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여 있는 여인 - 안드로메다(Andromeda)와 페르세우스(Perseus)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남자의 성적 환상, 묶여 있는 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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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보약임을 알지만 밥만 매일 먹으면 입맛을 잃어버린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입맛을 잃어버리면 색다른 음식을 찾으면 되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조강지처가 옆에 있는데 색다른 상대를 찾다간 가정 파괴의 원인 제공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처럼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때엔 환상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남자의 성적 환상 중에서 최고는 아마도 묶여 있는 여자와 나누는 사랑일 것이다. 가죽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거나 나무, 침대, 기둥 등에 포박된 여인은 시대에 상관없이 남자의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소재다. 묶여 있는 여인을 구출하는 것은 정의의 사도로서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 묶여 있는 여자는 남자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전형적인 작품이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기사 에란트’ 다.
큰 나무에 묶여 있는 벌거벗은 여인. 여인을 묶은 밧줄을 갑옷 입은 기사가 칼로 끊고 있는 이 작품에서 큰 나무는 남근(男根)을 암시한다. 여인의 발 밑에는 옷가지가 흐트러져 있고, 화면 오른쪽에 칼에 맞아 쓰러진 남자, 화면 맨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도망가는 남자 두 명은 여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피 묻은 칼은 싸움도 상징하지만 여성과의 섹스도 암시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J.E.Millais, 1829~1896)는 ‘기사 에란트’를 테마로 3개의 작품을 그렸는데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에서 여성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은 너무 적나라해서 도덕성을 강조하는 빅토리아 시대에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여자의 얼굴을 전혀 보이지 않게 그렸다.
묶여 있는 여인을 묘사한 작품이 즐겨 소재로 삼는 것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 이야기다. 신화는 에로티시즘으로 비난받지 않았기 때문에 화가들이 선호했다.
요하임 우테웰(Yoheim, 1566~1638)의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는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안드로메다를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화면 왼쪽, 사슬로 바위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는 오른손을 들고 자신을 구출하러 온 페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대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듯 우아하고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을 암시하듯 뺨은 붉다.
에드워드 포인터(Edward Poynter, 1836~1919)의 ‘안드로메다’에서는 안드로메다가 바위에 묶여 있는 모습만 묘사했다. 거센 바람이 안드로메다의 옷을 벗기고 있고, 파도는 바위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렁거린다.
에드워드 포인터(Sir Edward John Poynter), <안드로메다(Andromeda)> 1869년, 캔버스에 유채, 51x35.8, 런던 마스갤러리
우윳빛 살결의 안드로메다와 검은색 바위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안드로메다의 나체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안드로메다의 벗겨진 옷자락은 페르세우스를 암시하며 성난 파도는 괴물을 상징한다.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780-1867) 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다. 이 작품은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안젤리카는 파도에 휩싸인 바위에 두 팔이 결박당해 있고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채 서 있다.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는 서사시의 에피소드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미녀를 구원하는 흑기사 여자는 한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행복하지만 남자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는 남자의 도리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 가장 행복을 주는 조건이 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한다.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흑기사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남자를 사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자다. 너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앵그르(1780~1867)의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이 작품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름다운 미녀를 구하는 남자를 표현한 것이다. 안젤리카는 아리오스트의 서사시 <성난 오를란도>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주로 많은 남자들의 흠모를 받았다. 안젤리카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남자들 가운데 그녀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 한명 있었다. 노인은 그녀를 섬에 가두고 괴물로 하여금 안젤리카를 지키게 했다. 이때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장 오를란도의 부하인 기사 로저가 히포그라프라는 말을 타고 와 괴물을 물리치고 그녀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서사시의 내용은 고대 신화 안드로메다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비슷하다. 왼쪽 다리는 앞으로 내민 채 서있다. 그녀의 머리는 뒤로 젖혀진 채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기사 로저를 바라보고 있다. 딱딱하고 어두운 바위는 그녀의 흰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그녀는 마치 바위와 일체가 되어 조각상 같이 느껴지고 있다. 기사 로저를 화면 정면에 배치시켰다. 그는 아름다운 미녀 안젤리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괴물을 처치하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 화면 아래에 있는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기사 로저의 창을 물고 있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왼쪽 있는 작은 배와 오른쪽 바위에 있는 등대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로저가 타고 온 말은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지고 있고 몸은 사자인 전설속의 동물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부각시켰다. 이 작품에서 화면 중앙을 가로 질러 안젤리카의 몸을 지나 괴물의 입에 창끝이 물려 있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그 순간 안젤리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데 그것은 여자가 오르가슴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작가 박희숙의 아트 에로티시즘 - 신동아, 2009.01.01 통권 592호(p436~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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