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바티칸에서 건너온 '호신십자고상(護身十字苦像)'

Gijuzzang Dream 2009. 5. 19. 00:11

 

 

 

 

 

 

 바티칸에서 건너온 '호신십자고상(護身十字苦像)'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다종교국가로서 종교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

종교문화재라하면 불교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로 뿌리를 내려

전국에 많은 불교유적을 남겼고 국가지정문화재의 절반 가까이 불교문화재가 차지할 정도로

잘 보존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가통치 이념이어서 유교 관련의 건축문화재와 동산문화재도 많이 남아 있다.

서양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던 조선 후기 1784년에 카톨릭(천주교)이 전래되기 시작하여

명동성당 등의 천주교 문화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건축문화재이고

동산문화재로는 절두산 순교박물관 및 순교성지 등에 소장된 소수의 유물 정도가 남아있다.

그런데 18-19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유해(聖人遺骸)가 내장(內藏)된

독특한 형식의 호신십자고상(護身十字苦像)이

8. 15 광복 직 후 북한에서 월남한 한 평신도의 집안에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십자고상(十字苦像)은 일제강점기에 교구사목(敎區司牧)에 전념하다 8. 15 광복 후

공산정권에 의해 피납, 순교한 당시 평양교구장이었던 홍용호(洪龍浩) 주교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홍주교가 1933년 사제 서품을 받을 당시 집전(執典)주교였던

Adrianus Larribeau(한국명: 元亨根,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주교로부터 전해 받은 유물이다.

 

원형근(元亨根)주교 자신도 젊은 사제시절 바티칸에서 어느 대주교로부터 이 십자고상을 전해받아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것으로 이를 제자처럼 아끼던 홍주교에게 다시 전해 준 것이다.

대체로 18세기 말에서 19세기초에 제작된 십자고상으로 추정되며

그 이전에 소유했던 성직자까지 확인할 수 있다면 좀 더 앞선 시기로도 볼 수 있다.

카톨릭(천주교)의 십자가는 여러 형태가 있다.

그중 라틴형(Latin Cross)과 꽃봉오리형(Botonee Cross)이 가장 많다.

성인유해가 내장된 이 십자고상은 라틴형으로

가로 4.5㎝, 세로 8.5㎝, 폭 1.0㎝, 두께 0.6㎝의 작은 크기이며

목에 걸어 길게 늘어뜨리는 팬던트식의 조그만 상이다.

 

상 내부에는 성인의 작은 뼈 조각인 성해를 안치하고 후면에 덮개 판으로 덮었다.

후면의 덮개 판은 십자고상의 상단부를 여닫이 경첩처럼 고정하여

 하단부에 부착된 나사식의 자물쇠를 풀면 덮개 판이 위로 들어 올려져

고상 내부에 모셔진 성해가 공개되도록 만들어졌다.

고상 앞면은 금속부분을 파내고 흑단목(黑檀木)을 상감기법으로 정교하게 박아 넣어

검은색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난을 표현하였고

백색의 금속과 흑단목의 자연스런 흑백의 조화는 십자고상의 예술적 조형미를 돋보이게 하였다.

<도 1> 성인유해내장십자고상(聖人遺骸內藏十字苦像) 앞면 및 뒷면 내부


<참고도 1> 꽃봉오리형 십자고상(19c말~20c초) 앞면


<참고도 2> 꽃봉오리형 십자고상(19c말~20c초) 뒷면


십자고상의 공간 내부에는 보석류로 추정되는 적 · 백색의 구슬 장식 사이사이에

성인의 유해를 정교하게 배열하였다.

성해 위에는 성인 이름이 인쇄된 종이 Label이 비스듬히 덮혀 있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부분이 위치한 십자가 중앙부에는

다른 것에 비해 크게 말아서 만든 띠 고정틀 위에 "Agnus Dei(아뉴스 데이)" 라고 인쇄된 Label이

다른 Label과 구별되게 가로로 덮혀 있다.

Agnus Dai는 천주의 어린 양(羊)이란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여기에 모신 성물은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교회 전통으로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때 밀납으로 만든 조그만 양(고양, 羔羊)을 교황이 축성한 후

신앙의 존엄으로 삼은 예로 미루어 작은 밀초로 만든 조그만 양이 모셔져있다고 추정된다.

이는 곧 십자가에서 수난 당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동일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성해 배열은 위에서 아래로
未詳(성해, Label유실), Meinradus, Agnus Dei(예수 그리스도 상징물),

Victor, Venantius, Marionis, Sabatius, Martyres(순교자의 유해)로 성인(聖人)이 안치되어 있고

좌에서 우로 Euphemia, Elisabeth, 未詳(Label유실), Theresia로 성녀(聖女)가 안치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 상징 성물인 Agnus Dei를 중심으로

상하좌우로 모셔진 11위 등 모두 12위의 성물(聖物)이 안치되어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성해 사이사이에 배열된 적 · 백색의 구슬은

귀중한 성물에는 보석류가 장식된다는 점에서 루비와 수정으로 추정되며

붉은색은 불, 피, 열정, 주의 수난, 죽음을 뜻하고

흰색은 완전한 승리, 부활,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십자고상은 카톨릭교에서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종교적 의미인 죽음과 부활을 표현한 것이고

12라는 숫자의 의미도 12달, 12시간 등의 표현과 함께

거대한 우주의 상징이며 주님의 나라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인 · 성녀의 이름이 모두 이탈리아 등 유럽지역의 인물이란 점은

이 십자고상이 바티칸에서 제작되어 우리나라로 건너온 유물임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 십자고상을 친견한 바 있는 종교사학자이자 문필가였던 故 오기선 신부의 말에 의하면,

적색 구슬의 붉은색은 중세부터 내려오는 카톨릭교회 전통의 방법으로

주교의 인정관인(認定官印)이며 주교의 상징색이라 하였다.

제작방법은 송진액을 불에 구우면 붉은 색으로 변하는데

그것을 녹여서 동그랗게 떨어뜨린 후 조그마한 주교의 인장을 찍은 것이라 하며,

카톨릭 교회 법에서 성해는 교회의 허가가 있은 후 공경의 대상이 된다는 규정에 의해서

이 십자고상 내의 붉은 구슬은 관할 교구장의 인증이라고 말하였으나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도 2> 성인유해내장십자고상(聖人遺骸內藏十字苦像) 뒷면, 내부상부

 

<도 3> 성인유해내장십자고상(聖人遺骸內藏十字苦像) 뒷면, 내부하부


그러면 이 고상이 어떻게 한 평신도에게 전해지게 되었을까. 그 유래는 이러하다.

일제의 온갖 탄압과 착취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켜온 평양교구는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자유와 평화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리라고 믿었으나

광복직후 한반도가 분단되고 북한지역에는 공산정권이 세워져

그들의 장애물인 종교인에 대한 핍박과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45년 11월 경 평양교구의 홍주교와 동향이며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신앙이 깊은 교우 한비리바는

남한 행을 결심하고 하직 인사차 주교님을 찾아뵙고 함께 피신하기를 청하였다.

홍주교는 "목자는 양의 무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양을 버리고 떠나지 않는다.

나는 어린 양이 남아있는 평양교구를 돌보아야하니 한비리바는 가족들과 함께 떠나라.

그대와 가족을 위해서 특별히 미사를 봉헌하겠다." 라고 말한 후 품속에서 조그만 십자고상을 내보이며

"이 고상은 성인들의 뼈가 모셔진 귀한 성물인데 바티칸의 대주교님께서 오랫동안 귀히 모시고 있었고,

그후 元주교 (Adrianus Larribeau)님이 사제 때부터 모시고 계시다가

내가 사제 서품을 받을때 특별히 나에게 주신 것이다.

나는 공산당들에게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다.

그래서 이 성물을 보존하기가 어렵겠다 생각되어 누군가에게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 마침 한비리바가 잘 왔다.

사사롭게는 나와 고향형제와 다름없는 그대에게 이 고상을 주게되어 기쁘다.

잘 모시기를 바라며 남행 때 몸에 꼭 지니고 있으면

주님과 성인의 도우심으로 공산당 위험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다." 라고 말하였다.

가족을 이끌고 남행을 결행한 한비리바는 이 고상을 목에 걸고 며칠만에 남한에 무사히 도착하였고

월남한 주민에 대한 남한의 신원조사관은 목에 걸린 십자고상을 보고

종교를 믿는 사람은 공산당일 수 없다면서 신원조사를 생략하였다 한다.

그로부터 이 고상은 한비리바에 의해 모셔지게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후손에 의해 현재까지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성인유해가 내장된 독특한 양식의 이 십자고상은

불교에서 불상을 조성할 때 부처님의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상징물을 복장 안에 넣거나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浮屠)처럼 천주교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고 정교하게 제작한 성물(聖物)로서

카톨릭 신자의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 되는 카톨릭의 성보(聖寶)이다.

이러한 성물은 바티칸 교황청의 엄격한 관리 하에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극히 제한적으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천주교)의 한국전래와 더불어 종교사적 측면에서도 귀중한 유물이며

장엄한 종교의식을 중요시하는 불교와 천주교에서 경배 대상이 되는

성보의 제작 형태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뿌리를 내린지도 이미 220여 년이 지났으며

이제는 우리나라 종교로 토착화되어 한국의 종교문화로 자리하였다.

18-19세기경 외국에서 건너온 이러한 종류의 종교유물은 물론,

우리 손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시기의 종교유물에 대해서도 조사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서

종교문화재로서 보존관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최태희,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 2009-05-18 문화재청, 문화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