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성보박물관 현근 관장스님의 <겨울편지>
겨울편지 1 (묶어두고....)
결제... 모두를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함.
이젠 누가 뭐래도 겨울 입니다.
나뭇가지를 휘감는 삭풍 그리고 몇개 남지 않은 매동거리는 까치밥.
영락없는 조락의 계절 겨울입니다.
동안거(결제)시작.
몸도 마음도 묶어 버려야 하는 처절한 고뇌 그리고 애매한 갈등(?).
결제 때 죽으면 저승밥도 못 얻어 먹는 불행. 누가 죽어도 초상을 치루지 않았단 얘기.
그만큼의 망극함으로...
불자님, 이러한 결제를 맞이하여 참선이든 염불이든 사경이든
마음에 부처를 이루려는 수행법 하나를 실천 해 보심은 어떠하올런지요?...
그리하여 언젠가 사그러지는 인생 앞에서 그해 겨울은,
고요와 절망과 심장을 찢는 적막으로 기억 될 수 있게시리...
산을 그냥 산처럼 볼 수 있는 안목. 그런 가슴을 얻게 되는 결제가 되시길 축원 축수하나이다.
겨울편지 2 (귀후비개)
남에 말을 잘 들으려면 귀지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것 같아서 허름한 귀후비개를 하나 사서 차에 싣고 다닙니다.
용도가 다양합니다.
차를 쌩쌩 달리다 보면 문득 귀가 잘 안들리는 듯하여 귀후비개를 들고 귀를 후빕니다.
귀후비개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고 애쓰면서요.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가 천천히 가게됩니다. 안전하게시리요.
같은 것도 사용하기 나름이라는 격언 중 일목다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 한 개비를 가지고도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 귀후비개의 용도가 이렇듯 다양합니다.
아무 것을 아무런 용도로 사용해보는 치기를 잠시 가져 보시길... 재밌다니까요.
좋은 새벽을 맞이 하시길 기원드리며...
겨울편지 3 - 새해인사(또 한 해가...)
한 해가 바뀌는 이즈음에는 갖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여러 의미 있는 일들과 더불어 인생에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일들도 있으실 겁니다.
우리 박물관 식구들께서는 어느 쪽이 많으십니까?.
물론 의미야 부여하기 나름이지만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세상의 그 어느 일도 아무런 연고 없이 일어났다 스러지는 게 없다고 합니다.
모두 인연에 의한 생멸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지난 한 해의 즐거움이던 괴로움이던
모두는 우리 자신이 언제인가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지어 놓은 거 받은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한 해 역시 지난 세월의 지은 바에 따라 희노애락을 겪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과를 피해 살 수는 없습니다.
모두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입니다... 어느 것을 받느냐는요...
밝아오는 한 해 우리 모두에게 건강과 장애 없는 한 해 되심을 축원축수 드리며 새해 인사 올립니다.
겨울편지 4 (인과응보)
후줄근한 얘기.
"나 아프다"... 같은 낱말에 메시지를 스물 댓 곳에 날렸습니다. 심심해서요.
반 이상은 "그래서". 아니면 "어쩌라구--". 나 원 참.
하염없는 대꾸들에 대하여 만감이 오고 갑디다.
아니 아무리 남에 일이라도 그렇지 "그래서"라니요... 아프다는데, 아퍼 죽겠다는데...
옛말에 남에 엠(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합니다.
하기사 내 손 끝에 박힌 가시가 남에 팔뚝에 박힌 말뚝보다 더 아픈 법이긴 합니다만...
뜬금없이 인과응보라는 말은 왜 또 떠오르는가요.
남을 대하길 그렇게 박절히 데면스레 살았다는 얘깁니다.
영혼에 상처를 빙자하여 육체적 고통은 사치라 치부한 과보입니다.
이제 또 한 해가 덧없이 갑니다.
주변에 몸이 아픈 이들을 잠깐 생각해 보는 아침이 됐으면 합니다.
자- 모두에게 커피 한 잔씩을 올립니다.
겨울편지 5(잘 가시오, 이천구씨)
옛날 책 장자에 나온 얘기.
남의 집에서 평생을 수레바퀴만 만들던 윤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그 기술을 물려 줄라꼬...
광 속에 연장통을 꺼내 놓고 갖은 말로 바퀴 만드는 방법을 자식에게 설명...
"자- 해봐라".
어라!... 이게 뭐야. 자기가 쓰던 연장에, 알고 있는 기술에... 당최 이건 아닌데...
똑같은 수레 바퀴가 나오지 않는 까닭은 무언가.
주역(周易) 계사 상(繫辭 上)엔가에 "서불진언 언불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라 했던가.
글로써 말을, 말로써 뜻을 절대로 다 표현 할 수 없다고...
애비의 말솜씨를 탓함이 아니고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말씀.
불자님, 한 해 동안 하신 말씀 중에 말대로 된 건 얼마나?.
그렇다면 나머지는 말인가요? 소린가요?.
장보러 가는 늙은 할배의 지팡이에 새겨진 새 그림만도 못한 말들을 하고 삽니다.
부디 용서있으시길...
모두의 평안을 기원하오며...
굳바이 2009
겨울편지 6 (낙화난상지, 落花難上枝)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에 오를 수 없는 법...
올해 12월 마지막주 월요일에... 벌써 한 해가 다 갑니다...며 드려야할 말씀을 내 지금 합니다.
왜냐...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요.
누가 저승의 일을 물어 옴에 내일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거늘 사후에 일을 묻다니, 하며
혀를 차는 공자를 봅니다.
상두꾼의 구성진 장단에도 "저승길이 멀다드니 문턱 넘어 저승일세"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웬 새해 댓바람에 저승타령이냐구요. 잊지말자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이 됐던 주위에 어떤 관계의 사람이던 간에 한 두명 쯤은 올해도 어김없이 먼 길을 떠납니다.
분명합니다.
그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한탄, 상대에 대한 원망을 줄이려면 진작에 준비를 하셔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떨어진 꽃을 다시 가지에 붙이려는 억지를 부리지 마십시요.
부끄러움을 무릅씁니다.
겨울편지 7 (윗녘엔 눈이...)
살포시 눈을 감고 서울만큼이나 눈이 왔다 생각하시고 읽어 주십시요.
서울은 함박눈이 백년에 한 번 올동말동할 만큼 많이 내렸답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보고 있을라 치면 갖은 상념에 빠져듭니다.
그중에 하나... 서산대사님의 시에
"눈길을 걸어 갈 때 발 디딤을 조심해라. 그대 발자국을 따라오는 뒷사람을 생각하여..." 라는
백범선생이 즐겨 쓰시던 시 구절이 있습니다.
눈길에 앞서가는 사람이 허투루 걸어가면
뒤에 따라가는 이는 아무 생각도 없이 따라가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어린 스님들 앞의 어른스님들께 주는 잠언인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있는 싯구입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힘이 듭니다. 여러모로...
불자님들께서도 아이 한 둘은 키우실겁니다. 그들 행동의 반은 여러분에게 본받은 바입니다.
결과에 따르는 책임은 같이 지셔야 합니다.
오늘은 부끄러워 말을 자릅니다. 잘들합시다. 훗날 더 부끄럽지 않으시려면...
겨울편지 8 (이렇듯이...)
이렇듯이 모여 얘기하였습니다.
동참하신 모두의 마음에 소중한 희망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만난을 헤치고 오늘 이 자리 10년을 지켜내신 소중한 자리에 같이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또 10년이 흐른 다음 우린 어느 모습으로 자존을 확인하게 될까요?.
그동안의 봉사가 조금도 소홀함 없이 계승 발전케 되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1월 중에 있게 될 교육에도 동참하셔서 새로 들어오시는 분들에게 그동안의 경험을 들려 주심으로
좀 더 나은 봉사자가 되게끔 거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 아는걸 뭘 또 받아,, 하시지 말고 경험을 전수하신다는 마음으로 동참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원봉사자분 모두에게 건강함이 깃들길 기원합니다.
겨울편지 9 (회향, 늘 또한 그러하듯...)
회향입니다.
53일. 일년에 칠분에 일. 대장정에 막을 내립니다.
타오르는 불더미 속으로 던져지는 20만 영가의 위패.
이제 이 분들은 또 어디로 가시는가.
제대로 갈데는 있으신가 등등... 생뚱맞은 생각에 숙연합니다.
불자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40여 년을 봉행해 오면서 올해처럼 법석이 빛난 적은 없었다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법문을 들음은 지식을 구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실천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구하는 이에게 착한 일만 하고 살면 된다라는 말...
진작에 알고 있던거라며 코 웃음을 치는 이 앞에
"코 흘리개가 아는걸 늙은이가 행동하려도 쉽질 않다네..."라며, 기억들 하시죠?
회향은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합니다.
성도재(음 12.8)를 맞아 밤을 새워 도 닦는 스님께도 안부를 여쭙니다.
겨울편지 10 (부처님이 이루셨듯...)
나름... 네 번의 명절(초파일. 출가. 성도. 열반일) 중 가장 으뜸이어야 함. 그래야 될 성 부름.
어느 한 날 철,
스님 앞에 "큰스님, 도 닦기가 와 그리 어려운교?" 라며 한껏 껍죽거리는 스님의 등짝을 후려치는 일갈
"니 도 닦어 봤나. 나는 닦아 보질 않아서..." 엥... 애들말로 ㅎ ㄷ ㄷ...
불자님 지난 금요일 새벽별을 보셨나요?.
바로 그때쯤의 그 별을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깊은 숙연의 오묘함을 깨우치셨다죠, 아마...
맥제 일없이 댕기는 절 마니아들이 많은 하수상한 시절입니다.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거 보다야 나을진 몰라도 당최, 원...
부탁컨대 누워있는거 보다야 나을 듯하여 절에 오는 거라면 그냥 더 누워계시기 바랍니다.
천장에다 저승길이나 그려보심이...
구도의 열정이 식었다면 차라리 내생을 기약함이 더 나은 일 일지도 모릅니다.
이 말에 먼 길가는 사람이야 있을라구...
"그럼 시님은...?" 하고 물으면... "야-야,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를 시키겄나..."
발레 선수의 발 뒷꿈치 만큼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갑시다.
겨울편지 11 (총 맞은 것처럼)
너 댓살 된 어린애를 데리고 젊은 내외가 인사를 왔을 적에... 옛-다, 너두 한잔...
집에 가서 그러더랍니다. "와-- 오늘 기분 디게 좋다. 스님이 나 한테두 한잔 주셨다... 엄마"
뭔가 짚히는 거라도?... 얼라는 어른이 되려고 사는게 아니라고 합니다.
나름의 삶은 유정이든 무정이든 그 안에 든 만큼은 다 있다는 평범한 얘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함으로 전쟁을 내서라도 내 모습 비스므리하게 만들어 놔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군상들.
작게는 집안 살림도 그러합니다.
꼭 내 식대로 바꿔놔야... 이건 여기, 저건 꼭 저기가... 하는 방식을 고집하니 티격태격 총싸움이 나고...
한 쪽은 총 맞은 것처럼 후줄근해져 절인 배추 모양이 되고...
이 아침엔 떠나 봅시다.
관념과 아집 그리고 편견에서... 그리하여 우선 제 몸 편하고 집안 식구들이 편하게시리...
제발요, 한시간 만이라도...
맛난 커피 한 잔을 부상으로 드립니다.
Kcop Luwak 이나 Covet Coffee 로... 찌-- 찐하게.
겨울편지 12 (인간, 고통 그리고...)
삶에 있어 모든 부침(오르내림)과 희로애락 그리고 우정과 사랑, 연민을 가슴에 담고
말없이 떠나야 하는 그대. 그 절대 고독과 절망, 비탄의 길을 말없이 떠난 그대,
어찌 가슴이 무너지지 않으랴.
사람은 누구나 어느 만큼을 살다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존재다.
그 가운데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스쳐가고 또 우리는 이 순간에도 인연을 쌓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언제고 먼저 떠나가야 하고 보내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직접 본인이 그 아픔을 겪는 것과 그래야 됨을 아는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상실감과 마음의 아픔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 모두에게 극복이란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 모든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 주어진 일상과 남은 날들과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용기와 힘이
우리 개개인에게는 누구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극단적인 최악의 방법을 여지없이 선택하는 일을 우리는 또한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 선택에 감히 누구도 나약하다거나 바보라거나 하는 손가락질을 할 수 없음을 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아픔의 크기를 어찌 속단할 수 있으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능력이 잠재하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 아침 분명코 해는 떠오른다.
겨울편지 13 (꾸벅, 새해인사 올립니다)
불자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눈이 엄청나게 왔습니다. 세상을 전부 하얗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이런 날은 저수지 옆으로 난 작은길, 미루나무가 듬성듬성 나있는 그런 길을
아는 사람하고 걸어가며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옆에 있는 한 사람은 그냥 콧노래를 흥얼거림으로 내 곁에 있음을 즐거워하고...
난 그사람 어깨에 쌓여가는 눈을 털어내주고...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불자님, 설맞이 준비에 바쁘시죠.
나와 남의 허물은 오늘 내린 눈 속에 묻어두고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백년도 못 살 인생 천년 살 걱정을 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스스로도 용서하시고 남도 용서하시는 세모되시고 내년부터는 건강한 영혼과 육체로 살아갑시다. 아셨죠...
불자님 모두 화이팅...
2010-02-16
- 통도사성보박물관 관장 현근 손모아 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