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제주 '올레'

Gijuzzang Dream 2009. 7. 31. 13:49

 

 

 

 

 

 

 나지막하게 굽이돌아나가는 제주 '올레'

 

 

 

요즘 전국적으로 제주의 ‘올레’가 유행이다.

제주공항에는 올해 들어 부쩍 올레길을 걸어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올레’는 유명해지는 한편 빠른 속도로 잘못 알려지고 있다.

원(原) 의미를 잃어버리고 변질된 의미를 반추하게 될 때 금방은 톡 쏘는 입맛을 느낄지 모르나

두고두고 아껴먹고 음미하는 그 소중한 맛은 간직하지 못하고 만다.

사람들이 그토록 먼 길을 마다않고 허위허위 올레를 찾아오는 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소박한 맛, 무광택의 기억을 찾아서일 것이다. 

    

올레는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길이 아니다.

어느 정겨운 마을 안으로 가만가만 걸어 들어가면 낮은 돌담을 끼고 적요하게 휘어진 길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 들어가면 문득 마당이 나오고 툇마루에 앉아서 콩깍지를 까고 있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

그런 고즈넉한 맛이 올레의 맛이라 할 수 있다.



 

제주의 전통적인 초가를 보면 올레가 있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올레’란 집으로 출입하는 골목길을 말하는 제주어(濟州語)이다.

올레가 반드시 제주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지방에도 이런 골목길은 있겠으나

제주의 올레에는 독특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빛깔과 리듬이 있다.

단순하게 통로로서의 기능만 설명해버리고 말면 어딘가 아쉽고 마음 한구석이 서운해지는 게

제주의 올레이다.

   

시골마을의 웬만한 집에는 거의 올레가 있었다.

생활공간인 방은 옹색할 정도로 작고 보잘 것 없을지언정

제주사람들은 문을 여닫는 장치의 대문 대신에 열린 공간의 올레를 두었던 것이다.

일직선으로 난 올레도 있으나 거의 대부분의 올레는 S자 형태로 리드미컬하게 굽이져 있다.

확 꺾어지는 골목길이 아니라 슬쩍 굽이돌아 나가는 부드러움이 있다.

그래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집은 활짝 열어젖힌 것도 아니요, 완전히 감춰진 것도 아닌 느낌으로 다가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식구들의 정겨운 목소리는 들려오나 세세한 내용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집안에 사람이 있음을 짐작하게만 할 뿐 대화의 내용은 새어나가지 않았다.

 

올레는 열려있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차단벽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렇게 올레는 그 집의 아름다운 여백(餘白)이 되어주었다.
 


또한 올레는 그 집의 탯[胎]줄이었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이웃과 연결되는 끈이었다.

집안 식구들만의 전용도로라 할 수 있는 올레가 끝나는 지점에서 세상으로의 길은 시작된다.

이 접점(接點)에 정주목을 양옆에 세워두고 정낭을 걸쳐두는 집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주사람들은 아무것도 설치하지 않았다. 그냥 열린 공간이었다.

    

그러나 올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문, 마음의 대문이 존재하였다.

제주사람들은 무턱대고 남의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올레의 입구에서 나름대로의 기척을 하였다.

“순덱이어멍 잇이냐?”

“아시, 잇어?”

올레를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서 자신의 방문을 집안사람들이 알아채도록 밝히는 것이 예의였다. 

   

주인도 마실을 갔다가 돌아올 때는 올레에 들어서면서부터,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해서

당신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집안에 있는 식구들에게 알리곤 했다.

출타할 때에도 올레를 나가면서 기척을 하곤 하였다.



 

한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의 입구를 먼올레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마음 좋은 외할머니 같은 해묵은 폭낭[팽나무]이나 멀구슬나무[?檀木]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서있었다. 아이들이 모이면 땅따먹기, 자치기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하였다.

어른들이 모이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그럴 때, 누군가 개역을 타오던가 고구마라도 쪄내오면 나무그늘은 더욱 구수해지곤 하였다.

마을의 최신정보가 나누어지고 근심 걱정이 공유되던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이제 제주의 주거생활이 바뀌면서 올레는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다.

마을의 큰 어르신 같았던 먼올레의 멀구슬나무나 폭낭도 자동차 주차에 불편하다면서

망설임 없이 베어버리고 있다.

    

그 그늘 아래서 건들바람을 쐬며 나눴던 정겨운 이야기들, 맑은 웃음소리들은

어디에 가서 무엇이 되어있을까.

저 나지막하게 굽이져나간 올레를 따라 피던 마농꽃[나도사프란꽃]의 소박한 눈부심을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만난단 말인가!

- 김순이, 문화재청 제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사진 : 박경배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9-07-27                     

 

 

   

 

 

 

 

 

 제주문화상징과 문화재 

 

 

어느 국가나 지역을 막론하고 민족과 지역민들이 공유해 온 ‘상징물’들이 있다.

그 표상에는 자연과 역사, 문화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상징물은 무엇일까.

 

제주는 오래전부터 삼다도, 삼무의 섬으로 불려오고 있다.

제주사람들과 내방객들은 한라산과 돌하르방을 손꼽기도 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제주의 문화상징을 선정하여 선양해 오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었다.

 

그러던 가운데 제주특별자치도정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계기로 문화상징 정립사업을

추진하여 지난해 10대제주문화상징을 선정하고 다양한 활용방안을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제주10대문화상징은 자연유산으로 한라산과 오름, 역사유산으로 4.3사건,

사회생활유산으로 해녀와 갈옷, 초가와 귤,

신앙, 언어 유산으로 제주굿과 돌문화, 제주어 등이다.

모두가 제주의 특성과 내용을 원색 짙게 간직하고 있는 상징들이다.

 

한라산은 제주사람들이 어디에 살든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다닌다.

여기에는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제주도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한라산은 거대한 자연사박물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보존 되고 있다.

 

 
                                 <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 >

 

 

오름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기생화산들이다.

360여 개의 오름은 아름다운 자연풍광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이자 신앙의식의 터이기도 하다.

성산일출봉과 산방산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존 활용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사에 가장 참혹한 역사로 기록된 미증유의 비극이다.

제주공동체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제주사람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픔과 한으로 대물림 되고 있다.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관련 유적과 유물들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 활용할 가치가 매우 높다.

 

해녀는 강인한 제주여성의 상징이다.

해녀들이 캐어낸 해산물은 가정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통해 무속신앙과 민요, 언어 등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 내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과 해녀 노래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갈옷은 무명에 풋감의 즙을 물들여 만든 생활복이자 노동복이다.

복식문화가 다양해지면서 한 때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근래에 이르러 노동복과 현대적 감각을 지닌 복식으로 부활되고 있다.

갈옷은 염색공예기술 측면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출중하다.

 

 
                      < 감즙을 먹인 천을 직사광선에 널어 말리는 모습 >


                                < 풋감을 따서 즙을 내는 장면 >


                                 < 갈옷을 입은 제주 여인들 >

  

제주 초가는 제주적 지리, 풍토에 알맞게 적응되고 고안되어

제주사람들의 생활의 내력을 온전 시켜온 삶의 공간이다.

그러나 주거 형태가 현대식으로 다양하게 변화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국가 중요민속자료인 성읍민속마을과 일부 초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귤은 천년의 재배 역사를 간직한 상징물이다.

조선 시대에는 중요한 진상품으로 관리되었다.

예부터 귤이 익는 풍광을 ‘귤림추색(橘林秋色)’이라 하여 영주십경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지금도 농촌경제의 핵심 산업은 감귤이다.

감귤은 산업,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 재조명 할 때가 되었다.

재래귤이 문화재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제주굿은 기층문화의 기반인 신앙의례의 원형이다.

제주의 무속은 개인신앙 뿐 아니라 마을신앙에까지 힘을 미치고 있어

민간신앙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민간신앙의 생명력은 끈질긴 것이어서

지금도 제주굿은 명맥을 잇고 있다. 제주 큰 굿과 송당리마을제, 신당들이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제주는 화산섬이기 때문에 돌이 지천에 깔려있다.

돌담과 돌하르방은 대표적인 돌문화의 표상이다.

돌하르방은 수호신적 성격을 지닌 석조 조형물이며

경계의 기능을 지닌 돌담은 집과 밭, 들에서 만날 수 있는 제주적 풍물이다.

돌하르방과 방사탑, 성곽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돌담도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노란 유채와 초록빛 보리밭이 어울린 돌담 >

 

제주어는 제주인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언어이며 민속 문화를 표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제주어는 국어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제주방언, 제주사투리 등으로 불려오고 있지만 ‘제주어사전’을 편찬하면서

학계에서 제주어라는 용어를 정립하였다. 축제 때 <제주어 말하기 대회>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수어로서의 제주어를 연구하여 문화재로 전승시키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제주문화상징을 선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활용하고 널리 보급시켜 나가지 않으면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선정된 상징물 하나하나에 대한 활용방안이 강구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총체적인 활용방안으로는 축제의 깃발과 장식물로 활용,

제주학 연구의 심화자료와 학교문화예술 교육자료로의 활용,

문화컨텐츠화와 창의적인 문화제주이미지 선양자료로 활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참여와 행정기관의 예산지원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상징물에 대한 기록문화 사업도 아울러 추진되어 세계 인류가 함께 공유한다면

상징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 현춘식, 문화재청 제주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09-07-20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