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기와
고구려의 기와
기와는 목조건물의 지붕에 사용하며, 실용성과 함께 장식성을 가지고 있다.
실용적으로 기와는 방수, 방화 등 건물이 내구성과 관련이 깊으며,
장식적 기능은 사용자의 권위와도 관련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기와의 사용이 궁전, 성, 무덤, 사원 등이 건축물에 국한되어 온 점은
이같은 장식적 기능과 맥이 닿는다.
또한 수키와, 암키와와 같은 기본기와가 기와의 실용적 측면에 보다 충실한 것이라면
끝장식에 사용된 막새 등은 장식기능이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와가 제작,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서주 초기부터이다.
당시 기와는 네모난 판형(板形)으로 제작되었고 사용처도 지붕 전체가 아닌 마루에 한정되었다.
서주 중기에 이르러 수키와와 암키와가 별도로 제작되고 기와가 지붕 전체에 이어지면서
문양이 새겨진 반원막새가 출현하였다.
반원막새
반원막새 -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 정릉사터 출토
원형 수막새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전국시대부터이며,
서한(西漢, 서기전 202-서기 8년) 시기에 반원막새와 교체되면서 동한시기( -220)부터 매우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漢의 영향을 받은 낙랑지역에서 가장 먼저 기와가 사용되었으며,
삼국 중에는 고구려가 3세기경 가장 먼저 기와 제작기술을 받아들여 이를 사용하였다.
고구려의 옛 도읍지였던 집안과 평양을 중심으로 궁전과 무덤, 절터와 산성에서 많은 기와가 발견되는데
무덤 주변에서 출토되는 기와는 무덤 상부를 보호하는 건축물
혹은 무덤을 지키는 수묘인(守墓人)과 관련된 건축물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의 기와는 기본기와, 막새, 서까래기와, 마루기와, 특수기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본기와로는 지붕을 잇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수키와와 암키와를 들 수 있다.
막새는 수막새, 암막새, 이형막새로 나눌 수 있는데
고구려에서는 암막새 대신 암키와의 끝을 봉으로 눌러 변형시킨 끝암키와가 생산되어
암막새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이형막새에는 반원형 막새와 행인형(杏仁形) 막새가 있다.
반원형 막새는 삼국 중 고구려에서만 사용되었으며 그 제작시기 역시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기와의 대표적인 형태인 수막새 중 집안지역에서 제작된 초기양식은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를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구름무늬 수막새는 춘추전국시대인 동주(東周)에서 처음 채용되어 秦, 漢대에 매우 유행한 문양이다.
고구려의 구름무늬 수막새는 3세기후반에서 4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초기 수막새는 漢식 수막새를 기본으로 하여 魏, 晋대 기와형식을 수용하였다.
한 줄 또는 두 세줄의 선으로 막새면을 분할하여 구름무늬를 배치한 것이 기본이 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연호나 간지 등의 문자가 새겨진 것들도 있는데
‘太寧四年(326년)...’ 이나 ‘乙丑(329년)...’ 등의 기년명(紀年銘)이 새겨진 수막새로부터
4세기 초반에 이미 본격적으로 고구려에 수막새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름무늬 수막새 / 구름무늬 암막새(평양시 평천구역 출토)
한편 372년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지자 연꽃무늬가 새로이 수막새 문양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구름무늬를 대체해 나갔다.
초기 양식의 연꽃무늬 수막새는 중앙에 반구형 자방(子房, 씨방)이 있고, 대부분이 홑겹잎(單瓣)인 것이다.
볼륨이 강한 꽃잎 안에는 능선(稜線, 모서리 선)이 새겨지고
연꽃잎 끝(瓣端)이 좁고 날카롭게 표현되고 있다.
국내성과 태왕릉, 천추총 등 집안지역 무덤이나 궁성 등에서
초기형식의 연꽃무늬 수막새가 확인되고 있다.
이 시기 기와는 대체로 회색 또는 회갈색을 띠며, 기와 표면에 회칠이나 주칠을 한 것도 소수 발견된다.
또한 지름이 크고 주연부(周緣部, 가장자리)가 높이 돌출되어
마치 원통형그릇과도 같은 형태를 하는 것도 많다.
연꽃무늬 수막새
평양천도(427년) 이후, 초기양식인 구름무늬 수막새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막새면을 선으로 분할한 연꽃무늬 수막새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연꽃잎은 홑겹이 주를 이루며, 꽃잎 수는 4잎에서 10잎 이상까지 다양하다.
초기양식을 계승해 선으로 막새면을 분할한 것이 일반적이나
6세기경에는 분할선이 변형되어 꽃술이나 넝쿨무늬,
또는 양감이 강한 연봉오리 사이에 사이잎을 배치하기도 하였다.
또한 연꽃 이외에 당초(唐草), 보상화(寶相華), 인동(忍冬), 초화(草花), 귀면(鬼面) 등이
새로이 채용되었고, 두 가지 무늬가 서로 조합을 이루는 복합문도 성행하는 등 다양한 문양을 보이고 있다.
귀면문 수막새
귀면와(평양 안학궁 출토)
귀면와 - 자강도 자성군 송암리 2호 출토
또한 이 시기 고구려의 수막새는 주연부가 낮아지고 크기도 집안의 것보다 작아진다.
색조는 초기에 회백색 혹은 회갈색을 띠지만
5세기 이후부터는 붉은 색을 띠는 적갈색 기와로 바뀌는데,
이를 중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적색을 왕조의 색으로 택해
건물지에 이와 같은 기와를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 기와는 선이 굵고 문양의 양감이 강하여 전체적으로 강경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고구려 문화의 활달성과 강건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 기와는 신라와 백제에도 영향을 주어 이후 우리나라 기와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장은정,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이우치실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 3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