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간평일구(簡平日晷)와 혼개일구(渾蓋日晷) / 신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

Gijuzzang Dream 2008. 10. 13. 16:50

 

 

 

 

 

 

 간평일구(簡平日晷) · 혼개일구(渾蓋日晷) - 보물 제841호

 

 

2개의 해시계를 하나의 돌에 새긴 매우 독특한 형태의 해시계이다.

간평일구(簡平日晷)와 혼개일구(渾蓋日晷)를 한 개의 돌에 새긴 해시계이다.

간평일구는 북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선을 새긴 해시계이며,

혼개일구는 남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선을 새겨 경선과 위선을 나타낸 해시계이다.

 

간평일구는

길이 129㎝, 넓이 52.2㎝, 두께 12.3㎝이다.

중국에 온 선교사 웅삼발(Sabathino de Ursis, 熊三拔)의 저서『간평의설(簡平儀說)』에 의거하여

제작한 ‘간평의’와 동일한 것이다. 그 모양은 앙부일구를 그대로 수평면 위에 투영한 형태이다.

우리 고유의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오목한 시반(時盤)에

계절을 나타내는 13줄의 절기선과 하루의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시계 면의 지름은 43㎝이며, 평면 원의 중심을 천정(天頂)이라 새기고

시각선의 복사점을 북극이라 새겼는데,

이 북극에 맞춰 보아 상공의 태양운행과 시간을 알 수 있게 고안한 것이다.

 

혼개일구는

해시계 면의 지름 46㎝이며

좌우로 벌어져 가는 선이 시각선이고, 남극을 중심으로 둥글게 새겨진 원이 절기선이다.

모든 시각선과 절기선은 직교하고 있다.

2구 모두 원안에 곡선으로 이루어진 세로선(경선,經線)과 가로선(위선,緯線)들이 그어져 있는데,

세로선은 시간을 가로선은 계절을 나타낸다.

절기선은 동지선의 반지름이 가장 작으며 하지선이 가장 크다.

가운데 바늘의 길이는 원지름의 반이고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정오에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혼개일구는 중국인 이지조(李之藻)의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設)』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천문관측기구인 ‘혼개통헌의’와 동일한 것이다.

하단면에는

"時憲黃赤大距二十三度二十九分 漢陽北極出地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 乾隆五十年乙巳仲秋立"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한양의 북극고도(위도) 37°39′15″를 기준으로

황도와 적도의 극거리 23도 29분을 측정기준으로 하여 1785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그림자를 맺게 하는 영침은 유실되었다.

이 해시계는 해 그림자를 통해 하루 중의 시각뿐만 아니라

태양고도, 북극고도, 각 계절의 밤낮 길이 등 13가지 천문현상을 관측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2구의 해시계는 시계면의 선들이 정확하고 정교하며

또 섬세한 선들을 음각하여 돌에 새긴 솜씨가 뛰어나다.

품위가 있고 구조가 독특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참고문헌
- 한국과학사학회, 「한국의 과학문화재 조사보고」, 『한국과학사학회지』제6권1호, 1984.
- 전상운, 『한국의 과학문화재』, 정음사, 1987.
- 한국과학문화재단, 『우리의 과학문화재』, 도서출판 서해문집, 1997.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

 

시반(時盤)이 수평으로 높인 평면으로 된 해시계이다.
1636년(인조 14)에 전해진 것인데, 명나라 이천경(李天徑)이 제작한 것이다.

시반 위에 시각선(時刻線)이 방사선 모양으로, 절후선(節候線)이 쌍곡선군 모양으로 그어졌는데,

서양식 각도 수에 따랐다는 뜻에서 신법(新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론 이 해시계에 절후선을 긋지 않고

시각선에 해당되는 위치에 점을 찍어 놓거나 짧은 직선으로 나타내도 좋다.

덕수궁 정원에 있는 것이 바로 그 경우이다.

현재 2기가 있는데, 그것들은 전에 창덕궁에 있던 것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오석(烏石)으로 된 것(보물 제839호)으로,

가로 55.0㎝, 세로 38.5㎝, 두께 16.5㎝의 비교적 작은 돌 위에 금을 새겼으며,

한양(漢陽)의 위도를 37도39분이라고 써놓았는데,

이는 1713년(숙종 39) 청나라 사신 목극등(穆克登) 일행이 측정한 값 37°39′15″를 줄여서 쓴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법지평일구(보물 제840호)로 대리석으로 되었는데,

가로 57.5㎝, 세로 120.3㎝, 두께 16.5㎝의 큼직한 것으로서, 1636년에 제조된 것이다.
이들 해시계의 시반에는 영침(影針)을 수직으로 세워 놓아서 그 그림자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영침 대신 삼각동표(三角銅表)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에는 그 빗변이 천구 북극을 향하게 하고,

그 면이 자오면에 일치하도록 세운다.

그리하면 영침 또는 동표 끝점의 그림자가 절후선에 따라 움직인다.

절후선 중, 춘추분선은 동서로 길게 뻗은 직선을 이루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이 직선을 등으로 하는 쌍곡선군이 된다.

그러나 이 절후선은 시각의 측정에는 관계가 없고, 시각선의 방향에만 관계된다.

삼각동표를 썼을 때, 그 빗변의 기울기(φ)는 그 지방의 위도이다.

빗변의 그림자의 정북에 대한 방위각을 α라고 하였을 때, 태양의 시간각을 t°라고 하면

다음 식이 성립된다.

tanα=sinφtant

원래 시간각은 몇 시(h) 몇 분(m)이라고 주는 것이지만,

시간각의 1시는 15°에 해당되는 각이므로 각도를 써도 좋다.

서울의 위도(φ)를 목극등의 측정치 37°39′15″라 하고,

위 식에 시간각 t를 넣어서 동표의 빗변의 그림자의 방위α를 구하면 tanα는 tant에 비례함을 알 수 있다.
이 관계는 1년 중 어느 시기에서든 항상 성립되므로

빗변 그림자의 연직선에 대한 각이 같으면 항상 같은 시각을 알려 준다.

물론 이것은 평균태양시가 아니고 진태양시를 알려준다.

 

 

 

신법지평일구 - 보물 제840호

 

 

 

해시계의 일종으로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크기는 가로 55.0㎝, 세로 38.5㎝, 두께 16.5㎝이다.
원리는 그래프 용지에 1㎝ 간격으로 동심원과 10°간격의 방사선을 그어놓고,

그 중심에 막대를 세워 시각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를 보는 형태로,

이것은 반구형을 한 해시계 앙부일구를 전개하여 평면에 옮겨 놓은 것과 똑같은 모양이다.
측면에 새겨져 있는 글을 통해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고

구조와 평면에 그려진 시각선, 절기를 나타낸 선이 중국의 것과 같아

그것을 본 떠 관상감(觀象監)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는 이들 신법지평일구와 같은 휴대용 해시계가 있다.

가로 16.8㎝, 세로 12.4㎝ 크기의 놋쇠로 만든 이 해시계는

자석으로 된 침이 들어 있어서, 휴대할 때 남북을 정하여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했다.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 - 보물 제839호

숭정9년명 신법지평일구(崇禎九年銘 新法地平日晷)

 

대부분의 해시계가 반원모양인데 비해

이 해시계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는 면인 시반(時盤)이 수평을 이루고 있어

지평일구(地平日晷)란 이름이 붙었다.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가로 120.3㎝, 세로 57.5㎝, 두께 16.5㎝이고 무게가 310㎏이나 된다.


시반면은 잘 연마된 평면으로 그 위에 시각선과 절기선이 매우 조밀하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시각선은 한시간을 4각(角)으로 나누고 1각마다 시각선을 하나씩 그어

오전 5시45분부터 오후 6시15분까지 알 수 있게 하였다.

절기선은 하지에서 동지까지 13개선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가운데 삼각형의 시표(時表)가 있었다.


『증보문헌비고』에 보면 인조 14년(1636) 시헌력법에 의해 이천경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해시계가 만들어진 표준 위도를 계산했는데 30°54′N으로 중국 북경의 위도와 같아,

이 지평일구는 북경을 관측지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1645년 우리나라에 돌아오면서

그 일행이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 참고문헌
-「해시계의 歷史와 그 原理」(이은성, 1982, 『동방학지』 33)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상,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유물탐구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