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속도를 늦추라'고
“섬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속도를 늦추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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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사는 것의 단점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 그리고 생명의 충일감을 느낄 여유를 잃는다는 것 따위다. 물론 삶이 요구하는 합당한 필요에 대한 반응으로 바빠지는 것이겠지만 몸과 마음이 두루 바쁜 사람은 삶의 깊이와 넓이를 잃고 평면화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직장 일, 집안 일, 심부름, 쇼핑, 빨래, 청구서 계산 따위의 잡다한 일에 영혼이 분주해지면 대자연과 교감을 나눌 시간은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밀한 영혼의 에너지는 고갈되며 내면에는 피로가 쌓인다.
사는 일에서 말랑말랑한 기쁨은 오래된 귤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자연과 사물들에 대한 신선한 느낌은 증발해버리며, 그 대신 삶은 한낱 걱정, 초조, 스트레스에 눌린 삭막한 의무의 덩어리로 전락한다. 웃고 쉬고 즐길 수 없는 사람은 이미 반쯤 죽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웃고 쉬고 즐기는데, 왜 어떤 사람은 일에 파묻혀 소중한 시간들을 덧없이 흘려보낼까? 혹은 내일을 위하여 오늘 누릴 수 있는 많은 기쁨과 향락을 유보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그러나 오늘이라는 선물은 흘러가버리면 다시는 내 손에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살자. 속도를 늦추고 보고 듣고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선물과 메시지와 가능성을 받아들이자.” 그들은 늘 바쁘다고 말한다. 시장과 대중의 독재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들은 제 삶의 리듬을 잃고 비틀거린다. 외부의 필요에 대한 응답으로서 피동성이 커질 때,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희미해진다. 그때 생물학적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고 삶에서는 경고음이 발동한다. 경고음을 무시한 채 계속 질주하면 혈압, 심혈관 질환, 궤양, 대장염, 두통과 같은 스트레스성 질병이 몸 안에서 자라나고, 어느 순간 그것은 삶을 삼켜버린다. 삶이 경고음을 발동할 때 지혜로운 처신은 손에 쥔 일을 모두 놓고 단순하게 고요함 속으로 망명하는 것이다.
“고요함은 스트레스로 가득한 우리의 삶에 해독제가 되어준다. 고요함 속에 있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삼켜버리는 혼란스럽고 혼잡하고 소모적인 생활이 가져오는 결과를 의식하게 된다. 인위적인 소음들이 우리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요함은 우리 정신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내가 고요함으로 가득 찬 저녁의 빛 속에서 저물어가는 섬을 열망하고 꿈꿀 때도 내면에서 “떠나라, 낯선 곳으로!” 하는 신호가 울리는 순간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서 단순하게 존재하는 시간들을 꿈꾸었던가. 종일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거나 야생화들이 피어난 숲을 산책하고,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듬뿍 받아들이며 느긋한 휴식을 즐기는 꿈은 삶이 강퍅하고 메마를수록 절실해진다. 왜 그럴까?
“섬은 달리기를 멈추고 속도를 늦추고 편안하게 흐름을 따라가며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섬은 내륙으로부터의 단절을 뜻한다. 필연적으로 내륙과는 다른 조건 속에서 삶을 일궈낼 수밖에 없다. 내륙처럼 물자가 풍부하지 않은 섬에서 살기 위해서는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단순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단절되고 잊혀진 채 영겁의 세월을 건너오는 그 과정에서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단순하게 사는 법, 섬만의 특유한 질긴 생명력이 길러졌다. 섬은 지구의 영혼에 이르는 징검다리다. 섬사람들은 “단순하고 느긋한 삶을 사는 분별력”을 갖고 섬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 이미 지구의 영혼에 닿은 사람들이다. 섬에서 빈둥거리는 일은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빈둥거리는 시간은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고, 우리가 잃어버린 몸과 정신과 정서에 균형과 조화를 찾는 시간이다.
기억하라, 빈둥거리는 것은 평온함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방법이다. 소모적인 활동을 그치고 평온함에 오롯이 든 자만이 매임 없이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빈둥거리는 일은 숭고하다. 섬에서는 누구나 태양과 바다와 모래가 하나가 되어 빈둥거릴 수 있다. 섬에서 빈둥거리며 할 일은 많다.
이를테면 “아침이면 촉촉한 버터 바나나빵 굽는 냄새에 잠에서 깨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라벤더 숲에서 낮잠을 자고, 플라밍고들을 따라다니고, 해변에서 뛰어놀고, 조개를 줍”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 벗들과 한담을 나누고, 방금 딴 오렌지를 짜서 주스를 마시며 빈둥거릴 때 딱딱하게 굳은 영혼이 돌연 깨어난다. 영혼이 깨어나면 몸의 감각들은 예민해지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오감의 향연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이 마시는 음료를 마시고, 다른 사람과 사는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가 없다. 남의 척도에 맞춰 삶을 사는 사람의 생활에는 ‘자기’가 없는 대신에 그 빈자리를 불안과 불평이 차지한다. 그것은 불행의 지름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들은 일요일에도 쉴 줄을 모른다. 일요일을 특별하고 편안하고 고요하고 나만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날로 누릴 수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들은 활달하고 발랄하게 뭔가를 기획하고 거기에 온몸을 투신해본 적이 없다. 고독한 방랑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창문을 열어놓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가까운 호수를 찾아가 찰랑이는 물결에 눈길을 주는 것조차 귀찮아한다. 그러면서 일요일에도 고작해야 텔레비전 보기로 소일하거나 인터넷 중독에 빠져 산다. 군중의 일부로 산다는 것은 그런 볼품없고 병든 삶을 아무 반성 없이 사는 것이다. 불행은 나쁜 관습의 축적물이다. 당장에 그만두어야 한다. 군중의 일부로 살지 않으려면 뚜렷한 주관과 주체성을 길러야 한다. 자기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배우고, 좋은 책들을 구해 열심히 읽고,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법을 익히고, 무리에 기대지 않는 독립적인 선택과 행동을 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의 충일감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섬들이 내게 가르쳐준 지혜’는 행복하게 사는 청정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이 세상의 모든 바쁜 사람들에게 시계를 ‘섬 시간’으로 맞추고, 섬의 정신으로 살라고 말한다.
“섬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속도를 늦추라고, 휴식을 취하라고, 우리 자신을 다시 찾으라고….”
재니스 프롤리홀러는 타히티 군도에서 하와이 제도, 자메이카, 보르네오, 바하마 제도, 크레타, 세인트루시아, 남중국해의 섬까지 바다에 흩어져 있는 매혹적인 스물다섯 개의 섬들을 탐험하면서 그 섬들이 갖고 있는 내밀한 영혼을 발견한다. 그 섬들의 내밀한 영혼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행복과 매혹을 펼쳐놓는다.
삶이 메마르고 지루한가? 당장에 낯선 섬으로 떠나라!
섬에서 내륙의 메마른 일들을 잊고 자연의 느림과 고요 속으로 침잠하여 완전한 야생 인류로 돌아가 보라. 섬은 당신에게 치유력을 주고 잃어버린 활력을 충전시켜줄 것이다.
당장에 떠나는 일이 어려운가? 그렇다면 “하늘을 올려다보라.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는 푸르고 광활한 창공을 우리 안으로 불러들이자. 나무를 바라보며 위안과 힘을 얻고, 새의 깃털에서 가벼운 삶의 태도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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