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기행 -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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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기적 소리마저 쇼핑몰이 집어삼켰나 108년 세월의 흔적 간 곳 없고 부속기관 같은 처량한 모습 |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시 한 편 읽어보자. 오랜 풍상 다 겪은 시선으로 이 세상의 낮은 곳을 한없이 응시하는 고요한 목소리의 시인 김사인의 허공장경(虛空藏經)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공사판 막일꾼이 되었다 결혼을 하자 더욱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떨어먹고 도로 서울로 와/ 다시 공사판/ 급성신부전이라 했다 삼남매 장학적금을 해약하고/ 두 달 밀린 외상 쌀값 뒤로 무허가 철거장이 날아왔다/ 산으로 가 목을 맸다 내려앉을 땅은 없어/ 재 한 줌으로 다시 허공에 뿌려졌다/ 나이 마흔둘.
이 시 속에 나이 마흔둘 된 사내가 있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쓰인 시는 아닌, 더욱이 결코 쉬운 삶을 다룬 시가 아닌 이 시 속의 사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공사판 전전하다 무허가 철거장 앞에 놓고 자살하여 한 줌 재가 되어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나이 마흔둘.
그 사내의 몸이 하얀 가루가 되어 온갖 망집과 고통과 힘겨움으로부터 이탈하여 허공에 흩날리고 마는 것은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나이에 이르렀거나 ‘다행히도’ 그 위험천만한 나이를 넘어선 독자들이라면 마흔둘 사내의 짧은 생애가 결코 저 먼 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나이 마흔둘. 이 사내에게 ‘서울역’이란 무엇일까.
서울역은, 물론 동쪽에 청량리역이 있고 서쪽에 영등포역이 있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중앙이요 모든 삶의 수렴과 확산이 이뤄지는 곳이라면 역시 서울역인데, 이 서울역은 도대체 어떤 공간이 되는 것일까.
지리와 교통 측면서 서울의 한복판 … 근현대사 주요 사건의 무대
서울역은 108년의 역사를 살아왔다. 1900년에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일을 보았고, 1905년 남대문역으로 개칭되었다가 1910년에 서울시의 명칭이 한성에서 경성으로 바뀌게 되어 1923년에는 다시 경성역이 되었다. 이즈음에 도쿄제국대학의 쓰카모토 야스시(塚本靖)가 설계한 역사가 1925년 완공되었다. 그 모습은 ‘제국’의 한복판 도쿄의 붉은 벽돌 역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경성역이 지금의 서울역이 된 것은 광복 직후의 일. 1946년에 광복 1주년을 맞아 일제 치하 명칭인 경성부를 서울시로 개칭하는 서울시 헌장이 공포되어 이에 따라 그해 11월1일부터 서울역이 되었다. 옛 역사는 실무적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1988년에 서울역 민자 역사가 준공되었고 2003년에는 고속철도 역사가 완공되었다. 예전에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모두 서울역에서 출발하였으나 고속철도 시대 이후 그쪽 노선은 용산역 몫이 되었고 지금은 아래로 경부선과 위로 경의선 도라산역까지 뻗어간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는 441.7km이고 경의선의 도라산역까지는 55.6km이다.
이 서울역이 한반도 근현대사의 한복판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서울역이 지리와 교통 면에서 기본적으로 한복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난 100여 년 근현대사 주요 장면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그 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사람들은 분주히 타거나 내렸고, 또 밥을 먹었다.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 주간동아, 2008.11.04 659호(p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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