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떠나고(답사)

순천 선암사

Gijuzzang Dream 2008. 9. 8. 21:48

 

 

 

 

 

 2008 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대상(1위) 수상작

 

 전남 순천 조계산의 라이벌, 태고종의 총본산 선암사

 

 


문화재청에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지난 4월 28일 부터 6월 19일까지 우리나라의 국보, 보물을 주제로 한

2008년 문화유산 사진 및 답사기 공모전을 개최하였습니다.

<문화재 사랑>에서는 이번 공모전의 대상부터 동상 수상작을 4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수상작품들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약 1㎞ 정도의 길은 언제가도 느낌이 참 좋다.

터벅터벅 발길을 내딛다보면 양쪽에 버티고 서 있는 장승을 만난다.

원래 이곳에는 1907년에 만든 장승이 서 있었다.

선암사 길목에 세워진 이래 80년을 장수했던 셈이다.

새로 세워진 장승도 횟수로 20년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봤으며, 얼마나 많은 계절의 변화를 겪었겠는가?

이 곳 장승은 선암사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선암사를 한층 빛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승선교일 게다.

지난 2002년부터 2년에 걸쳐 새롭게 단장된 지도 벌써 3년여 시간이 흘렀다.

2003년, 승선교를 보기 위해 찾았던 선암사로의 첫 방문,

그러나 보수공사 때문에 둘러친 칸막이는 안타까움만 주었다.

다시 찾은 승선교는 보물 제400호라는 이름답게 아름다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선암사를 가는 데는 두개의 홍예교가 있는데, 홍예교는 말 그대로 무지개다리(무지개 虹, 무지개 霓)다.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짜 맞춰 조선 숙종 때 만든 이 다리는

벌써 300년이 훌쩍 뛰어넘은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부지런히 발품 팔아 볼 것 많은 선암사


선암사는 백제 성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도 하고,

통일신라 때 도선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선암사를 태고총림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려 초 천태종을 창시한 대각국사 의천이 이 사찰에 머물면서 태고종의 가장 으뜸이 되는 사찰이기 때문이다. 대각국사 의천이 선암사를 크게 중수했는데, 그 이후로 선암사에는 화재가 잦아 전각이 소실되는 비운을 많이 맞았다.

조선 영조 때 이르러 상월대사가 중창할 때 화재를 막기 위해

산 이름을 청량산, 절 이름을 해천사로 바꿨지만,

순조 때 다시 화재가 발생하자 다시 조계산 선암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화재로 인해 고민한 흔적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일주문 뒤편에 걸린 ‘청량산 해천사’ 편액도 그렇고,

한 전각의 환기구에 새겨진 ‘水, 泉’자도 그렇다.

다른 사찰에 비해 연못이 많은 것도 아마 그런 고민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선암사는 송광사처럼 많은 전각들을 거느리고 있어 발품을 많이 팔아야할 정도로

둘러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선암사는 크게 대웅전 영역과 원통전 영역, 응진전 영역, 각황전 영역으로 나뉜다.

대웅전(보물 제1311호)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한 단의 석축 위에 올라 앉아있어서 비교적 날렵해 보이고, 단청의 색이 바래 꽤나 고풍스러워 보인다.

마당에는 크기와 모양이 서로 엇비슷한 삼층석탑 두 기가 나란하게 서 있다.

선암사가 일주문 이외에 천왕문, 금강문 등이 없어서인지

두 석탑이 사찰을 지키는 두 기둥 역할을 하는 듯하다.

두 기의 삼층석탑은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심을 잊는 해우소에 얽힌 에피소드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는 해우소다.

선암사의 해우소는 크고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해우소를 사용해보면 근심을 잊기보다는 공포의 시간을 체험하게 된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넓은 발판, 아래로 아득하게만 보이는 깊이 있는 공간.

거기다 칸칸마다 존재해야 할 문도 없고, 칸막이 자체도 매우 낮다.

남자 화장실에는 재밌는 문구가 하나 쓰여 있다.

이곳의 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파리들에게 전하는 문구 “파리야~ 극락가자!”


선암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이곳!


선암사에서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선암사의 비석이 서 있는 곳이다.

무우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하늘 높이 우뚝 솟은 편백림이 나오는데,

편백림 아래 두 기의 비가 서 있다.

하나는 1707년에 세워진 선암사 중수비고, 다른 하나는 1929년에 세워진 선암사 사적비다.

그리 크지 않은 편백림 이지만 사람도 거의 없고, 비석 주변에 앉아 잠시 쉬기 좋은 곳이다.

사진에 담으면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다.

이제 20년 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밤나무 장승에게 작별을 고한다.

다시 찾아올 때까지 서로를 벗 삼아 다정다감한 시간 보내고, 이야기들 많이 나누시라고….
- 글, 문일식 / 사진, 남정우

- 문화재청, 월간문화재사랑, 2008-09-03

  

 

 

 

 

 

  

문화재 답사기행 / [2008 문화유산 답사기] 동상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에 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평소 사찰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전남 순천의 선암사였다.

여행을 굉장히 많이 했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을 갈 때마다

옆 동네의 송광사는 몇 번이나 갔으면서 선암사는 시간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매번 비켜가게 되었던 곳이라 더욱 아련하게 가보고 싶었는데 그 작은 소망을

이번 봄에 드디어 이루었다.

서울의 잔잔하고 싱거운 봄날이 너무도 아쉬워 남도의 진한 봄을 느끼고 싶어

4월의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을 뜨며 ‘그래 무작정 떠나는거야....’ 결심했다.
2박 3일 짧은 여정 길에 제일 먼저 도착지로 정한 것이 순천 선암사였다.

봄은 ‘선암사’ 가을은 ‘송광사’라 했지 않는가.

 

작년 연말 직장을 그만두고 약간은 의기소침한 날들을 보내다가

이 푸른 봄볕이 눈이 부셔 나의 여행 단짝 친구 어머니와 함께 백수의 특권으로

무작정 봄날에 길을 나섰다. 내가 좋아하는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태어난 곳,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했으니 햇살 맑은 봄날 선암사 해우소에 들러

한번쯤 실컷 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리라.

 

임권택 감독의 오래된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마지막 감동과

<동승>의 세 스님 이야기가 반겨줄 것만 같은 선암사 그 길에 들어서면

우울해했던 시간들이 모두 봄바람에 날아갈 것이다.

선암사 초입에서 푸르름과 함께 방문객을 반겨주는 무지개 다리 승선교.

아치형의 다리가 숨을 멎게 한다


그래.... 그 느낌이 맞았다.
멋들어진 아스팔트 포장이 사찰 입구까지 이어지며 편리한 건물에 옛 건물이 밀리고

호화로운 단청이 총천연색으로 치장되며 점점 현대화되어 가는 요즘 사찰의 모습에서

저만치 비켜 앉아 있는 것 같은 소박한 모습의 선암사는 나의 기대 이상이었고,

그것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암사의 소박한 옛 모습이 남아있는 것은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분쟁으로 말미암은 결과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고즈넉하게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운치 있는 오솔길과 그 옆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온통 연녹색의 푸른 나뭇잎들은 반짝이고 아직은 만개(滿開)하지 않은 꽃들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누군가 그랬다. 선암사의 제 모습을 보려면 봄에 가라고....

아치형의 우아한 다리 승선교와 살짝 모습을 내민 홍매화, 벚꽃, 붉은 동백을 보려고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나는 달려갔으리....

전남 조계산 자락의 선암사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작은 흙길을 한동안 걸어가다 보면

대규모의 부도밭을 지나 제일 먼저 반겨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돌다리

승선교(昇仙橋)가 모습을 드러낸다.

돌다리 중에서 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쌓은 다리를 홍예교,

무지개다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사실 아쉽게도 지금의 승선교는 2002년 홍예교의 지반 붕괴 위험으로 보수공사에 들어가

 2004년 복원공사를 마쳤기에 예전의 홍예석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교체된 홍예석들이 승선교 왼편에 복원안내 표지와 함께

돌무덤처럼 진열되어 있어 보수전의 홍예석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4년 보수공사를 마치고 너무 노후되어

사용이 불가능한 홍예석들을 전시해두고 있다.


조선 숙종 39년(1713년) 호암대사가 쌓았다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는

그 이름처럼 속세에서 신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단박에 느낄 수 있을 만큼

그 풍광이 아름답고 신비롭다.
다리의 모습은 아치형의 반원(半圓)이지만 그 모습이 맑은 물에 비친 모습과 합쳐져

완전한 원형의 모습을 이루는데 가히 그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하다.
반원이기 때문에 결코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개의 반원의 모습이 합쳐져 하나의 큰 원으로 합일되는 것이다.

 

또한 그 하단에서 승선교 뒤에 자리 잡은 강선루(降仙樓)를 바라보는 모습은

무지개를 형상화하는 모습으로 자연미(自然美)로 느낄 수 있는 최상의 미가

바로 이곳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승선교 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리라.

홍예다리 하단의 중앙에는 용머리의 조각이 달려 있는데

이 용머리를 떼어내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단다.

이 조각은 물길을 통해 들어오는 재앙이나 나쁜 악(惡) 기운을 없애기 위한 방편이란다.

 

승선교는 하나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는데

다른 시설의 받침 없이 오직 자연암반만으로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기에

큰 홍수가 나도 무너질 염려가 없는 튼튼한 기초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이 건축기술은 과학과 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하 그렇구나....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절로 찬사가 나오는 것은 결코 나만의 감동은 아닐 것이다.

20년도 못 채우고 허무하게 무너져버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아픔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런 비극을 저 세상에서 지켜보며

우리 선조들께서는 혀를 차고 계시지는 않으실지....

날로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화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닐진대

우리는 빠르고 현대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라 느끼며 살아간다.

 

이 곳 선암사 승선교에 앉아 모 광고에서처럼 잠시 휴대폰은 꺼두고

속세와 단절하며 며칠을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한동안은 고적함에 가슴이 훤해지겠지만 오랫동안은 견디지 못하리라....

그것은 너무도 익숙하게 지내온 서울이라는 바쁜 도시의 생활이 몸에 배어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탓일 것이다. 선암사에는 400년이 넘은 장고(長考)의 세월을

견디며 고매화(古梅花)가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평소 느긋하게 즐기기를 좋아하던 내가 퇴사를 한 후 노심초사하며

‘나답지 않다’ 라고 느끼며 지냈었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아름다운 4월의 선암사 여행을

통해 느낀 것이라면 급하게 가지 않으리란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이 잠시의 시간은 훗날 선암사에서의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내 인생에 여유와 풍요를 선사할 것이리라 믿는다.

 

가슴에 벅찬 감동과 흥분을 가득 담고 선암사 경내를 나오며

승선교 입구에 서서 돌아보았다.

아! 다시 방문했을 때 부디 다른 사찰이 현대적으로 변화해가는 와중에도

순천의 선암사만은 옛 모습 그대로 단아하고 조금은 촌스런 모습을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내년 봄 벚꽃 잎이 흩날리고 매화향이 짙어질 무렵 선암사를 그리워하며

문득 기차를 탈지도 모르겠다.

- 송수미

- 문화재청, 2008-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