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일상)

통도사성보박물관 현근 관장스님의 <가을편지>

Gijuzzang Dream 2010. 10. 22. 12:28

 

 

 

 

가을편지 1

 

툇마루에 앉아 담 넘어로 들려오는 가을 지나는 소릴 듣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 구르는 소리를요... 웬 하릴없는 말이냐구요?.

깊어가는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내시는가 해서 말입니다.


가을은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절입니다.

지나온 세월도,, 다가올 세월도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 우야턴 건강 조심하시고 한 권의 책이라도 읽고 넘어가는 계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가끔씩 문안 인사올리겠습니다.

 

 

 

가을편지 2

 

가을 하면 수강생님들께서는 어떤 추억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생각키우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제가 통도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 날은 바로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의 10월 24일 입니다.

70년대 초... 출가 후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두 달을 지낸 후 큰 절로 가라는 스님의 말을 따라

이곳 통도사를 온 게 이 가을 입니다.

 

옛날 책에 '추인낙혼(墜茵落溷)'이라는 어려운 한문이 있습니다.

[추인낙혼 - 墜: 떨어질 추/ 茵: 자리 인/ 落: 떨어질 락/ 溷: 어지러울 혼]

 

같은 나무에 매달린 잎새도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때 그 스님이 저를 이곳 통도사로 보내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저는 어느 곳에서 또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걸 생각하면 매 순간마다 어느 한 순간도 중요치 않은 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계시는 그 자리에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짚어보는 올해의 가을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두서 없이 몇자 적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요. 또 찾아 뵙겠습니다.

 

 

 

가을편지 3

 

이전에 유행했던 노래 가사에 "시월의 마지막 날에..." 하는 게 있었지요?

그래, 오늘 아침 커피를 앞에 놓고 생각나는 사람은 없으시던가요...

문득. 저는 요즘 고민아닌 고민이 있습니다.

 

30년, 40년도 훨씬 넘은 어이 없는(?)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 며칠 전 13년만에 만난 어느 스님에 관한 일입니다.

채 서른도 안된 그 스님을 네 번인가 다섯 번을 본 뒤로 늘 잊히질 않았는데

홀연 나타난 그 스님의 모습에서 제가 지니고 있던 모든 환상이 깨진거죠.

그러면서 고민이

만약 그때 이후로 그 스님을 계속 만나면서 토론도 하고 상의도 하면서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스님의 까칠한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조금은 황당한 의문이 떠나질 않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합니다. 저도 압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지난 세월을 돌려 보려는 마음이 조금씩은 있지 않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월의 마지막 오늘 잠시, 그때 만약 그랬더라면 하는...

 

비도 오신다는데...

 

 

 

가을편지 4 (첫눈이.......)

 

설악산 봉정암에 눈이 내렸답니다.

우선 막내 손톱을 보시죠.

아직도 설레이는 그 마음으로 붉게 물들인 봉숭아 손톱이 남아 있는지,,,

첫눈이 오실때까정 남겨둘 정도의 정성이라면 이젠 님을 맞을 준비를 하셔요.

가고오는 계절 특히 여름 겨울을 느끼기 시작하면 늙기 시작하는거라네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쯤에 계십니까?

구비 구비 돌고 돌아 여기 지금 이 자리에 모두 계십니다.

그리고 잠시 뒤 한 바퀴, 아니 반 바퀴만 더 돌면

더 이상은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세월이 코 앞입니다.

무덤 밖으로 빈 손을 보여주라는 유언을 남긴 사람이 생각 납니다.

모두에게 경종이 될 만한 이 말이 결코 남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 애써 외면하지는 마십시요.

 

이 계절은 늘 이런 상념에 빠지게 하는 묘한 여운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는 살아갈 날 보다도 살아온 날을 점검하는 그런 날,

그런 아침으로 기억되게 하심은 어떠하올런지요?.

별 궁상을 다 떨고 있다고 비웃기는 없깁니다.

 

 

 

가을편지 5 (드디어 비가...)

 

집집마다 두루 무고하신지요?.

사중의 소임자 중 한 스님으로써 문안 인사 올립니다.

여러 시주님의 은혜로 살아감을 한시 반시도 잊지는 않으면서도

때때마다 축원 올림에는 게으름도 있습니다.

하기사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는 건 조금은 무리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요즘 같이 일 많고 탈 많은 세월 속에 좋은 일만 생기게 해 달라니요...

옛말에 "호사도 불여무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아무일 없는 것 만은 못하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 뒤엔 나쁜 일이, 나쁜 일 뒤엔 또 무슨 일이... 그렇게 순환 윤회되어가기에 말입니다.

그러기에 뒤에 일을 끌어들이지 않는 무사. 일 없음이 더 없이 좋은 게 아닌가 합니다.


경전에 "일체심에 무사하고 일체사에 무심"하라는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지나간 일을, 일체사에는 마음을 두지 말라는,,

오늘 아침 혹여 속상한 일이 있으시더라도 무심하게 하루를 보내시고요.

 

담주 월요일 이맘때 또 뵈요~~ 자 모두 화이팅 한번 하시고요... 비온날 아침

 

 


가을편지 6 (서울은 너무 멀다)

 

한양천리라더니 서울은 너무 멉니다.

저희 통도사 성보박물관 부설인 "불교미술사학회"학회장 자격으로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차를 타고 오가면서 문득 천년 전에 내가 태어났다면

지금 이 길을 말을 타던지 걸어가고 있겠구나,, 하는 어줍쟎은 생각에 혼자 웃었습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생각하나...

똑같은 거리를 버스로 이렇게 빨리가니

말을 타고 간 것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여 시간 여유도 많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란 말이죠.

 

문명이 주는 갖가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몸이나 마음은 갈수록 바빠지지 않습니까?.

참 앞뒤 안맞는 얘기입니다. 아무튼 그만큼의 여유를 누리십시요.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으니까요.


오늘 아침엔 또 이런 퉁명스런 생각으로 커피 한 잔을 축냅니다. 모두 건강하시깁니다.


 

 

가을편지 7 (아... 옛날이여)

 

먹을 만큼 먹은 나이가 되면 이런 노랫말이 생각 날 때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인 이 즈음엔... 75년 한 여름에 해인사강원을 18명이 졸업했드랬습니다.

이후 생업(?)에 쫒기면서 남남처럼 살다가 동기 중 한 스님께 축하할 일이 생긴 게 6년 전...

 

뭉치자. 누구의 제안도 딱히 없었는데도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어김없이 만납니다.

거나한 자리가 파할 때면 내일쯤의 작별인사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빈소리의 노랫가락 한 자리를 읊조립니다.

뒤를 이어 17,8,9번의 리듬이... 아--정녕 이렇게 한 생이 가고 마는가?... 하는 심각함도

느끼지 못할 만큼의 폭포수가 쏟아지는듯 하다던 그런 만큼의 느낌으로

세월은 우리 곁을 지나갔구나 함에 뒤숭숭해지기도 합니다.

 

잠시. 어느 길로 여기까지 왔던지 이 모두 우리네 인생길...

그래 고생들 많았네. 많이들 하셨네. 아-- 옛날이여.

 

 

 

가을편지 8 (산수인생)

 

산같고 물같은 인생이라. 어떤 인생일까요...

부침과 영욕은 늘 우리 인간 옆에서 알짱거립니다.

올라간 사람을 내치기도 또는 나락에서 방황하는 영혼을 건져내기도 합니다.


누군들 돌아 보십시요.

영고성쇠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생이 있는가를... 인생이 그러합니다.

그러하기에 인생이라 한다해도 상관없습니다.

이전에는 남을 미워하는 일이 대단한 죄를 짓는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근이 조금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큰 죄악은 바로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로부터 나 이외에 모든 것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을...

 

자기를 보듬어 안을 줄도 아는 불자님이 되셨으면 합니다.

 

또 한 분이 성급한 저승길에 올랐습니다.

 

 

- 2009년 가을,  통도사성보박물관 관장 현근 손모아 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