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묶여 있는 여인 - 안드로메다(Andromeda)와 페르세우스(Perseus)

Gijuzzang Dream 2009. 4. 14. 01:10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남자의 성적 환상, 묶여 있는 여인

 

 

 
 
 

 

남성이 자기 내부의 여성성을 되찾고 싶다는 열망을 표현

 

 

우주를 누비는 주인공들이 은하계를 벗어나 가장 빈번히 드나드는 이웃 은하계가

바로 안드로메다이다.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

안드로메다는 은하계로부터 약 22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우리 은하계와 시속 50만㎞로 마주보고 달리고 있는 까닭에

30억 년쯤 뒤면 정면충돌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와 하나가 될 운명을 가진 별무리인 것이다.

이 별무리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왔다.

영웅 페르세우스가 구원한 에티오피아의 공주가 그 이름의 원소유자이다.

 

오비디우스는 그의〈변신 이야기〉에서 안드로메다가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왕 케페우스와 왕비 카시오페이아의 딸임을 밝히고 있다.

아름답고 착한 안드로메다 공주는 어머니 카시오페이아의 지나친 교만과 허영 때문에

큰 난관에 부닥치고 만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늘 이를 자랑하고 다녔는데,

다른 인간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바다의 요정 네레이드 모두를 합한 것보다 내가 더 아름답다”고 떠벌리고 다닌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요정들이 바다의 거대한 괴물을 보내 에티오피아의 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놀란 케페우스왕은 어떻게 하면 네레이드들의 노기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 신탁을 청해

방법을 찾았다. 신탁은 그의 아리따운 딸 안드로메다를 괴물에게 바치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주문이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던 왕과 왕비는

눈물을 머금고 딸을 괴물의 제물로 내놓았다.

영웅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를 처음 본 것은

바로 공주가 괴물의 밥이 되기 위해 바닷가 바위에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을 때였다.

당시의 장면을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페르세우스는 이 공주에게 반하고 말았다.

공주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 날갯짓하는 것을 잊었다가

공중에 한참을 그대로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페르세우스는 공주에게 그가 누구인지, 왜 거기 그렇게 묶여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안드로메다는 슬픔에 겨워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페르세우스가 계속 질문을 던지자 마지못해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물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은 공주를 보자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공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고 주위는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페르세우스는 왕과 왕비에게 자신이 공주를 구하면 꼭 사위로 삼아달라고 요구해 허락을 받고

곧장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공중을 날며 괴물이 요동칠 때마다 오히려 칼로 괴물의 빈틈을 찔러대는

페르세우스는 진정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마침내 페르세우스의 계속된 공격에 지친 괴물은

검붉은 피를 토하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왕과 왕비, 백성들은 환호했고 영웅은 아리따운 공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이 신화 이야기를 앞에서 언급한 은하계 이야기에 대입하면,

지구가 속한 은하계는 그 이름이 페르세우스가 되겠다.

안드로메다 곁에는 페르세우스가 있어야 하니까.  

30억 년 뒤 우리의 ‘페르세우스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은하계가 ‘합병’을 할 때

비록 일부 별들이 폭발하고 중력의 혼란이 온다 해도

그리스 신화의 우주적 완성이 이뤄지는 것이니 그 정도는 참아줄 만하리라.

페르세우스의 안드로메다 구원 이야기는

그렇게 먼 미래의 우주 공간에까지 그 여운을 길이 남기고 있다.

그런데 이 신화 이야기가 진정으로 의미심장한 것은,

이 이야기가 서양의 모든 ‘공주를 구하는 기사 이야기’의 원형이 됐다는 사실이다.

용기 있고 능력 있는 남자가 아리땁지만 무서운 불행에 빠진 여자를 구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어찌 보면 여성을 무력한 존재로 깎아내리는 시선이 담긴 주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곧잘 남성적 에고가 투쟁을 통해 자기 안의 여성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되곤 한다는 데

이 주제의 매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은 “남성다워야 한다”는 억압으로

자기 안의 여성적 특성을 억누르며 산다.

이 주제는 바로 그 억압을 극복하고자 하는 남성 내면의 오랜 열망이 투사된 주제이다.

 

괴물 혹은 마녀는 부정적인 여성성, 혹은 여성성의 공포스러운 측면을 나타내며,

바로 그 여성성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과 인식을 극복하고 공주,

그러니까 자기 안의 진정한 여성성을 구해내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남성이 온전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저 먼 신화 속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지구 곳곳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살아 있는 신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주헌 (미술평론가, 학고재 관장)

 

 

 

밥이 보약임을 알지만 밥만 매일 먹으면 입맛을 잃어버린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입맛을 잃어버리면 색다른 음식을 찾으면 되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조강지처가 옆에 있는데 색다른 상대를 찾다간

가정 파괴의 원인 제공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처럼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때엔 환상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남자의 성적 환상 중에서 최고는 아마도 묶여 있는 여자와 나누는 사랑일 것이다.

가죽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거나 나무, 침대, 기둥 등에 포박된 여인은

시대에 상관없이 남자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소재다.

묶여 있는 여인을 구출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로서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 묶여 있는 여자는 남자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전형적인 작품이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기사 에란트’ 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기사 에란트’ 1870

 

큰 나무에 묶여 있는 벌거벗은 여인.

여인을 묶은 밧줄을 갑옷 입은 기사가 칼로 끊고 있는 이 작품에서

큰 나무는 남근(男根)을 암시한다. 여인의 발 밑에는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고,

화면 오른쪽에 칼에 맞아 쓰러진 남자, 화면 맨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도망가는 남자 두 명은

여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피 묻은 칼은 싸움도 상징하지만 여성과의 섹스도 암시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J.E.Millais, 1829~1896)는 ‘기사 에란트’를 테마로 3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서 여성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은 너무 적나라해서 도덕성을 강조하는 빅토리아 시대에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여자의 얼굴을 전혀 보이지 않게 그렸다.

 

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 즐겨 소재로 삼는 것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 이야기다.

신화는 에로티시즘으로 비난받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들이 선호했다.

 

 

요하임 우테웰(Yoheim, 1566~1638)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안드로메다를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화면 왼쪽, 사슬로 바위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는

오른손을 들고 자신을 구출하러 온 페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대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듯 우아하고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암시하듯 뺨은 붉다.

 

 

  요하임 우테웰(Yoheim, 1566~1638),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1611년, 캔버스에 유채, 180x150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요하임 우테엘(Joachim, 1566~1638)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왼편 바위에는 안드로메다가 묶여 있고

오른편 하늘에서는 페르세우스가 괴물을 공략하고 있다.

안드로메다의 자세는 지금의 급박한 상황과는 거리가 먼, 매우 한가하고 에로틱한 자세다.

이 시기 매너리즘 미술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는데,

귀족 취향을 반영하는 매너리즘 미술은

주제나 내용보다는 스타일과 감각에 더욱 관심을 쏟은 미술이다.

 

안드로메다의 발아래 놓인 것은 조가비들과 해골이다.

조가비들의 다채로운 형태와 화려한 색채는 이곳이 해안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도하고

장식적이다. 그 장식성으로 말미암아 안드로메다의 발치에 놓인 해골들마저 그리 끔찍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안드로메다의 피부가 조가비의 속껍질과 같은 색채와 광택을 띠는 것도

화가의 의도적인 장식 취향을 생각하면 그리 낯설지 않다.

이 모두는 자개장처럼 수집가의 거실을 화사하게 빛내주기 위한 것이다.

 

영웅 페르세우스와 괴물은 안드로메다와 달리 비교적 역동적으로 표현돼 있다.

하지만 화려하고 장식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영웅이나 괴물이나 무지갯빛의 다채로운 색채로 뒤덮여 있는데,

페르세우스가 좀더 진한 붉은색과 파란색을 띠고 있다면,

괴물은 좀더 밝은 붉은색과 초록색을 띠고 있다.

푸른빛을 띠며 아련히 멀어지는 풍경이 시적인 감상미를 전해준다.

 

 

 

 

에드워드 포인터(Edward Poynter, 1836~1919)의 ‘안드로메다’에서는

안드로메다가 바위에 묶여 있는 모습만 묘사했다.

거센 바람이 안드로메다의 옷을 벗기고 있고,

파도는 바위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렁거린다.

 

 

에드워드 포인터(Sir Edward John Poynter), <안드로메다(Andromeda)>

1869년, 캔버스에 유채, 51x35.8, 런던 마스갤러리

 

 

우윳빛 살결의 안드로메다와 검은색 바위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안드로메다의 나체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안드로메다의 벗겨진 옷자락은

페르세우스를 암시하며 성난 파도는 괴물을 상징한다.

 

 

 

에드워드 포인터(Sir Edward John Poynter, 1836~1919)

<안드로메다(Andromeda)>

 

 

로저의 서사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안드로메다 이야기와 그 구조가 유사하다.

안드로메다 신화의 주인공인 페르세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을 돌로 만드는 괴물, 메두사를 죽인 영웅이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이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해안 절벽에 묶여 있는 아름다운 안드로메다를 발견한다.
바닷가의 커다란 바위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를 본 페르세우스는 그녀를 구하고,

임무를 마친 후 안드로메다와 결혼한다는 내용으로 신화는 끝을 맺는다.

 

이 이야기를 그린 에드워드 포인터(1836~1919)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여인의 나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가 화면 중앙에 여인의 누드를 표현했지만

에로틱한 그림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신화의 장면을 소재로 삼았다.

<안드로메다>에서 페르세우스는 보이지 않고 안드로메다가 바위에 묶여 있는 모습만 그렸다.

거센 바람에 안드로메다를 감싼 옷이 벗겨져도 바위에 사슬로 묶여 있는 그녀는 어쩔 수 없어

고개만 돌리고 있다. 그녀가 묶인 바위 위로 금방이라도 파도가 덮쳐 올 것 같다.

그 파도 속에는 그녀를 덮치려는 바다 괴물이 숨어 있다.

팔을 묶여 무기력하게 바람 앞에 서 있는 그녀는 바다 괴물과 싸울 의지조차 없는 듯 하다.

대리석처럼 부드러운 안드로메다의 살갗과 바위는 대조를 이루고 있어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더욱 더 강조한다.

그녀의 표정은 두려움에 떨기보다 사실 거센 바람을 즐기듯 입술을 벌리고 있다.

이 작품은 수치심으로 가득한 안드로메다를 표현했다기보다는

쇠사슬에 묶인 여인을 표현함으로서 성적 환상에 더 중심을 두었다.

 

묶여있는 나체여인에 대한 성적인 환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에로티시즘과 관련 있다.

여인의 쇠사슬은 오히려 한결 더 에로틱하게 느껴진다.

이탈리아식 르네상스를 겪지 않아 전통적으로 누드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던 영국에서

에로틱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여인의 나체를 보여줘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 금욕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으로 나체의 표현은 금기시되었다.

 

영국화가들이 이탈리아 화가들처럼 자연스럽게 누드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에 어떤 불가피한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순결한 여성이 무슨 피치못할 사정으로 옷이 벗겨진 채 쇠사슬에 묶여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떨면서 서 있거나 하는 것인데

대륙인의 눈에 영국인이 왜 위선적으로 보이는지 알 것 같다.

 

이탈리아 화가에게는 잔잔한 바다 해변에서 온화한 서풍에 밀려 조개 위에 실려온 채

자신의 몸을 마음껏 감상하도록 우아한 포즈로 서 있는 비너스가

가장 좋은 누드화의 소재였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에게는 험한 폭풍우가 치는 바다의 기암절벽에서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가 훨씬 받아들여질 만한 소재였을 것이다.

안드로메다는 빅토리아시대의 비너스였다.

 

에드워드 포인터의 <안드로메다>에서는

바다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가 표현되어 있는데

바다 속에서 막 괴물이 나타나려는 듯 거센 바람이 일고

그녀를 감싸던 천자락이 심하게 날리는데, 팔을 묶이고 옷은 벗겨진 채 서 있는 그녀에게서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갗과 대조를 이루는 거친 절벽은

그녀가 매우 상처받기 쉬운 상태임을 부각시킨다.

그녀는 결코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싸울 의지조차 없는

그저 두려움과 무력함 그 자체다.

이때 페르세우스가 날아와 그녀 대신 괴물과 용감하게 싸워 그녀를 구한다.

- 이주은, <빅토리아의 비밀>에서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 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다.

이 작품은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안젤리카는 파도에 휩싸인 바위에 두 팔이 결박당해 있고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Jean-Auguste-Dominique Ingres. Roger Delivering Angelica.

1819년, 캔버스에 유채, 147x190cm, Louvre, Paris, France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채 서 있다.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는

서사시의 에피소드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미녀를 구원하는 흑기사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일 수 있다.

여자는 한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행복하지만 남자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는 남자의 도리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한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면 그것은 집안에서 도를 닦고 있는 것과 같다.

남자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 가장 행복을 주는 조건이

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을 구해주는 남자에게 전부를 준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흑기사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남자를 사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자다.

너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회를 위해 불의를 보고 지나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인 것처럼

앵그르(1780~1867)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이 작품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름다운 미녀를 구하는 남자를 표현한 것이다.

화면 중앙에 있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벌거벗은 미녀가 안젤리카다.

안젤리카는 아리오스트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주로

많은 남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안젤리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남자들

가운데 그녀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 한명 있었다.

노인은 그녀를 섬에 가두고 괴물로 하여금 안젤리카를 지키게 했다.

이때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장 오를란도의 부하인 기사 로저가 히포그라프라는 말을 타고 와

괴물을 물리치고 그녀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서사시의 내용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하다.

이 작품 속에서 안젤리카는 성난 파도에 휩싸인 바위에 두 팔이 결박당해 있고

왼쪽 다리는 앞으로 내민 채 서있다.

그녀의 머리는 뒤로 젖혀진 채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기사 로저를 바라보고 있다.

딱딱하고 어두운 바위는 그녀의 흰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그녀는 마치 바위와 일체가 되어 조각상 같이 느껴지고 있다.

앵그르는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를 그린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기사 로저를 화면 정면에 배치시켰다. 그는 아름다운 미녀 안젤리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괴물을 처치하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

화면 아래에 있는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기사 로저의 창을 물고 있다.

앵그르는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왼쪽 있는 작은 배와 오른쪽 바위에 있는 등대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로저가 타고 온 말은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고 몸은 사자인 전설속의 동물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이 작품에서 서사시의 내용을 옮기면서도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 이 작품에서 화면 중앙을 가로 질러 안젤리카의 몸을 지나

괴물의 입에 창끝이 물려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그 순간 안젤리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데

그것은 여자가 오르가슴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작가 박희숙의 아트 에로티시즘

- 신동아, 2009.01.01 통권 592호(p436~439)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신화이야기

 

 

 

 

 

 

 

 

 

그리스 남부의 아르고스(Argos) 왕국 아크리시우스(Acrisius)에게는 아름다운 딸 다나에(Danae)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하여 그녀에게 접근하였고

그 결과 페르세우스(Perseus)를 낳게 되었다.

다나에의 아버지 아크리시우스는 자신의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의 계시 때문에

모자를 모두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이 상자는 세리푸스(Seriphus)섬에 무사히 닿았고,

이들은 그곳에서 딕티스(Dictys)라는 어부에게 발견되어 거기서 살게 되었다.

 

세리푸스 섬을 다스리는 폴리덱테스(Polydectes)왕이 페르세우스의 어머니 다나에(Danae)에 반해

그녀를 차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페르세우스 때문에 실패하였고,

폴리덱테스 왕은 페르세우스를 없애버릴 음모를 꾸며 섬의 모든 청년들에게 선물을 가져오게

하였는데 가난한 페르세우스만이 아무 것도 바치지 못하자 벌로 페르세우스에게

당대의 괴물 메두사(Medusa)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가 여신 아테네(Athene)의

미움을 사서 머리카락이 모두 뱀으로 변해 버렸고,

그녀의 눈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하게 만드는 무서운 마력을 갖게 된 괴물이었다.

 

폴리덱테스는 페르세우스가 그 일에 실패하여 메두사에 의해 돌로 변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으나

여신 아테네(Athene)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는 페르세우스에게 거울처럼 빛나는 방패와

하늘을 나는 구두를 주어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하늘로 날아가 메두사와 싸움을 벌여

결국 메두사의 목을 자르는데 성공하여 메두사의 머리를 얻은 페르세우스는

동쪽의 헤스페리데스(Hesperides)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의 왕 아틀라스(Atlas)는 그가 제우스의 아들이란 이유로 추방령을 내려 버렸다.

아틀라스는 제우스의 아들이 헤스페리데스의 가장 귀중한 보물을 가져가리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페르세우스는 아틀라스의 무례함에 화가 나서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하여 그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

아프리카 북부의 아틀라스산(the Atlas Mountains)이 그때 돌로 변한 ‘아틀라스’라고 전해진다.

 

제우스의 아들이 헤스페리데스의 보물을 가져가게 되는 것은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인데,

그는 바로 헤라클레스(Hercules)였다.

한편, 그리스신화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Heracles)는 페르세우스의 자손이다.

 

 

에티오피아에는 케페우스(Cepheus)왕과 카시오페이아(Cassiopeia)라는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는데, 카시오페이아는 ‘바다의 님프 네레이드(Nereid) 모두를 합한 것보다 내가 더 아름답다’고

자신의 미모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에 화가 난 바다의 요정들이 바다의 신(海神) 네레우스(Nereus, 포세이돈, Poseidon)에게

카시오페이아를 혼내줄 것을 요청했다.

포세이돈은 해일(海溢)을 일으키고 괴고래 케투스(Cetus)를 보내어 에티오피아 해안은 황폐해졌고,

이에 놀란 케페우스(Cepheus)는 신탁(神託)에 따라 분노한 신들을 달래어 나라를 구하고자 

딸 안드로메다(Andromeda)를 제물로 바치게 되었다.

 

때마침 메두사의 목을 가지고 에티오피아의 하늘을 날아가던 페르세우스가

바위에 묶여 케투스(Cetus)에게 희생되려는 안드로메다를 구하게 되자

안드로메다의 부모는 기뻐 잔치를 열었는데 그녀의 약혼자로 정하였던 숙부 피네우스(Phineus)가

갑자기 뛰어들어 페르세우스를 공격하자 페르세우스가 내미는 메두사의 목을 본 순간

그는 돌로 변하였다.  

 

에티오피아를 떠난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와 함께 어머니가 계신 세리푸스(Seriphus)로 돌아와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를 괴롭히고 결혼을 강요하던 폴리덱테스(Polydectes)와 정면으로 맞서

그를 또 하나의 돌로 만들어 버렸다. 모든 원한을 정리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네 여신에게 바쳤고, 여신은 이것을 방패 한 가운데에 붙여 놓았다.

 

그 후 페르세우스는 어머니 카시오페이아와 아내 안드로메다를 데리고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우스(Acrisius)의 땅 아르고스(Argos)로 갔으나

어느 날 우연히 원반던지기에 참여하여 잘못 튄 원반으로 한 노인을 죽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아크리시우스(Acrisius)였다.

결국 아크리시우스는 손자의 손에 죽게 된다는 신의 계시대로 페르세우스의 손에 죽게 된 것이다.

 

이후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를 떠나 티린스로 가서 국왕이 되었고

안드로메다와의 사이에 7명의 자식을 낳았다.

훗날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가 죽게 되었을 때

아테네의 여신은 이들을 케페우스(Cepheus), 카시오페이아(Cassiopeia),

괴물 고래 케투스(Cetus)가 있는 곳에 두 개의 별자리(성좌, 星座)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케페우스 왕가는 이렇게 밤하늘에 별자리로 영원히 남아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카시오페이아는 그녀의 허영심에 대한 벌로

하루의 반을 의자에 앉은 채 거꾸로 돌게 하였다고 한다.

- 그리스 로마신화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