원생 병아리들은 손을 높이 들어 인사하고,
초등학생 강아지들은 가을운동회 노란 풍선을 따라 건너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스무 살 구름 이는 노을보다 빨리 할머니 계시는 집으로 서두른다.
애꾸눈 신호등이 외로울까봐 하루 한 번씩 태양과 달이 찾아와 한 몸을 이룬다.
노란불은 그 순간 온전한 두 눈이 되어 파르르 떨면서 좋아라 한다.
길 건너 은행나무도 노란색깔로 색을 바꾸어 애꾸눈 신호등의 한 몸이 되어준다.
노란색들이 자꾸 늘어가는 가을. 애꾸눈 노란불은 이 가을 외로울 새가 없다.
그대의 애꾸눈 장인어른은 시방 어디에 계시는가.
[미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는 며칠 남았으니까 오늘은 ‘미리 크리스마스’겠다.
아기 예수님 생일잔치 준비로 교회와 성당 신자들은 무척 바쁘시겠다들.
절집안 벗님들도 평화를 기원하며 소나무에 성탄 방울도 달고
일주문에다 축하인사 현수막을 내걸기도 하였더라. 고마운 불심에 감동한다.
나는 담임 맡은 교회 없이 유랑승, 방랑승이다 보니 해마다 순례자로 떠돌면서 성탄절을 보내곤 한다.
올해는 어디로 찾아가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뵐까.
경상도 오지로 여행을 간 외국인이 있었단다.
마을버스 정거장에서 할머니랑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데, 흙먼지를 날리며 드디어 버스가 도착.
할머니는 코쟁이 외국인을 나름 챙기겠다고 “왔데이!” 그러자 외국인은 눈알을 궁글리며 “먼데이”라 대답.
할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지팡이로 버스를 가리키며 “버스데이”,
외국인은 그제야 빙그레 “해피 버스데이 투 유!” 그러더란다.
구닥다리 유머라 썰렁할까 싶지만서두, 암튼 성탄절은 즐겁고 복된 아기 예수님 생일, 후-후-.
비정규직 일당 노동자는 물론이고 정신없이 바삐 사는 직장인,
저마다 귀한 아이가 한 명씩 있고, 그 아이들이 바로 베들레헴의 작은 예수님이시다.
부잣집 아이든 아니든 급식 챙겨서 꼬박꼬박 먹이고,
야만스러운 체벌 없이 정중하고 지혜롭게 교육하는 일보다 급하고 소중한 나랏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전쟁 불사 막가파식 군사훈련은 날이면 날마다….
한쪽에선 무상급식 복지예산이 아까워서들 난리 목청이다.
아주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의 복음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는 분들을 뵈면 놀랍고 기가 차다.
기쁜 성탄절, 예수님의 생일상까지 뒤엎는 저 용기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촌놈인 나만 모르나. 너무너무 궁금해서 못 참고 “먼데이?” 해보고 싶다.
[예수님과 부처님]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실 거야. 그게 그분의 직업이거든.”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명쾌한 유언이다.
인과응보, 죄와 벌 따위 훌쩍 뛰어넘는 ‘자비와 사랑, 무한용서’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짧은 인생살이 끝날, 특정종교를 믿지 않았대서 영원한 지옥 불구덩이에 밀어뜨리고
무서운 독뱀을 풀어 물어뜯게 한다는 엽기에다 잔악무도한 하나님은 절대로 없다.
무지한 시절 슬로건이었다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망발의 입술이요, 오만한 악다구니렷다.
지옥은 중앙난방이 잘 되어 있다나.
연탄불 갈지 않고 기름보일러 때지 않아도 마을 전체가 다순 겨울을 날 수 있는….
차라리 지옥 불에 몸 녹이고 싶은, 춥고 배고픈 이웃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만의 천국’보다 지옥이 백배 천배 살기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거의 고사 직전인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가 지구상의 몇 나라에 아직 잔존해 있다.
게다가 권력까지 쥐고서 착하고 약한 이웃들을 골라 괴롭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기에 또 빠지지 않고 있으니 크나큰 골칫거리다.
사상의 자유,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에 가장 큰 걸림돌도 바로 이 호전적인 반공 개신교 세력이다.
언제서야 제국의 십자군들이 먼저 무장해제하고 예수님의 평화와 오병이어의 나눔을 실천할까.
1등만의 냉혈한 독식과 승리 정복주의, 끝도 없는 욕망으로 부르짖는 부흥성장,
은행 돈까지 빌려 세우는 저 마천루 예배당에서 숭배되는 ‘자본주의 가짜 하나님’은
어느 때야 그 추하고 허접한 정체가 들통날까.
철딱서니 없는 ‘땅 밟기’와 누가 봐도 확연한 ‘종교 편향’까지 서글픈 무저갱의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예수님의 불초 제자로서 부끄럽고 죄스럽다. 겸손하고 자애로우신 예수님은 부처님의 가장 좋은 친구이시다.
‘예수 천당 불신 극락’이라면 두 분이 목젖이 보이게 껄껄 웃으실까.
[동방박사 세 사람]
성탄절이면 가깝게 지내는 스님들이 축하 인사를 해온다. 내 생일도 아닌데, 생일 축하한다고 그런다.
미국 땅에서 요가센터를 운영하는 혜원 스님은
내가 신학생 때, 그가 학승일 때 만났으니 길고도 질긴 인연이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 불가피한 인연으로 불가를 떠났지만, 내게는 여전히 청아하고 장난기 많은 스님이다.
여기 산골짝 집도 그 친구 덕택에 터를 잡아 기와를 얹을 수 있었다.
누구든 먼저 죽으면 상주가 되어주기로 한 절친 사이.
올해 친구가 보내온 성탄엽서엔
“사람이 불타 죽어 장사도 지내지 않는 마당에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렬이라니 가슴이 미어지네.
멀리서라도 용산을 잊지 않으며,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운문사에 지내며 승가대학에서 화엄경을 가르치는 진광 스님도 내겐 동방박사 같은 분이시다.
거르지 않고 쌀가마니와 과일을 챙겨 보내주시고, 뵈올 때마다 바닥이 훤한 지갑을 탈탈 터시면서
내 고단한 자취생활을 염려하신다. 스님은 참 가난하고 맑은 분이시다.
스무 살에 출가하여 줄곧 승풍이 엄한 운문사에 지내시면서 청빈과 순명을 다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산다.
또 다른 한분 동방박사는, 무등산 증심사의 일철 스님.
띠동갑 일철 스님과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둘이 의기투합하였다.
뻣뻣한 사내들 둘이 전화기를 붙잡고 살면서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그리워했었다.
‘무등산 풍경소리’라는 매달 열리는 환경음악회도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암이라는 무서운 병은 스님과 나를 질투하여 딴세계로 갈라놓았다.
내가 죽으면 누구보다 먼저 마중 나와 반겨주실 일철 스님!
종교란 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을 만드는 일이니만큼 다정하게 오고감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다툼보다 평화가, 미움보다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 찼으면 좋겠다.
[옥수수별]
이 지구별은 누가 뭐래도 옥수수별이다. 옥수수를 따서 광주리에 담고 걸어오시는 저 오진 걸음걸음들.
온 식구가 옥수수 한소쿠리 삶아 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으면 지구는 그 순간
어떤 별나라보다 노랗고 푸른빛을 뿜어낸단다.
이슬람의 지혜자 수피나 이맘, 인도와 히말라야 산기슭에 은둔한 승려들,
멀리 그랜드 캐니언의 인디언 추장님이나 그리스 정교회 신부님들처럼
옥수수는 희고 긴 수염을 멋들어지게 나풀거린다.
나도 아직은 젊은 오빤데 흰 수염이 제법 생겨나설랑 옥수수를 닮아가고 있는 중이렷다.
읍 동네에 있는 하버드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했고,
옛날 깐날엔 서울대 뒷산 달동네 교회에 찾아가 가끔 설교도 했고,
커피에 연세대 우유를 계절학기로 한 번씩 넣어 마시는 것 말고는 학벌도 뭣도 별 볼 일이 없는 촌뜨기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옥수수를 사랑하고 옥수수를 닮아가고 있음은 얼마나 놀라운 발전이며
이른바 ‘업그레이드’ 아닐손가. 나는 고작 겉멋이나 들었다면 그대는 마음조차 옥수수를 닮았어라.
한없이 정이 많고 후덕하며 한 뼘은 높은 덕망으로 살아가는 멋쟁이니만큼.
“아랫시욤이 참말로 닮았소야. 옥수수 시욤물이 몸에 좋다든마 그 시욤도 한번 삶아 자셔보쇼야.
만뱅통치가 따로 없겄소.” 옥수수 벗기는 구경을 하다가 얻어들은 농.
인정 많은 할매들한테 옥수수 다섯 알을 얻어와 삶았는데,
내 수염은 나중에 죽어서 지구별 생명들에게 드리기로 하고, 행여 빠트리지 않고 청결하게 삶았지.
여름이 다가기 전에 옥수수를 쪄먹자.
혼자 차지해 먹지 말고 남과 북, 동과 서 말뿐이 아니라 공정하고도 평화롭게 나누어서 먹자.
수해로 옥수수도 못 먹을 처지의 북녘 아이들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러브스토리]
언젠가 이해인 수녀님이 내게 보내주신 편지 봉투엔
책갈피에서 곱게 개어진 마른 풀꽃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객지로 이사하며 잃어버렸던 그 작은 선물,
지난 밤 수녀님 시집을 간만에 꺼내 들었는데 고맙게도 거기 숨어 있더라.
대설 즈음, 이다지 추운 날에도 사랑스러운 꽃들은 피어나누나.
창밖에 겨울 나무, 새하얀 눈꽃을 보라.
수녀님 시집엔 책갈피 마른 꽃, 나는 물감을 풀어 붓을 들고 반가운 눈꽃을 그리고 있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을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 속에 나 혼자 감당 못할 사랑의 말들은 내 가슴속으로 녹아 흐르고,
나는 그대로 하얀 눈물이 되려는데….”(눈꽃 아가)
수녀님의 시는 현란하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간결하여 참 좋다. 그래서 울림이 배나 깊은 거 같다.
수도자나 시인이나 결국 사랑을 노래하는 거 아닌가?
꽃들도 그러하리라. 겨울엔 눈꽃이 피어 사랑을 찬미한다.
제발 그만 지구별을 더럽히고 시릴 만큼 순백한 영혼이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의 배신과 모욕, 위선과 과욕, 시시콜콜 갈등과 분쟁으로 지저분한 세계가 되었다.
돈독이 올라서들 돈을 볼 때야 좋아들 하지 꽃 한 송이 사랑할 줄은 잊어버렸다.
눈이 쌓여 장사를 그르칠까봐 걱정부터 한다면 인생은 되우 서글프고 심심하겠다.
무지한 악플러들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파시즘에 사로잡힌 자들이 재결집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를 보며 자라고 있으니 훗날이 두렵고 무섭다.
그대여! 우리부터 어서 공원에 나가 눈꽃을 만져보자.
눈꽃 아래 순백한 영혼들로 거듭나서 영화 <러브 스토리>처럼 뒹굴기도 하여보자.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하는 ‘Snow floric’을 주제가 삼아 “잡아 볼텨?” 하면서 순진무구 유치한 사랑놀이라도,
오! 우리부터 먼저….
[모차르트]
케냐의 커피농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좋아해 자막까지 죄다 외울 지경이다.
특히 테마곡으로 흐르는 모차르트의 선율은 내가 존경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 목사님이 스위스 산간 오지에서 외로이 목회하실 때 위안이 되어준 친구란 것도 솔깃하게 만들고….
클라리넷을 전공한 친구에게서 연습용으로 쓰던 클라리넷을 선물받아 틈틈이 불어보고 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아다지오 한 부분이라도 내 입술로 연주하고 싶은 바람에.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 ‘삑사리’가 장난 아니다.
집 앞 고추밭에서 풀 뽑던 할매가 “무신 때까우(거위) 우는 소리가 그라고 요상하다요?” 하신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인데요, 모차르트가…”
“모자르다고라. 머시 모잘라부러라잉.” 에고 대고 내가 말을 아예 말아야지.
사납고 거친 이 세계에 은은하고도 잔잔한 음악이 있음은 감사 또 감사렷다.
묻노니 그대는 어떤 악기를 연주할 줄 아시는가.
단체로 노래방에 들어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가요 열창도 뭐 사는 재미 가운데 하나겠지만,
그래도 악기 하나쯤 배우고 익히신다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씩 모차르트도 가까이 하시길.
옥수수 잎에 앉은 풀벌레도 모차르트라면 무릎을 탁 꿇는다.
통기타는 대충 막걸리조로다 독학했고, 하와이안 우쿨렐레는 여름철 가장 절친한 피서 친구다.
남미여행 때 배운 잉카 피리, 그리고 찬송가와 동요 정도는 풍금으로 조금 켤 줄 안다.
거기다 클라리넷까지 익혀 모차르트를 근사하게 연주할 날을 고대하며 나는 숨을 양껏 들이마신다.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가도 우리가 인간임을 결코 잊지 말자.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인간임을….
[빨간 목장갑]
영화 속의 외계인 손처럼 우글쭈글한 빨간 목장갑이 빨랫줄에 널려 있다.
빨래집게에 물린 녀석은 땅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고,
어떤 녀석은 평등의 별로 떠나는 다음 편 비행접시를 기다리는지 허공으로 기다란 손을 뻗고 있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집 마당엔 빨간 목장갑 몇 켤레는 기본으로 널어져 있다.
몸에서 핏기가 다 빠져나가도 손바닥만큼은 빨간 핏물이 도드라질 노동자의 손.
자기 조국에서조차 유배당한 노동자 농민, 이들은 걸핏하면 외계인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소외되고 격리되고 정치세력을 만들어보려 하면 고강도 탄압에다 번번이 발목을 잡는 다수당의 횡포.
그러다가 결국 지문도 닳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이 잘리기도 해 세손이 네손이 진짜 외계인 변신까지 하게 되기도.
잘나가는 여인네는 물론이고 사내들도 네일숍에 들러 손톱 끝까지 보기 좋게 가꾸는 시대라지만,
민중들의 거친 손은 빨간 목장갑이 있어 그래도 안전하게 지켜주고 매만져주는 것인가.
요샌 녹색 목장갑도 절찬 판매 중, 철물점에 가면 가지가지 색상의 목장갑이 보이더라만
그래도 빨간 색깔이 원조 목장갑이다.
노동자 농민을 응원하는 붉은악마 응원단, 빨간 목장갑들은
월드컵 4강보다 더 굉장한 성취와 승리의 새날을 향해 오늘도 곳곳의 노동현장에서 응원전이 뜨겁겠다.
흙칠갑을 한 목장갑을 털고 경운기에서 막 내린 점만이 아재, 을식이 아재, 월산댁 아지매, 삼다리 아지매.
제국의 해외조립공장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 자매형제들도 모두들 빨간 목장갑 차림이다.
포악한 자유무역의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가난한 동무들이 빨간 목장갑을 낀 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피땀을 닦고, 눈물 콧물을 훔치고 그러면서 사는 걸까.
[들장미]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난 어여쁜 그 향기에 탐나서 정신없이 보네.
장미화야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슈베르트의 가곡 ‘들장미’를 종종 입에 머금는 즈음이다.
나비떼처럼 팔랑거리면서 산밭을 오가는 사람들,
찔레꽃이 어찌나 예쁘던지 다들 멈칫하고 꽃바람에 젖어든다.
우리나라 들장미 이름은 찔레꽃, 어둑어둑한 세상에 불켜진 봄밤의 가로등 닮은.
집터에 딸린 채전밭 말고도 양지바른 산밭에 도라지도 심고 매실나무도 가꿀 요량으로
이장 형님에게 한 뙈기 물색해주시라 부탁드렸더니 산길에 인접한 조그만 무덤 터를 한 번 일궈보라신다.
사는 날 동안 그냥 밭은 공짜로 임대, 이장 형님이랑 병어 찜에다 맑은 술 한잔이면 그걸로 계산 끝이 된다.
둘러보니 엄동 혹한에야 피는 성에꽃처럼 세상이 어두울 때 가장 하얗게 핀다는 들장미가 나를 반겨주었다.
혼자 남겨질까봐 졸졸 따라다니던 그림자도 들장미를 보더니만 단번에 반해서 나를 떠나가 버렸다.
그림자도 잃어버리고 돌아온 오후, 한 번 돌무지를 일궈보겠다고 결심을 세웠다.
그리고 산밭에 매달리기를 며칠, 땀으로 멱을 감으면서 낑낑거렸더니만 제법 밭모양이 생겨났다.
친구들은 나라 걱정에 불면증까지 앓는다는데,
나는 피곤에 절어 초저녁에 밥상을 물림과 동시에 곯아떨어지고 만다.
산밭 입구에 핀 들장미, 찔레꽃 덩굴을 보는 맛으로 벌떡 일어난다.
세상사는 맛이 이 정도면 족한 것인데 너무 과한 욕심들을 부리지는 않는 건지….
노른자 땅에 피는 돈꽃을 탐하다가 돈독에 오른 사람들은 절대로 모를 테지.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저 아름답고 눈물겨운 들장미를 노래한 슈베르트의 연민 어린 영혼,
그리고 그 향기에 탐이 나서 다가갔다는 한 아이의 맑은 영혼을.
[씨감자]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둥그렇게 모여 묵찌빠 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은 전자오락기 앞에 각자 따로들 한심스럽고,
회관에 모여 찐 감자를 나누며 나랏일 걱정하던 장년들도 벼멸구처럼 야비한 웃음을 흘리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굽실대는(딱 선거운동 기간만) 먹을 복 앞에서나 히히대는 통.
그래도 나는 감자가 좋더라.
감자탕엔 뼈다귀 말고 감자가 푸짐해야 행복하고, 잘게 썬 감자로 끓인 된장국을 좋아라 하며,
한뎃바람을 피하고서 난로에 굽고 호호 까먹는 감자는 얼마나 고소하고 배부르던가.
몇 해 전 아일랜드 더블린에 한 달포 머물며 지냈었다.
이른바 ‘감자 대기근’으로 굶어죽은 사람들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을
오다가다 거리에서 두려움으로 마주치곤 하였다.
감자 하나에 목숨 하나였던 나라가 어디 아일랜드뿐이었겠는가.
우리도 그만한 무서운 가난을 헤쳐나온 민족이었다.
애지중지 씨감자마저 나누고, 상부상조하면서 서로의 논밭을 돌보던 정이 넘치는 민족이었다.
키 작은 감자꽃을 닮은 문턱 낮은 집에서 빠져나온 김씨 어른은
“이따가나 비온닥하듬마 두엄을 어야 내야쓰겄는디 워짜까.”
녹물 짙어진 삽이며 쥐가 물어뜯어 해진 삼태기를 리어카에 싣고서 비짝비짝 답답한 걸음이시다.
리어카 한 대 분량이라도 거들어드릴 겸, 호박 구덩이에 넣고 그러게 두엄 조금 얻을까 청하였더니
“집째 떠메고 가도 괘안응게 암걱정 말고 쓰시쇼이” 아들네 대하듯 정겨운 목소리.
고흐의 ‘씨뿌리는 사람’ 그림 같은 풍경이 들녘을 가득 수놓고, 후북이 봄비 내리기 전에 마음조차 바쁘다들.
땅속에 묻힌 씨감자는 울창하게 밭을 덮을 꿈으로 새근새근 잠들었겠다.
그대의 씨감자도 같은 꿈을 꾸고 누웠을까.
[귄 있다]
산 너머 남촌에서 쓰는 말 가운데 가장 알아두어야 할 말이 있다면 바로 ‘귄 있다’는 말이다.
‘귀염성이 있다’는 사전적 설명은 귄 있다는 말의 쥐꼬리도 알지 못하는 풀이렷다.
방송에 뜨는 서구미인을 가리켜 귄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요쪽 어른들은 어린 처자나 갓난쟁이를 가리켜 귄 있다고 보통 그러는데,
그건 미모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이며 바닥 사람들끼리 서로 알아주고 보듬어 챙기는
어떤 친밀한 동질감의 표현이다.
흔하디흔한 아파트촌의 아이들이 타고 노는 인라인 스케이트도 구경이 힘든 남촌에서
동계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은 까마득한 남의 동네 이야기만 같은데,
“참말로 고 가시내는 귄이 쫙쫙 흐릅디다!”로 시작되는 김연아 찬사는
지난 한 주간 테레비를 끼고 사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올림픽의 호객행위인 애국주의가 그닥 마음에 차지 않지만,
메달을 목에 건 어린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사랑하는 여러 마음은 대개 따뜻하고 다정하더라.
그 사이 민주주의를 거덜내는 자들의 한심한 소행은 여전하였고,
그래서 나는 더욱 입에 거품을 물며 올림픽 잔치에 찬물을 끼얹었어도…
“작두 칼 위에 불쑥 서듯 맹키로 신발짝에,
아니 거시기 칼날 우게 대꿍 올라서가꼬는 빙글빙글 돌다가 막 뛰다가,
한판 큰 굿을 보는 거 같드랑게라. 입서리 뻘겋게 칠한 일본 아그를 그냥 납작코를 맹글어 불드랑게.”
피겨 날을 작두칼로 보는 이런 색다른 할매들의 시선.
한편 값진 메달은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신 어르신들의 쌓인 원한을 씻는 한판 굿이기도 했겠다 싶은 생각.
겨울은 가고 바야흐로 봄날.
햇살 좋은 담벼락에 의자를 놓고 앉아 ‘새아그 며늘아기(며느리)’와 딸 손자 자랑을
해가 질 때까지 늘어놓으실 3월. 나는 그런 이바구라면 더 환하게 반기며 맞장구를 쳐 드려야지.
[공기놀이]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꿈에 누이랑 동무들이랑 옛집에서 놀았는데 눈 떠보니 삐거덕거리는 이층 다락.
다락까지 방이 세 개인 집이라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눕고는 한다. 객지 유랑도 병이런가.
집에선 이렇게 병세를 다스리고 있는 중.
아물아물 시린 눈을 비비니 창문 너머 노란색 국화가 단아하게 반긴다.
블록담장에 가로막혀 더 이상 뻗지 못하는 풀들도 담뿍 우거졌어라.
날 좋을 때 이불 빨래도 해서 널고 장롱도 열어두어 거풍도 해야겠는데,
또 우체부 아저씨나 아랫골 아짐씨가 “차말로 마당에 풀이 송신나요야. 물밀디끼(물밀듯이) 퍼자 부렀네.
에씨요, 요노무 호미로 손노락질(손장난) 헌다 셈치고,
맴생이(염소) 풀 뜯대끼 땅부닥에 앉어 김 잠(좀) 매씨요. 어덤뱅이(거지) 집도 아니고 이거시 뭐시다요.
끄끕하게(꿉꿉하게) 살지 잠 말고 개안하게잉(개운하게), 아시겄소?” 퉁퉁 나무라실 것만 같다.
광명한 남향집엔 엽서만한 구름이 머물고, 선한 정신을 가진 새는 새벽 찬송이 구성지구나.
수일 지나면 나무의 요정들은 색조화장을 마친 뒤 골목 골목을 낙엽이 되어 구르면서
바깥나들이를 즐길 태세다.
명절휴일 때 우중산행을 한 일 말고는 줄곧 삼시 세때 밥해 먹으면서 눌러앉아 지냈는데,
구들장 그만 베고, 냉장고 이글루에 의지한 에스키모 놀이도 그만두고 싶어라.
배짱 맞는 친구들 찾아가 실컷 얻어먹으며 놀고만 싶어.
어렸을 땐 여자 얘들이랑 공기놀이도 했었다. 어제 동네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는 걸 봤다.
손등에 하나 둘 공깃돌을 얹다가 한 개라도 놓치면 지는 놀이.
내 인생의 손등에서 떨어트린 친구는 없었는지,
찬바람도 불고 하니까 바람길 따라 흐르면서 떨어트린 친구들 차례차례 주우러 다닐란다.
[설날 떡국]
명절이라고 남촌에서 공수된 자연산 석화 굴, 초장에 찍어 날것으로 먹고,
남은 것은 떡국을 쑤어보기로 하고 마트에 들렀다. 명절 선물세트가 높이 쌓인 농협 마트,
윤기 도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는 점원들은 받는 월급만큼 상냥하더라.
항상 풀 죽어 고개를 떨구고 사는 떡집 주인장 얼굴이 눈에 밟혀 가래떡은 떡집에 가서 사기로 했다.
틀니를 꺼내 씻으며 꿀떡 가래떡을 되씹어 자시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할매들.
떡집은 명절 앞두고 며칠 호황이더군. 이 할매들 승천하고 나면 떡집은 결국 문을 닫아걸어야 할 게다.
재산과 목숨 줄이 죽죽 늘어나라고 길게 빼낸다는 가래떡,
그걸 동전처럼 동그랗게 잘라 돈벼락 맞아 잘 살아보자는 뜻으로 설날이면 떡국을 쑤어 먹는다던가.
슬몃슬몃 지는 해, 정리해고된 가슴에도 붉게 충혈된 눈마다에도 팔팔 끓인 떡국 한 그릇은
잠깐의 행복이 되어줄 것이다.
서로의 고달픈 삶을 껴안는 듯 떡국 건더기들이 끈끈이 엉켜서 떨어지질 않더라.
그릇 안에 몽글거리던 훈기가 입김과 만나 훅 피어오르면 영감님 돋보기는 앞이 캄캄 부옇게 되고 만다.
숟가락을 잠시 놓고 소맷자락으로 안경알을 닦으면 수선화처럼 환한 당신 얼굴이 둥시렷 보이리라.
육탈한 부모의 뼈마냥 하이얀 떡국은 어느 드므에 담겨진 세월일까.
내가 그동안 먹은 떡국 수를 헤아려 본다.
앞으로 나는 또 몇 번의 설날을 지낼 수 있을 것이며, 또 몇 그릇의 떡국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허심할 땐디 꼬시럼허고(고소하고) 맛나요야. 요고 찰떡 조깐 자셔보쇼.”
딴 생각하던 나를 누가 흔들어 깨운다. “내 떡이 다음차례랑게 통게통게(두근두근)하요야!”
다른 할매는 틀니를 딸그락거리며 왔다갔다 부산스럽다.
- 경향 <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 목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